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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를 두려워해야할 진짜 이유는 바로…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플루③] 신종플루 유행과 의료민영화

20일 국내에서 아홉 번째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가 잇따르고, 언론을 통해서 사망자 카운트가 시작되면서 대중의 공포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신종플루의 치명률은 계절성 독감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신종플루의 높은 감염성을 염두에 두고 큰 우려를 표명한다. 잇따른 국내 사망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위험군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병원성의 변종이 생길 경우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항바이러스제 비축, 백신의 준비 등 의료 대응 체계가 매우 부족해 해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 실시권' 행사가 정부,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으나, 파장은 미미하다. 또 백신을 계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 확보 등에도 정부가 준비 부족으로 백신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프레시안>은 연구 공동체 '건강과대안'과 함께 5회에 걸쳐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을 살펴본다. 이번에는 조홍준 건강과대안 대표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가 신종플루를 비롯한 전염병의 위험을 키우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편집자>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플루

"신종플루, 왜 '돼지독감'이라고 부르지 못하나"
"신종플루 치료제, 왜 한국은 생산을 주저하는가"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이런 두려움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과장된 것 또한 사실이다. 신종플루의 전염력이 매우 높지만 독성은 기존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정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신종플루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대책과 대응이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 비축 부족, 예방의 핵심인 예방 접종 백신의 미확보 등 구체적인 정책도 문제이지만, 전염병 관리에 대한 정부 능력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과도한 공포의 밑바탕이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 의료 정책은 '의료 선진화'이다. 즉,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도록 의료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 정책의 기본인 '전염병'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정부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의료를 민영화'하겠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영리법인 병원을 도입하고, 민간 의료보험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보건복지가족부조차 외국 환자를 유치하고, 의료채권을 발행하는 정책에 더 관심이 있다. 이러니 돈도 되지 않고 빛도 나지 않는 전염병 예방 대책에 힘이 실릴 리 없다. <신종 인플루엔자 대비·대응 계획>이 보건복지부에 의해 2006년에 이미 만들어졌으나, 실제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취약한 공공의료 인프라가 문제이다. 우리나라 전염병 관리의 핵심적 역할은 공공병원, 보건소, 보건지소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훌륭한 역할은 이미 사스에 대한 대응과 이번 신종플루 유행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잘 나타났다. 신종플루 대응 초기에 현장에서 일하는 공공보건 담당자들은 감염자 확인과 접촉자 파악 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공공 부문의 비중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의 병상 수는 12%, 공공병원 수는 7%에 불과하다. 1차 의료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신종플루 대응 과정에서 민간 의료기관의 역할은 소극적이었다. 정부가 464개의 거점병원을 지정했으나, 일부 대학병원은 참여를 꺼리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마지못해 참여했고, 어떤 병원장은 병원의 수입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는 민간병원이 신종플루 대유행과 같은 위기시에 공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인의원, 개인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은 비영리법인 병원으로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들이 담당해야 하는 공공적 역할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번 거점병원 지정도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병원들은 사회적 압력과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간병원의 공익적 역할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원을 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 병원 내 감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 거점병원이 건물 밖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뉴시스

아직 신종플루로 인한 중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격리병상, 격리중환자실, 인공호흡기 등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신종플루가 대량 발생시 환자를 수용할 격리병상이나 격리중환자실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가? 정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가지정 격리병원은 국립의료원, 인천시의료원 등 5개이며 이 기관의 일반 격리병실은 총 197 병상이며 이중 음압격리병실은 39개에 불과하다.

영국의 경우, 최악의 경우 전 인구의 50%가 증상을 나타내고 이중 4%가 입원하는 경우를 가정해서 전체 병상의 33%인 4만 개를 5~10일 내에 비울 수 있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또 입원 환자의 25%가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 대유행 발생시 수용 능력을 현재의 약 4000여 개에서 2배로 늘릴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바로 보기) 또 유행의 진전에 따라 비응급 환자의 입원과 수술을 조절할 수 있는 상세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두 나라 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을 보여주는 이런 차이는 곧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보건의료 인프라의 격차에서 기인한다. 공공 의료기관의 절대 다수를 공공기관이나 공익적 성격이 강한 민간 의료기관이 차지하고 있는 영국이 전염병 관리에서 얼마나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신종플루 관리의 양극화 현상도 문제이다.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에 비해 타미플루를 처방받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타미플루 확진을 위해 10~20만 원을 지불하는 현실에서 신종플루에 걸린 저소득층이 병원을 이용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접근도가 높은 보건소와 의원은 거점병원에서 제외되어 있다. 결국 의료 서비스에 대한 낮은 보장성과 접근성이 신종플루 관리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영국에서는 '인플루엔자 대유행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공정성(fairness)'을 중요한 원칙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치료약제 투여나 백신 접종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료를 시장에 맡기는 한 이런 불평등은 극복하기 어렵다.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 대책은 고전적으로 국가가 담당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다. 전염병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주장하던 많은 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에이즈, 말라리아가 아직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사스, 신종플루와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지속적으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 건강 보호에서 정부의 역할의 중요성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의료에서 공공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의료채권 발행, 경영지원회사 도입, 의료법인간 인수·합병의 합법화 등이 그것이다. 현재도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기관이고, 민간병원의 공익적 기능이 제한적인 현실에서 의료 민영화는 신종플루 등 전염병 관리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더 큰 재앙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염병 관리에서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병원을 더 짓고, 도시지역에도 보건지소를 더 만들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백신은 국영 백신회사를 만들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의료 민영화는 우리의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신종플루 대유행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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