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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게 정의'?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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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게 정의'?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화제의 책] 김용철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까닭

2007년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으로 시작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지난해 6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지난해 8월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유죄 판결, 그리고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등을 거치며 표면적으로는 끝났다. 김 변호사가 50년 인생을 걸고 결행한 '이건희 부자 비리 고발'의 허무한 결말이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당당하게 그룹 순환출자의 핵심고리인 삼성생명 대주주 지위를 얻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당시 상무)은 그룹 경영권 승계를 방해했던 장애물이 제거됐다. 검찰과 법원, 그리고 언론의 전폭적인 협조 속에 이뤄진 일이다.

양심고백 이후 '제대로 사건 수임도 하지 못하는' 변호사이자 빵집 관리자로 살아온 김 변호사가 그동안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책을 펴냈다. 그가 약 7년여 동안 삼성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황제식 경영'의 문제점, 자신이 직접 수행하기까지 했던 불법 로비의 전말, 이건희 일가의 귀족적인 삶의 모습 등을 낱낱이 기록한 <삼성을 생각한다>를 29일 출간한 것. (☞<삼성을 생각한다>가 나오기까지)

엽기적인 '삼성 경영'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씀, 사회평론 펴냄. ⓒ프레시안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에는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하며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삼성 특검의 전말이 소개됐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 퇴사 후 양심고백을 준비하는 동안 매일같이 삼성이 보낸 사람에 감시당하던 일부터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를 비난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 양심선언 후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들의 행동, 특검 수사의 불합리함 등 기존에 나온 기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일들을 낱낱이 공개했다.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2부 '그들만의 세상'에 기록돼 있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할 당시부터 퇴사할 때까지 그가 보고, 듣고, 실행하고, 느낀 삼성그룹의 경영방식이 고스란히 수록됐다. 언론의 찬사를 집중적으로 받는 '총수 경영'이 실제로 어떤 폐단을 가졌는지, 이건희 전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이 회사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비리로 얼룩진 이건희 일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나갈 삼성그룹 조직원들에게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등이 세세한 에피소드를 근거로 소개된다.

특히 그는 삼성 경영 실무의 모든 것을 책임졌던 이학수 당시 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당시 사장과의 대화를 복기해 이들의 불법적 경영 행태를 고발한다. 김 변호사의 눈에 비친 그들은 이건희 일가의 이익이 곧 회사의 이익이며, 나아가 국가의 이익이라 믿는 사람들이었다. 책에는 김인주 전 사장의 일화 등 눈에 띄는 부분이 많다.

이처럼 총수 일가 보필이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구조조정본부)의 최우선 업무가 되다보니 실제 그룹의 미래를 열어가야 할 엔지니어, 전문경영인 등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오직 그룹의 검은 돈을 관리하는 이들만이 가장 높은 보수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내막을 아는 이들이 이탈해서 김 변호사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식 경영이 과연 글로벌 삼성의 성장에 도움이 됐을까. 김 변호사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모든 결정을 총수와 구조조정본부 소수 임원이 하는 구조이다보니 계열사 사장들은 '얼굴 마담'이나 다름없었다. 다음 에피소드는 황제식 경영이 끼친 폐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젠가 삼성 석유화학 계열사 사장이 나를 찾은 적이 있다. 어음을 청구할지, 말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어이가 없었다. "사업하는 사람이 돈을 못 받았으면, 당연히 청구해야지. 무슨 소리냐"라고 했다. 알고 보니 새한그룹에서 받은 어음이었던 것이다. 새한은 이건희 일가와 친족 재벌인데, 당시 경영이 어려웠다. 나를 찾아온 사장은 이건희 가족의 눈치를 보느라 어음 청구를 망설였던 것이다. …(중략)… 계열사 사장을 임명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신라호텔 사장을 마친 뒤, 바로 석유화학 사장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호텔에서 평생 일했던 자가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사장은 구조본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식에서 벗어난 삼성식 경영은 이밖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도청과 관련된 에피소드, 무노조 경영을 사수하기 위해 행하는 일처리, 구조조정본부 팀장회의에 올라오는 황당한 안건 등.

대표적인 사례가 이건희 일가의 명품 취향 때문에 무리하게 1000억 원에 인수했다 100만 원에 처분한 독일의 명품 카메라 업체 롤라이(rollei) 인수 실패다. 이 손해를 모두 계열사가 졌음은 물론이다. 명품에 대한 이건희 일가의 유별난 관심이 경영실패로 이어진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그간 삼성 직원들이 일궈낸 성공신화에 가려져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이 책에는 일반 독자는 접하기 힘들 이건희 일가의 일상생활도 일부 소개돼 있다. 책에는 이건희 전 회장의 생일잔치 광경이 묘사돼 있다.

김 변호사가 이건희 일가와 가진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일반인의 그것과 괴리되어 있는가도 유추 가능하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그들의 현금 개념은 어떤지, 가족관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등도 설명돼 있다.

삼성이 서울 도곡동에 지은 국내 최고가 아파트 타워팰리스 역시 스스로를 귀족처럼 인식하는 삼성 고위층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김 변호사는 지적한다. 2002년 10월 첫 입주자를 받을 당시 이 전 회장은 입주자 자격 심사를 지시했다. 평범한 사람은 들이지 말라는 얘기다. 이 아파트에 방문한 손님은 주인과 한 집에서 묵지도 못한다. 손님을 위한 게스트룸이 따로 있다. 외부인이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보여줘야 한다. 국가시설도 아닌데 말이다.

삼성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비자금의 또 다른 용처도 있다. 바로 이런 황제식 경영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뇌물'이다.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각계에 뿌려진 이 돈은 이건희 부자가 무죄 판결을 받을 때, 비자금을 조성할 때, 삼성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사례 중 김 변호사가 직접 맡았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한다.

"대법관에게 150만 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당시 이학수는 내가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 그게 예의라는 게다. 그러나 나는 운전기사를 대신 보냈다. 속으로는 '대법관이 설마 삼성이 보낸 굴비를 받겠느냐'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에게 들으니, 굴비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이 사례는 약과다. 김 변호사는 김인주 전 사장이 골프장에 동행한 검찰에게 3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건네는 것을 보았다고 책에서 밝힌다. 법무팀에서 김 변호사가 행한 주요 업무는 비자금 전달과 각종 소송의 뒤처리였다. 이들 업무의 최종 목표는 역시나 이건희 일가 보위였다.

이렇게 검은 돈을 주고받은 한국 사회 고위직은 모두 일종의 '패밀리'처럼 엮여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돈을 받지 않거나 양심에 따라 소신껏 소송을 진행해 삼성에 '찍힌' 검사들 일부는 불합리한 인사조치를 받으며 검찰을 떠나야 했다.

김용철이 이 책을 쓴 까닭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은 김 변호사의 검사 재직 시절 일과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개인적 생각이 담겨있다. 군대에서 겪은 일을 통해, 검사시절 맡았던 각종 수사를 통해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양심선언 이후 늘상 듣게 된 '전라디언' '좌빨' '빨갱이' 등의 비난을 지적하며 "오히려 재벌이 좌빨"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한국 사회를 좀먹고, 안보위협마저 가하는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가 한국 사회에 더 문제라는 얘기다.

특히 김 변호사는 주류사회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집착하는 인맥 우선주의, 접대 문화 등을 꼬집는다. 그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대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주목한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 역시 재벌의 투명성 제고로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지적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은 지난 2년, 아니 수십년 간 개선되지 않고 이어져왔다. 사실상 한국의 권력구도 정점에 위치한 삼성을 상대로 김 변호사는 어쩌면 패배가 예정된 싸움을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왜 이처럼 험난한 길을 선택했으며, 이 문제적인 책을 썼을까. 글의 말미에 김 변호사가 쓴 글을 인용한다. 그는 천상 검사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

- 김용철 변호사 관련 주요 기사 모음

'인터뷰 및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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