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급증세가 심각해지고 있다. 근본 원인은 11개월째 이어지는 저금리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공공연히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결정 과정에서 금리인상에 반대 의사를 내비침에 따라, 지금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질 경우 경기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준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할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가계부채 위험수위…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11월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가계대출은 총 30조7000억 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말 현재 가계대출 총잔액은 546조7000억 원까지 늘어났다.
이와 같은 증가속도는 경제위기 타격을 맞았던 전해(2008년)의 41조9000억 원에 비해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빠른 속도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멈추지 않음에 따라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경우, 올해 말에는 600조 원 근방까지 오를 수도 있을 듯 보인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꺾이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은 29조6000억 원 증가(예금은행 20조5000억 원, 비은행예금취급기관 7조 원)해 가계대출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주택투자수요가 꺾이지 않고 여전히 이어졌음을 입증한다. 실제 지역별 가계대출 추이를 보면 전체 증가분의 절대다수인 28조1000억 원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최근 강남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회복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지금의 저금리 상황이 이어질 경우 가계대출 규모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자가 많은데다, 중소기업 신용대출이 어렵다는 점도 가계대출을 늘리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개인사업자가 사업자등록증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중기신용평가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 경영인이 사업자등록증 대신 주민등록번호를 대고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와 가계생활자금 융통을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경제성장책 고수가 회복 걸림돌
지금과 같은 가계대출 증가세는 경기회복 움직임이 실제 가계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가계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주택담보대출 상당 부분이 올해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액은 총 262조3000억 원까지 늘어났다. 전체 금융권을 합할 경우에는 325조3000억 원에 달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들 중 일시상환대출은 약 112조 원, 분할상환대출은 148조 원가량이다. 일시상환대출 중에서는 44조7000억 원이 올해 만기가 도래하며, 분할상환대출 중에서는 22조3000억 원이 연내 분할상환을 시작한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20일 오전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소득에 비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소비여력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피해자 구제책 동시 마련해야
이처럼 대출 문제가 심각해지는데도 정부와 한은은 여전히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금융위원회가 총부채상환비율(DTI, 채무 상환 능력을 고려한 대출금 결정),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 규제를 강화했으나 이미 실효성은 떨어졌음이 입증된 마당이다.
금융권에서는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정례 열석으로 인해, 이 총재가 퇴임하는 3월말까지도 기준금리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위기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오랜 기간 가계대출 증가세를 방관하다보니, 기준금리를 올려도 부작용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기존 대출자들의 금융부담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며 "소비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담보물건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와 신용경색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이는 결국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이어져 정상적이었던 주택담보대출 부문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결국 피(가계 부실화)를 볼 각오를 하더라도 수술(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만큼, 이를 보완할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전 교수는 조언했다.
전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를 보완할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며 "통합도산법을 개정해 개인회생 절차 중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묶어놓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중소기업 신용평가 인프라를 개선해 기업인들이 중소기업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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