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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경제위기에 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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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경제위기에 강한 이유

[복지국가SOCIETY] '자동 안정화 장치'의 힘

미국 발 국제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09년 대부분 선진국들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10월에 발표된 IMF의 경제전망에 따르면, 2009년 올해 미국은 -2.7%, 신흥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EU는 -4.2%, 일본은 -5.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서유럽 선진국가들 중에서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위기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에 스페인이 -3.8%, 영국이 -4.48%, 이탈리아가 -5.1%, 독일이 -5.3%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 데 비해, 프랑스는 -2.4%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현 대통령인 사르코지는 자신의 경기부양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프랑스 모델이 위기에 덜 민감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하다. 프랑스의 진보적 경제월간지 <Alternatives Economiques> 2009년 7월 호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프랑스의 수준 높은 재분배정책, 이로 인한 가계 소비의 일정 수준 유지를 들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가 이웃 국가들보다 경기 침체를 덜 겪게 된 이유는 내수가 다른 국가들보다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이다. 2009년 7월 전망한 바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GDP의 58%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소비는 소폭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민간소비가 2.0% 감소, EU 27개국의 경우 1.5% 감소한 데 비해, 프랑스는 0.2%가 증가했다. 한편, GDP의 21%를 차지하는 투자도 부동산에 대한 투자와 기계설비 및 공장시설에 대한 투자가 단지 5.9% 정도 감소하는 데 그쳤다. 비록 감소하기는 했지만 이웃 국가들보다는 상당히 미약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을 만하다.

▲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프랑스는 한때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로 꼽혔으나, 정부의 적극인 복지 정책으로 출산율을 2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저출산 위기라며 호들갑스럽게 걱정하던 당시의 출산율은 1.66명으로 현재 한국의 출산율보다 훨씬 높았다. ⓒ뉴시스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프랑스의 내수가 상대적으로 덜 충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인구가 줄고 있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이민에 의해 인구가 증가하는 반면, 프랑스는 출산율의 증가가 인구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민에 의해 인구가 증가하는 스페인의 경우 위기가 발생하자 많은 이민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감에 따라 인구증가의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의 출산율의 증가에 기인한 인구증가는 가계의 소비뿐만 아니라 주택수요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왜 프랑스에서 건설투자가 단지 소폭만 줄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인구 증가 외에도 프랑스 가계가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점도 소비가 유지될 수 있는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인구 증가 요인과 양호한 가계부채 수준보다 내수 유지에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강력한 재분배정책이다. 재분배정책이란 조세를 거둘 때 고소득층으로부터 세금을 더욱 많이 걷어서 이를 복지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이전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가 불평등 심화로 인해 파멸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이다. 따라서 조세구조가 누진적이고 세금을 많이 거둘수록, 그리고 거둔 조세의 더 많은 비중을 복지프로그램에 사용함으로써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가게 할수록 재분배기능이 강력한 국가이다. 이러한 재분배기능은 어느 국가이든 하게 되어 있지만, 그 정도는 그 나라 국민들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국가의 재정규모가 클수록, 복지프로그램 규모가 클수록 이러한 재분배기능이 강하다.

다시 프랑스의 예로 돌아오면, 프랑스의 재정규모는 2009년에 GDP의 55.6%에 이른다. 이것은 EU의 27개 국가 중에서 스웨덴(56.6%)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EU평균은 50.1%). 그리고 이러한 지출의 대부분은 복지프로그램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재분배되고 있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재분배되는 복지지출의 비율은 GDP의 34.6%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분배지출이 위기 시에 가계의 소득을 안정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프로그램 지출액은 경제상황이 악화될 때 자동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부의 재정수입은 경제상황이 악화될 때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반되는 가위 효과로 인해 위기 시에는 재정수지가 악화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 덕분에 위기 시에 인위적으로 무리한 경기부양 정책을 펴지 않더라도 경기가 진작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자동안정화 장치"라고 부른다. 즉, 복지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위기 시에 "자동안정화 장치"가 잘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의 내수가 크게 감소하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수준 높은 복지프로그램에 있었던 것이다.

<표> OECD 국가들의 조세와 공적이전을 통한 소득재분배 규모


위의 표는 선진국의 재분배정책이 어느 정도로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있는지, 우리나라는 사정은 어느 정도인지를 비교한 표이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개념이 지니계수이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소득불평등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재분배정책의 효과가 클수록 소득불평등도가 완화되고 지니계수가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조세를 거두기 전, 복지수당을 지급하기 전의 소득(시장소득)을 대상으로 지니계수를 구하고 조세를 거둔 후, 그리고 복지수당을 지급한 후의 소득(재분배소득)을 대상으로 지니계수를 구해서 비교함으로써 재분배정책이 어느 정도로 잘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과를 살펴보면, OECD 12개 국가들에서 평균적으로 조세와 공적이전을 통해 지니계수가 0.44에서 0.28로 바뀌어 형평성이 상당히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1994년을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재분배정책이 매우 강력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영미계 국가들의 재분배 규모가 작고, 유럽 국가들의 재분배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외환위기 이후에는 소득 불평등도가 상당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세와 공적이전을 통한 소득재분배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재분배기능이 약한 국가에서는 위기 시에 '자동안정화 장치'의 작동이 미약하므로 정부가 일반적으로는 강력한 경기부양정책을 펼치기 마련이다. 재분배기능이 약한 미국의 경우 2007년과 2009년 사이에 재정지출이 17% 증가했고, 영국은 11% 증가했지만, 프랑스의 경우 단지 3.8% 증가했다. 즉, 프랑스 재정지출이 장기적으로는 매우 높은 수준에 있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자동안정화 장치'나 단기적 경기부양책이나 모두 위기 시에 경기를 부양할 수 있겠지만 자동안정화 장치의 장점은 위기로 인해 실업 상태에 처하게 되거나 해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바로 그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재정이 투입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정부가 어떻게 경기를 부양시킬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확대되는 정부지출을 따오기 위해 기업들과 지자체들이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유지됨으로써 소비가 유지되고, 그로 인해 위기가 다른 국가보다 빨리 지나갈 수 있게 된다.

한편, 복지프로그램의 존재뿐 아니라 공공부문 고용이 많다는 점도 프랑스의 내수를 유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간부문이 경기침체에 따라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그로 인해 실업상태에 빠져 소비를 줄이는 가계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데 비해, 공공부문은 경기순환을 따르지 않으므로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2009년에 프랑스의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지급된 임금이 GDP의 13.2%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EU 평균인 11%를 넘은 수치였다. EU 국가들 중 프랑스보다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지급된 임금이 더 많은 국가는 스웨덴과 덴마크에 불과하다. 그만큼 공공부문이 경기안정화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27개 EU 국가 중 슬로바키아를 제외하고 공공부문 고용이 가장 적은 국가가 독일이었는데, 이것이 독일 경제가 심각한 충격을 받은 이유를 일부 설명할 것이다.

결국,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프랑스 경제를 부양했다고 자랑했지만, 단기적 경기부양책보다는 수준 높은 재분배정책에 의한 '자동안정화 장치'의 작동으로 인해 경제의 안정화가 유지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주는 교훈은 매우 명확하다. 위의 표에서도 확인했듯이 우리나라는 국제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재분배기능이 매우 미약하므로 자동안정화 기능이 잘 발휘되도록 하기 위해 향후 복지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 복지의 강화가 사회의 안정과 통합에 기여하는 분배정책임과 아울러, 내수의 진작과 경제안정화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단기적 경기부양책보다 '자동안정화 장치'가 더 바람직한 이유는 자동안정화 장치의 경우는 언제 재정정책의 기조를 다시 긴축으로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때가 되어 가계가 안정을 찾게 되면 자연히 그 복지프로그램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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