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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후 장기침체가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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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9년 후 장기침체가 진짜 위기다"

[기고] 글로벌 경제침체 속 한국경제의 위기

1. 한국경제, 관리된 침체(managed slump)로 연착륙은 가능한가

1.1. [세계경제위기와 한국경제위기설]


한국경제는 외부 충격의 영향으로 금융과 실물부문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우선, 지난해 연이은 미국 투자은행들의 파산은 금융기관 전반의 신용경색, 부동산 가치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서 실물경제의 위축으로 귀결됐다.

오바마 행정부의 구제금융 정책으로 최근 일부 대형 금융기관의 실적이 개선된 것으로 발표되고 있으나, 이는 금융위기의 주범인 섀도 뱅킹(shadow banking) 시스템을 오히려 지원하는 '불난 집 부채질하기' 정책과 유래 없는 규모의 시뇨리지(seigniorage·기축통화국으로서 화폐발행 차익) 효과, 시가회계 기준 완화 등에 힘 입은 것이다. 실물경제가 부활하는 기미는 아직 극히 미약하다.

한편 '1차 금융위기'의 수습에 골몰하는 사이 '2차 세계금융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는 동유럽 금융위기가 불거졌다. G20 금융정상회담은 국제통화기금(IMF) 강화로 동유럽에 대규모 국제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나 그 전망은 아직 매우 불투명하다. 이런 세계환경에서 수출지향적, 개방형 소국인 한국 경제는 그 취약성을 계속 드러내고 있고, 금융시장이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실물경제는 서서히 추락하는 국면이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각국의 정책적 대응과 공조로 급작스럽게 붕괴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는 '관리되는 침체'로 버틸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정책이다.

한국경제는 2008년 하반기 이후 두 차례 위기설에 휩싸였다. 2008년 7월 이후 제기된 '9월 위기설'은 외국인의 주식 및 채권 대량매도, 대규모 자금이탈 등으로 환율과 금리가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한편, 2008년 12월을 전후해 제기된 2009년 '3월 위기설'은 국내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외화부족에 따른 외환위기가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코노미스트(2.26), 파이낸셜타임즈(3.1), 월스트리스저널(3.4) 등 외국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한국경제가 신흥시장 가운데 가장 취약한 경제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사용한 주요지표는 유동외채비율(short-term debt as % of reserves)과 예대율(Banks' loan to deposit ratio)로 각각 102, 1.30(2008년 말 현재)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코노미스트의 유동외채비율은 잘못 계산된 것이며(실제는 1940억÷2012억=96.4)이며, 조선사들이 계약한 배의 양도 시점에 받을 대금을 근거로 매도한 선물환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이 환해지용으로 차입한 달러를 제외하면 77%로 크게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또 예대율도 은행이 발행한 양도성예금증서(CD)를 예금에 포함하면 그 비율이 119%로 되며 이는 9월의 127%보다 감소한 수치라고 반박했다.

사실 이 논란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도 없다. 독일은 외환보유고 1371억 달러에 2조1097억 달러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고, 영국은 외환보유고 710억 달러에 단기외채만 8조600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도 독일과 영국의 외채비율로 왈가왈부하는 유력 언론은 없다. 이 논란은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의 자금-상품 순환에서 신흥경제국으로서 한국이 차지하는 지위와 관련해서 해석돼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외환유동성 지원에 이어 국내은행이 조달하는 외채에 대해 최대 1000억 달러의 지급보증을 약속하고 미국, 일본, 중국으로부터 각각 300억 달러(총 900억 달러)에 상당하는 단기 스왑거래를 성사시킴으로써 위기(설)에 대응했다. 이런 조치와 함께 미국 금융시장이 당분간 안정세를 보이면서, 한국의 외환시장도 다소 진정국면을 유지하는 가운데 외채의 차환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 올 초 경제위기로 폐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아크의 한 GM딜러숍이 텅 빈채 방치돼 있다. ⓒAP=연합
이처럼 금융문제에 관심이 쏠려있는 사이 실물부분의 위기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미국, EU, 일본 등은 이미 2008년 2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고 한국은 11월부터 5개월째 산업생산, 투자, 소비, 수출이 격감하고 있다. IMF는 최근 예측자료에서 2009년도 세계성장률 -0.5∼-1.0%, 선진국 -3.0∼-3.5%, 신흥개도국 +1.5∼+2.5%로 제시했지만, OECD(2009.3.31)는 세계평균 -2.75%, OECD -4.3%로 한층 더 비관적인 예측치를 제시했다.

실물위기는 무엇보다 무역의 위축(=교역재 수요의 급격한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같은 수출주도 경제에 강한 충격을 주고 있다. 각국의 수출은 10월부터, 그리고 한국의 수출은 2008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격감하기 시작해서 2009년 1분기엔 더욱 악화됐다.

1∼2월 중 각국의 수출 실적을 보면 일본은 -32.8%, 중국 -26.7%, 한국 -26.4%로 줄었는데,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수준의 실적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수출감소 폭이 축소되고 있으나 이는 환율의 대폭 상승에 따른 효과로 보인다. 환율이 더욱 떨어지는 경우 수출감소 규모가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WTO는 올해 세계무역 감소폭이 80년 동안 최대폭인 연간 9%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파이낸셜타임즈 2009.4.3)

한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달러환율이 전년대비 약 50%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엔화는 달러에 대해 약 15% 하락했다. 결국 원화에 대해 엔화는 60%이상 절상되었는데 이에 따라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반면 한국의 경쟁력은 강화됐다. 중국 위안화의 가치도 달러에 대해 절상됐다.

한국 기업의 재무 구조는 세계적 기준으로도 견실한 편이다.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424.6%에서 2008년 9월엔 104.3%로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한국 기업의 경우, 독일이나 일본 기업처럼 투자재(자본재)나 고급소재, 고급 내구재 등에 특화되지 않고, 그 구성이 다양한 편이므로 수출에 대한 악영향도 비교적 작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 조선, 해양 등의 부문에서 국지적으로 과잉생산의 문제가 존재하나 이것이 한국경제를 통제 불가능한 위기로 몰고 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이 글이 작성된 이후 4월 22일 IMF는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대해 보다 완만한 회복이라는 더욱 비관적인 전망[특히 2010년 예측치 하향조정]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본고의 주요 주장에 접근하는 면이 있다.)

1.2 [한국경제의 취약요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높은 가계부채 : 2008년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약 800조 원으로 GDP의 80% 선이다. 같은 비율이 100% 선인 미국, 영국보다는 나은 형편이다. 그러나 한국의 가처분소득에 대한 가계부채 규모는 150% 정도로 오히려 미국보다 높은 편이다. 주택관련 대출 비중은 43%이며, 주택가격 대비 부채비율(LTV)도 미국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세계금융시장이 다시 교란되고 한국에도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부동산 가격 폭락 → 가계의 재무구조 부실화 → 신용경색에 따른 소비의 급격한 위축 → 가계의 경제활동에 타격 등의 수순을 밟으면서 통제 불가능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 수출의존형 경제구조는 현 세계경제위기에 한국경제의 취약지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프레시안
⦁양극 구조와 지나치게 높은 무역의존도의 문제 : 한국은 대기업/중소기업, 수출기업/내수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수도권/비수도권 등 다차원적으로 양극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인 급진 개혁으로 재벌-IT-수출주도의 경제성장체제가 확립되면서, 비정규직이 폭증하고, 임금소득 감소로 내수는 계속 위축되며, 수출에 의존하는 비중은 계속 증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IT산업의 급격한 성장도 그 부문이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내수위축에 일조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무역비중은 2005년 이후 계속 증대하여 2007년에 94.2%, 2008년엔 전년도 보다 16.4% 포인트 급증한 110.6%에 달하고 있다. 세계무역이 급감하는 현실에서 이는 한국경제를 더욱 외부충격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현 세계금융위기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무모한 금융자본주의를 추구한 미국, 영국 등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일본, 독일 등이 과도하게 수출에 의존하면서 이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를 국내에 투자하기 보단 미국의 발달된 금융시장으로 쏟아 넣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세계적 거시실물경제의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문제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우, 지금까지의 과도한 소비(지나치게 낮은 저축율)를 대폭 줄이는 조치가 필요불가결할 것이다. 이는 미국이 과도할 정도로 소비를 감축해서 부실화된 국내 가계의 재무구조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당분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급감한 민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정부채무와 통화팽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길어봤자 2~3년 지속될 것이다. 선진국의 소비와 투자는 상당 기간 위축될 것이고, 신흥발전국이나 저개발국에서 대규모 소비, 투자의 기회가 생길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수출주도형 흑자국들은 국내에서 민간 부문의 내수를 확대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 독일은 세계경제위기 과정에서도 주택가격, 물가, 기업 부채비율 등의 지표가 매우 안정적인데다 저축률도 높은 등 다른 선진자본주의국에 비해 튼튼한 경제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실물부문의 부진에 따라 수출이 둔화되면서, 2009년 성장률이 -5.3%(Commerz 은행의 경제분석가는 -7%)로 예측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50%에 육박하는 한국 같은 국가는 경각심을 가져야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2. 지난 10년간 추진한 반쪽짜리 신자유주의(halfway neoliberalism) 정책의 귀결 : 안정과 위기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한국경제

2.1. [금융자본주의 발전의 3단계]


미국 금융자본주의는 3단계(수정자본주의 부정 → 주주자본주의 → 과잉금융화 경제 또는 카지노 자본주의)를 거쳐 내파(implosion)되었다.

금융자본주의의 제1단계는 1980년 레이건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레이건은 신자유주의 정책(규제완화/자유화/복지삭감/민영화/노동유연화 등)을 통해 과거 수정자본주의체제를 부정했다. 이를 기초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을 통제하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1990년대 초엔 2단계가 시작된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다. 1994년 잭 웰치(Jack Welch)의 주주가치 선언과 GE의 주주가치 경영이 그 출발점이었다. 3단계는 2000년 IT버블의 붕괴와 함께 시작되었다. 금융은 이제 산업자본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자립적인 이익창출의 기회를 찾아서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내었다. 소비자, 가계를 대상으로 한 과잉금융화와 거대한 카지노 자본주의가 여기서 출현하였다.

붕괴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는 세 가지 점에서 19세기말 제국주의와 성격이 같다. 첫째, 부가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부가가치의 착복을 추구하는 점이다. 둘째, 각국 간, 그리고 거대 자본간(특히 금융자본간) 각축전은 금융자본주의를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만들었으며 점점 더 많은 자본이 이 운동에 끌려 들어갔다. 과거 제국주의가 선진자본주의 국가간 각축전으로 하나의 역사적 필연이 되었던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19세기 당시의 제반 여건상 식민지 쟁탈전에서 밀리는 자본주의 국가(그리고 각 민족자본)는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세계의 잉여자금을 둘러싼 각축전도 유사한 상황을 연출했다. 마지막으로 금융자본주의는 기생적이며 이윤 창출의 외부 프런티어가 고갈되는 순간 붕괴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금융자본주의의 프런티어는 선진국의 가계, 특히 빈곤층 가계였다.

2.2. [1997년 한국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개혁]

한국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IMF와 미국의 압력에 따라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은행개혁 : 은행을 상업적 원리에 입각, 주주이익에 봉사하는, 따라서 단기실적을 최우선시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ex. 금융기관 대형화, 겸업화. 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 사외이사제 도입을 비롯한 지배구조 개혁. 대형은행 지분의 과반수 이상을 외국인 주주들이 점유)

⦁재벌개혁 : 기업구조개혁 5+3원칙에 따른 재벌개혁. (ex. 사외이사제도, 소액주주권 강화, 상호채무보증금지, 재무구조개선 등 경영투명성 강화와 주주재산권 강화)

⦁공기업 민영화 : 민영화 계획을 수립하여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

⦁노동부문개혁 : 정리해고제 도입, 파견근로제 도입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정책.

2.3. [개혁의 부작용]

한국의 급진 개혁은 한국경제체제를 중상주의적인 개발독재체제로부터 일거에 미국식 '최일류(?)' 신자유주의체제로 전환하려는 야심찬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 조건이 선진국처럼 수정자본주의체제가 아니었고, 투자부진이 장기화하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탓에 강도 높은 노사분규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서 어중간한 개혁으로 끝났다.

⦁코스닥 시장의 개설, 정부지원과 코스닥 시장을 이용한 벤처의 육성은 신정경유착과 사기가 판을 치는 저급한 카지노자본주의였다.

⦁재벌 가문은 외국주주와 소액주주의 압력에 고액배당, 자사주 매입 등으로 대응하며 경영권을 방어했다. 한편 극히 보수적 방식의 재무 건전성 개선, 공격적인 투자 회피 등을 수단으로 족벌의 그룹 지배권을 지켜냈다. 이 덕분에 한국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외환위기 당시 424.6%에서 10년 후인 2008년 9월엔 104.3%로, 과도하리만큼 하락했다.

⦁사회안전망의 부재, 개방적 노동시장의 부재,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의 전통 등이 상호작용하여, 노조는 정부-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자본 측은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는 임금소득의 감소, 내수시장의 위축으로 연결되었다.

⦁대기업의 수익성 경영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 중소기업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도하게 중국, 베트남 등 외국으로 탈출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고도화와 고용창출능력은 감소했다. 대기업은 대규모 분사, 아웃소싱, 해외 직접투자, 수입구조 다변화 등의 전략을 구사했는데 이는 경영 합리성을 다소 강화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이런 발전의 경로에서 여전히 중소기업에 대한 비용전가를 강화해 상생발전을 외면하는 등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인 행태를 보였다.

⦁은행은 단기 고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대출보다 가계를 대상으로 하는 소매금융에 주력해서 부동산 거품과 신용불량자를 대량 양산했다.

⦁한국에 수입된 주주자본주의는, 투기적 '먹튀자본'의 행태를 양산한 반면 '주주이익 극대화 원리'가 그나마 가지고 있는 합리화 효과는 나타내지 못했다. 가장 뚜렷한 증거는 자본시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퇴행적으로 버티고 있는 재벌그룹의 총수지배구조이다.

2.4. [노무현 정부의 좌파신자유주의]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듯이 모든 정책은 일관성이 없고 뒤죽박죽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 전력산업 민영화를 중단했으며 여타 민영화 계획을 보류하는 등 김대중 정부의 과도한 신자유주의 개혁 중 일부를 철회했다. 그러나 정권 말기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무분별한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금융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 즉 과잉금융화와 카지노자본주의의 초석이 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을 통과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 특히 서울의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종합부동산세, 투기지역 확대, 재개발관련 규제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지방의 땅값을 전국적으로 올리며 거대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편승한 민간 건설업자들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대량의 미분양 사태를 야기하고 있다.

2.5. [불철저한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한국을 구했다]

노무현 정부가 만약 부동산투기억제책을 취하지 않았거나 자통법을 2년 정도 일찍 시행했다면 한국경제는 이번 세계금융사태의 진앙지 중 하나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 과거 어느 정권도 '안보' 문제 때문에 지난 15년간 설립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제2롯데월드'를 이명박 정부가 설립을 허가했다. ⓒ프레시안
⦁한국의 토건세력은 지역 기반 정치세력과 동맹하여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맹목적인 개발 충동은 그간 자리 잡은, 그러나 차원이 낮은 금융자본주의의 3단계, 즉 과잉 금융화 및 카지노 자본주의 경향(투기조장, 경쟁적 은행대출, PF 금융 등을 자극하는 방식)과 결합하여 경제를 신자유주의 토건국가로 몰아가고 있었다.

· 외국 언론에서 최근 논란이 된 높은 예대율도 상업은행들이 2005년부터 금융채와 CD등을 발행하여 이러한 투기적 충동에 편승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한국의 상업은행들은 자통법 통과 이전에 벌써 제한적이나마 자본시장과 레버리지(leverage) 효과를 이용하여 금융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적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행히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대출채권을 거래하며 파생금융상품을 유통시키고 이로 인해 금융 유동성이 폭발하면서 갑작스런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그나마 투기억제책을 시행했고, 자통법의 통과도 늦추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3.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3단계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정책의 위험성

3.1. [완전한 신자유주의를 향한 이명박 정부의 개혁]

다음과 같은 정책에서 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 첨단 서비스업 육성이라는 명분하에 상수도, 의료, 교육 등의 공공 부문에 민영화 및 상업원리를 도입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추구하고 있다.

⦁ 대규모 감세정책을 이미 시행했다.

⦁ 한미 FTA, 자통법 시행,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법 완화 등 급진적 개방 정책과 함께 상업은행업/투자은행업 간의 파이어월(fire wall)은 물론 금융과 산업 간 파이어월까지 허물면서 이른바 금융중심지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금융중심지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 대대적인 부동산규제 완화, 4대강 치수사업, 경인운하 등으로 신자유주의 토건국가를 재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모든 정책은 그간 10년간 '좌파'정부가 어중간하게 추진한 신자유주의를 1단계부터 다시 시작하여 가장 완전한 방식으로 2단계, 3단계를 이끌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세계금융자본주의에 몰아치는 폭풍우속을 더 빠른 속도로 전진시킴으로써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3.2. [세계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

세계경제는 그간 각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계획한 경기부양책, 무한정 쏟아 붓고 있는 유동성 등에 힘입어 올해 하반기엔 다소 안정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는 실물 부문이 살아나지 않는 한 다시 침체로 반전되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불행히도 실물 부문(소비 및 투자)은 결코 단기에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알트만(R. Altman)이 분석하듯이 현재의 위기는 기존의 위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FT 2009.4.6) 지금은 가계와 은행에 거대한 손실과 부실이 쌓여 있다.(massive balance sheet damage) 전 세계적으로 50조 달러의 자산가치 하락이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으며, 지난 10년처럼 미국이 GDP의 70%를 소비하며 세계경제의 수요를 부양했던 행태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은행의 경우 미국에서 지금까지 1조 달러 정도의 손실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주택 및 상업 부동산 부문에서 다시 1조 달러의 손실이 추가로 현실화될 것이다.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다시 악화되며 이에 따라 대출여력이 극도로 취약해지면서 2차, 3차, 4차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각국 정부의 재무상태는 어떠한가? 각국 정부는 현재, 최대 출력으로 상승하는 로켓처럼, 모든 자원을 사용해서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조만간 정부 부문 대차대조표의 부실, 통화팽창에 따른 채무불이행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이자율의 상승, 국채발생의 애로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3.3. [한국정부의 위험한 도박]

이처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 세계경제위기가 앞으로 몇 개월 간 진정 국면을 보이다가 장기 침체로 굴러떨어질 경우 어떻게 될까? 최근 한국 뿐 아니라 주요 각국에서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반면, 실물경제는 계속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땡처리'를 하고 있는 미국 뉴욕의 한 가게. ⓒAP=연합
문제는 세계경제위기가 이후 몇 개월 간 진정 국면을 보이다가 장기 침체로 굴러 떨어지는 경우다.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예상되는 세계경제위기의 단기적 진정국면에 기존의 정책을 밀고 나감으로써 다시 부동산 버블과 유동성 폭발, 채무 폭증 등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독일 경제는 주택가격안정, 물가안정, 높은 저축률, 기업부채안정 등 모든 조건에서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실물 경제활동의 격감으로 수출이 둔화되고 2009년 성장률이 -5.3%(코메르쯔 은행의 한 경제분석가는 -7%)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처럼 수출의존도가 50%에 육박하는 경제로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쌓인 거품은 단기 진정국면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장기침체 국면에서 한국경제를 헤어 나올 수없는 수렁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엇을 믿고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인가?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라는 경구는 '역사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면 다시금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게 된다는 경고다. 한국인은 압도적 다수로 독재자 박정희를 닮은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써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 가져올 희극적 결말의 씨앗을 스스로 뿌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대가'가 너무나 분명해진 국면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신자유주의'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한국인들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의 황혼이 다가오자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새롭게 밝아 오는 새벽이 가까웠기 때문이리라.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쓰는 한 네티즌의 약간의 인기에 놀라 그를 구속한 당국의 태도가 은밀히 이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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