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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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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한국에서 살아보니] 고속버스 vs 기차

나는 집안 일로 전라남도 여수를 비교적 자주 찾는다. 그동안은 사정상 대략 한 달에 한번 꼴로, 당일치기 왕복을 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400킬로미터가 넘는다. 말이 그렇지 이 거리를 당일로 갔다 오려면 길에서 보내는 시간만 10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서울에서 새벽에 나서도 여수에는 점심 무렵 도착한다. 오후 서너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올라오면 서울에는 밤중에 닿게 된다. 예전 같으면 여수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꼬박 하루 길이다. 당일치기 왕복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니 그동안 세상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텅 빈 버스 타기엔 휘발유가 아깝다

서울에서 여수를 내려가는 방법은 항공편과 승용차편, 그리고 일반적인 대중교통으로 고속버스와 기차가 있다. 그런데 여수를 내려갈 때면 교통편을 이리저리 궁리하다가도 비용이 많이 드는 항공편과 승용차편을 제외하고 나면, 결국은 고속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혼자서 가기에 비용이 저렴하고 우선 편리한 까닭이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면 서울에서 여수 가는 버스가 50분마다 한대씩 버스가 있다. 광주 같은 경우는 5분에 한 대 꼴이니 정말 편리하기 그지없는 셈이다.

평일 이른 아침의 고속버스는 승객이 거의 없다. 많아야 대여섯 명, 때로는 두 명만 싣고서도 그 먼 거리를 달린다. 고유가 시대에 휘발유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승객을 달랑 두 명 싣고 다섯 시간을 운전하는 운전사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려가는 버스가 있으니까 타게 되는 것이다.

기차가 고속버스에 밀리는 이유

그런데 고속버스를 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점차 몸으로 느끼는 피로도가 심했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보니 기차가 있었다. 기차를 타면 고속버스보다는 덜 피로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기차 시간표를 조회해 보니 가장 빠른 기차 편이 오전 용산역에서는 아침 6시 50분 수원역 에서는 7시 23분에 출발해서 여수에는 12시 26분에 도착한다. 나처럼 12시 이전, 점심시간 이전에 여수에 도착하고 싶은 사람은 기차를 탈 수가 없다. 게다가 여수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는 오후 3시 15분이 막차다. 기차로 왕복한다면 여수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실 고속버스에 비해 기차가 시간이 덜 걸리는 것도 아니고 요금은 오히려 더 비싼 편이다. 직행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쉬는 역이 많기도 하다. 자주 쉬면 그만큼 승객의 몸에 충격이 미친다. 운행시간대를 봐도 심야버스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고속버스보다 친환경적인 기차

기차가 고속버스 정도의 서비스만 제공해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선호하지 않을까. 특히 장거리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기차가 유리하다. 버스보다는 차체의 진동을 덜 느끼기 때문에 피로도가 덜하고,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의 호흡할 때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기차가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해도 기차가 버스보다는 월등히 유리하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의하면 "대기오염의 총비용은 철도가 도로의 1/40 수준이며, 동일한 수송량에 따른 에너지소비도 도로의 1/16수준에 불과" 하다고 한다. 석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대비면 단연코 기차가 우월한 교통 및 수송수단일 수밖에 없다.

또 고속도로에 상시적으로 차있는 배기가스와 전국 곳곳으로 뻗친 도로망에 방출되는 배기가스, 그에 따른 대기오염과 뿌연 하늘을 생각하면 승용차나 버스보다는 기차가 훨씬 바람직한 운송수단이다.

도로 위주의 교통정책…늘어나는 자동차

▲ 정체 현상을 빚고 있는 고속도로. 자동차와 도로 중심의 교통정책에 대해 돌아볼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그런데도 나는 여수를 갈 때면 번번이 고속버스를 탄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왜 고속버스가 더 편리할까. 왜 기차가 더 불편할까. 어느 순간엔가 이런 의문이 들면서 나는 우리 교통정책이 철도보다는 도로교통 위주로 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건설된 수많은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보면 그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모자라서 새로운 도로가 또 건설되고 있고. 앞으로도 건설될 예정이다. 산과 들과 논밭이 수도 없이 아스팔트길로 변해왔고 그 위로 차가 다니면서 배기가스 방출량은 늘어만 간다. 국제 원유가가 뜀박질을 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자동차에 의존하는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오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손익이 환히 드러나는데도 그동안 왜 교통정책이 도로교통에 치중되고 이에 대해 큰 이의 제기가 없었을까. 만일 철도 교통편에 더 무게를 두어 기차 이용이 훨씬 편리하게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이나 대기 오염도, 국토 전체의 도로점유 비율은 지금과 상당히 다른 양상일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동차 위주의 미국, 철도 위주의 유럽…한국의 선택은?

나는 그동안 지냈던 외국의 예를 떠올려본다. 북미 지역은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다. 그러나 인구가 조밀한 유럽은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잘 연결이 되어있어 근거리, 원거리 할 것 없이 기차로 이동하는 편이 훨씬 쾌적하고 안락하다.

한국에서도 교통편으로 기차를 이용하기 원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기차를 탈 수가 없다고 한다.

"도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철도는 건설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속철도는 일반인이 이용하기에 너무 비싸다. 가장 소통이 잘되는 것이 열차인데 주말에는 열차를 이용하기가 너무 어렵다. 대한민국철도는 공급부족 수요초과 상태 장거리 이동이 가장 많은 주말에 매진으로 거의 이용이 불가능하다."
한 시민의 주장이다.

"도로 늘려봤자 자동차 증가 못 따라잡아"…"버스 대신 기차를 타자"

역설이지만 도로 위주의 교통정책 아래에서는 도로를 아무리 건설해도 자동차의 증가를 따라잡을 수 없다. 교통편이 자동차에 유리한 구조가 되어 너도나도 자동차를 몰고 나오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 도로정체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도로정체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길이 기차를 타는 일이다. 그런데 표 매진으로 기차를 탈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상상을 해본다. 기차역에 가면 손쉽게 표를 살 수 있고 그리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면. 장거리인 경우는 주요 역 두세 군데만 서고 갈 수 있다면. 기차표 값이 버스보다 저렴하다면.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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