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과 변희재의 공방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얼마 전 사이버 망명을 시도한 진중권은 <프레시안>을 통해, 변희재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빅뉴스>를 통해 반론과 재반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터넷과 토론회 등을 통해서 날 선 비판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이 둘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건 이번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사업과 관련한 변희재의 의혹 제기에서부터 비롯됐다.
변희재는 한예종의 30억대 통섭 교육 사업에 대해 부실 의혹을 제기했고, 여기에 진중권이 얼마나 연루되어 있는지 따져 물었다. 또 진중권의 한예종 객원교수 재직과 관련하여 그가 객원교수로 임용될 자격이 충분한지도 의문을 표했다. 진중권이 한예종에 객원교수로 재직하면서 맡은 강의는 '현대 사상의 지평'. 여기서 변희재는 진중권을 '미학 관련 독일 유학의 실패자'로 지칭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진중권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두 편의 칼럼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자 변희재는 이번에 용어 사용 문제를 들고 나왔다. 진중권과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학칙(학교 규칙) 외 학사 운영에 관한 제 규정'으로 규정된 '객원교수 채용 규정'에 명시된 객원교수 임무를 '학칙'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학칙'과 '학칙 외 규정'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진중권과 강양구 기자가 의도적으로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썼다는 것이다.
왜 이 '학칙'이란 용어 사용에 변희재가 민감한지는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예종 학칙 제17조에 따르면 객원교수 임용을 다음처럼 규정하고 있다.
제17조(객원교수) ① 객원교수는 사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실기전문가 또는 특수경력의 소유자로서 학교 또는 당사자의 필요에 의하여 객원의 형태로 교육을 담당하는 자로 한다.
② 객원교수는 총장의 위촉에 의하여 지정한 기간에 지정한 교과목을 담당한다.
③ 객원교수는 위촉 기간 중 전임교수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교육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전임교수로서의 책무를 지지 아니한다.
④ 객원교수의 위촉, 보수 및 기타 필요한 사항은 총장이 따로 정한다.
진중권이 변희재의 '객원교수 임용 자격 없음' 주장에 대한 반박 근거로 제시한 학칙 외 규정의 객원교수 채용 규정을 보자.
제7조(임무) 객원교수의 임무는 다음 각 호의 1과 같다.
① 전임교수에 준한 강의 및 실기 지도(실습 포함)
② 특별강의 및 세미나
③ 학생실기 및 연구지도
④ 본교 전임교수와 공동연구
⑤ 본교가 지정하는 연구과제수행
변희재의 주장에 따르면 학칙은 학칙 외 규정의 상위법으로, 학칙 변경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학칙 외 규정의 변경은 한예종 내에서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변희재가 문제 삼는 부분은 학칙의 ①항 '교육을 담당하는 자'와 ②항 '총장의 위촉에 의하여 지정한 기간에 지정한 교과목을 담당한다'인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학칙 외 규정이 학칙이 정한 객원교수의 임무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넘어섰다는 것이다.
즉 변희재는 학칙에서 정한 객원교수의 임무의 범위를 한예종 측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 멋대로 학칙 외 규정을 바꿨으니 학칙 위반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학칙을 논하는데 진중권이 학칙 외 규정을 들고 와서 반박하니(그것도 학칙 위반인 학칙 외 규정을 근거로) 그것 역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변희재는 학칙 외 규정에서 정한 객원교수 채용 규정의 어디가 학칙 위반이라는 걸까? 변희재가 학칙 위반이라고 댄 근거는 위에서 언급한 학칙의 ①항과 ②항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자', 그리고 '지정한 기간에 지정한 교과목을 담당하는 자'로 규정한 객원교수의 정의에서, 학칙 외 규정의 객원교수 채용 규정의 다섯 가지 임무가 크게 벗어난 걸까?
학칙에서 규정한 객원교수는 '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육하는 자'이다. 이를 학칙 외 규정의 객원교수 채용 규정의 다섯 가지 임무와 관련지어 살펴보자. ①항 강의 및 실기 지도, 교육이다. ②항 특별강의 및 세미나, 역시 교육이다. ③항 학생 실기 및 연구 지도, 마찬가지로 교육이다. 그렇다면 문제 삼을 수 있을만한 부분은 ④항과 ⑤항인데, 다른 ①, ②, ③항이 '지도'인데 반해 ④, ⑤항은 '연구'이다. 추측컨대, 변희재는 이 부분이 학칙이 정한 객원교수의 임무에서 벗어난 행위로 보았을 수 있다(사실 이게 아니라면 걸 만한 부분은 없다고 본다).
여기서 필요한 건 이제 '상식'이다.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고(물론 최근 1년 반은 좀 힘들었지만), 늘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애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학 교수가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을 교육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교육 이외의 활동으로 봐야 할까? 교수의 연구 활동을 통해 얻어진 학문 성과는 가장 먼저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한 번 길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물어보자. 이게 교육인지 아닌지.
대답은 들으나 마나다. 교육이 맞다. 그런데 변희재는 그런 교육 활동을 한예종의 '자의적' 해석으로 보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학칙이 정한 객원교수의 정의를 한예종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 임무의 범위를 넓혀놓았으니 학칙 위반이고, 그 학칙 위반 규정을 들고 자신에게 반박하는 진중권의 논리야말로 '틀린' 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학칙 위반이 사실은 학칙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보편타당한 상식에 묻는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학칙 제 17조의 ④항을 보면 답은 더욱 명쾌해진다. ④항에서는 객원교수의 위촉, 보수 및 기타 필요한 사항 일체를 총장에게 위임한다고 되어 있다. 즉, 총장이 규정으로 객원교수의 임무의 범위를 지정하는 것 역시, 학칙에서 포괄적으로 말한 '교육'에 대한 세부사항을 위임받은 권한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했다는 뜻이 된다. 즉, 객원교수 채용 규정 자체가 이미 학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변희재가 계속 문제를 삼는 '학칙'이란 용어 사용도 상식의 수준에서 생각해 보자. 변희재는 진중권과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의도적으로 '학칙 외 규정'을 '학칙'인양 사용하여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는데, 분명 그의 주장대로 한예종의 홈페이지에서 이 둘은 다른 문서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지만 규정이라고 해서, 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학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변희재의 말처럼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할 게재가 아니다. 변희재는 자신의 글에서 학칙이 규정의 상위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학칙과 규정은 상위법과 하위법의 개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무원 임용 법과 같은 기타 모든 법의 상위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 이외의 다른 모든 법률이 대한민국의 법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는가?
두 번째 드는 의문, 왜 변희재는 진중권의 가장 중요한 반박에 침묵하는가? 이번 일과 관련해서 변희재가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진중권이 처음부터 한예종의 객원교수로 임용되기에는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진중권씨가 담당한 교과목은 '현대 사상의 지평'입니다. 실기전문가도 아니면서, 주로 프랑스 철학을 강의했다는 '현대 사상의 지평'을 위한 진중권씨의 특수경력이 대체 뭡니까? 설사 독일 철학을 강의했다 해도, 박사과정 수료 제도가 없는 독일의 특성 상, 진중권씨는 그냥 미학 관련 독일 유학 실패자일 뿐입니다. 대체 무슨 경력으로 현대 사상을 강의합니까? 게시판에 잡글을 많이 썼다는 것 말고, 강의를 위한 특수경력이 하나라도 있나요? 아니면 본인이 자랑하는 TV출연 많이 한 겁니까?" (<빅뉴스>, 2009년 4월 11일)
여기에 대해 진중권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예종에서 그를 객원교수로 채용할 때 근거로 삼은 것은 교직 활동과 저술 활동, 이 두 가지였다고 한다. 교직 활동에 관해서 진중권은 몇 년 전부터 KAIST, 서강대, 중앙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지에서 겸임교수, 또는 대우교수로 재직하면서 미디어 예술, 미디어 미학, 미디어 철학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대학 밖의 아카데미와 온라인을 통해서도 강의를 했다고 한다.
저술 활동에 관해서는 더욱 상세하다. 그의 대표작 <미학 오디세이>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미학 입문서로서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에 선정된 바 있다. <폭력과 상스러움>은 제 43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사회과학부문을 수상했고,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2005년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서양미술사Ⅰ>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그러면서 진중권은 "도대체 미학을 전공해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내고, 그 저서가 대학에서 교재나 참고 문헌으로 널리 활용되고, 심지어 자신들도 두 번이나 추천한 예술이론서를 쓴 사람이 예술학교 객원교수의 자격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진중권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유인촌의 문화부, 예술을 겁탈하다'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도 한데, 변희재는 이 글에 대한 반론을 세 차례나 올리면서도(정확히 하자면 두 차례는 진중권이 아닌 <프레시안>을 상대로 한 반론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세 글 모두에서 '학칙' 용어 사용에 대해서는 오류를 지적했음에도 그 밖에 진중권이 제시한 반론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응이 없었다.
기사를 보니 변희재는 진중권을 고소할 준비를 모두 마쳤고, 진중권에게 고소를 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논쟁으로 시시비비가 충분히 가려지지 않는다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으로 해결하는 것도 합리적인 수단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논객'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소할 때 하더라도 논쟁의 마무리는 제대로 지어야 하지 않을까?
모쪼록 변희재는 이번 진중권의 반론에 대해 명쾌한 재반론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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