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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순교자? 혹은 과학의 변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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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순교자? 혹은 과학의 변절자!

[화제의 책]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올해는 이 과학자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1609년 망원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것으로 달을 비롯한 밤하늘을 관찰했다. 바로 망원경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천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 천문학자가 올해를 '세계 천문의 해'로 기념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 나온 세계 천문의 해 공식 책자인 <하늘을 보는 눈>(고베르트 실링·라르스 크리스텐센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첫머리를 갈릴레오에 할애한다. 갈릴레오는 1609년 11월 30일, 망원경으로 달을 봤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관측 기록을 남겼다.

▲ <하늘을 보는 눈>(고베르트 실링·라르스 크리스텐센 지음,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 조직위원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달 표면은 매끄럽지도 균일하지도 않으며 많은 철학자들이 믿었듯 둥글지도 않다. 달은 불균일하며 거칠고 계곡과 산들로 가득 차 있어서 지구의 표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갈릴레오와 같은 시기 혹은 약간 앞서 영국의 천문학자 해리엇도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마이클 화이트의 <갈릴레오 :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천문학의 문을 열었던 이런 갈릴레오의 삶을 두루 살핀 책이다. 그간 국내에서 그의 생애 전체를 훑어볼 만한 마땅한 책이 없었던 점을 염두에 두면,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출간은 반갑다.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

<갈릴레오> 역시 다른 그에 관한 책과 마찬가지로 가장 비중을 두는 부분은 '갈릴레오 수난사'다. 이 책은 갈릴레오가 교회와 갈등하다 결국 "지구는 태양을 돌지 않는다"고 굴복하는 1613년부터 1633년까지의 20년간을 네 장에 걸쳐서 추적한다. 특히 이 책은 1633년 갈릴레오 재판을 놓고 다른 시각을 소개한다.

이 책의 주장대로라면, 갈릴레오가 재판정에 선 진짜 이유는 흔히 알려져 있듯이 그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라고 주장한 탓이 아니었다. 교회가 진짜로 두려워했던 것은 그가 앞서 쓴 책 <시금사>에 담긴 내용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원자론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성찬식 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가톨릭의 믿음과 정면충돌했다.

당시 개신교와의 종교 전쟁 중이었던 가톨릭은 이런 원자론으로 갈릴레오를 처벌하기보다는 좀 더 작은 범죄로 갈릴레오의 입을 막는 길을 택했다. 물론 갈릴레오도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바로 이런 막후거래의 결과가 바로 400년간 숱한 뒷말을 낳은 갈릴레오 재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바티칸 창고의 문서의 일부가 공개되면서 알려진 이런 사실은 흥미롭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따져볼 게 있다. 과학과 교회의 갈등을 부각하는 이런 되새김질이 과연 21세기에 의미가 있을까? 이미 많은 이들에게 과학이 새로운 '종교'가 된 마당에 우리는 갈릴레오 수난사를 다르게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의 적' 갈릴레오?

▲ <갈릴레오 :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마이클 화이트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지금 갈릴레오 수난사는 과학과 교회의 갈등으로 읽기보다는 권력 앞에 선 한 과학자의 비극으로 읽어야 한다. 사실 교회에 굴복했던 갈릴레오의 초라한 모습은 바로 오늘날 과학자의 초상과 다르지 않다. 15세기 갈릴레오를 화형대 앞에 세울 수 있었던 그 권력은 교회에서 정부, 기업으로 이름만 바뀐 채 여전히 과학자를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독일의 작가 브레히트도 바로 이점에 주목했다. 그는 원자폭탄의 등장을 보면서 1943년 초연된 자신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를 대폭 수정한다(1947년 발표). 그는 권력과 과학의 관계가 갈릴레오가 살았던 때보다 20세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는 것을 예리하게 포착했던 것이다.

<갈릴레오>는 입에 재갈을 문 갈릴레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빈정거림"이었으리라고 쓴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차경아 옮김, 두레 펴냄)에서 '변절자' 갈릴레오의 회한을 더 부각한다. 그는 죽음 대신 변절을 선택한 행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과학자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일하나? 학문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 현존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만일 과학자들이 이기적인 권력자 앞에서 위축돼 오로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는 데만 만족한다면 학문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 테고, 자네들이 만든 새로운 기계도 단지 새로운 액물일 따름이네.

자네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발견 가능한 모든 것을 발견해 낼 수 있겠지만, 자네들의 진보는 인류로부터 떨어져 나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될 걸세. 자네들과 인류 사이의 틈은 언젠가는 너무나 엄청나게 벌어져서 어떤 새로운 것을 획득한 것에 대한 자네들의 기쁨의 환성이 인류 전체가 경악하는 함성으로 응답될 수도 있을 거란 말이네.

과학자로서 나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가졌었지. 나의 시대에 천문학은 시정의 광정에까지 퍼져나갔네. 이런 비상한 상황에서라면 한 장부의 의연함이 커다란 격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을 걸세. 내가 만약 저항을 했더라면, 과학자도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테지."


과학의 순교자? 과학의 변절자!

이런 갈릴레오의 입을 빌린 브레히트의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운 과학기술자가 몇이나 될까? 지난 400년간 갈릴레오는 '과학의 순교자'로 추앙을 받았다. 이제 갈릴레오는 과학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과학의 변절자'로 기억돼야 한다. 과학을 내세우며 권력에 굽신거리는 이들이 행세하는 세태를 염두에 두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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