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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vs 포장마차…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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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vs 포장마차…당신의 선택은?

[현장] 사라지는 '서민의 친구', 포장마차

저녁 9시.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찼다. 곱창을 볶는 주인의 손도 점점 빨라졌다. 평일임에도 입구에는 10여 명의 손님들이 줄을 지어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가지고 놀라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찬이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흥현 씨가 놀란 기자에게 웃음을 보였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학교에서 쓰는 1인용 책상이 테이블로 쓰였다. 안주를 시키면 어묵탕이 서비스로 나왔다. 메뉴도 다양했다. 야채곱창을 비롯해 닭발, 돼지껍데기, 두루치기…. 가격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5000원. 소주 가격은 10년 전부터 2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잠실역 인근 회사를 다니고 있는 박기성(35) 씨는 "회사 퇴근 후 동료들과 자주 온다"며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이곳을 애용한 지도 5년이 넘었다.

손님도 각양각색이다. 막걸리에 파전을 시켜놓고 자식들 자랑하느라 여념 없는 70대 할아버지부터 한껏 맵시를 내고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20대 여성까지 천차만별이다. 외국인도 눈에 띈다. 서울의 명소라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었다.

▲ 회사원들이 퇴근 후 직장 동료와 야채곱장 하나를 시켜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하루 1000여 명 방문, 밤 12시엔 칼 같이 문 닫아

잠실역 1번 출구에 위치한 포장마차촌. 11명의 노점상인들이 모여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 김흥현 씨도 11명 중 한 명이다. 전체 좌석은 600석이나 된다.

가게는 다르지만 운영은 같이 한다. 메뉴판도 동일하다. 다만 음식값은 각자 받는다. 자신의 가게에서 펴놓은 좌석에 손님이 앉을 경우 음식값을 그 가게 주인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출입문 입구쪽이 장사가 제일 잘 된다. 입구부터 자리가 차기 때문이다. 이에 서로 다툼이 없도록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자리를 바꾼다.

밤 8시가 지나면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루에 대략 100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있으니 애주가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단 하나, 밤 12시엔 어김없이 가게 문을 닫는 게 불만이다. 이곳은 밤 12시가 되면 전등을 끄고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영업 마감을 알린다.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가 12시가 되면 꺼진다.

딱 한 번 새벽까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날이었다. 김흥현 씨는 "그때는 문을 닫으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태세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때 이후 단 한 번도 밤 12시에 불이 꺼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김흥현 씨는 "새벽까지 장사를 하면 돈이야 더 많이 벌겠지만 손님들 건강을 생각해 이렇게 하고 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하루에 나가는 소주가 가게 당 평균 두 상자 정도 된다. 아무래도 저렴하다 보니 더 먹게 된다는 것.

소주값을 2000원으로 받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 위기 직후부터였다. 그 전에는 2500원을 받았다. 김 씨는 "당시 소시민들이 마음 편히 술 마실 곳이 없었다"며 "그래서 고통 분담 차원에서 술값을 내린 게 아직까지도 그대로다"라고 했다.

제2롯데월드 건립으로 쫓겨나는 노점상들

▲ 포장마차촌 길 건너편에는 마천루가 즐비하다. ⓒ프레시안(허환주)
노점상인들이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건 21년 전부터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노점상 일제 단속에 나섰다. 이에 노점상인들은 그해 7월, 명동성당에서 37일간 농성을 벌였다.

결국 정부는 농성을 벌인 노점상인들에게 노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선정해줬다. 11명의 노점상인들은 롯데그룹 소유지인 잠실역 1번 출구 앞에 포장마차촌을 열었다. 당시 노점상 단속에 맞서 얻어낸 신림동, 방배동 등에는 풍물시장이 들어섰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이곳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 이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은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제2롯데월드가 세워지는 곳이다. 롯데그룹은 1988년 이곳에 부지를 매입하고 제2롯데월드 초고층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180도 입장아 바뀌었다. 국방부가 성남 공군기지(옛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을 3도 틀면 건물이 들어 설 수 있다고 하면서 2009년 3월, 건립이 허용됐다. 제2롯데월드는 지상 123층(555미터) 높이의 초고층 빌딩으로 전망대, 7성급 호텔, 사무실 등이 들어선다.

롯데물산은 공사를 위해 노점상을 상대로 시설물 철거 및 토지 인도 단행 가처분 신청을 지난 9월께 법원에 냈다. 법원은 이를 수용, 2월 20일까지 자진 철거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20일부터 법원 집행관 입회하에 철거가 가능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장마차촌 주변은 분위기가 흉흉하다. 포장마차촌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폐타이어가 쌓여있었고 그 사이에는 대형 가스통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손님이 없는 낮 시간대에는 노점상인들이 꽹과리를 들고 규찰을 돌았다. 용역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포장마차촌 철거와 관련해 <프레시안>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저녁 8시부터 꽉 찬 손님들. ⓒ프레시안(허환주)

"이건희가 오겠나, 이명박이 오겠나. 이곳은 서민이 찾는 곳"

현재 3명의 자식을 키우고 있는 김대환 씨는 애들 걱정에 요즘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다 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한 게 벌써 13년째다.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여기가 철거되면 이 나이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제 나이가 올해 마흔 둘입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모르겠고. 요즘은 한 숨만 나와요."

다른 노점상인들도 마찬가지다. 20년 넘게 장사해온 것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답답한 마음에 2009년 8월부터 롯데 측과 협상도 다섯 차례 진행했다. 공생할 수 있는 여러 안도 제시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부지를 절반으로 줄이는 안부터 공사 현장 사무실이 들어서는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 등을 회사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가처분 신청이었다.

김흥현 씨는 "우리는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만 장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회사에서는 이마저 거부하고 무조건 내쫓으려고만 한다"며 "선의를 가지고 대화를 진행했지만 사기당한 꼴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에서는 우리더러 생계형이 아니라 기업형 포장마차라고 합니다.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쫓겨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냥 내쫓는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겁니다. 기업형이든, 생계형이든 말입니다."

김흥현 씨는 "서울에서 이런 곳도 이젠 없다"며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곳을 오겠나, 아님 이명박 대통령이 술 한 잔 하러 오겠나. 돈 없는 서민들이 찾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곳을 굳이 없애려고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노점상인 11명은 법원에 이의신청 및 집행정지 신청을 낸 상태다. 하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명물 포장마차촌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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