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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대한민국…부자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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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대한민국…부자에게만?

[화제의 책] <한국의 가난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지난 연말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 한국은 돈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어떤가?

"부자 되세요"라는 한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가 한때 대중들 사이에서 덕담으로 쓰였을 만큼 부에 대한 열망이 큰 한국에서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은 그 규모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이들의 목소리는 이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작다. TV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부자들의 일상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가난한 이들의 일상은 대중들의 관심 너머에 있다. 또 '가난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라는 이데올로기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난의 수천년 인류 역사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2010년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동시에 '가난'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어떤 상태가 가난한 건지, 왜 가난해지는지,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고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등은 끊임없이 변한다.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그 사회의 태도에 따라 가난의 규모에서부터 가난이 내포하는 비참함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 얼마나 가난한가

▲ <한국의 가난> (김수현·이현주·손병돈 지음)
최근 발간된 <한국의 가난>(김수현.이현주.손병돈 지음, 한울 아카데미 펴냄)은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한국의 가난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가난을 주제로 한 외국서적은 많이 출간돼 몇몇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의 가난을 주제로 한 사회과학서적은 많지 않았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세계 13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이 됐다고 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를 포함해 두 번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됐다.

2007년 현재 한국의 빈곤율은 가처분소득 중위 50%(평균 가구소득의 절반)를 기준으로 16.5%다. 100명 중 16명이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빈곤율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복지국가로 빈곤율이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하는 스웨덴(2005년 기준)은 5.6%, 핀란드(2004년)는 6.5%로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다. 프랑스( 7.3%)와 독일(8.4%)은 10% 미만의 빈곤율을 보이고 있고, 영국은 11.6%, 이탈리아도 12.8% 수준이다.

반면 한국경제의 일종의 롤 모델인 미국은 17.3%로 우리보다도 빈곤율이 높았다. 한국의 빈곤율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줄어들다가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다시 상승했다. 경제성장이 곧 빈곤율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의 빈곤율이 한국보다 높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빈곤율은 경제성장 정도보다는 오히려 정부 정책과 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빈곤율이 가장 낮은 스웨덴의 경우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시장소득에서 세금을 제하고 공적 이전소득을 합한 금액)의 빈곤율 차이를 비교할 경우 22.1% 포인트나 된다. 그만큼 세금과 각종 복지정책을 통한 정부 정책의 개입으로 시장소득의 불균형이 크게 상쇄된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한국은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빈곤율 차이가 1.7%포인트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을 통해 시장소득의 불균형이 거의 교정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 수치가 7.2%포인트로 20%포인트 안팎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다. 정부 정책의 개입 정도가 그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다. 빈곤율이 27.3%나 되는 멕시코의 경우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빈곤율 차이는 -6.2%포인트였다. 정부 정책을 통해 오히려 시장 소득의 격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정부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왜, 가난한가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노인, 장애인 등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여성가구주 등 일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임금인 이들은 가난에 더 쉽게 노출돼 있다. 2007년 노인의 빈곤율은 47.0%였다. 절반 가까운 노인들이 가난을 경험하고 있다. 장애인의 빈곤율은 34.6%, 여성가구주의 빈곤율은 21.8%였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고 있는 문제는 '일하는 빈곤층'이다. '워킹 푸어(근로빈곤층)'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을 할 수 있어도 기회가 없어서('88만 원 세대'로 통칭되는 20대 청년 실업자), 일자리가 불안정해서(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낮아서(영세기업 노동자) 등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워킹 푸어'는 대표적인 신빈곤층이다.

이들 외에도 노숙인, 이주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탈북자 등 가난한 이들의 범주는 더 다양해졌다. 이처럼 빈곤층의 구성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빈곤 문제의 양상이 더 복잡해 졌다는 얘기다.

특히 이주자의 문제는 세계화가 가난의 문제를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고, 그 해결에도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나라 안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을 줄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고, 낮은 임금으로 다른 나라의 일자리와 경쟁하도록 강요된다.

또 과거에 비해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가난한 어른이 되기 쉽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 행상을 하던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업하고 CEO가 돼 300억 원대의 자산을 모을 수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는 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질병의 위험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돼 있고, '배제'라는 사회적 낙인찍기에 시달리며,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교육 시스템에서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한다 하더라도 10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렵고, 학자금 대출로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괜찮은 일자리를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만에 하나 취업을 하더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은 갚다보면 혼기를 놓치기 일쑤고, 어렵사리 결혼을 하더라도 수억 원대에 달하는 집 장만은 은퇴할 연령에나 꿈꿔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런 모든 관문을 개인의 힘으로 뛰어넘어 대물림되는 가난의 고리를 끊으라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얘기처럼 들린다.

가난에 대해 묻는다

6-7명 중 한명이 가난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한국에서 가난은 여전히 예외적이고 부끄러운 일이며 개인의 게으름 내지는 무능력의 문제인가? 또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사라질 문제인가?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난의 문제에서 당신의 삶은 자유로운가?

현재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미 세대의 문제로도 자리 잡은 가난은 그 영토를 더욱 확장시켜나갈 가능성이 크다. 2050년 한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골드만삭스의 전망이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2010년의 미국처럼 높은 빈곤율에 신음하는 '선진국'이 될 것이다. 가난이라는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가난의 규모와 의미는 그 나라의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재조정이 가능하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노후의 삶은 포기하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가정의 해체' 위험성까지 감수하면서 자녀를 '교육 이민'을 보내거나, 서너살부터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내몰아 입시 경쟁 체제에 편입시키는 상당수 중산층의 삶은 과연 우리 사회의 가난의 문제와 무관할까?

지금이라도 <한국의 가난>에 대해 주목해야할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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