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빌리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었다. 검찰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렇다. 이렇게 돼 있다.
2007년 6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6월 29일까지 100만 달러를 준비하라고 부탁한다. 기간은 딱 나흘. 시간에 쫓긴 박연차 회장이 직원 130명을 동원해 100만 달러를 환전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전달한다. 이 돈은 6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세기에 실려 아들 노건호 씨에게 전달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제올림픽기구 총회 참석차 과테말라로 가는 도중에 기착한 미국 시애틀에서 아들에게 100만 달러를 유학비용으로 건넨 것이다.
거짓말이 된다. 검찰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100만 달러를 받아 "빚을 갚는 데 썼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은 거짓말이 된다. 국민에게 사과를 하며 스스로 밝힌 내용마저 꾸며낸 것이 된다.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법을 어긴 게 된다. 검찰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외환관리법을 어긴 셈이 된다. 외환관리법상 여행 떠날 때는 1인당 1만 달러 이상을 반출하려면 세관당국에 신고하도록 돼 있고, 유학비용을 보낼 때는 외국환은행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애틀로 100만 달러 가방을 들고 나가며 신고를 했다는 기록과 보도는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 직위를 이용해 탈법행위를 한 것이다.
▲ 검찰조사를 받은 노건호 씨 ⓒ뉴시스 |
믿을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누스 행태를 보였다는 것도 그렇고, 해외 은닉계좌로 돈을 빼돌리는 후진국 독재자의 행태를 답습했다는 것도 그렇다. 이런 행태가 실제 있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파산자란 공격에 앞서 도덕적 파탄자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은 펄쩍 뛴다. 김경수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 전화를 건 적도, 노건호 씨에게 돈을 준 적도 없다"고 전면 부인한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 역시 "그 돈은 미국으로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부인한다.
진실 규명은 불가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서도 꼭 필요하다. 국민의 정신건강이 걸린 문제다.
관건은 증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면 전화통화 내역이 남아있을 것이고, 100만 달러 가방이 전달됐다면 누군가가 날랐을 것이다. 이 소통과 유통의 흔적을 검찰이 찾아내는지가 관건이다.
전자는 쉽지 않다. 통화기록이 남아있다 해도 송신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확정하기는 힘들다. 청와대 유선전화를 썼다면 그렇다. 문제는 후자다. 박연차 회장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100개씩 묶은 100다발을 가방에 넣어 전달했다고 하니까 묵직하고 큼직한 가방이 손을 탔을 게 분명하다. 누가 들어 옮겼을까? 노건호 씨가 직접 들어 날랐을까?
눈길을 끈다. 검찰이 당시 권모 시애틀 총영사와 이모 노건호 씨 경호원을 불러 조사한 사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검찰은 개연성을 추적했을 것이다. 권모 당시 총영사는 몰라도 이모 경호원이 100만 달러 가방을 옮겼을 개연성을 점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소환 조사 사실만 보도될 뿐 이모 경호원 등이 어떤 진술을 했는지는 전혀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가정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경우다. 이모 경호원 등이 검찰 앞에서 100만 달러 가방을 날랐다고 진술했으면 어떻게 될까?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똑같은 진술을 하면 어떻게 될까? 정반대로 이모 경호원 등이 돈 가방은 구경도 못 했다고 진술했으면 어떻게 될까?
전자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치고 후자라면 검찰과 언론이 다치는 걸까? 맞지만 틀리다. 도덕적 차원에서 보면 이런 규정이 성립되지만 사법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가 않다. 시애틀에서 100만 달러 가방이 전달됐어도, 이모 경호원 등이 직접 돈가방을 날랐거나 목격했어도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모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또 한 명의 인물, 권양숙 씨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이 받았다고 했다. 받기는 받았는데 어디에 썼는지는 말 못한다고 했다. 권양숙 씨가 부산지검에 나가 이렇게 진술했다. 권양숙 씨가 이렇게 버티고 서 있으면 모든 게 치환된다. 설령 100만 달러 가방이 시애틀에서 전달됐다 해도 모든 게 설명된다. "빚 갚는 데 썼다"는 '고백'도, 대통령 전세기에 100만 달러 가방이 실린 것도 모두 권양숙 씨의 '작품'이 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뒤로 빠진다.
어찌 된 일일까? 사정이 이런데도 검찰은 단호하다. 권양숙 씨는 참고인일 뿐이라고 하고, 추가 소환 조사 계획은 없다고 한다. 다른 걸 쥐고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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