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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국제사회에서 시장경제 원리만 관철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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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950년대 국제사회에서 시장경제 원리만 관철됐다면?"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④·끝] 복합사회에서의 자유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마지막 강연에서는 시장경제 이후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봤다. 폴라니는 1만년 전 신석기혁명에 비견될 만한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사회가 질적변환을 거쳤다고 밝혔다. '기계제'와 '영혼을 가진 존재인 인간'의 만남은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을 그저 기계의 투입물로 간주하는 시장경제가 아닌 새로운 경제는 어떻게 조직해야 하나? '자기조정시장'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직시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폴라니의 지적이다. <편집자>

첫 번째 강연 :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두 번째 강연 : "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세 번째 강연 :"19세기 유럽의 꿈은 어떻게 무너졌나"

마지막 강연에서는 제3부의 내용을 얘기할 것인데, 주로 21장의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다른 장들도 꼭 읽었으면 한다.

제국주의

19세기말 제국주의가 나타났다. 제국주의에 대한 설명은 기존의 우파(자유주의)와 좌파(마르크스주의) 둘 다 음모이론이다. 자유주의 쪽에서 얘기하는 원인은 한줌도 안 되는 군국주의자들과 비합리적인 집산주의자들, 그리고 비합리성에 영합해 들어간 정치가들이 합작해 원래 지켜야 될 합리성을 깨버리고 권력집중으로 나갔다. 원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경향이 아닌데 그렇게 갔다고 설명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해 독점자본가들과 금융 자본가들의 음모로 설명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이런 설명이다.

폴라니는 사회전체가 제국주의로 팽창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기계로 변했다고 봤다. 19세기말 자기조정시장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제국주의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자기조정시장은 환상이고 실제 나타난 경제적 현실은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에 비유할 수 있는 민족국가였다. 이론적으로 구성된 경제의 상과 현실 경제의 작동을 분리해 파악하는 '이중적 운동'의 개념으로 제국주의를 설명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중에는 부하린이 폴라니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슷한 설명을 했다. 이 사람이 1915년에 먼저 제국주의에 대한 책을 썼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이를 기반해 1917년에 나온 것이다. 부하린은 19세기말 제국주의가 된 근대국가는 노동자, 농민, 자본가들이 이해관계가 모여 하나로 묶인 '국가자본 트러스트'가 됐다고 봤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은 60년대 영어 번역도 구하기 힘든 책이었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돼 나왔었다. 1986년에 지양사라는 출판사에서 냈는데, 당시에는 책 한번 잘못 내면 잡혀가는 시절이어서 책의 저자나 역자도 밝히고 않았다.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있으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파시즘

▲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프레시안
다음은 파시즘에 대한 설명이다. 최근에 이명박 정부가 파시즘이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턱도 없는 얘기다. 몽둥이를 휘두르면 다 파시즘인가. 파시즘은 본질이 제대로 규명이 안 돼서 2차 대전 이후 정치적 레토릭으로 바뀌었다.

파시즘이 정치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인가, 아닌가. 대부분 대답을 못한다. 히틀러가 독일의 현 복지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일본 파시즘이 일본의 종신고용체제를 만들었다. 일본 파시즘은 자본주의를 때려잡아야지만 민족이 살아난다고 봤다. 1933년까지 독일 나치당 권력서열 3위인 사람이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무솔리니는 이태리 사회당 기관지 편집장 출신이다. 정치경제체제로 가면 파시즘과 마르크스주의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파시즘이 나올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 서양문명이 인류에 저지른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다. 그러니 서양 역사가들이 이것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겠나. 비슷비슷한 연구가 반복됐을 뿐이지 파시즘에 대해서는 제대로 해명이 안 됐다. 동양이나 제3세계는 이런 혐의에서 자유로우니까 파시즘에 대한 규명을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파시즘이 나온 매커니즘이 제대로 규명이 안 되면 다시 나올 수 있다. 또 파시즘이 재현됐는데 그것이 파시즘인지 모를 수 있다. 따라서 파시즘이 무엇이냐는 것을 규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를 방기하거나 실패했다.

폴라니는 파시즘이 정치경제체제 차원에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한 세트로 보고 다 날려버리고, 사상적으로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한다고 봤다. 폴라니는 민족주의와 파시즘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봤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민족주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집권에 유리한 흐름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용했다.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영국 모슬리, 프랑스 악시옹 프랑세즈,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나타난 파시즘 등은 민족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노르웨이 파시즘은 반민족주의였다. 노르웨이 파시스트였던 크비슬링은 독일 군대를 들여와서 노르웨이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독일 군대를 들여왔다.

그렇다면 파시즘의 본질은 뭐냐. 산업과 기계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극대로 올리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다 때려 부수고 기계적 합리성에 따라 전체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

기계문명 VS 인간사회

책의 마지막 얘기인 21장으로 가겠다. 어떤 경제와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폴라니의 생각이다. 폴라니가 청사진을 꺼내온 사람이 아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 폴라니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스스로 모순된 얘기를 한 것이다.

첫 번째 강의에 했던 얘기를 잠시 상기해봤으면 한다. 마르크스, 케인즈, 하이에크와 폴라니의 차이점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완전 긍정(하이에크), 시장경제에 대한 완전 부정(마르크스), 시장경제에 대한 부분 긍정/부정(케인즈), 시장경제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이 세가지 밖에 답이 없다. 그런데 80년대말과 90년대 초 동구가 몰락하면서 현실 사회주의는 망했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까지 존재하던 복지국가체제도 실패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을 놓고 신자유주의로 갈 수 밖에 없다면서 '대안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이 나올 수가 없다. 영국의 대처가 들고 나온 '대안이 없다'는 얘기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폴라니는 이 프레임 자체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다. 시장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를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다보자는 얘기다.

경제문제는 전혀 고상한 얘기가 아니다. 당장 화장지가 제때 생산이 안돼 쓸 수가 없다. 현대인들은 일주일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매일의 비루한 일상의 문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 몇 개를 제시하는 것이 대안이냐. 사람들은 화만 낸다. 절대로 추상적이거나 도덕적 원칙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헬리콥터를 타고 나와 보니까 시장경제가 왜 발생했나. 고대 원시경제에서 시장에 의해 인간사회경제가 조직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핵심적인 경제활동이 시장으로 조직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장은 악세서리에 불과했다. 또 인간은 호모이코노미쿠스가 아니다. 자기 이익만으로 움직이는 인간관은 틀렸다. 실제 여러 종류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순수하게 이익을 동기로 일하는 사회는 거의 없었다. 우리사회에서도 직업을 고르면서 수입과 노동시간만 고려해 고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경제를 호혜성이나 재분배 같은 방식으로도 조직했는데, 이를 통해 경제를 조직할 때 다양한 사회적 동기에 경제가 묻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왜 갑자기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됐느냐. 경제가 사회로부터 분리돼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인 것처럼 인식하게 됐나. 바로 기계제 때문이다. 폴라니 사상에서 기계는 매우 중요하다. 케인즈나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기계가 핵심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인간 역사에서 기계가 뭐냐'는 게 폴라니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폴라니는 이 문제를 1만년 정도의 시간 틀에서 바라본다. 산업혁명이 신석기혁명과 맞먹는 일이라고 본다. 기계가 쓰인 이후에는 인류가 또 다른 '인간'으로 변화했다. 기계에 맞는 형태로 사회를 조직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의 주역이 인간과 자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기계에 대한 투입물이 됐다. 기계에 대한 투입물로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상품이다. 기계제에 맞는 방식으로 인간사회를 조직하면서 첫 번째 나타난 제도가 시장경제였다.

하지만 사람과 자연을 상품으로 본다는 것은 허구다. 노동, 임금, 토지, 지대 등은 모두 허구적 상품이다. 이 허구적 상품끼리 만나 이뤄지는 경제시스템이 자기조정체제다. 사람과 자연이 상품이라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어떻게 나온 것이냐. 이전까지는 인간경제가 발전하고 진보하다 보니까 저절로 나온 것이라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폴라니는 이건 미친 생각이다. 스피넘랜드 사태에 처해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문제는 사람이 짐승이고, 사회는 자연이고, 사람을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진보라는 이런 미친 생각이 단순한 광신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1832년 영국 의회에서 구 빈민법 철폐, 곡물법 철폐, 금본위제라는 '자유주의 삼위일체' 조치가 잇따라 통과됐다.

이게 과연 현실에 실현될 수 있겠냐. 사회가 반쯤 인격분열이 일어난다. 가랑이가 찢어지던 끝에 나타난 게 대공황이고, 또 이런 모순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파시즘이었다.

이제 폴라니가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명제 하나를 이해할 수 있다.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것은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유토피아라서 실현된 적도 없고 실현될 수도 없다. 다만 이를 억지로 실현시키려는 프로젝트만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자기조정시장이 아니라 그걸 실현시키려는 프로젝트이며, 이런 이중적 운동이 현실을 지배한다. 또 폭력적인 시장 논리에 대응해 사회의 자기보호가 작동한다. 이게 폴라니의 논지다. 폴라니가 사회의 자기보호를 좋은 것으로 생각한 것 아니다. 실제로 굉장히 끔찍한 것도 많다. 이를테면 19세기말 독일농민 등이 했던 아주 반민주적인 행동들도 있다.

폴라니는 문제의 근원을 기계문명 대 인간사회로 봤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첫 번째 대응이 19세기 초 시장경제체제였다. 이는 이중적 운동으로 귀결됐다. 두 번째 대응은 파시즘과 세계대전이었다. 이 결과는 재난이다. 당시 유태인 집단학살이 재난이 아니고 뭐냐.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 최형락

기계, 인간, 자연의 관계를 거칠지만 좀 쉽게 설명하자면 남녀관계에 빗대 얘기할 수 있다. 처음에 서로 소닭 보듯 별로 관계가 없다가 어느 순간 불꽃이 일어 연애를 하게 되고,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좀 지나서 아이를 낳았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여기에 맞춰 보면, 처음에 구석기 시대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거의 의식적이지 않았다. 서로 소닭 보듯 했다. 신석기혁명 이후 농경을 시작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굉장히 긴밀해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 개념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됐다. 농경시대 이후부터 인간이 자연을 굉장히 목적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인간이 자연을 끌어안고 연애를 해야 한다.

사람과 자연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를 기계라고 보자. 기계가 자연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를 만든 물질이 자연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자연의 법칙은 물리화학적 법칙이다. 기계는 물리화학적 법칙이 얼마나 정밀하게 관철되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결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기계는 자연의 아들이나 딸이다. 기계에 자연의 법칙만 있냐. 사람의 욕망과 기대와 희망 등이 관철돼 있다. 훌륭한 기계는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돼야 한다.

애를 낳으면 부부관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전에는 부부가 밤에 술도 한잔 하고, 심야영화도 보러가고, 이런 알콩달콩한 생활이 있었다. 그러나 애가 나온 다음에는 남자와 여자가 엄마와 아빠로 바뀐다. 수시로 애 똥 기저귀 갈아줘야지, 입으로 이상한 걸 가져가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가야 한다. 동시에 부부가 애를 키우기 위한 돈도 벌어야 한다. 이런 작업이 1-2년에 끝나는 게 아니다. 요즘은 짧게 잡아도 20년은 걸린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지난 1만 년 동안 서로 연애를 하면서 생긴 우주관이 있다. 이게 문명이다. 거기에는 인류에 대한 성찰, 도덕, 정치 등이 포함된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영혼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기계제 이후 이게 통하는 상황인가.

지난 1만 년 간 인간과 자연 관계에서 만들어진 윤리는 기계제에서 도저히 통용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되는 게 많다. 여기서 어떤 딜레마가 있냐. 지난 1만 년 간 축적된 문명을 다 날릴 것인가. 영혼에 대한 고찰이 있는데 이걸 다 날릴 것인가.

복합사회에서의 자유

여기서 어떤 태도가 나올 수 있냐면 돌아가 버리자는 극단주의다. 지난 15-20년 동안 각종 형태의 근본주의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 질문에 대한 얘기가 21장에서 설명하는 복합사회에서 자유라는 개념이다.

기계문명이 나타났고, 이 기계를 어떻게 잘 조직하느냐에 미래가 달렸다. 여기서 딜레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는 기계제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세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 하나는 시장경제를 계속 고집하는 것, 경제영역에 관한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을 크게 호모이코노미쿠스와 토론하는 인간 두 가지로 찢어 놓았다. 경제영역에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고, 나머지 영역에서는 합리적 토론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상반된 모습이다. 기계제 상태에서 인간의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두번째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모두를 부정하는 인간이다. 인간이 자유나 영혼을 전혀 가진 적 없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야 한다. 산업사회라는 전체 명령에 의해 기계의 나사바퀴처럼 움직여야 한다. 시장주의, 민주주의를 다 때려치우고 전체주의로 간다. 자유라는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 이게 파시즘이다.

세 번째는 과거의 가치를 다 끌어안은 채 기계제로 간다. 사회주의 사회의 조직원리였다.

폴라니의 주장은 자유에 대한 개념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애를 낳았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다시 소닭 보듯 가야 하냐. 그건 아니다. 애를 기르면서도 다른 종류의 사랑, 성숙한 단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이건 예전의 방식은 아니다. 애가 있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부부가 어떤 사랑을 만들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또 기계제 이전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대폭 수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문명을 조직하는 것도 순수하게 기계적인 합리성이나 효율성만 갖고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자유와 도덕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시장경제 이후에 경제 형태를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 이 얘기로 넘어가겠다. 1. 개인의 노동 동기 부여 2. 경제적 조정 3. 사회의 포합. 이 세 가지 원칙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1. 개인의 노동 동기 부여

기계제 사회의 가장 골치 아픈 일은 개인이 노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보자.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기계제 시대에는 인간의 노동을 동기부여 하는 게 어렵다. 예전에 농사를 지으면 중간에 노래도 하고, 새참이라고 핑계대고 막걸리도 마시고, 덜 지루하다. 하지만 기계제에서는 사람들이 다 노동하기를 싫어한다. 이걸 첫 번째로 해결하는 방식이 안 하면 굶어죽게 만드는 것이었다. 두 번째 나왔던 시도는 굶겨 죽이는 것은 아닌데 안 하면 때려 죽인다. 파시즘이나 극악한 공산주의가 그랬다. 이처럼 개개인의 물적 이익이나 명령,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이걸 뛰어 넘어야 한다. 지금까지 200년 동안 시장경제와 명령경제 밖에 없었는데, 사람이 어떤 동기로 일하느냐를 찾는 일에 새로운 경제형태를 조직하는 것의 성패가 달려 있다.

생시몽, 프리에 등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자들이 이걸 집중적으로 찾았다. 이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존재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진짜로 깊고 현실성이 있었다. 한 사람이 하루 종일 한 가지 일을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사람이 갖고 있는 열정이 5가지라면 하루 10시간 노동을 하면 2시간씩 돌아가면서 다른 일을 하도록 하자. 몽상에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재 기업 경영에 소중하게 쓰이고 있다. 기업 경영이 사람을 연봉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보지만 이것만으로 미세조정은 안 된다.

독거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이 일을 하는 동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긍지와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노동이 돈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환상이다. 사람이 일하는 것에 대해 너무 시장주의에 찌들어 보는 것이다. 물론 폴라니가 인간의 노동 동기에 많은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어느 누가 이걸 완벽하게 할 수 있겠냐. 다만 개인이 노동하는 동기에 있어 호모이코노미쿠스라는 환상에 너무 젖지 말라. 다양한 노동동기를 찾아내고 다양한 보상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요즘 많은 20대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을 준비하는데,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 좋은가. 안정적인 생활의 다른 이름은 지루한 인생이다. 이게 딜레마다. 사람은 자유와 안정성 둘 다를 원한다. 인디아나존스 같은 사람도 있고, 면서기 아저씨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자유의 다른 이름은 불안정성, 안정성은 지루함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처럼 돼 있다.

현재 한국사회 20대 대다수의 꿈이 렌트시커다. 지금 잘 나간다는 전공학과를 보면 다 생산과 거리가 멀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 다양한 노동동기에 따르는 다양한 보상체계를 찾아내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획일화되고 사회도 안 돌아간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 홍기빈 연구위원의 폴라니 강의. ⓒ프레시안 최형락

2. 경제적 조정

몇몇 사람은 다른 동기로 노동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대 사회의 사회적 분업은 옛날 농촌의 품앗이 같은 게 아니다. 이런 큰 규모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기서 날카롭게 발생하는 문제가 회계문제다. 몇만 명의 노동자, 몇백만 명의 소비자, 몇억 개의 상품이 생산되는 경제가 계산 없이 가능하겠냐. 불가능하다. 20년대 '사회주의 계산논쟁'이 있었다. 두레, 품앗이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아니라 대규모 사회적, 기계적 생산을 조직함에 있어 공산주의적 방법이 가능한가. 이 논쟁을 시작한 사람이 오토 노이라트다. 그는 시장경제를 철폐하고 완전히 중앙정부의 경제계획에 의존하는 명령 경제를 수립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투입물의 상관계수와 기술적 생산관계의 지식만 있으면 생산 뿐만 아니라 소비까지 모두 '현물'로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시즘 경제도 이것과 연관 있다.

이런 생각을 날려버린 게 하이에크의 스승인 미제스다. 그는 한계효용이론에 근거해 자유로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아니라면 합리적 회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노이라트 주장대로 국가가 순전히 경제의 기술적 측면만을 경제적 계산의 기초로 삼는다면 회계장부에서의 합리적 비용-편익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조리 가격으로 바꿔서 한꺼번에 계산해야 비효율이 발생 안 한다. 미제스는 수요와 공급곡선을 통해 양쪽이 합의를 보는 선에서 거래가 성립되고 수량과 가격이 결정되며, 이때 나오는 가격이 가장 완벽한 정보집적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소련 경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미제스 얘기가 상당히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폴라니는 이런 미제스의 이론를 비판했다. 폴라니는 중앙계획식으로 하면 회계가 나오기 힘들고, 산업경제를 크게 조직하려면 회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가격이란 게 과연 완벽한 정보집적체인가 문제제기 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냐? 전혀 아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노이라트와 미제스 모두 경제라는 현상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작품이 아니라 마치 자연과학적 현상처럼 논의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폴라니는 '사회주의적 회계'를 주장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여서 그냥 토론을 하자. 소상히 다 털어놓고 얘기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 이 경우 내면조망이 가능해진다. 미제스가 생각한대로 시장에 정보가 모이면 생산자가 파악하는 생산비용과 소비자가 갖고 있는 돈, 생산하는 개인과 소비하는 개인의 정보만 시장에 정보로 들어온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집단적 요구와 고충 등 사회에 관련된 정보는 여기 오겠냐. 아무도 관심 없다.

그런데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자 조합을 만들고 여기에 생활협동조합, 지방자치체, 정당 등 모든 사회적 단위가 다 참여해 토론을 하면 시장의 가격기구에서는 전혀 포착이 안 되는 별의별 정도가 다 들어오게 된다. 미제스가 제시한 가격기구가 오히려 낙후된 정보체제다. 현대산업의 생산은 생산자, 소비자 개인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더 발전된 종류의 경제적 조정기구는 가격기구 이외에 다종다양한 정보가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게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산업발달수준이 가격기구로 정보를 모아서 결정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가 왜 터졌나. 투자은행들은 어떤 기업의 가치를 자신들이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가격이 그렇게 정밀한 가격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지 않았나. 가격기구가 그렇게 신통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또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각종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에서 판사들이 피고에게 얼마를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린다. 여기서 얼마를 내라는 계산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아니다. 판사들이 판단한 거다. 시장가격 이외에 무수히 다른 비용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4만 원의 쌀을 들여온다면 수입상이나 소비자의 비용은 낮아진다. 하지만 쌀시장이 개방되면 농민들은 대책을 요구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수입 농산물의 경우 식품안전성 문제도 있다. 이런 것들이 국가적, 사회적으로는 다 비용이다. '사회적 비용'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이 윌리엄 캅이다. 그는 50년대부터 이 개념을 만들어서 환경문제에서 빛을 발했다. 환경비용은 대표적인 사회적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회계에 있어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해야 하며, 이 비용을 물어야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일 수 있다. 윌리엄 캅은 원래 미제스 제자였는데, 폴라니가 1920년대 쓴 논문을 보고 미제스를 버리고 '사회적 비용'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3. 사회의 포합

19세기 초 자유주의를 통해 경제가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걸 다시 집어넣어야 한다. 앞에서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으로 시장 뿐 아니라 호혜성과 재분배가 있다고 했는데, 19세기 사람들은 호혜성이나 재분배는 작은 규모에서만 가능하고 큰 규모에서는 시장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폴라니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계획경제를 하는데 지역적 차원에서 하자고 주장했다. 폴라니가 동유럽 차원에서 계획경제를 하자는 이유는 경제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갈등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평화와 민족간 갈등제거라는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주장한 것이다. 폴라니는 헝가리 출신이고,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당시 동유럽의 상황에서 몽땅 시장경제, 모든 민족이 주권국가를 가져야 된다는 쪽으로 조직이 되면 백발백중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코소보, 세르비아, 루마니아, 이슬람교 연합 등 민족간 갈등으로 살육전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계기로 민족, 인종간 갈등이 격화되지 않도록 발칸반도 전체에 걸쳐서 중앙계획경제를 하자는 것이다. 폴라니가 티토가 만든 유고슬라비아를 높이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꿈같은 소리가 아니다. 2차 대전 후 1950년대 국제경제가 시장으로 조직됐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다. 당시 국제경제는 시장이 없었다. 전쟁으로 다 폐허가 돼서 물건을 만들어도 수출할 수가 없었다. 미국 밖에 수출국이 없었는데 물건을 사줄 나라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경제를 시장경제에 맡기면 미국만 잘살고 나머지 나라는 가난한 상태로 계속 가는 거였다. 그 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공산주의 혁명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났다. 그래서 미국이 취한 조치가 돈을 유럽에 퍼주는 거다. 마샬플랜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원조를 줬다. 이자도 없이 돈과 물품을 그냥 가져가게 했다.

이처럼 어느 규모 이상에서는 시장경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할 것이냐에 따라 공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50년대 국제경제를 호혜성과 재분배로 섞어 조직한 것은 공산주의를 막겠다는 지정학적 목적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네 번의 강의에서 많은 얘기를 했는데 하나만 꼭 남겼으면 좋겠다. 모든 게 다 시장으로 조직되는 게 아니다. 지난 200년간 너무 심하게 세뇌돼 실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비시장경제를 간파하지 못했을 뿐이다. 개인과 사회 모두 시장으로만 경제를 조직할 이유는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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