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마케다, 후세인, 그리고 한국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마케다, 후세인, 그리고 한국인

[김종배의 it] 다문화 사회, 우리 안의 이중성

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케다 선수가 한국인을 조롱했다고 합니다. FC서울과의 친선경기 때 원숭이 흉내 내는 골 세리머니로 한국인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양인을 비하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분노합니다. 다수의 한국인이 마케다 선수의 이런 행위에 분노합니다. 백인의 고질적인 유색인종 혐오증이 노출된 것으로 판단하면서 분노하고, 다른 곳도 아니고 남의 집 안방에 와서 집주인의 피부색과 생김새를 조롱한 것으로 보면서 분노합니다.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정말 마케다 선수의 골 세리머니에 인종차별 메시지가 담겼었다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분노하고 규탄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2.

경기도 부천중부경찰서가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와 한국인 박모 씨를 불구속 입건해 오늘 부천지청에 송치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모욕한 혐의가 있다고 합니다.

경위가 이렇습니다. 지난 10일 밤 9시 15분경 후세인 씨가 한국인 여성 한모 씨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에 동승한 박모 씨가 후세인 씨를 향해 "냄새 나. 더러워. 너 아랍인이지?"라고 모욕을 줬고, 동행한 한씨에게도 "새까만 ○○와 같이 있으니 좋으냐?" "조선○ 맞느냐?"고 말했습니다. 모욕을 듣다 못한 후세인 씨와 한씨가 박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박씨도 후세인 씨를 맞고소했습니다. 후세인 씨가 자신에게 욕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마케다 선수에게 분노한 것만큼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같은 동양인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를 늘어놓은 것에 대해 고개 숙이는 게 마땅합니다.
▲ ⓒ프레시안

3.

물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맨유 구단이 해명했습니다. 마케다 선수는 인종차별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골 세리머니는 경기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펼친 단순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후세인 씨가 박씨를 어떻게 모욕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경찰은 후세인 씨와 박씨가 모두 상대방을 모욕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데 신문 기사에선 한쪽의 모욕만 서술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완전히 판명나지 않은, 반쪽짜리이지만 그래도 두 뉴스가 우리 자신을 둘러볼 계기를 부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4.

어린 시절 동네에 또래가 한명 살았습니다. 키가 우리보다 한 뼘쯤 컸고 피부가 유난히 뽀얐던 아이였습니다.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혼혈아, 백인 혼혈아였습니다(혼혈이란 표현에도 인종차별적 시각이 담겨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체용어가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 아이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해도, 도토리를 주우러 갈 때도 그 애는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멀리 했습니다. '튀기'라고 놀리며 멀리했습니다. 바다 건너 선진국, 백인의 나라를 동경하면서도 한국말 쓰는 백인의 아들은 멀리했습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그 아이를 '튀기'라고 손가락질 했으니까요. 우리들이 그 애를 놀려도 말리는 어른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뭐였는지, 그 아이가 언제 전학을 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그 아이의 생김새와, 어느 날 갑자기 '전학갔다'고 무심하게 말한 선생님의 음성뿐입니다.

우리는 그 아이의 신상을 알려 하지 않았고, 그 아이는 자신의 행적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겉돌다가 스쳐지나갔습니다.

5.

저만의 기억은 아닐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 이야기이니까요.

어느 유명 탤런트가 TV에 나와 '나의 아버지는 백인'이라고 고백하며 눈물 흘리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유명세를 얻은 가수가 어린 시절 흑인 혼혈로 겪어야 했던 갖가지 설움을 털어놓으며 눈물짓던 모습도 선연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눈물에 설움과 핍박의 기억을 담았습니다. 백인 혼혈이건 흑인 혼혈이건 상관없이 모두가 그렇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6.

지나간 기억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 되는 현실입니다.

이주노동자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불법 체류자 또한 말하지 않겠습니다. 형편이 가장 열악한 이들은 아예 거론대상에서 빼겠습니다. 이들보다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이들과는 달리 법적으로 한국인임을 인정받은 사람들의 현실만 얘기하겠습니다.

다문화 가정이 15만 가구를 헤아립니다. 초·중·고교에 진학한 다문화 가정 자녀가 2008년 4월 기준으로 1만 8700명을 돌파했습니다. 2006년에 7900여명, 2007년에 1만 3400여명이었으니까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까지 합하면 다문화 가정 자녀는 2007년 2만 5천여명에서 2008년 5만 8천여명으로 늘었습니다.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농어촌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이 성행하기 시작한 게 10년 남짓입니다.그러니까 지금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국제결혼 1세대의 자녀들에 해당합니다.

이 1세대 자녀들이 다른 피부색, 다른 생김새에 주눅 들고, 상대적으로 어눌한 한국 말투에 힘들어 합니다. 자신에게 힘들어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어 하고, 자신의 사회경제문화적 지위에 힘들어 합니다.

7.

끔찍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문화 가정 자녀 1세대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다문화 가정 자녀 2세대, 3세대가 학교에 가고 청소년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한국인의 인종차별 의식이 깨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대한민국은 갈등이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남북 갈등에 이념 갈등, 지역 갈등에 계층 갈등이 뒤섞여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이른바 '인종갈등'이 보태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주로 주한미군의 자녀였던 혼혈의 원조세대가 극소수의 덫에 걸려 구석에서 신음할 때는 덮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숨기고 쉬쉬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덕에 한국의 두터운 인종차별 의식도 감출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젠 가능하지 않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 생김새가 다른 한국인은 상대적 다수가 되고 있습니다. 숨길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엄연한 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구석에서 숨죽여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합니다.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변하는 속도는 더디고,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누그러지는 속도 또한 느립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살색'이란 표현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쓰지 말라고 해도, 국방부 또한 혼혈에게 병영 문을 걸어잠그던 제도를 일부나마 부수고 있는데도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귀를 닫을 수 없습니다. 후세인 씨가 경찰에게 남겼다는 한 마디를 못 들은 체 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랬답니다. "인도 등 남아시아인들이 더럽고 냄새난다는 한국인들의 편견을 고쳐야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