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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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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화제의 책] 조희연의 <동원된 근대화>

박정희 체제는 현재 진행형

종말을 고한 지 한 세대를 넘겼음에도 박정희 체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것은 사회 현상으로서의 '신드롬'이나 퇴행적 향수 또는 정치 공학적 술수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박정희 체제 18년을 전후한 시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국면이었다. 근대 세계 체제의 시민권은 곧 국민·민족 국가였고 박정희 체제기는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핵심 과정을 포함했다. 그 핵심 중의 핵심이 산업화였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재)생산 시스템의 비가역적 전화야말로 박정희 체제를 (재)생산하는 영구기관이다.

이른바 '국민 경제'의 구성과 확장은 '국민'의 형식적 포섭을 넘어 실질적 포섭을 가능케 했고 모든 구성원을 '집단 살림'의 식구로 만들었다. 집단 살림의 주기적 경기 변동이 영원한 운명을 대신했고, 이것을 떠난 개체의 삶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요컨대 국민 또는 민족은 운명 공동체를 넘어 생활 공동체가 되었고 공동의 운명이라는 추상적 긴박보다 생활 상의 일상적 구속을 통해 동질적 집단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산업혁명은 사회혁명을 추동했고 한국 사회 전체가 급속한 변화에 휘말리게 되었다. 사회적 유동성은 극단적으로 상승하였고 대중정치의 본격화는 민주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감각의 활성화를 초래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의 반정립으로 구성 확산되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김대중 정권의 슬로건은 박정희 체제와 단속적으로 연결될 것이며, 뉴타운은 새마을의 번역이다.

박정희 체제는 그것을 스스로 '조국 근대화'라 불렀다. 그러면 박정희 체제의 조국 근대화는 어떻게 가능했고 또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을 내세운 박정희 체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박정희 체제='개발 동원 체제'

▲ <동원된 근대화>(조희연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발간된 조희연의 <동원된 근대화>(후마니타스 펴냄)는 주목할 만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한국의 진보 학계의 중심 역할을 해온 저자의 최근 고민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 2부 6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박정희 시대의 체제적 성격'을 규정한 다음 2부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대중적 동의 기반'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2007년에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사 펴냄)를 통해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기에, 이번 책은 이론적, 사회과학적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이 책을 관류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즉 저자는 '진보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보수적 시각에서 강조하는 경제 성장, 대중적 동의를 '진보적 시각의 확장'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복합적인' 진보적 분석틀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진보적 분석이 근본적으로 '실천의 과학'이기에 현실 '비평'이 아니라 현실 '변화'를 지향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실천의 논리를 위한 현실의 단순화가 초래한 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박정희 체제를 '특수한' 대상이 아니라 '일반적' 특성을 갖는 대상으로 파악하고자 함을 밝히고 마지막으로 '모순적 복합성'과 '헤게모니의 균열' 개념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분석된 박정희 체제는 한 마디로 '개발 동원 체제'로 정의된다. 그 의미는 '근대화'라는 국민적·민족적 목표를 향해 국가가 위로부터 사회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동원하는 체제이다. 이로부터 '동원된 근대화'라는 이 책의 제목이 도출된다.

국가-권력의 헤게모니 확보를 위해 중요하게 동원된 것이 곧 '결손 국가'와 '결손 국민'이었다. 서구적 근대 국가 및 국민을 기준으로 하여 스스로를 후진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정상적 국가와 국민 형성이 전사회적 목표로 설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는 생체적, 도덕적, 국가주의적 훈육 국가로서 결손 국민을 정상 국민으로 전환하기 위한 국민화 프로젝트의 담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 동원 체제는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동원의 작위성으로 말미암아 위기적 성격을 내재하게 된다. 저자는 박정희 개발 동원 체제의 정치사회적 이중성, 즉 효율성과 위기성의 공존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목표임을 강조했다. 위기성의 핵심은 '민중의 주체화'인데, 민중은 근대적인 권리 주체로서 '시민'적 존재이자, 계급적 저항 주체로 설명된다. 박정희 체제는 경제적 근대화를 지배적인 가치로 하고 개인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자율성, 민주주의적 지배와 같은 근대의 또 다른 가치를 무시하는 '예외 국가'적 형태였기에 이를 대표한 것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이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저자는 폭압을 뚫고 성장한 한국의 민중과 민주주의는 백인만의 민주주의인 미국, "파시즘의 유산이 질곡하고 있는 일본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주의의 전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으로 의미 부여했다.

박정희 체제의 동의 기반이 협소했던 점은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박정희 체제는 민족주의를 지배 담론으로 적극 활용했지만, 그것은 '두 개의 국민'을 지향하는 모순적인 기획, 다시 말해 '민족과 대결하는 민족주의'에 불과했다고 한다.

결론에서는 '복합적 진보' 분석틀의 정립을 강조하고 한국의 근현대 역사상 재구성 문제를 논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한국 사회 발전의 '진보적 긍정'으로 요약된다. 즉 박정희 독재는 일본이나 독일과 달리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투쟁에 의해 극복되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발전시켜 간 적극적 진통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안의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면서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도덕적으로 존경받고 모범이 될 수 있는 공동체와 개인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와 연결되는 것으로 상정된다.

박정희 체제 과연 '예외국가'였나?

박정희 체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으로까지 운위되는 만큼 그 실천적, 학문적 중요성은 누차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적 주장을 넘어선 진지한 학문적 접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이 책의 출간은 매우 반가운 일이며 박정희 체제에 대한 학문적 인식 수준을 제고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존의 악무한적 '이항 대립' 구도의 지양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진보와 보수' 간의 극단적 낙차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냉정한 접근을 방해했고, 치밀한 분석과 논증 대신 정치적 주장만이 난무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진보적 시각을 완강하게 견지하면서도 보수적 견해까지 포괄하는 지적 성찰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 실천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이 책은 박정희 체제를 주된 대상으로 삼되, 그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대한 인식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 즉 박정희 체제를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에 배치시킴으로써 인식론적 지평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정치한 사회과학적 분석과 참신한 이론적 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모순적 복합성, 헤게모니의 균열, 우리 안의 보편성 등의 개념은 저자의 치열한 학문적 고민의 산물로 박정희 체제 분석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분석적 개념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시도한 분석의 참신성은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논쟁을 촉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우리 안의 보편성'으로 표현된 문제의식이다. 식민주의적 인식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고민은 매우 소중한 것이나 그것이 또 다른 보편성의 구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시아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연결되는데, 미국의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모범이 아닌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타 사회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세계는 보편이라는 추상 대신 특이성(singularity)으로 구성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보편성을 담지한 모범 대신, 특이성 간의 연대가 더 민주주의적이지 않을까?

둘째는 '모순적 복합성'이나 '헤게모니의 균열' 등으로 시도된 새로운 접근이 좀 더 명료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오직 하나의 요소로 구성되거나 유지되는 지배 질서는 없을 것이기에 복합성은 지극히 올바른 지적이며, 완벽한 무모순의 지배 질서도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모순의 강조도 이의가 있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순적 복합성을 함께 분석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정희 체제가 일정한 동의 기반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동의적 강압'이었다고 하면 기존의 분석 패러다임과의 차별성이 선명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셋째는 근대화 담론의 국가적 사회적 확산과 관련된 문제이다. 주지하듯이 근대화 담론은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정립된 것이지만, 개항 이래 한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문명개화, 실력양성, 계몽운동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근대화'를 추구해왔다. 박정희 체제 성립 이전에 이미 한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근대화 담론을 강조했고, 박정희 체제는 그것을 국가적 수준에서 적용한 것일 뿐이었다.

'교수 정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박정희 체제는 지식인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동원했는데, '지식-권력'의 형성이라 할 만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었다. 지식-권력의 담론적 실천 결과로서의 근대화론은 사회진화론적 도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으며, 서구-근대에 대한 강렬한 콤플렉스와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에 사로잡힌 결과였다. 요컨대 근대화 담론의 사회적 확장은 식민화의 결과였다. 박정희 체제가 선동한 '5000년 가난' 운운의 '빈곤의 정치'는 그 정치적 수사였다. 저자는 근대화에 대한 '사회적 준(準)합의'가 존재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합의라기보다는 지식-권력의 담론적 실천 효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넷째는 '전통화된 지배'의 부재와 '평등주의적 전통'의 문제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은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지배와의 철저한 단절'이 이루어져 '전통화된 지배'가 부재했고, '민족적·인종적 동질성에 기인하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전통'으로 인해서 박정희 체제에 대한 동의 기반이 협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주장이다. 성리학적 질서와 가치, 관습은 매우 오랫동안, 심지어 현재까지도 한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승만의 왕족의식은 유명한 것이었고 '부르봉'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한국전쟁 당시 농촌 지역의 갈등은 신분제적 유제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았고 1960년대까지도 농촌 지역의 머슴은 인격적 예속상태에 있었다. 한국에서 철저한 사회혁명의 경험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왕조에서 공화제라는 국가 형식의 변화만으로 전통적 지배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은 성급하지 않을까 한다.

인종적·민족적 동질성에 입각한 평등주의적 전통 또한 역사적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근대 시기까지 인종적·민족적 동질성은 운위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신분제적 차별 속에서 강렬한 평등주의적 열망이 구성되었다고 보인다. 예컨대, 만적의 난에 등장하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말은 민족적 동질성에 입각한 평등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전근대 조선사회는 남선과 북선의 격차가 매우 컸고 동질적 통합의 정도는 매우 낮았다. 일제시기 안창호가 주장했다고 하는 '일본은 우리를 20여 년간 지배하고 있지만 기호파는 우리를 500년 간 지배했다'는 말은 민족적 동질성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조선왕조 500년 간 서북 출신의 유명인은 홍경래가 유일할 것이다. 요컨대 민족적·인종적 동질화는 근대 이후 문제화된 의제이며 그것도 추상적 본질이라는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다섯째는 '예외국가' 또는 예외적 근대 권력으로서의 파시즘 인식과 관련된 문제이다. 저자는 박정희 체제와 파시즘을 개인 자유, 시민사회의 자율성, 민주주의 등을 부정하고 근대성의 특정 측면만을 극단화하는 예외국가, 예외적 권력으로 파악한다. 월러스틴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를 구분하고 파시즘과 박정희 체제는 기술의 근대만을 추구했기에 해방의 근대와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예외국가라는 규정이 정상국가에 대한 과잉정당화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인다. 전시 총동원체제기 일본의 여성운동은 국가의 해방적 기능에 주목해 전쟁에 적극 협력했으며, 파시즘과 거리가 먼 미국 또한 특정 정세 속에서 예외국가적 특성이 노골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파시즘을 근대의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외과 수술하듯이 제거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라고 보인다. 오히려 파시즘은 근대의 고유한 일부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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