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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하는 장관님, 살벌한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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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하는 장관님, 살벌한 문화부

[정희준의 '어퍼컷'] 유인촌과 장관의 격

작년 10월 국감장에서 유인촌은 장관도 욕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온 국민들에게 보여줬다. 나이 차이도 별로 없을 사진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 마, XX" "이~씨" "성질 뻗쳐서 정말, XX 찍지 마"라며 욕설을 해댔다. 성격이 웬만큼 '엉망'인 사람도 공식석상에서는 하기 힘든 말이다.

그때 우리는 유인촌이란 사람이, 아니 유인촌이라는 장관이 어떤 인간인지 꽤나 선명하게 엿볼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국회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기자들에게 그런 욕설을 한다는 것은 그가 세상 두려운 줄 모르고 동시에 국민 두려운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지난 달에는 전원 해고의 위기에 처한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이 문체부 앞에서 집회를 진행 하는 중에 느닷없이 나타나 반말을 던진 게 또 시비거리가 됐다. 문화 담당 장관이 그나마 둘밖에 안 되는 국립합창단 중 하나를 완전히 없애는 데 앞장선다는 사실이 괴이하기도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반말 하다가 반말 하지 말라고 항의 하니까 그냥 들어가 버리는 행태는 마치 자유당 시절 건달 출신 군수를 보는 듯하다.

등장하자마자 쏟아진 야유

이번에 그는 또 '히트'를 쳤다. 지난 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시즌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는데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면서부터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그런데 시구 후에는 곧장 퇴장 하지 않고 기념촬영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하더니 사진촬영 후에는 또 양측 덕아웃으로 들어가 감독, 선수들과 악수까지 하느라 경기시작을 무려 6분이나 지연시켰다. 경기시작은 물론 지상파 중계까지 지연됐으니 이만하면 보기 드문 방송사고다.

▲ 지난 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시즌 개막전에서 유인촌 장관은 시구를 했는데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면서부터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연합뉴스
사실 어느 언론 기사는 그가 경기를 지연시켜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관중들은 그가 등장하자마자 야유를 보냈다. 미르라는 이름의 (SK와이번스의 마스코트) 강아지가 시구할 공을 입에 문 바구니에 담아 전달하러 나가다가 돌아와 버리자 관중들은 박장대소를 했고 "개도 사람을 알아본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유 장관이 경기장을 나가지 않고 계속 경기를 지연시키자 관중들은 "나가"라고 요구했고 "빨리 경기를 시작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나왔다. 하여튼 그는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시구(또는 시축) 하러 나섰다가 관중들의 야유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됐다.

그 유인촌 장관이 열흘 뒤 또 '히트'를 쳤다. 지난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유 장관으로 인해 경기 시작이 늦어져 관중과 시청자들로부터 야유가 있었다고 지적하자 그는 "다시는 (시구하러) 안 나가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덧붙인 말이 가관이다. "하여간 쓸데없는 짓은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담당 업무를 모욕하는 장관

그렇게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가 '쓸데없는 짓'이 돼버렸다. 그와 기념촬영 한 사람들도 '쓸데없는 짓'을 한 게 돼버렸다. 그와 악수한 감독과 선수들도 '쓸데없는 짓' 한 게 돼버렸다. 그날 인천 문학경기장에 돈 주고 경기 보러 간 야구팬들, TV를 본 시청자들도 모두 아까운 시간, 돈 써가며 '쓸데없는 짓'을 구경한 꼴이 돼버렸다.

프로야구가 담당업무인 부처의 장관인 그는 프로야구의 축제 중 축제인 개막식에 시구자로 나선 것을 '쓸데없는 짓'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선 장관이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 그리고 그 구성원들에게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비하하고 모욕하는 경우도 있나보다. 별 희한한 장관 다 본다.

아마도 시구나 시축을 가장 많이 한 정치인은 전두환 아닐까 싶은데 전두환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장 유인촌을 집으로 불러 마당에서 원산폭격을 시킬 일이다. 사실 시구 후에 경기장을 빠져 나가지 않고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며 경기시작 지연시킨 것은 전두환도 안 하던 '짓'이다.

이제까지 유인촌 장관의 말을 꿰보면 그가 '국정'을 어떻게 여기는지, '국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야구경기를, 야구선수들을, 야구팬들을, 야구경기 시청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알 수 있다. 섬기면서 봉사하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두려워해야 할 그런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잘 알 수 있다. 체육의 주무장관인 그에게 체육은 과연 쓸데없는 짓인가. 그는 그의 업무에 대해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말의 사명의식이라도 그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을까.

부느니 피바람이요, 떨어지느니 낙하산

많은 장관이 있지만 그래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면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푸근한 느낌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 청소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는 동네사람들의 놀이와 여가와 건강까지 챙겨 주는 그런 어른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 문화계를 보면 부느니 피바람이요, 떨어지느니 낙하산이다.

유인촌 장관이 오고 나서 숱한 문화기관의 수장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 중에 쫓겨났고 문화방송(MBC)의 신경민 앵커와 KBS의 윤도현도 밀려났으며 <PD수첩>의 김보슬 PD는 체포됐다. 김미화는 살아남았지만 다음은 손석희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여기저기서 칼날이 번득이는 가운데 낙하산은 폭탄처럼 떨어진다. 아무도 못 막는다. 16일에는 기존 5개 콘텐츠진흥기관을 통합한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지난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에서 낙천한 이후 EBS, 아리랑TV 사장으로 거론되던 이재웅 전 의원이 결국 임명됐다.

현 정권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분위기가 가장 살벌한 곳이 됐다. 어떻게 우리 장관님은 장관 되자마자 완장 차고 피맛에 굶주린 듯 칼을 휘둘러 대다가 열받으면 욕하고 마음에 안 들면 막말 하고 그러나.

하긴 법으로 정한 기관장도 내모는 것을 보면 '법대로'가 아닌 '성질대로' 일을 하는 장관 같긴 하다. 사실 나는 지금 그가 자기가 지금 뭘 하는지도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야구장에서의 야유도 대국민 '홍보'가 잘 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봐도 그는 국민을, 문화를, 예술을 섬기는 사람은 아니다. 오직 '주군'만을 섬긴다. 그리고 주군이 거느린 장관 중에서도 그는 가장 열심이고 재빠르다. 미르보다 빠르다. 특히 그는 가장 용감하다. 나는 그게 무섭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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