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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계기…권력 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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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계기…권력 게임이 시작됐다"

[인터뷰] 윤여준 전 장관 "서툰 정부가 일을 그르쳐"

웬만하면 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사람이 시국선언 형식의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면 나름의 의견이 확고하거나, 일이 무언가 심각하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것도 펄펄 끓는 현안인 세종시 문제에.

지난 10월, '세종시로의 정부부처 이전 계획 폐기'를 촉구하며 보수진영 원로 93명이 낸 성명에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공직자 그룹, 학계 그룹, 종교계 그룹, 시민단체 그룹 등으로 망라됐다고는 하나,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고문, 박홍 전 서강대 총장 등 강경 보수 인사들 틈에서 발견한 윤 전 장관의 이름은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11일 윤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지방발전연구원에서 세종시 문제를 비롯해 4대강 사업 등으로 어수선한 현 정국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웬만한 수정안으로는 동의받기 어려울 것"

행정부처 이전은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할 만큼 세종시 원안에 부정적인 그의 태도는 확고해 보였다. "지방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고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프레시안
특히 행정부처 분산에 대해 "머리로만 생각하면 비능률 정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행정 효율성 문제를 크게 우려했다. 그는 "차라리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분산시키는 것은 안 된다"며 "당초 목적은 행정기능을 옮기는 게 아니라 균형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수정 추진 반대 입장이 완강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선 "한번 결정됐으니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는 아니다"고 했다.

또한 공기업 지방 이전이 연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도 "행정부처가 안 가면 공기업 이전 문제도 필연적으로 재검토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가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는 방식에 대해선 "정부 스스로 일을 악화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론의 과정을 거쳐 결정한 것을 다시 바꾸려면 다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하고, "충청도 사람들이 상심하지 않도록 정서도 배려해야"하고, "박근혜 전 대표의 명분과 체통, 권위를 살려줘야"하는데 "왜 중요한 문제를 논의도 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느냐"고 질타했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싶어 하는 CEO 리더십의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세부 내용은 아니더라도 개선 방향이나 골격이 먼저 나왔어야 했다"면서 정부가 수정안의 내용도 없이 변죽만 올린 결과 "이제는 웬만한 안을 내서는 충청도민들과 국민들에게 동의를 받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취소되기는 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의 비밀 간담회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정운찬 국무총리도 연일 기업과 대학 유치 등의 구상을 밝힌데 대해서도 그는 "지금 시대가 기업이나 대학기관을 정부가 가라고 종용한다고 해서 가는 시대도 아니다"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을 내서 유치하면 몰라도 정부가 종용한다고 되겠느냐"고 했다.

그는 정부가 마련 중인 수정안의 골자와 관련해 "△정부가 기업에 압력성 종용을 해서 보내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모든 이익이 세종시로 환원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조언했다.

"박근혜, 진검승부 생각했을 수도…"

윤 전 장관은 이어 세종시 논란으로 표면화된 여권 내부의 갈등에 대해 "세종시는 하나의 계기이고 이제 여권의 권력게임이 시작된 것"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세종시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에서 "배수진을 친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는 것. 윤 전 장관은 "박 전 대표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두 정씨(정몽준-정운찬)를 등장시킨 배경에 대선 경쟁구도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함직하다"며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일단 한번 진검 승부를 해서 초기에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친박-친이계의 상호 비방전에 대해선 "저렇게 품위 없이 인신공격성 말을 주고받으면 국민들은 양쪽을 싸잡아 욕한다"며 "보도를 보면서 정말 불쾌하고 걱정되더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에 대해선 "박 전 대표가 쉽사리 분당을 생각할 것으로는 안 본다"고 일축했다.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윤 전 장관은 "내년 봄까지 한국사회가 심한 진통을 겪으면 지방선거 결과도 나빠진다"며 "그러면 임기는 반환점을 도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이어 4대강 사업에 대해선 "이 대통령이 임기 내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를 좀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이 역시 "이 대통령의 CEO형 마인드가 국정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 게 현명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넉 달 만에 끝낸 환경부에 대해선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게 된다면 지금의 환경부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예상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는데 환경부는 아무런 해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환경을 지키는 게 환경부의 존립 목적이면 정부 내부에서 투쟁을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한편 윤 전 장관은 용산 참사 문제를 질문에 앞서 먼저 거론하며 "장례는 치르게 했어야 하는데, 지금 저게 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주검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며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와버렸다"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은 "정부가 사건 발생 초기에 대응을 잘 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쳐서 여기까지 왔다"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법절차와 별개의 노력을 정부가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세종시와 용산 참사 문제 등에 대한 이 대통령의 유감 표명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자기를 선출해준 유권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수치인가"라고 따지듯 묻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세종시 목적은 행정기능이 아닌 균형발전"

프레시안 : 세종시 수정을 촉구하는 원로 시국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세종시 원안 추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윤여준 : 처음부터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과천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절실하게 느낀다. 행정부처를 분산해서 보낸다는 게 머리로 생각하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지방 균형 발전에도 도움 안 되고 수도권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 수정 문제가 나왔을 때 수정하는 게 옳다고 서명까지 했다.

프레시안 : 2003년 말, 16대 국회 현역의원 때 행정수도이전법에는 찬성한 기록이 있다. 행정기능을 통째로 옮기는 건 찬성하지만 분산에 반대한다는 뜻인가?

윤여준 : 수도를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16대는 국회의원 하면서 개인의 소신대로 투표하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회창 총재와 특별한 관계 때문에 말도 행동도 마음대로 못한 것도 있다. 다만, 차라리 수도를 옮기는 것 자체는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분산시키는 것은 안 된다고 봤다.

프레시안 : 행정 효율성의 문제인가?

윤여준 : 그렇다. 머리로만 생각하면 비능률 정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중앙 행정부처는 부처 간 협의할 일도 많고, 부처 간부들이 국회 출석도 많이 해야 한다. 행정 각 부처끼리 빈번한 회의 있다. 그런데 여러 개로 분산시키면 어떻게 되겠나. 그리고 거기(세종시에) 가 봤자 생각만큼 도시 발전에 도움도 안 된다. 균형발전은 공감하지만 방법은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수정안이 어떻게 나올지 봐야겠으나 세종시의 성격에서 '행정중심' 기능, 즉 정부부처 이전은 빠져야 한다는 얘기인가?

윤여준 : 그렇다.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행정 부처를 옮기는 것은 안 된다. 당초 목적도 행정 기능을 옮기는 게 아니라 균형발전이었다. 당초 목적에 부합하는 더 좋은 방법을 찾는 게 좋지 않나. 거기 오래 살던 분들, 땅을 내놓고 가는 분들의 피해나 마음 상한 게 회복되긴 쉽지 않겠지만 길게 보고 나라를 위해, 충청도를 위해 더 도움이 된다면 그 분들도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웬만한 것을 내놓아서는 동의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상황이 더 악화됐다. 세부 내용은 아니더라도 개선 방향이나 골격이 먼저 나왔어야 했다. 기존의 안을 추진했을 때 장단점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게 '시행 의지를 가지고 구체적인 검토를 해보니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바꾸면 된다'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바꾼다고만 하고 한 달이 넘었다. 여권 내부에 갈등도 생기고 여론도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한 안을 내서는 충청도민들, 국민들에게도 동의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걱정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기업과 대학의 이전이나 과학도시 기능 등을 구상하는 것 같다. 그 정도면 행정기능을 상쇄하는 자족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보나?

윤여준 : 내용을 봐야 한다. 어떤 기업이 올 것인지, 또는 본사가 오는지도 모르지 않나. 지금 시대가 기업이나 대학기관을 정부가 가라고 종용한다고 해서 가는 시대도 아니다. 정말 기업 발전이나,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되는 유인 요인이 있어야 한다. 뭘 내놓을지 모르겠지만 자발적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을 내서 유치하면 몰라도 정부가 종용한다고 되겠나.

프레시안 : 정운찬 총리는 진척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윤여준 : 현재는 내용을 모르니까 말하기 어렵다. 기업 유치의 규모 등을 두고도 도민들이 흡족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나. 당초에 충분히 설명을 했으면 미흡한 것이라도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어렵게 됐다.

프레시안 :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얘기를 보면 토지 사용에 전권을 주는 등의 방안이 고려되고 있는 모양이다. 일각에선 기업의 팔을 비틀면 억지로 보낼 수야 있겠지만, 그게 지금 시대에 맞는 방식이냐는 비판부터 기업에 새로운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새로운 부작용을 잉태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윤여준 : 그런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한 가지만 생각하고 만들 수 없다.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문제를 풀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세종시든 4대강 사업이든 국민적 관심사, 국가적 아젠다는 서두르면 안 된다. 공론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정당, 언론, 시민단체도 참여해서 충분히 부작용 가능성이 걸러진 다음에 가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런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4대강 문제도 그렇다. 강 살리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방식이 그게 아니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일단 멈추고 충분히 따지고 가도 된다. 대통령이 임기 내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민주주의에서는 그렇게 가면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를 좀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정부 스스로 일을 악화시켰다"

프레시안 : 정부 행태의 문제 같다.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 사이의 합리적 비교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지난 한 달 사이 정부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비판자, 혹은 찬성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윤여준 : 일을 정부 스스로 악화시킨 것이다. 방법이 잘못돼서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원안 추진하자는 생각이나 수정 추진하자는 생각이나 똑같이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세종시법은 과거에 찬성 통과되는 과정에서 형식상, 절차상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절대 못 바꾼다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니까…. 하지만 공론의 과정을 거쳐서 결정한 것을 다시 바꾸려면 다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나도 충청도 사람이지만, 충청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마음속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정치권력이 충청도를 깔보고 얕본다는 의식이다. 이번에도 보니까 합리성, 타당성을 떠나서 '전라도 같았으면, 경상도 같았으면 이렇게 했겠느냐' 이런 생각들을 한다. 이런 부분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한다. 지역민들이 '우리를 얕본다'고 생각하게 되면 합리적인 논의가 어렵지 않겠나. 충청도 사람들이 상심하지 않도록 하고 정서도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하나의 세력을 가진 정치지도자다. 세종시법은 그 분이 대표할 때 통과시킨 법이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정중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그래도 선뜻 동의는 안했겠지만 박 전 대표에게 명분도 주고 체통도 살려주고 권위도 살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국정의 동반자라면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논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느냐는 말이다.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프레시안 : 정치적 유불리로만 따지면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세종시 문제를 건드려서 득 볼 게 별로 없는데 공론이 미숙한 상태에서 서두르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윤여준 :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정부가 일하는 방식에는 늘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싶어 하는 태도가 있다. CEO 리더십의 한계다. 민간 기업은 공론화 과정이 없다. 소수 임원과 회장, 총수가 결정하면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간다. 민간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가 목적이고, 그것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국가는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이 회사 사원은 아니지 않나. 주권자다. 주권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생략한다. 물론 대통령이 나쁜 뜻을 가지고 그런다기보다는 CEO 리더십의 특성으로 보인다. 과정이 비효율이고 낭비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가 왜 장점이 있나. 길게 보면 결국 다수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게 훨씬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 아닌가. 현재 세종시 문제가 얼마나 비효율을 낳나. 국론이 갈라지고 여권 내부가 갈라지고 난리를 치는 것이 효율이고 생산인가? 민주주의 방식으로 하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

프레시안 : 설득 과정의 첫 단추는 대선 때 이 대통령이 했던 원안 추진에 대한 약속, 그 이후에도 밝혔던 원안추진 의지가 바뀐데 대한 사과와 불가피성에 대한 설명이어야 했을 텐데….

윤여준 :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상당히 단호한 어조로 원안대로 간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검토해 본 일이 없었을 테고, 여야 간에 합의된 일이기도 하니까 그때까지는 의지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막상 시행단계에 와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면 '방향과 골격을 이렇게 바꿔서 이러한 효과를 보겠다'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 '국민여러분께 약속을 못 지킨 것은 이유가 뭐건 간에 죄송하다. 충청도민에게 미안하다. 보상하겠다' 이렇게 말을 했으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반발하고 저항했을까? 과거에도 늘 그런 식으로 하려는 것을 보고, CEO 형 리더십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방법론이 중요하다. 방법론이 잘못되면 일이 망가진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가 처음 추진한 세종시 사업이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균형발전이라는 철학적 가치는 계승할만한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 중심주의에 매몰돼 균형발전 철학이 해체됐다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윤여준 :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지낸 분이고, 지난 대선 때도 한나라당 후보로는 이례적으로 수도권 지지가 높았다. 대통령이 중요한 세력 기반으로 수도권 주민들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꼭 이명박 대통령이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철학이 있어서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가 경쟁력이 도시 경쟁력이라는 이론도 있고 그에 대한 반론도 많다. 한쪽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생각하는지 알만한 기회는 없었다. 다만 이번 일을 두고 이 대통령이 수도권 중심주의 철학을 가져서 그런다고까지는 안 본다.

프레시안 : 세종시 문제는 혁신도시나 공기업 이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윤여준 : 공기업 이전은 정부 중앙부처 이전과 연계돼서 했던 것이다. 부처가 안가면 공기업 이전 문제도 필연적으로 재검토될 것이다.

프레시안 : 결과적으로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무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윤여준 : 노무현 정부가 한 것이기 때문에 뒤집는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고 들어선 정권이라면 한반도 전체, 최소한 남한만이라도 국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전체 그림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국토개발이든 국가개조든, 전체 그림을 갖고 국민에 제시하는 게 맞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것은 없는 것 같다. 일을 순서대로 해야 하는데 자꾸 밑에 것을 먼저 하다 보니 전체 그림이 안 나온다. 서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임기 중에 업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나. 그 자체를 나무랄 수 없지만 정말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서두를 이유가 있나. 일을 순서 있게,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했으면 좋겠다.

"권력게임 시작…세종시 문제는 더 어려워져"

프레시안 : 현실적인 문제로 보면, 결국 박근혜 전 대표가 키를 쥔 것 아닌가?

윤여준 : 박 전 대표의 평소 언행이나 행동을 보면 상당히 가치 지향적이고 원칙과 신뢰를 중요시한다. 실제로 그렇다면 한국 정치계에서 특출한 사람이다. 목전의 이해관계를 중시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대의를 찾으려고 하고 사보다 공을 찾으려는 훈련이 철저히 돼 있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세종시 관련해서 첫 입장을 밝혔을 때 나는 솔직히 속으로 놀랐다. 정치 지도자는 말을 너무 단정적으로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 발언에는 퇴로를 끊고 배수진을 치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이 단계에서 벌써 박 전 대표가 이렇게까지 배수진을 치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입장을 봐도 상당히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프레시안
최근 여권에서 일어난 변화를 가지고 내 나름대로 궁리를 해 봤다. 정몽준 대표는 박희태 전 대표와 달리 대권 후보다. 정운찬 총리도 대권 후보 물망에 오른 사람이고, 총리가 되면서 세종시 문제를 제일 먼저 과제로 들고 나왔다. 내가 박근혜 전 대표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두 정씨를 등장시킨 배경에 2012년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함직하다. 그러면 두 정씨가 세종시 문제를 수정하는 쪽으로 추진해 간다면 박 전 대표 스스로 정치적 입지가 어떻게 된다고 봤을까?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자기를 대하는 행태를 보건대, 자기를 끝내 도와줄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일단 한번 진검 승부를 하자, 그래서 초기에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렇게 봤다면 내년 지방 선거를 상당히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내년 지방 선거는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에 불리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적극적인 선거 지원 없이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그런 것을 내다보고 여기에서 진검 승부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어차피 공천 문제로 양대 계파가 갈등을 할 텐데, 기다리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세종시는 하나의 계기이고, 이제 여권의 권력 게임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세종시 문제는 더 풀기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프레시안 : 그런 정치적 계산이 있다면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도 세종시 문제의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보기 어려운 게 아닌가?

윤여준 :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를 얼마나 전문적으로 검토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자신의 대표 시절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문제가 있지만 현재는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함직하다. 그런데 한번 결정됐으니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는 아니다. 박 전 대표가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말고 국민을 설득하라'고 했다. 이 문제의 해법은 정부가 낸 안이 획기적이라면 박 전 대표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안을 정부가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박 전 대표가 친 배수진은 그것 아니면 물러설 수 없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표가 완강한 이상 산술적으로 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세종시 수정추진 계획이 결국 좌절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윤여준 : 그렇다면 법 개정을 통한 수정은 포기하겠지. 이상득 의원도 '어렵지 않느냐'고 얘기한 것 같다. 산술적 판단이다. 법 개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 제도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들 국민들이 용인하려고 할까? 법을 고치려 했는데 안 되니 우회한다? 이것은 모양이 안 좋다. 썩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나라가 이 문제로 너무 갈라져서 심한 갈등을 겪으니까 국민도 불안하고, 사회가 혼란해진다.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안 된다면 4대강 사업도 추진 동력을 상당부분 잃을 것이다. 국정 아젠다가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이라고 볼 때,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과제가 하나도 추진이 안 된다고 하면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수행이 어려워진다. 내년 봄까지 한국사회가 심한 진통을 겪으면 지방선거 결과도 나빠진다. 그러면 임기는 반환점을 도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겠나. 누구한데도 도움이 안 된다.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 왜 방법을 이렇게 해서 덧나게 하고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결국 설득력 있는 수정안을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씀인데, 이에 관해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윤여준 : 정부가 수정안을 만드는데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압력성 종용을 해서 보내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실효성이 아니라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수정안이 나와도 그 이익이 지방 정부에 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면 설득이 안 될 것이다. 개발 이익이 됐든 무엇이든 전부 그 지역으로 이익이 환원되도록 해야 하다. 그런 원칙이 있어야 한다.

"환경부, 준엄한 심판 받을 것"

프레시안 : 앞서 4대강 사업을 잠깐 언급했는데, 왜 임기 내 완공에 이렇게 집착한다고 보나?

윤여준 : 원래 기업은 그렇다. 단기간 내에 공사해서 성과를 내고 돈을 벌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 경영이 체질이 된 것 같다. 기업 마인드가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자꾸 타고 들어가는 것 같다. 그것을 옆에서 조언하고 충고해야 하는데 잘 안 이뤄지는지, 대통령이 고집이 세서 안 받아들이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CEO형 마인드가 국정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준다는 점이다. 효율성, 생산성을 위해서라면 최단 시일 내에 마쳐야 한다.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공기 단축을 위해서 돌관 작업(주야간 집중 작업)을 하는 것이 장점이었다. 현대 건설이 한국에서 그런 대표적인 건설업체다. 그런 것이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돼서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프레시안 : 4개월 만에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서 4대강 사업이 시작됐다. 환경부 장관을 지낸 입장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이렇게 끝낸 환경부에 어떤 느낌인가?

윤여준 : 최근 교수들이 그런 문제 제기를 한 것을 많이 봤다. 최근 충남대 민정욱 교수가 <프레시안>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 제기를 한 것을 봤다. 500억 이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안 받도록 규정을 바꾸고 나서 사업비를 500억 미만으로 쪼개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피해 나가려고 했다는 것인데, 이런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결과가 나중에 좋지 않게 된다면 지금 환경부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나도 환경부 장관을 지낸 입장에서 환경부가 힘이 없고 많이 힘든 부처라는 걸 안다. 압력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환경부가 그런 문제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투쟁을 안했다면 환경부는 국민에게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문제제기는 있는데 환경부는 아무런 해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왜 환경부는 꿀 먹은 벙어리인가? 환경부의 존립 목적이 무언가. 환경을 지키는 게 목적이면 내부 투쟁을 해야 한다. 단기간 동안 장관을 한 나도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내가 간부회의 때, 간부들이 '이건 못 막는다'라고 했을 때 내가 '오버 마이 데드 바디(Over my dead body)'라는 표현을 썼다. 내 시체를 밟고 가라는 것이다. 자기들 존재 목적이 나라 환경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꾸준히 내부적으로 끈질긴 투쟁을 했어야 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한 것이라면 그 책임은 환경부가 아니라 그 위로 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완강하고 끈질긴 노력을 안 했다면 나중에 국민들로부터 '그때 환경부 뭐했느냐' 하는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 : 환경부도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다. 혹자는 제2의 청계천 같은 업적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있지만, 엄청난 반대에도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윤여준 : 청계천은 내가 가 봐도 좋더라. 콘크리트 구조물물로 이뤄진 것이든 간에 도심에 물이 흐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아니겠나. 물론 4대강이 청계천처럼 될지 판단할 전문성은 내게 없다. 흔히 경부 고속도로를 반대했지만 결국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확신을 갖고 밀어붙여서 결국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해서 지금의 다른 것도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그 때는 권위주의 시대다. 고도성장을 위해 자원을 권위주의적으로 배분하던 시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이 확신을 가지고 있고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 방법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문제제기가 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런 문제 제기가 일리가 있어 보이고 정부의 설득력은 약해 보인다. 그러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생략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효율성을 생명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가장 효율적인 제도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생각을 바꿔야 한다. 4대강 사업을 하더라도 충분히 국민의 공감을 얻고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덮어놓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프레시안 : 단기적으로는 토건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의 목적이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윤여준 : 어떤 사람은 내년 지방 선거 의식하고 상반기 중에 지방에 많은 돈을 풀어서 지역 주민들에게 경기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 표를 얻겠다는 것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이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계산을 했다고는 보고 싶지는 않다.

프레시안 : 감세기조를 유지해 세입을 줄여놓고, 이런 대형 사업으로 지출을 늘리면 과연 국가재정이 견딜 수 있겠느냐는 걱정은 일리 있어 보인다.

윤여준 : 그런 걱정을 하는 분이 많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걱정하는 것이 국가 재정의 급속한 악화이고, 이것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걱정을 이구동성으로 한다. 현재 재정으로 경기를 버티는 건데 이게 얼마나 가겠나. 얼마 못 간다. 한도가 있다. 세계적으로 출구전략이 이르다는 판단은 있지만, 재정으로 경기를 버티는 것에 대해 커다란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그 대가는 국민이 지불한다. 나도 걱정이다. 미래 후손들이 다 갚아야 할 빚이다. 4대강 사업에 예산을 쥐어짜서 다른 예산이 위축된다는 비판도 많이 있지 않나. 4대강 사업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 해도 이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 게 현명한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이 '백년대계 사업이라 다른 답이 없다' 이렇게 갈 것이 아니다.

"정운찬 총리 역량으로 풀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프레시안 : 현상적으로는 세종시 문제건 4대강 사업이건 전면에서 책임지게 된 사람이 정운찬 총리 아닌가?

윤여준 : 모양새가 그렇게 됐다. 본인이 문제를 제기해서 이 상황까지 온 것으로 돼 있다. 대통령 생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지만 형식상으로는 총리가 문제를 던진 것이 됐다.

프레시안 : 정 총리도 그런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잘 풀어갈 수 있을까?

윤여준 : 정부가 낸 안에 대해 충청도민이 흔쾌히 받아들일 안이 아니라고 가상해본다면 총리의 역량으로 풀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총리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보지만 요즘은 총리가 이 문제의 폭발성을 얼마나 인식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정 총리는 또 청문회 과정에서 도덕적인 흠결 때문에 힘을 많이 잃었다. 취임 하자마자, 업무파악도 하기 전에 이 문제로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 돼서 몇 배는 힘들 것이다.

프레시안 : 정 총리가 소신과 의지를 강조한다. 그것이 관철되려면 총리의 권한과 자율권이 부여됐다는 전제가 서야 하지 않나.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가량 됐는데 어느 정도 권한이 부여된 것 같아 보이나?

윤여준 : 세종시는 대통령의 의중이지 않나. 대통령 생각과 총리 생각이 같다는 전제 하에, 대통령이 총리를 중심으로 추진하라고 했다면 그 부분에는 힘을 줄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통령과 총리가 생각이 다른 적이 많다. 국무총리 제도의 역사를 보면 대통령은 선출된 사람이고 임기가 있다. 권한을 행사하되 정치적 책임을 안 진다. 그러나 총리는 권한은 없는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 대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 '방탄 총리' 같은 얘기가 나왔었다. 예외가 있었다. 이해찬 총리가 예외였다. 이회창 총리는 그러려다가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그런 특별한 한 두 번의 예외가 있지만 역사를 보면 총리는 늘 힘은 없지만 책임은 대신 지는 자리였다. 그런데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를 해결하라고 대통령이 힘을 실었으니 그 문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권한과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겠나.

프레시안 : 대통령의 차기후보 관리 의지가 반영됐다면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수정 추진 문제를 어떻게 연착륙시키느냐에 따라 정치적 진퇴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할까?

윤여준 : 정 총리가 문제를 던진 형식이 됐고 중심적으로 추진하는데, 이 문제가 안 풀린다고 가정하면 정치적 책임을 지라는 정치권의 거센 요구가 있을 것이다. 그런 요구가 거세게 있다면 총리가 처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임 안진다고 할 수도 없고, 책임을 진다고 해도 엊그제 총리 된 사람이 총리직을 던지기도 쉽지 않고…. 참 안됐다. 학계에서 점잖게 있던 분이 혹독한 세파의 시련을 겪고 있으니 안돼 보인다. 그래도 TV를 통해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는 것을 보니 차분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만한 총리보다는 좋아 보이더라.

프레시안 : 갈등의 기본 골격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문제인데, 세종시 문제가 화약고가 되다보니 분당으로까지 번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다.

윤여준 : 우리나라에서 분당은 쉽게 안 일어난다. 성공한 역사가 별로 없다. 옛날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사람들은 확고한 지역기반이 있었다. 분당해도 얼마든지 생존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은 박근혜 전 대표의 영남 지지세가 있다고 하지만 왕년의 양김과 같은 강고한 기반은 없다. 그리고 박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여풍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당을 회생시켜서 당에 애착이 많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쉽사리 분당을 생각할 거라고는 안 본다.

그리고 정당 내 세력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정도가 문제이고,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경쟁 자체를 부도덕하게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 갈등의 강도는 세고 관리는 안 되고 있어서 부정적으로 보이는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나라 생각, 당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겠나. 대통령도 정권 재창출을 중시할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다시 협력 관계로 돌아서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10.28 재보선이 있었다. 강도는 다르지만 언론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실용이 뭐냐는 평가가 앞섰다.

윤여준 : 원래 중도니 실용이니 하는 게 손에 잡히는 개념이 아니다. 중도의 개념을 정의하는 이론 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도는 각자 이게 중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양할 수 있다. 한 가지 개념을 고집하면서 이게 중도라고 하는 것은 우습다. 그래서 중도가 뭐냐 하는 시비를 하면 언제든지 시비가 된다. 박형준 홍보수석이 '우파 정체성으로 좌파 정책을 쓴다'고 했는데 똑 떨어진 중도의 정의다. 나무랄 데가 없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에 대한 국민 평가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당은 표를 못 얻었다.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이 국민에에 신뢰나 기대를 못줘서 그런 것이다. 선거 끝나고 한나라당이 '겸허히 수용한다'고 했는데 레토릭이다. 한나라당이 그 말을 몇 번이 했었나. 진작 국민 뜻을 겸허히 수용했으면 또 선거를 지는 일이 생겼겠나.

프레시안 : 한나라당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윤여준 :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부딪히는 딜레마가 있다. 전에는 총재가 대통령이었지만 지금은 당정이 분리돼 있다. 원내 과반수를 가진 한나라당은 한쪽으로는 대통령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고, 한 쪽으로는 행정부를 견제 비판해야 한다. 두 가지 상충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뭐는 협력하고 뭐는 견제할 것인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칙이 없으니 왔다 갔다 한다. 국민의 목소리라고 말을 꺼냈다가 청와대가 부정적이면 쏙 들어가는 모습을 몇 번 보였다. 그러면 국민들은 대통령 눈치 보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집권당으로써 원칙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 대통령 눈치 보는 모양새, 그런 것을 자꾸 만든다.

이번 선거는 보궐선거 5군데니까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다. 선거는 유권자 분포나 후보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렇다. 그러나 양산은 한나라당의 전통 텃밭이었다. 얼마 전까지 대표를 지낸 경남 사람이 출마해서 고전했다. 정치적으로 졌다고 봐야 한다. 왜 그렇겠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도 그쪽 지역에는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밉든 곱든 여권 내 세력이 있는 정치 지도자다. 박 전 대표를 실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이 대통령이 그런 자세를 가지면 대화도 부드럽게 가고 국정의 동반자 관계가 이뤄지지 않겠나. 그런데 말은 국정의 동반자라고 하는데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러니 불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요즘은 주요 당직을 맡은 분들이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를 험하게 비난하고 있다.

윤여준 : 양쪽에 문제가 다 있다. 같은 당 내에서 경쟁 관계인 정치인들은 말을 그렇게 막하면 안 된다. 절도가 있어야 한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품위 없이 인신공격성 말을 주고받으면 국민들이 양쪽을 싸잡아서 욕한다. 결국 정치권과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혐오와 경멸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야 관계도 아니고 같은 당에서, 경쟁 관계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막말을 하나. 그건 아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서 정말 불쾌하고 걱정되더라.

프레시안 : 당분간 한나라당에서 특별한 리더십이 만들어지기 어렵지 않겠나. 현 상태가 유지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지방선거도 재보선 패턴으로 갈 텐데….

윤여준 : 임시전당대회 해서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기 전에는 이 상태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내년 7월에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당겨 치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상태로 가야지 어쩌겠나.

지방선거는 아직 모르겠다. 정몽준 대표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고 중도인데 그런 사람이 대표를 하면 양 세력 간 공천 갈등 등을 중화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 대표가 그것을 잘 조정하면 리더십도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 선거 공천과 관련해 당 대표가 어느 한 쪽에 섰다는 인식을 주면 다른 쪽에서 격렬하게 수용을 안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정몽준 체제가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게 수치인가?"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2년이 다 돼 가는데, 직간접적인 조언을 한 경우 반향이 느껴진 적이 있나?

윤여준 : 조언을 한 일이 별로 없다. 청와대에서도 조언이나 제언, 충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일일이 다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다 참고해서 청와대가 판단하고 대통령이 결정해서 가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굉장히 서툴러서 일을 그르치는 느낌이다.

용산 참사 문제를 보자. 10개월이 넘었는데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사건 발생 초기에 대응을 잘했어야 한다. 시기를 놓쳐서 여기까지 왔다. 경찰이 잘못했다, 희생자가 잘못했다 이런 것은 후에 논하더라도 돌아가신 분들 장례는 치르게 해야 하지 않나.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주검을 그렇게 대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후대에 대한 교육에도 안 좋다. 그런데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와버렸다.

남한 테 맞을 때, 손바닥으로 따귀를 맞으면 소리는 요란하게 나지만 신체적으로 타격은 별로 없다. 그런데 주먹으로 급소를 맞으면 소리는 안 나지만 내출혈이 생겨서 죽을 수도 있다. 청와대는 사건이 딱 터지면 본능적으로 따귀를 맞은 것인지 급소를 맞은 것인지 판단해야 대응 수위를 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 판단을 못한다. 그것은 지식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용산 사고가 막 났을 때 개인적으로 아는 청와대 모 인사가 '어떻게 수습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당시 내 판단으로는 '김석기 청장을 못 지킨다. 다섯이 죽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잘했어도 인명이 많이 희생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신속히 김석기 청장을 바꿔 인사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신속히 장례를 치러야 한다. 못하면 당신들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적당히 뭉개고 가도 되지 않나 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습하려면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 김석기 청장도 국민이 볼 때, 억울하게 됐다. 운 나쁘게 됐다고 동정을 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면 다른 자리에 김석기 청장을 기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키려고 하면 결국 못 지키게 되는 것이다. 상처는 상처대로 받고 정부는 인사 효과도 없고, 나중에 김석기 청장을 다른 자리에 기용하기도 어려워진다. 절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지금 다소 가슴 아파도 청와대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서 가차 없이 집행해라. 안 그러면 당신들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저희 힘으로 안 된다'고 하더라.

지금 그 일을 돌이켜 봐라. 초기에 판단했어야 한다. 유족들 만나서 위로하고, 장례를 치렀어야 했다. 사건의 시시비비는 사법 절차가 있지 않나. 그것과는 별개의 노력을 정부가 하지 않은 것이다.

프레시안 : 정운찬 총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윤여준 : 유족들과 정부 사이에 거의 의견 접근이 이뤄졌는데 대책위의 일부 강경 세력이 우리가 돈을 바라고 이러느냐는 명분론 때문에 일이 어그러졌고, 정운찬 총리가 청문회 때 (유가족을 찾아 가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저쪽에서도 기대가 달라져 결과적으로 수습이 어렵게 됐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다. 이게 무언가? 정부가 일찍 노력했으면 벌써 타협을 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법 논리를 따지면서 정부가 개입할 일 아니고, 민사 문제라고 한 것 아닌가. 법 논리는 그렇다 해도 정부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다. 장례는 치르게 했어야 한다. 지금 저게 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프레시안 : 이 문제도 이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유감표명이 절실한 문제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이 대통령은 참 고개 숙이기 싫어하는 것 같다.

윤여준 : 고개 숙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1조다. 그런데 주권자인 국민에게, 자기를 선출해준 유권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수치인가? 파렴치한 일을 했다면 수치겠지만 국민을 위로하는 것 아닌가. 그게 수치라고 생각하면 민주주의 못 한다. 자기를 뽑아준 사람한테 '이만저만한 일로 불상사가 벌어진데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게 무슨 수치인가. 그것을 수치라고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괜히 부도덕한 일로 문제 됐다면 백번 수치지만 그런 성격이 아니지 않나. 경찰이 작정하고 사람 죽일 생각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나.

프레시안 : 좋은 말씀 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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