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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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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청계산이여, 안녕

[한국에서 살아보니] "'철조망 능선길'도 힘들다"

오랜만에 청계산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굴다리 시장을 거쳐 청계산 입구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로인데다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시장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이제 산으로 향한다는 조금은 과장된 그러나 그럴듯한 기분을 맛보는 것이다.

그런데 재래시장이 끝나고 길이 오르막이 되면서 조금씩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쏴 하는 집단적인 소리다. 청량한 물소리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또 하나의 굴다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소음이 공격해온다. 주위는 푸르고 사람도 별로 없지만 바로 옆을 지나는 고속도로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무서운 괴물처럼 덮치는 것이다.

예전에 도심의 큰 도로변에서 살 때, 나는 소음을 빨아들이는 스펀지 공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공상을 했었다. 물리나 공학에 캄캄한 내가 도서관에서 자료도 찾아봤다. 그만큼 소음이 무서웠다. 그런데 지금 청계산 입구에서는 그 보다 더 큰 소음이 쏴아 하고 온 몸을 덮친다. 계속 뒤에서 덮치는 소음 속에서 산을 오르려니 몸 어딘가가 아프려고 한다. 전에는 못 느꼈지만 나이가 드니 이제는 내 몸이 금세 반응을 한다.

나는 문득 거기에 서있는 나무와 풀들이 걱정되었다. 식물도 생명이니 느낌이 있을 텐데 어쩌나. 그래도 살아야겠지. 그래서 그런지 새로 움이 터서 올라온 손가락만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악스럽게 번식을 하려는 것 같다. 생존 조건이 나빠지면 발악이라도 하듯 더 무성해지고 더 씨를 퍼뜨린다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안쓰럽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한참 올라가니 소음은 조금씩 멀어진다. 그런데 이제 거대한 철탑이 두 개나 버티고 서있다. 철탑 끝을 보니 송전선이 얼기설기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등산을 한답시고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선 밑을 올라온 것이다. 봄이라 온 산이 신록으로 무성한데 철탑을 세운 자리는 휑덩그레 깎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계속 오르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뛰어가는 사람도 있다. 요새는 남녀노소 누구나 건강을 위해서 산을 오른다. 산이 아무래도 공공 헬스장 같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니 길도 무척 넓어져서 산길 같지 않다. 어느 부분은 밧줄을 묶어놓았다. 이 공공 헬스장을 누구라도 쉽게 이용하도록 하는 배려다. 계단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단이 싫어서 계단 옆으로 다닌다. 흙이 떨어져 내리면서 길이 새로 나있다. 발 폭이 맞지 않아서 계속 오른발 혹은 왼발로만 올라가야 하는 계단은 누구나 싫어할 것이다.

할아버지라고 하면 섭섭해 할 어떤 중년 아저씨의 주머니 속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작은 기계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왜 귀에 거슬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나운서가 전하는 뉴스도 도무지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산에까지 와서 그런 거 듣고 싶지 않거든요. 듣고 싶으면 아저씨만 들으세요.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꾹꾹 참는다. 저 아래 고속도로 소음도 어쩌지 못하고 참았는데 이 아저씨한테 그럴 것은 없지 하고 꾹꾹 참으면서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발걸음이 예전 같으면 휙 지나쳐 갈 텐데, 그 아저씨나 나나 어쩌면 오르는 속도가 그리도 같은지 라디오 소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탑이 산 곳곳에 세워져 있다. ⓒ김영희

벤치가 있고 여기 저기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서니 다행히 아저씨가 멈춰 선다. 이때다 하고 나는 쉬지도 않고 얼른 길을 재촉했다. 이제야 소음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구나 하고 몇 걸음 가자, 어라 이번에는 앞쪽 나무 그늘, 사람들이 딱 쉬기 좋은 곳에 판이 벌어져 있다. 라면 2000원. 막걸리, 소주…. 그건 좋은데 그 산상 가게에서 뽕짝 소리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기계에서 노래가 나온다. 남들은 노느라 산에 오르는데 장사를 하는 사람의 심정, 이해한다. 손님을 끌려면 노래도 있어야겠지. 십분 이해한다. 에라, 저 고속도로에서 나는 거대한 소음도 참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는 째째한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지. 뛰다시피 가게 앞을 지나간다.
▲ 산기슭에 좌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김영희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옆에는 철조망이, 휴전선에 쳐진 것 같은 철조망이 계속 이어진다. 하마하마 하고 걸어가 봐도 능선 절반을 뚝 잡아먹은 철조망은 끝이 없다. 한참을 가자 철조망에 달랑 팻말 하나가 붙어있다. 바로 전 달 서울대공원 측에서 철조망을 쳤다는 것이다. 청계산이 서울 대공원의 사유재산인가.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있는 철조망도 점점 걷어내는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없는 철조망도 새로 치는 철조망 전성시대가 된 모양이다.
▲ 능선 절반을 뚝 잡아먹은 철조망. ⓒ김영희
▲ 없던 철조망이 새로 생겨났다. ⓒ김영희
내가 그날 청계산에 오른 것은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지나갔던 길을 다시 가보고 싶어서였다. 사람들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그 길에 들어서면 흘러내리는 물길이며 늘어져 있는 해묵은 가지들이 작은 원시림에라도 들어선 느낌을 주었다. 청계산이 아니라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온 것 같았다. 원래의 청계산 모습인지도 몰랐다. 이제 아이들은 다 커서 독립을 했지만 때 묻지 않은 그곳에 우리 가족이 함께 걸었던 추억이 서려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가보고 싶은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그쪽으로 들어서는 길을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청계산은 사라져 버렸다. 아마 당분간 청계산을 오를 일이 없을 것 같다. 안녕 청계산.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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