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민주당비전위원회' 김효석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뉴민주당선언(초안)'을 발표했다. 선언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결의 등 총 5장 19쪽으로 구성돼 있다.
▲ 17일 여의도 당사에서 '뉴민주당선언(초안)'을 발표하고 있는 김효석 위원장. ⓒ프레시안 |
생소한 '현대화'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는 양극화 심화'라고 진단한 선언문의 가장 큰 특징은 '중도'와 '현대화'를 강조한 점이다.
선언문은 "변화와 개혁을 중시하는 진보적 가치를 바탕으로"라고 전제하면서도 "뉴민주당의 길은 중도개혁주의를 현대화하는 길"이라며 "중도적 관점과 개혁적 지향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외환 위기를 극복했으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적시했다.
선언문은 또 "뉴민주당은 중도개혁의 합리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세계화와 지식정보사회라는 시대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해 민주당의 정책, 전략, 조직 모두를 현대화시켜 당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가 제안하는 발전 전략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는 제3의 발전모델"이라면서 대중적으로 다소 생소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과 '기회의 복지(Opportunity Welfar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보수에는 '무책임·퇴행적'이라는 수식어를, 진보에는 '낡은'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중도·현대화'와 대비시킨 점이다. 선언문 곳곳에는 "무책임한 보수는 시장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른 배분만 신봉하고, 낡은 진보는 모든 사람의 기계적 평등만 강조한다", "퇴행적 보수주의의 시장만능주의와 낡은 진보주의의 국가 통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다"라고 적혀있다.
삭제된 '새로운 진보'
당초 지도부에 보고된 안에는 '새로운 진보'라는 개념이 주요 기조였으나 이번 초안에서는 아예 빠져 있다. '낡은 진보'를 대체할 개념으로 '새로운 진보' 대신 '현대화'라는 단어가 선택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효석 위원장은 "제목이 본문 내용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진보'라고 하면 '뉴레프트'(신좌파) 정도로 번역이 될 우려가 커서 좌우 이념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갖는 '현대화'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1980년대 미국 정치 지형을 설명한 대목은 '뉴민주당선언'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김 위원장은 "미국 민주당은 1980년대 중산층과의 교감이 단절되고 흑인, 가톨릭, 노조 등 소수계층만 대변해 집권 가능성이 없는 정당으로 전락했다"면서 "클린턴이 '현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성장과 기회의 정당으로 탈바꿈됐고 중도로 가게 됐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나라당 아류"라는 일부 당 내 비판을 의식한 듯 "당시 미국 민주당도 당원들로부터 공화당 2중대라는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앞으로의 토론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진보'라는 개념을 살릴 것인지 말 것인지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논쟁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날 제주를 방문한 천정배 의원은 벌써부터 "당 정체성으로 제시된 '현대화'는 '제3의 길' 같아 뭔가 어정쩡하다는 느낌"이라며 "뉴민주당플랜은 방향성과 구체성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이번 선언 초안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이념 논쟁', 혹은 '정체성 논쟁'에 대해 상당히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세계적 경제 위기를 맞으며 담론 논쟁 핵심 용어인 '신자유주의'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선언문 말미에는 "이 초안이 무익한 좌우논쟁을 넘어, 대한민국을 미래로 전진시키는 현대적 해법을 창조하는 과정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빈약한 '반성'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과연 이번 선언문 초안에 '반성'이 제대로 담겨져 있느냐이다. 총 19쪽의 선언문 중 '반성과 교훈' 부분은 단 한 쪽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발전', '복지의 확대', '한반도 평화에 중대한 기여' 등을 "민주정부 10년의 자랑스러운 성과"라고 평가한 뒤 "동반성장과 양극화 극복, 지역균형 발전 등 참여정부와 민주화 세력이 표방한 기본가치와 정책 방향은 옳았지만, 정책 수단은 유효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성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았다"고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선언문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정책은 좋았지만 유효한 수단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시장 역할을 강조했지만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가장 뼈아픈 교훈으로 '양극화 심화'를 꼽았지만, 원인에 대한 분석은 "양극화 해결을 위해 정부의 역할과 제도적 개혁에도 소솔했고, 결과적으로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서민에게도 실망을 안겨줬다"고만 언급했다.
"뉴민주당에 대한 구상은 지난 10년 집권기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지적을 감안하면 반성이 일부 경제적 측면에서 그쳐 다소 초라한 수준이다.
또한 뉴민주당선언의 기조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 정책 분야에서는 "FTA를 철저히 대비한다", "중산층 강국을 실현한다", "재벌에 대한 공정거래 감독을 강화한다", "대학의 경쟁력강화와 등록금 부담을 줄여 나간다", "녹색 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한다" 등의 모호한 수준. 이는 앞으로의 토론을 통해 구체화 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체성 논쟁 치열할 듯
김 위원장은 "정체성 논란이 꾸준한 상태에서 '진보냐 중도개혁이냐'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며 "선언문이 공개된 만큼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길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민주당은 19일 소속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 전체회의를 통해 선언문에 대한 토론을 개시할 예정이며 25일부터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눠 전국순회당원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국 순회를 마치면 뉴민주당선언 선포식을 통해 '뉴민주당 액션 프로그램' 발표, 뉴민주당 정책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