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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쓸개 빠진 인간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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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쓸개 빠진 인간 하고는!"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쓸개 귀한 줄 안다면…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매 왕마다 각 지방에서 바친 공물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특히 허약한 조선의 왕들은 지방에서 갖가지 약재를 공수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쓸개였다. 곰의 쓸개, 즉 웅담뿐만이 아니다. 소의 쓸개 우황, 돼지의 쓸개 저담, 잉어의 쓸개, 수달피 쓸개 등이 실록에 빠짐없이 적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쓸개가 얼마나 묘약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도 쓸개를 찾다보니 엽기적인 사건도 많았다. 명종 21년 2월 29일 전하는 다음 이야기는 단적인 예다.

"사서(士庶)들이 주색을 즐기다 음창(陰瘡)에 걸린 이들이 많았다. 사람의 쓸개로 치료하면 그 병이 즉시 낫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통을 받던 이들이 많은 재물로 사람을 사서 죽이고 그 쓸개를 취했다. 종루, 보제원, 홍제원 등에는 걸인들이 많이 모였는데 4~5년 새 이들이 다 사라졌다. 나중에 이들은 평민에게까지 손을 뻗쳐 아이를 잃은 자가 많았다."

음창은 사타구니에 생기는 부스럼으로 일종의 성병의 후유증이다. 이것을 사람 쓸개로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람 쓸개는 세조 6년 신숙주가 왕에게 보낸 보고에 중국인 두 명이 조선으로 도망 온 이유를 설명할 때도 등장한다. "화살에 맞은 군인들이 (주민의) 쓸개를 취하여 해독을 하고자 해 도망을 왔다."

현대 서양 의학에서 쓸개즙은 쓸개에서 십이지장으로 분비돼 지방의 소화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알칼리성의 쓸개즙은 산성인 위액과 섞여서 십이지장으로 내려온 소화물을 중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쓸개즙은 소장에서 다시 흡수돼 간으로 돌아가 쓸개에 자리를 잡는다. 이런 내용만 보면 왜 그렇게 쓸개에 연연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러나 한의학의 관점에서 쓸개는 여전히 힘이 세다. 쓸개즙은 얼핏 보면 검은 색깔이지만 사실은 푸른색 색소와 노란색 색소가 섞인 것이다. 황달은 소장으로 나가야 할 담즙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전신 혈액으로 퍼지면서 생기는 질병이다. 대변이 황금색인 것도 먹을거리가 위장을 통과하면서 삭히는 과정에서 쓸개즙과 섞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한의학에서 쓸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 쓸개즙의 삭히는 힘 때문이다. 체내의 특정 부위에 노폐물이 쌓여 혈액의 흐름이 정체되는 현상을 어혈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쓸개즙은 어혈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옛날 대변으로 어혈을 치료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역시 대변 속의 쓸개즙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 겨울잠에서 깨 햇빛을 즐기는 지리산 반달곰. ⓒ뉴시스
더 나아가 한의학에서는 쓸개를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으로 여겼다. 실제로 쓸개는 마음의 상태와 종종 연결된다. 담이 크다는 말은 겁이 없고 용감하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척추동물 중에서 쓸개가 없는 말은 유난히 겁이 많다. 반면에 웅담으로 유명한 곰은 침착하고 용감하다.

한의학에서 담에 문제가 생기면 잠들지 못하고, 밥맛이 없고, 잘 놀란다고 기록한다. 요즘 현대인이 많이 앓는 불면증, 스트레스 등의 증상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내리는 처방이 바로 온담탕이다. 담을 따뜻하게 하고자 각종 약재를 처방한 것인데, 여전히 그 효과가 탁월하다.

사실 한의학의 다른 용어도 그렇듯이 담의 본질은 고도의 정치적인 상징이다.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도 균형을 잃으면 큰 화를 면치 못하리라는 교훈을 쓸개의 가치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옛사람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치 앞의 제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인간을 이렇게 불렀다. "쓸개 빠진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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