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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를 두려워하라! 살고 싶다면…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플루④] 전염병 대응 체계

신종플루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 사망자 카운트가 시작되면서 대중의 공포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신종플루의 치명률은 계절성 독감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신종플루의 높은 감염성을 염두에 두고 큰 우려를 표명한다. 잇따른 국내 사망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위험군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병원성의 변종이 생길 경우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항바이러스제 비축, 백신의 준비 등 의료 대응 체계가 매우 부족해 해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 실시권' 행사가 정부,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으나, 파장은 미미하다. 또 백신을 계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 확보 등에도 정부가 준비 부족으로 백신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프레시안>은 연구 공동체 '건강과대안'과 함께 5회에 걸쳐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을 살펴본다. 이번에는 우석균 건강과대안 부대표가 한국의 전염병 대응 체계가 얼마나 한심한 지경인지를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편집자>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플루

"신종플루, 왜 '돼지독감'이라고 부르지 못하나"
"신종플루 치료제, 왜 한국은 생산을 주저하는가"
신종플루를 두려워해야할 진짜 이유는 바로…

다른 나라들은 신종플루에 다들 조용한데 한국만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고 한다. 정부는 언론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우리나라만 신종플루에 호들갑을 떠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는 말이다. 다른 나라은 이 정도는 아니다. 정부가 신종플루의 사망률이 "예년의 계절 독감 수준과 비슷"하므로 "국민들은 지나친 동요나 과잉대응을 자제해 달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질병에 민감하여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지난 달 21일 정부는 지금까지 보건소에서 보던 신종플루 환자들을 이제부터는 민간 병원에서 본다고 전국의 400여 개 거점병원을 지정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조선일보>를 보면, 신종플루가 걱정되어 보건소에 가면 병원에 가라고 하고 병원에서는 다시 보건소로 가라고 하는 '핑퐁식 떠넘기기'가 일어났다.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 2009년 8월 25일자)

거점병원은 어떠했던가. 보건복지가족부가 신종플루 거점병원 지정 후 병원장들과 회의를 연 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손실 보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거점병원이 되면 격리병실을 운영해야 하니 환자를 못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손실을 보전해 달라는 주문, 거점병원이 되면 환자가 병원을 기피하게 되니 이 손실을 보충해 달라는 주문. 그러나 병원장들의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가장 좋은 것은 거점병원을 취소해주는 것이다"라는 발언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지금 신종플루 환자는 병원에서 박대를 당하게 되었다. 스페인독감 때도 아닌 21세기에 말이다. 지금 누구든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환자가 되면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신종플루가 의심되면 언제는 보건소에 가랬다가 이제는 또 일반 병원에 가라고 하고, 동네 병원에서는 검사가 안 된다고 큰 병원에 가라고 한다. 환자가 스스로 알아서 신종플루를 진단하고 알아서 인터넷을 켜서 치료 거점병원 명단을 찾아 그 병원에 찾아가야 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안심을 하겠는가?

한국 의사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민간 병원 입장에서는 정부가 지원은 하지도 않은 채 거점병원이라고 지정하는 것이 당연히 달갑지 않다.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대로 거점병원 역할을 하려면 격리병실 정도가 아니라 격리중환자실도 있어야 한다. 더 엄격히 말하면 전염병에 대처하려면 각 지역마다 병균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음압(negative pressure)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평상시에는 쓸 일이 없고 시설비와 유지비만 들어가는 시설이다. 거점병원도 마뜩치 않아하는 민간 병원들에게 평상시에 쓰지도 않는 시설을 하게한다고?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꼴이다.

이러다 보니 거점병원이라고는 해도 컨테이너를 마련해서라도 환자를 격리시키는 의료 시설을 갖춘 곳은 적고, 격리병실도 갖추고 있지 않은 곳이 더 많다. 신종플루 사태 초기를 보면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갖춘 병원에 환자를 입원시켰는데 이 병원들은 전국에 다섯 개에 불과하고 그 지역도 목포, 경인 지역 등에 한정되어 있다. 그 때 입원했던 환자들이나 공항 검역에서 발견된 환자들은 어디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을까.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의 환자들은 꼼짝 없이 목포와 서울로 가야했다.

환자가 어떻게든 거점병원에 갔다고 치자. 그 병원에서는 어떤가. 신종플루 진단을 한다고 20만 원을 내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어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또 입원을 하면 국가 재난 사태라고 말하면서도 정부에서 치료비를 보태주는 것은 없다. 병원 치료비는 본인이 알아서 내야한다. 정부는 항바이러스제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치료 비용의 많은 부분을 부담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타미플루는 10알에 3만4000원이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많아야 1만 원만 내면 된다. 정부가 신종플루라고 보태주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1만원. 당신은 안심이 되는지.

▲ 신종플루의 대유행을 놓고 정부는 '국가 재난 사태'라고 말하면서도, 치료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신종플루 선택진료비(특진비)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신당의 기자회견. ⓒ프레시안

다른 나라들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왜 그럴까? 비밀은 그 나라들의 공공보건의료시스템이다.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의 의료 시스템은 무상 의료에 가깝다. 즉, 공립병원이 대부분이고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 의료 체계를 갖추고 있다. 유럽의 공립병원 비율은 전체 병원의 최소 60% 이상이고 평균이 80%정도는 된다.

이윤을 위해 병원들이 운영되지 않으니 돈이 안 되는 전염병 대응시설을 평상시에 갖추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거점병원이 필요하다면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들이 담당하면 될 일이다. 동네에 제일 가까운 의원이 보건소 역할도 겸한다. 어느 병원을 찾아갈까를 고민할 이유가 없다.

원래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았으니 치료비 문제가 새롭게 문제될 리도 없다. 대국민 홍보나 교육은 공무원이나 준공무원인 의료인들이 학교와 직장 그리고 공공시설인 동네 의원에서 주치의별로 원래 자기 환자들에게 하면 된다. 그 나라에서 유난떨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다못해 미국과 일본만 해도 공공병원이 30~40%는 되니 그를 중심으로 대처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은 공공병원이 다른 나라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거점병원을 지정한다고 하지만 민간 병원이 대부분이고 전염병에 대비한 시설은 갖추어져 있을 리가 없다. 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도 당장 신종플루만 하더라도 선택진료비(특진비)는 자기가 다 물어야 하고 본인 부담이 치료비의 40%다.

여기에 신종플루 예방주사도 부족하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인구 전체가 2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갖추었거나, 30~80%가 2회 접종할 수 있는 예방주사를 미리미리 준비해서 10월에 놓아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부족하다고 한다. 부랴부랴 질병관리본부장이 외국제약회사에 '구걸'하다시피해서 300만 개를 구해왔다고 한다.

정부가 계속 말을 바꾸다가 연말까지 1000만 도즈, 즉 500만 명분을 11월에는 놓아주겠다고 하는데 늦는 건 그렇다 쳐도 500만 명이면 의료진, 필수방역 요원, 6세 미만 어린이, 임산부까지 접종하면 100만 명도 안 남는 분량이다. 평소에 병이 있는 고 위험군이거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800만 명은 내년까지 예방주사도 못 맞고 기다려야 할 판이다. 당신이라면 동요하지 않고 과잉대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기에 타미플루인지 뭔지 항바이러스제도 모자라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은 미리 준비를 해서 최소한 인구의 20~50%정도는 비축했고 어떤 나라는 약이 남아서 가난한 나라에도 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4%인 190만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약이 모자라는데 국제법상 급하면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에서 그냥 생산하고 외국 제약회사에 돈을 주면 된다는데 정부는 특허가 더 중요하다고 강제 실시를 안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정부의 특허권 강제 사용을 보다 쉽게 하자고 특허법 개정을 더도 말고 딱 미국과 영국 정도의 수준으로만 하자고 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특허침해이기 때문에 못한다고 한다. 안심이 되는가?

여기에 가뜩이나 이윤추구가 중심이 된 한국의 민간병원들을 더 노골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라고 병원을 기업형 영리병원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것이 의료 선진화이고 의료 산업화라고 한다. 국민들에게 정작 필요할 때 백신하나 못 나누어 주면서 뭘 위한 의료 산업화라는 말인가? 또 가뜩이나 없는 공공병원도 구조 조정을 한다고 하고, 건강보험재정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강을 살려야하니 줄이겠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의연하게 있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국민들은 신종플루에 불안한 것이 아니다. 혹 환자가 되면 병원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병원에 가야할지부터 찾아야 하는 현실이 더 무섭다. 병원에 가서는 진단과 치료에 내야할 돈이 무섭다. 안심하라고 하면서 정작 다른 나라는 준비한 백신도 치료제도 준비하지 못한 정부가 더 무섭다.

신종플루에 대해 안심하라고? 지나친 동요와 과잉대응을 자제하라고? 의료 시스템이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공포와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부채질 하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어떻게 안심을 하라는 것인가. 이 의료 시스템을 더 돈벌이로 몰고 가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데 어떻게 안심을 하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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