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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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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4>

[특집] 겉으론 하이틴 청춘영화, 실제론 한국사회 비판

국내 영화계가 부침을 계속할 수록 강우석 감독의 '화려한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우석의 귀환이 꼭, 충무로 황금기의 또 다른 도래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국내 영화계가 산업화 고도화 전문화의 규격에 묶이기 이전, 인간 네트워크로 진행되던 그 무엇의 시절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은 여전히 현재진행적 인물이다. 그는 최근 <백야행>을 제작배급하고 있고 <이끼>는 직접 연출중이다. 하지만 강우석에 대한 평가는 늘 조금씩 왜곡돼 왔거나 저평가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강우석의 '화려한 부활'을 원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비교적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행하는 영문판 감독론 책자 <강우석>의 국문 원고를 일부 수정, 분재해서 싣는 것임을 밝힌다 – 편집자)

1989년에 나온 강우석의 첫 히트작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등장한지 얼마 안되는 이 신인 아닌 신인감독이(강우석은 액션배우였던 친형 강용석의 후광으로 1984년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당시 새로운 영화운동을 꿈꿨던 젊은 감독과 평론가 등과 비교적 친밀한 인맥을 쌓기 시작함으로써 일찍부터 자신의 인너 서클을 구축했다) 곧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흥행감독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과시했다. 이 영화는 당시 서울에서 단 2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됐음에도 불구하고 종영까지 약 30만 명의 관객을 모을 만큼 빅 히트를 쳤다. UIP 등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가 한국에 진출하는 등 산업적으로 막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한국 영화계에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일개 독립영화 수준으로 취급받았지만 순전히 영화가 갖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으로 큰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는 이변을 낳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의 연 평균 총관객수는 2,000만 명 미만 수준. 현재 연 평균 청 관객수가 1억 7,000만 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해, 산술적인 비교만 하더라도 신인감독급 작품으로서는 엄청난 흥행몰이를 한 영화였던 셈이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1989년 단 2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했으나 종영까지 총 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인 공교육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봉구와 은주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한 고등학교 교실 안의 풍경은 기형적인 발전과 왜곡된 성장을 거듭해 온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학업성적은 꼴찌인데다 말썽만 일으키는 주인공 봉구는 한국사회가 일찍부터 격리의 대상으로 삼는 인물이다. 그가 짝사랑하는 은주는 늘 1, 2위를 다투는 우등생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신분상승을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적 학사 과정치고 봉구와 은주, 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의 청춘 풍속도는 안타깝고 처절하다.

하지만 강우석은, 사실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얘기를, 하이틴 장르의 영화가 갖는 관습적인 표현 기제들 뒤로 조심조심 숨겨놓는다. 겉으로는 밝고 경쾌한 척,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표정들로 일관하는 영화는 중간중간 드러나는 어두운 이야기의 씨앗이 결국 나중에 시한폭탄처럼 터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며 긴장감을 높여 나간다. 매우 관습적인 장르의 영화를 통해 강우석은 한국사회 기저에 숨겨져 있는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상업영화를 가지고 리얼리즘적 문제제기에 성공한 셈이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하이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영화였다는 점으로 애써 폄하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 인기의 정도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곧 이 영화가 청소년층을 뛰어 넘는 보편의 주제의식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기성 관객층들에게 한국사회의 지나친 계급성, 불합리한 서열주의를 우회적으로 질타하는 내용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학업성적이나 가진 것, 곧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질적인 것, 정신적인 가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그것을 올바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상황을 반성케 하는 영화가 됐다.

이 영화가 장르적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대목은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시험과 성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은주는 결국 그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다. 하이틴 영화가 선택하기 어려운 이 영화의 비극적 결말은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결국 한국사회의 행복은 성적에 의해서 강요되고 있음에 좌절하는 슬픈 청춘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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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3>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2>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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