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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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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한국에서 살아보니] 서경식의 글을 읽고 부끄러웠던 이유

30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중간 중간 한국에 와서 보면 한국은 어느새 낯선 나라가 되어 있곤 했다. 눈에 보이는 '개발'과 '발전'의 속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큰 곳이 한국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발전'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한편, 응당 변했으려니 하고 기대를 하고 보면 제 자리 걸음인 것도 많았다.

나는 곧잘 '그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고 당당하게 불평을 쏟아냈다.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면죄부라도 되는 양, 교육 관계자들한테, 환경운동가들한테, 시민단체한테, 이런저런 논객들에게 불만을 품었다. 그들이 무슨 파수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문책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에게는 참으로 무겁게 다가오는 글을 읽었다.

2018년 4월 초 어느 날 나는 인천공항에 내렸다. 지난번 안식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나 마침내 두 번째 안식년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나는 이제 70 가까운 나이가 됐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조국의 풍경은 10년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서해안을 따라 많은 풍차들이 늘어서서 돌고 있었다. 풍력발전이 급속히 보급돼 있었던 것이다. 산악지대의 양지바른 남쪽 사면에는 태양열발전기 집열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5년 전에 탄생한 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극적인 전환을 호소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 시내까지는 새로 개통된 고속철도로 겨우 30분. 서울역에서 거리로 나서자 광고판들이 크게 줄어 차분한 인상을 주었다. 횡단보도가 부쩍 늘었고 지하철역에는 모두 에스컬레이터가 완비돼 있었다. 노인이 걷는 데 이전과 같은 불편은 없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모습이 많이 눈에 띈 것은 장애인들 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외출하기 쉬워졌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놀라운 건, 밤거리가 어두운 점이다. 어둡다고는 해도 물론 길거리엔 불이 켜져 있어서 안전에 불안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이것도 정부가 주도한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민간이 호응한 결과다. 10년 전에 1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던 원유가격은 그 뒤에도 계속 올라가 기업활동과 시민 생활을 크게 압박했다. 그 때문에 한국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그 결과 남은 에너지는 '북'에 원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국민 다수도 이 정책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고, 에너지 절약형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게 됐다. 복원된 남대문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 벗인 한 씨의 얘기를 들었다. 한씨는 일찍이 신문에 연재한 내 칼럼을 번역해준 인물이다.

"우리가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건 근본적으로는 노동시간이 이례적으로 길었기 때문이죠.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잔 마시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려 했기 때문에 귀가시간도 늦어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오후 6시까지의 근무시간을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적지않은 기업들이 오후 5시 내지 4시로 퇴근시간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시민이 일찍 귀가하게 돼 거리는 조용해졌습니다.


그에 못지않은 극적인 변화는 학생들이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겁니다. 학벌 폐해가 완화되고 과열된 입시경쟁이 가라앉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심야까지 학원에 다니는 게 당연했지요. 이상한 시대였어요."

한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높은 대학진학률이야말로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힘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많은 돈까지 빌려 석사에 박사까지 취득해봤자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많은 시민들이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유명기업 입사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고 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학문 연구에 뜻을 둔 학생들만 대학원에 진학하게 돼 오히려 연구의 질은 향상됐다.

징병제와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이 나라는 평화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 각지서 모여든 코리안 디아스포라들도 이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생활을 즐긴다. 내일 우리는 자동차로 개성에 가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기 전에 이런 조국을 볼 수 있게 돼 다행이다.

10년 전에는 50%를 넘었던 비정규직 비율은 한때 70% 가까이까지 올라갔으나 새 정부 정책 덕에 30%까지 내려갔다.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도 시정되고 있었다.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인간다운 대우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미친 듯한 교육열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의 표정이 밝아진 듯하군요." 내가 말하자 "그렇습니다" 하고 한씨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역시 징병제 폐지도 영향이 컸어요. 그때까지 젊은이들이 무의식중에 얼마나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이젠 잘 알고 있습니다. 보수파 쪽 반대가 거세서 힘들었지만 징병제를 폐지한 건 잘한 겁니다. 10년 전에는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가 수백명이나 감옥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흡사 거짓말 같아요."

징병제에서 지원병제로 전환하는 것을 실행에 옮긴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군대 자체를 폐지해서 국경 경비나 재해 구조를 목적으로 한 경찰부대로 대체할 구상을 세워놓고 있었다. 일본은 5년 전에 헌법을 개정해 군대 보유 국가가 돼버렸으나 이 나라는 스스로 군대를 폐지하는 평화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재작년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이 마침내 폐지되고 형법상의 간통죄도 철폐됐다. 국회에서는 북유럽 나라들을 모델로 한 쿼터제가 도입돼 여성의원 수가 50% 가까이 급증했다.

그 영향으로 민간기업체에서도 간부직원 중 여성 점유율이 착실하게 늘고 있다. 공공 탁아소, 보육원이 대량으로 설립돼 여성의 사회 진출이 촉진됨과 동시에 출산율 저하에도 쐐기를 박았다.

정주외국인 수는 계속 늘었고 그에 따라 다문화ㆍ다언어 교육이 널리 시행되고 있었다. 10년 전의 정부는 영어 조기교육을 강행하려다 비웃음을 샀으나 지금의 정부는 영어만이 아니라 중국어, 러시아어, 일본어, 지역에 따라서는 베트남어도 학교교육에 도입하도록 했다. 공공시설 안내판이나 팸플릿도 한글과 이런 외국어로 된 다언어 표기가 정착됐다.

정주외국인 노동자나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코리안 디아스포라들도 이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나날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럼, 내일 아침 9시에 자동차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한씨가 작별인사를 했다. 내일 우리는 자동차로 북상해서 개성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10년 전에는 태백과 안동 답사여행을 함께한 옛 벗들이 이번에는 개성 평양 답사여행을 기획해 내게도 권했던 것이다. 10년 전 한씨는 나를 임진각과 통일전망대까지 안내해준 적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말없이 강 건너편을 바라봤다.

지금은 남북간 화해와 교류가 비약적으로 진전돼 평화적 관계가 정착해 있었기에 간단한 수속만으로 왕래할 수 있게 됐다.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기 전에 이런 조국을 볼 수 있게 돼 다행이다. 방에 돌아온 나는 만족스런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2008년 3월 29일자 <한겨레> "2018년, 내가 만나고픈 이런 조국 ")


인용이 길어졌다. 서경식 님이 <한겨레> 칼럼면에 쓴 글이다. 나는 이 글을 쓴 분이 어쩌면 우리에게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2018년이라는 숫자가 아주 먼 미래인 줄 알았더니 생각해보니 불과 10년 후다. 10년 후에 그 분이 다시 와보고 무어라고 말하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 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라고 물으면 그래도 무언가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벌써 1년이 지났다. 남은 9년간 이러한 변화를 일구어 낼 수 있을지…. 가슴이 무겁다.

○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5>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6>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7>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8>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9>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10>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11>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12>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13> 윗사람, 아랫사람
<14> 축 합격 ○○○?
<15> "'○○과장' 대신 '○○님' 어때요?"

<16> "사교육 광풍 대책, 정말 모르시나요?"
<17> "'1등 과천'이 아니라 '보통 과천'이 좋아요"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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