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은 선악의 얼굴을 모두 갖고 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둘러싸고 원고와 피고는 피말리는 각축전을 벌인다. 인간의 밑바닥이 낱낱이 드러나곤 한다.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이용됐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선한 면이다.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는 백만장자가 되고 파렴치한 기업은 벌을 받는다. 존 트라볼타가 1999년에 나온 <시빌 액션>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악한 면이다. 존 트라볼타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이용해 떼돈을 벌 요량으로 산업 폐기물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는다. 그의 목적은 변호나 정의가 아니라 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거액의 커미션이다. 변호사는 그저 배상금 받아낼 궁리만 하고 기업은 도망갈 궁리만 하고 산업 폐기물의 희생자들은 이용만 당한다.
▲ 영화 <시빌 액션>의 한 장면 |
징벌적 손해배상은 사회적 책임을 고의로 회피한 기업에 대한 시민 사회의 질타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한국에선 기업들이 솜방망이 벌금을 우습게 여기며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선의의 취지만큼이나 악용된다. 1967년 캘리포니아 법원이 한 제조업체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은 뒤 크고 작은 손해배상 청구가 줄을 이었던 적이 있었다. 제도에는 감정이 없지만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영화 속 얘기만이 아니다.
JYP엔터테인먼트와 비는 하와이 법원에서 808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받았다. 비의 하와이 공연이 무산되면서 미국측 기획사가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액은 150만 달러 정도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했다. 하와이 법원의 배심원들은 공연 취소를 시민과의 사회적 약속을 고의적으로 어긴 괘씸죄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러나 가혹하다. 잘잘못은 접어두고서라도, 이대로라면 월드 스타를 꿈꿔온 비와 원더 걸스의 미국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JYP의 꿈은 펴보지도 못하고 접힐 수 있다. 미국의 법테두리에서 한국의 엔터테이너들은 약자다. 미국의 데블스 애드버킷들이 노림직한 먹잇감이란 뜻이다. 징벌적 손배해상은 사람의 사리분별과 법감정에 따라 퓨너티브일수도 빈딕티브일 수도 있다. 그런데 판결의 결과가 불러올 그들의 절망을 생각하면, 이번엔 빈딕티브가 분명하다. 악하고 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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