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라는 정체불명의 마녀에게 불만의 원인을 뒤집어씌우더라도, 자기가 지금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조금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녀사냥이란 그것이 마녀사냥이라는 자의식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가짜문제를 진짜문제라고 착각하는 혼동이 자각되지 않은 채 지속된다는 데에 본질이 있다. 따라서 어떤 다른 의제, 건강하고 생산적인 의제가 종종 제기되더라도 도리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간단히 일축당하고 만다.
예컨대 "'80년 광주"에 관한 미진한 진상을 영원한 미궁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현재 50-60대에 있을 진압부대 장병 개개인들을 찾아서 현장 상황에 관한 증언들을 발굴해서 녹취해 둘 필요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의 협조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중앙정부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가 협조하고 지원한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는 30년 묵은 우리사회의 상처를 들쑤시는 일이 아니고, 대충 덮어버린 바람에 속에서 곪아 터지는 종기의 고름을 깨끗이 짜내는 일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의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진보진영에서조차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지역주의 담론의 그늘 아래 쉽사리 잊혀져 버리는 의제들은 수없이 많다. 마녀사냥이란 본시 생산적일 수 있는 모든 의제를 덮어버리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의제는 표현의 자유이다. 이는 물론 서양 정치사에 비추면 대단히 고전적인 주제다. 그러나 이 의제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이유로 유럽이나 미국 사회에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소외받은 집단일수록 평상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할 길이 사실상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세상에 내기 위해서는 전에 없던 방식, 때로는 충격적인 방식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기를 태우는 것도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제3세계 나라에서 미국의 패권에 반대하는 의사 표시로 성조기를 불태우는 것은 종종 사용되는 항의의 방법이다. 때로는 자국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표시로 자국기를 불태우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국기 모독을 벌금이나 금고로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덴마크는 자국기를 불태우는 것은 상관없지만, 외국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2005년 건국기념일에 타즈매니아 원주민 센터의 직원이 국기를 불태우고, 100여 명의 시민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원주민들에게는 이 날이 "침략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교사로 일하던 폴 홉킨슨은 2003년 의회 앞마당에서 국기를 불태웠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오스트레일리아 수상이 뉴질랜드에 방문한 것을 항의한 것이다. 뉴질랜드에는 국기를 모독할 목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 홉킨슨은 체포되어 그 법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항소한 끝에 무죄판결을 얻어냈다. 뉴질랜드 권리장전에 따른 표현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기 남군에 속했던 뉴올리언스가 함락된 직후인 1862년 4월 25일, 윌리엄 멈포드는 북군의 깃발, 즉 성조기를 조폐국 게양대에서 끌어내렸다. 당시 아직 항복하지 않고 있던 남군 측 시장에게 갖다 줄 생각이었는데, 도중에 시민들이 달려들어 한 조각만 남기고 찢어발겨 버렸다. 멈포드는 5월 30일 군사법정에 섰고, 반역죄 및 국기훼손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6월 7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일반적으로 성조기 훼손은 범죄로 간주되었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서 성조기를 불태우지 못하도록 1968년에는 국기보호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1989년 텍사스 주의 최고법원은 레이건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표시로 1984년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장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운 그레고리 존슨을 무죄로 판시했다. "존중의 대상"을 훼손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텍사스의 주법이 연방헌법 수정 제1조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우리 사회의 실상을 이에 견주어 보자. 무엇보다 "집회에 대한 허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헌법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법이 있다는 것은 법체계 자체의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프레시안 |
텍사스 주정부는 연방대법원에 제소했지만, 연방대법원도 5대 4로 텍사스 주 최고법원을 지지했다. 이로써 48개 주에서 시행중이던 국기훼손죄, 그리고 1968년의 국기보호법이 위헌이 되자, 연방의회가 국기보호법을 개정했다. 다시 이 법에 항의해서 연방의사당과 시애틀 우체국 앞에서 국기를 불태우는 시위가 있었고, 연방대법원은 1990년에 개정된 국기보호법도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국기훼손죄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국기보호만은 수정헌법 제1조에서 예외로 한다는 개헌을 시도했다. 개헌안은 2005년 하원 3분의 2 찬성을 얻어서 상원으로 갔다. 하지만 2006년 상원 표결에서 찬성 66대 반대 34로 부결되었다. 개헌안은 3분의 2 찬성, 즉 67표가 필요한데 한 표가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상원을 통과했더라도 다시 50개 주 가운데 4분의 3, 즉 38개주로부터 비준을 받는 절차는 남아있었다.
다소 장황하게 국기 훼손 또는 보호에 관한 여러 나라들의 실태를 서술한 까닭은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인정되더라도 별 탈이 없는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1989년 텍사스 주 최고법원에서는 "미국 - 빨강, 하양, 파랑, 우리는 네게 침을 뱉는다. 약탈의 편에 서는 한 너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하면서 국기를 불태운 행위가 "평화의 저해"(breach of the peace)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우리식 어법으로 말하면 그레고리 존슨의 의사표현이 "질서파괴행위"가 아니었다는 말이 되고, 존 스튜어트 밀 식으로 말하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말이 되며, 올리버 웬델 홈스 식으로 말하자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존슨의 무죄를 확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입장도 같다.
이런 행위를 보고 역겨움을 느끼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게 되는 것까지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텍사스 주 최고법원이나 미국 연방대법원이 중시한 평화는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사회의 평화, 즉 사회의 평화적 질서이다. 연방의회의 국기보호법에 항의해서 시애틀 우체국에 게양된 국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사람들은 국기훼손으로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공공기물파손죄로는 처벌을 받았다. 두 명은 구류 사흘에 벌금 200달러와 수수료 25달러, 다른 두 명은 벌금 $75와 수수료 $25였다. 구류를 받은 두 명은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례의 원리, 즉 잘못한 만큼 벌한다는 원리가 얼마나 세밀하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주목하기 바란다.
미국의 경우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적어도 이 대목에서 법체계 내부에 괴리는 없다. 연방헌법 수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이처럼 넓게 해석하는 연방대법원의 입장이 뚜렷하게 연방과 주의 여타 법원들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 헌법 제21조 2항과, 옥외집회를 경찰서장의 판단으로 금지할 수 있게 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충돌한다. 특히 일몰후부터 일출전까지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한 제10조는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박재영 판사는 이 조항의 위헌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가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 등, 조직내부에서 여러 가지 압박을 느껴 사표를 냈다. 물론 판사의 위헌제청권 역시 헌법 제107조 1항에 명기되어 있는 권리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에는 예컨대 대학 구내에서 정치집회를 하지 못하게 막는 등, 표현의 자유에 제약이 많았다. 일례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분교에서 이 때문에 발생한 "표현의 자유 운동"은 당시 보수파들의 정서적 평화를 깨뜨렸다. 원래는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50세가 넘어 1962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로널드 레이건은 버클리 분교에서 벌어진 논쟁을 빌미로 보수파의 불안감을 자극함으로써 1967년에 주지사로 당선되고 1975년까지 두 번의 임기를 채웠다. 그 사이에 대통령 자리를 노리다가 1980년에 3수생으로 당선되었다. 주지사로 있던 1969년에는 고속도로순찰대를 버클리 분교로 보내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학생들의 항의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그리고 유혈 진압에 대한 항의가 더 크게 일어나자 연방보안군을 불러서 버클리 시 전체를 2주일 동안 점령시켰다.
겉으로만 보면 레이건의 강압이 시위를 누른 것처럼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후 역사진행은 사실은 학생들의 요구가 다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증명한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다름 아닌 공화당의 닉슨에 의해서 종식되었고, 버클리 캠퍼스를 비롯해서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학생들의 정치활동, 즉 표현의 자유는 포괄적으로 인정되었다. 학생들이 대학구내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위해 선전하거나 모금하는 등,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학교는 이제 없다. 금지하면 안 된다는 무슨 특별한 법조문이나 교육부의 공문이 내려가기 때문이 아니라, 재판으로 가면 질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보수파의 정서적 평화가 좀 흔들리더라도 사회적 평화가 흔들리지는 않고, 오히려 보수파의 정서적 평화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사회적 평화에 해롭다는 인식이 확립된 셈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실상을 이에 견주어 보자. 무엇보다 "집회에 대한 허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헌법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법이 있다는 것은 법체계 자체의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헌법을 "집회는 허가된 것만 할 수 있다" 또는 "정치집회는 안 된다"는 식으로 고치든지, 아니면 집회에 대한 사실상의 허가권을 경찰에게 부여하는 집시법 조문들이 모두 폐기되어야 맞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끊임없는 분란이 계속될 것이고, 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자주 부딪치다 보면 어디까지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이 상존한다. 광주에서 발포가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끼리 충돌하는 와중에 우발적으로 시작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런 위험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법체계를 손질하도록 애쓰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도대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정부 정책이나 현행 정치체제에 대한 반대나 항의를 곧 반역으로 간주하는 시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항목이 설 자리가 아예 없다. 물론 반대나 항의를 곧 반역으로 간주하는 시각이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주정이나 전체주의를 염두에 둘 때에만 가능하다. 민주주의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일단 표출되도록 하는 데에 본질적인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시민 개개인의 의견을 공동체의 정책으로 수렴시키는 과정인데, 개인들이 의견을 가지려면 먼저 사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갈래의 의견과 그 근거를 들어보고 나서 나름대로 선택하고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정부에 대한 반대나 항의는 특별히 중요하다. 정부란 일단 다수 인민의 위임을 한번 받은 근거에서 성립한 것이므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나 항의가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는다면 곧 전횡으로 흘러가기가 대단히 쉽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다수의 지지가 유지되더라도 반대를 묵살만 한다면 다수의 횡포가 되는 것이며, 사실 대개 정부가 전횡을 한다면 지지해준 다수를 속이면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수의 이름을 판 소수의 횡포"가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표현의 자유란 해롭거나 틀렸다고 여겨지는 의견의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라고 역설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밀은 표현의 자유를 통해서만 사회의 진보가 가능하다고도 주장했다. 어처구니없어 보일까봐, 남들에게 조롱이나 박해를 당할까봐,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정신적 에너지 및 도덕적 용기 등의 영역에서 자발성, 창의성, 천재적 영감 따위가 애초에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 사회는 집단적 범용(凡庸)으로 가득 차고 결국에는 집단적 범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하고 말 것이다 - 풍부함 및 다양성이 필요한 것들은 모두 관습에 짓눌려 싹조차 틔울 수 없을 것이다 - 인간 본성 가운데 순종적인 경향만이 살아남아서 "활력이라고는 시든 것밖에 남지 않고", "심술궂고 완고하며 뒤틀린" 인간만이 양성되리라고 갈파했다. 얼핏 보기에 틀렸거나, 해롭거나, 우스꽝스럽거나, 위험해 보일지라도, 실제로 위험한 재앙으로 직결되지 않는 한, 의견의 표명은 자유로워야 집단 지성이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위험해 보이는 것과 실제 위험한 것 사이의 경계가 사법적 판단에서 관건이 된다. 광우병에 관한 염려에서 촉발된 2008년의 촛불 시위가 위험했는가?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산 참사의 진상에 관해 극우 보수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양식 있는 시민들로 하여금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검찰의 수사발표에 항의하는 집회가 원천봉쇄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간옥외집회가 위험할 수도 있고, 청계광장에서 추모대회를 하다보면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은 언제든지 있다. 이 세상에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일은 전혀 없는 것이다. "위험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들의 자유를 사전에 원천봉쇄할 바에야, 화염병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시너나 휘발유를 살 때마다 신고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법률이 어떻게 제정되고, 해석되어,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는 제6부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다시 지역주의 담론에 관한 원래의 논의와 지금까지 얘기한 표현의 자유가 무슨 상관인지를 밝힘으로써 이 절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두 가지 점에서 상관이 있다.
첫째, 지역주의를 문제 삼는 담론은 불필요한 두려움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와 서로 통한다.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나타나는 투표성향의 편차를 보든, 그로써 읽어낼 수 있는 모종의 반감이나 경계심을 보든, 아니면 관직독점이나 향리주의적 성향을 보든,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무슨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되지도 않는다. 편차가 반감이나 배타성이 계속 더 커지고 있다는 징조도 없다. 오히려 몰표의 정도가 80-90%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심해지기는 어렵다는 반증으로 읽는 것이 훨씬 상식적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는 썩 맘에 들어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 사회의 차원에서 어떤 직접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실제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지역주의가 문제"라는 생각은 여전히 대단히 많은 사람들의 의식 안에 내재하고 있다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동조를 얻는다. 두려움의 대상을 정확하게 식별하기 전에 두려움에 휩싸여버리는 전형적인 공황증상인 것이다. 이런 증상은 쉽게 다른 영역으로 번져 나간다. 그리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갈림길에 관한 결정에서 해당 쟁점의 본질이나 판단에 필요한 최소한의 진상을 파고들어가기 전에, 그러한 탐구 자체를 두려워하고 중간에서 대충 덮어버리는 습관을 조장한다. 결국 국가권력이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도록 방치하고, 서로 연고로 엮이지 않은 개인들 사이에 공론을 통한 연대를 가로막는 것이다.
둘째, 지역주의 담론은 가짜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진짜문제를 찾아나갈 필요와 동기를 자동적으로 차단한다. 더구나 현대정치에서 공론의 주제가 될 만큼 중요한 의제라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분별력이 없다면 대책에 대한 판단은 고사하고 의제 자체의 성격을 이해하기도 버겁다. 정치사회의 개선을 위한 생산적 의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주의"라는 이름의 마녀사냥은 지적 노력을 포기해도 괜찮을 성 싶은 손쉬운 핑계거리를 제공한다. 모든 정책에 대한 일반적 불신을 정당화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불평이 잘 자라도록 자양분을 공급한다. 그리하여 시민의식에 좌절감과 자포자기를 확대재생산하면서, 그것이 좌절감과 자포자기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마취제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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