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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女' 폭행한 왕기춘이 몰랐던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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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女' 폭행한 왕기춘이 몰랐던 한 가지

[정희준의 '어퍼컷'] 자본주의의 총아, 부킹의 사회학

2008년은 '88서울올림픽'의 20주년이었다. 바로 전 지식인 사회가 이른바 '87년 체제'를 놓고 벌였던 뜨거운 논쟁을 목도했던 나로서는 '88 체제(?)'에 대해 조용하기만 했던 지식인의 모습이 약간 의외였고 학문적 주제의 계급 현상을 다시 느끼게 됐다. 사실 대중문화 중에도 스포츠는 학계에서 영화나 대중음악은 물론 비보이급의 대접도 받지 못한다. 군사 독재정권이 너무 사랑했기에 생겨난 반발심일까.

어쨌든 88올림픽과 7년 여에 걸친 그 준비 기간은 대한민국 사회를 휘딱 뒤바꿔버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근검·절약이 기조를 이루던 생활 양식에서 소비사회로의 전환이었다. 얼마나 급격하고 대대적이었으면 1989년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피터 마스는 '한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고까지 전했을까.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소비 문화는 특히 빠르게 변했다. 그리고 이들의 소비행태와 구매력은 광고 시장의 변화로 이어질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이때부터 광고는 타깃 집단을 중년세대에서 청년세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요즘 TV 광고들을 보라. 소득도 없는 10대에서 30대까지를 목표 집단으로 삼는 광고가 대세다. 중년 이상을 타깃으로 삼는 광고는 노년보험, 상조회사, 보청기, 치질약 정도 아닐까.

당시 젊은이들의 풍속도에 많은 변화의 바람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것이 바로 나이트클럽에서의 즉석 남녀 만남, 즉 '부킹'의 탄생이다. 부킹은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현상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질서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소비 문화의 극한이다. 그리고 이 부킹은 딱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생성됐다.

낭만의 청춘, 용기를 냈다

이전에도 젊은 남녀 간의 즉석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콘도팅, 민박팅 등 설악산,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남녀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레스토랑에서 나가는 여성 쫓아가 말을 걸기도 했다. 물론 당시 젊은이들도 나이트클럽에 갔고 거기서 서로 의견이 맞으면 같이 놀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엔 변할 수 없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다. 남자가 갔다. 여자가 먼저 움직이는 경우도 없었고 또 웨이터라는 '에이전트'가 필요치도 않았다.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여성들이 있으면 남자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갔다. 서로 떠밀다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당첨(?)된 아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한 잔 줘" 하며 맥주 한 잔 받아 마시고는 적진을 향해 홀로 돌진해야 할 장수라도 된 듯 잔을 테이블 위에 '탁'하고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하며 순간 생각에 빠진 듯 하다가 어느새 다리를 일으켜 세운다.

며칠 전 어느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과 저녁을 하다가 마침 부킹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교수의 회고담이 재미있다.

"친구 한 명이 여자 테이블로 가잖아. 그럼 남아있는 애들 중에 제일 잘 생긴 애만 허리 펴고 앉아 있고 아닌 애들은 전부 숙이고 있는 거야. 여자애들이 우리까지 보면 안 되잖아."

그때는 그래도 가슴 두근거리는, 젊은이 같은 무언가가 있었고 청춘이 엿보이는 순진함도 있었다.

강강수월래?

▲ "유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왕기춘이 "부킹녀 폭행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이러한 부킹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뉴시스
1988년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나는 공부 좀 더 하겠다고 유학을 갔다가 1년 후 여름방학 때 한국에 왔었다. 당연히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에 갈 기회가 있었다. 충격이었다. 웨이터들이 여자 손님들 손목을 끌고 여기저기 통로를 오가다가 남자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생소했다. 웨이터는 앞에서 끌고 손목 잡힌 여자는 약간의 부하(?)를 주며 뒤따라가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손에 손을 잡고, 이리로 저리로. 그렇다. 스테이지 아닌 통로에서 벌어지는 군무의 향연이다. 퓨전 강강수월래다.

친구들이 춤 추러 나간 사이 신기해하며 혼자 앉아있었는데 내 옆에도 어느 여자가 턱 앉았다. '이걸 어째!?' 가슴이 터억(!) 막혔다.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옛날 가위바위보에 져서 여자테이블로 가 "저기요…. 안녕하세요…." 해 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땐 마음의 준비와 함께 할 말도 준비했었는데 이런 기습(?)을 당하니 안녕하세요 외엔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결국 그 여잔 5초쯤 있다가 냉큼 일어선 것 같다. 나는 앉은 채 스스로에게 수많은 꿀밤을 줘야 했다.

이렇게 1988년 전에 못 보던 것이 1989년 부킹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사실 부킹이란 단어는 이전에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웨이터가 여자 손님을 끌어다 남자들 자리에 앉히는 것은 과거엔 생각하기조차 힘든 것이었다. 그런 부킹이 20년이 지난 지금 청년 뿐 아니라 장년세대가 가는 이른바 '7080'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이를 두고 '해방'이나 '탈출'이라 묘사해도 되는 건지 애매하지만 외도와 가정 불화의 원인으로 손에 꼽히는 현실에 이르렀다.

"부킹 100% 보장"을 주장하는 포스터나 전단지는 이제 익숙한 것이 됐다. 남자끼리, 여자끼리 부킹 경험담 이야기 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됐다. 아니, 당당한 것이 됐다. 그래서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 광고는 자기네 병원에서 수술을 하면 '손목이 남아나질 않습니다'라고 광고한단다. 웨이터가 여자 손목 잡아 끄는 사진과 함께.

자본주의 소비 문화의 총아, 욕망의 발전소

이제 춤추러 나이트클럽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부킹을 위해 간다고 한다. 춤도 술도 부킹을 위한 보조구일 뿐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볼수록 부킹의 공식은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판매자는 고객이 원하면 상품을 전달한다. 그런데 부킹은 이런 구별을 무너뜨린다. 고객이 졸지에 상품이 되어 전달된다. 사실 고객이 상품이고 상품이 고객이다. 그리고 웨이터들은 고객을, 아니 상품을 계속 맞바꿔가며 위치 이동만 시킨다. 이렇게 해서 상품을 원하는 남녀 두 부류의 집단에게 서로를 상품으로 제공해 이윤을 창출한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장사를 본 적 있는가.

과거 용돈을 털어 친구와 나이트클럽에 가서 맥주 세 병을 홀짝이다 비장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던 시절에서 웨이터에게 팁부터 줘야 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과거의 '용기'는 이제 팁이 대신한다. 행복도 돈으로 산다지 않는가. 그렇다. 이젠 돈으로 용기도 사고, 욕망도 사버린다. 그러면 자본주의 소비시대의 총아 웨이터는 욕망을 배달한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은 옛말이다. 돈이면 내 바로 옆으로 욕망이 배달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란다. 밤새도록 온단다. 될 때까지 온단다. 그렇다. 웨이터는 욕망을 무한공급하는 자본주의사회 최고의 에이전트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인 부킹엔 역시 투자와 리스크가 존재한다. 남자들의 경우 일단 양주를 깔아야 한다. 척후병(?) 역할을 맡아 부킹 들어온 여자들은 남자들이 무슨 술 마시나부터 본다지 않는가. 상대방의 기선을 완전히 제압하고 싶으면 외제 양주도 있다. 또 한 학생의 전언에 따르면 말재주도 익혀야 한단다. 30초 안에 웃기지 못하면 이 바닥에서 생존하기 힘들다고 한다. 빠지지 않는 외모와 옷차림은 기본이고.

그러나 투자에 비해 그 리스크는 심대하다.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부킹에 성공해 같이 감자탕이라도 먹으러 갈 확률보단 허탈감과 함께 택시 탈 확률이 훨씬 높은 듯하다. 새벽까지 술잔을 주고 받으니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다음날 업무까지 지장받는다. 그리고 투자가 큰 만큼 금전적 피해는 극심하다. 카드값 막느라 둘러대는 것도 고역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배우자나 이성친구에게 걸리면 죽음이다.

타락인가 해방인가

부킹은 타락의 상징, 못된 밤 문화일수도 있고 자신을 옭아맨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일탈과 해방을 향한 욕망의 분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부킹 문화는 수요와 공급, 투자와 리스크, 고객과 상품, 남성과 여성, 손님과 웨이터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고도 노골적으로 만나는 보기 드문 사회 현상이다.

부킹에 대해 남성들이 돈을 주고 여성을 잠시나마 사는 것 아니냐, 그래서 남성 주도의 향락 문화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라. 애교는 남자가 떨고 결정은 여자가 하는, 이렇게 절묘한 시스템이 또 있을까.

유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왕기춘이 "부킹녀 폭행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이러한 부킹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문제가 생겼다면 웨이터에게 항의를 하든지 아니면 소비자보호원에 신고를 할 일이다. 요즘 따귀 때려 해결될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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