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가게 주인은 얼굴이 검고 똥똥해서 좀 부은 것 같은 보이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였다. 그런데 모종을 사려고 하니 친절하기는커녕 여간 짜증을 내는 게 아니었다.
채소에 대해서 무식한 내가 무슨 모종인지 물어보면 마지못해서 대꾸를 했다. 사려면 빨리 사고 말려면 말라는 투였다. 내가 앞서 생선가게에서 산, 굴이 든 봉지를 들고 있자 행여나 모종이라도 넣었을까봐 검사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모종을 사야 할지, 몇 개를 사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어 모종판을 들여다보면서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고추며 다른 채소 모종은 대개 세 개에 천원이고 상치는 네 개에 천원이었다. 나는 고추, 상치,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모종들을 두 개, 세 개, 여섯 개 하는 식으로 조금씩 샀다. 많이 사도 심을 데가 없는 까닭이다.
▲ 굴다리 시장. ⓒ김영희 |
나는 모종을 들고 걸어오면서 갑자기 무엇이 저 아주머니를 저렇게 피곤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점심때인데, 오후도 아닌데 벌써 피곤에 절어서 손님한테 짜증을 내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닐까. 쉬어야 할 사람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오는데 이번에는 채소가게 앞 땅바닥에 주저앉아 방울토마토 상자를 열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큰 종이박스에 담긴 방울토마토를 작은 플라스틱 곽에 나누어 담기 시작했다.
한 곽을 사면서 얼굴을 쳐다보니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방울토마토 나누어 담는 거야 별 힘든 일도 아닐 텐데 저렇게 피곤해 할까 나는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꼭두새벽 경매시장에서부터 계속 일을 한 것이 아닌지 몰랐다. 지금쯤 쉬어야 할 시간에 저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랐다.
나는 그동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장의 장사들이 이렇게 피곤해 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시장에서는 피곤해 하는 얼굴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세계 최장이라는 통계가 있다. 덕분에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한국의 상위 몇 퍼센트는 그 생활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 상위 그룹에 못지않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피로에 시달리며 산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 "사람이 소중한 일터" - "소주 한 병 들고, 찾아 오세요" ① 학교 급식 조리원 "지옥이죠. 그래도 이 일이 꼭 마약 같은 걸요" ②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노가다, CG 작업자 ③ 방송사 VJ들 "우리는 언제까지 '걔네들'인가요?" ④ 4대보험도 적용 못 받는 '자랑스러운 얼굴'? - 독자의 목소리 ① "우리 아들은 노예가 아니다" ② 외국인 동료가 한국 회사에서 놀란 이유 - "야근을 줄이자" ① "'순진하면 사회생활 못 한다'는 사회가 정상인가" |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 "노는 게 공부다" ☞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 인기 높은 헌 집 ☞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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