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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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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사람들

[한국에서 살아보니] "너무 오래 일한다"

봄이 되자 상치며 고추 같은 채소 모종을 살 생각으로 조바심이 났다. 행여 때가 늦지 않을까. 절기도 모르고 농사의 농자도 모르면서 한번 심어볼 욕심을 낸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과천에서는 굴다리 시장에 가면 모종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몇 번 허탕을 친 끝에 드디어 굴다리 시장에 모종이 나와 있는 것을 봤다.

모종가게 주인은 얼굴이 검고 똥똥해서 좀 부은 것 같은 보이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였다. 그런데 모종을 사려고 하니 친절하기는커녕 여간 짜증을 내는 게 아니었다.

채소에 대해서 무식한 내가 무슨 모종인지 물어보면 마지못해서 대꾸를 했다. 사려면 빨리 사고 말려면 말라는 투였다. 내가 앞서 생선가게에서 산, 굴이 든 봉지를 들고 있자 행여나 모종이라도 넣었을까봐 검사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모종을 사야 할지, 몇 개를 사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어 모종판을 들여다보면서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고추며 다른 채소 모종은 대개 세 개에 천원이고 상치는 네 개에 천원이었다. 나는 고추, 상치,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모종들을 두 개, 세 개, 여섯 개 하는 식으로 조금씩 샀다. 많이 사도 심을 데가 없는 까닭이다.

▲ 굴다리 시장. ⓒ김영희
아주머니는 마땅치 않은 기색으로 짜증을 낸다. 큰돈은 아니지만 계산도 틀리게 해서 싱갱이를 했다. "왜 이렇게 짜증을 내세요?" 마침내 내가 한마디 했다. 아주머니는 금세, "내가 피곤해서…"라고 꺼지는 소리로 말하고는 얼른 가게 의자에 가서 주저앉았다.

나는 모종을 들고 걸어오면서 갑자기 무엇이 저 아주머니를 저렇게 피곤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점심때인데, 오후도 아닌데 벌써 피곤에 절어서 손님한테 짜증을 내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닐까. 쉬어야 할 사람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오는데 이번에는 채소가게 앞 땅바닥에 주저앉아 방울토마토 상자를 열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큰 종이박스에 담긴 방울토마토를 작은 플라스틱 곽에 나누어 담기 시작했다.

한 곽을 사면서 얼굴을 쳐다보니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방울토마토 나누어 담는 거야 별 힘든 일도 아닐 텐데 저렇게 피곤해 할까 나는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꼭두새벽 경매시장에서부터 계속 일을 한 것이 아닌지 몰랐다. 지금쯤 쉬어야 할 시간에 저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랐다.

나는 그동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장의 장사들이 이렇게 피곤해 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시장에서는 피곤해 하는 얼굴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세계 최장이라는 통계가 있다. 덕분에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한국의 상위 몇 퍼센트는 그 생활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 상위 그룹에 못지않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피로에 시달리며 산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 "사람이 소중한 일터"

- "소주 한 병 들고, 찾아 오세요"

학교 급식 조리원 "지옥이죠. 그래도 이 일이 꼭 마약 같은 걸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노가다, CG 작업자
방송사 VJ들 "우리는 언제까지 '걔네들'인가요?"
4대보험도 적용 못 받는 '자랑스러운 얼굴'?

- 독자의 목소리

"우리 아들은 노예가 아니다"
외국인 동료가 한국 회사에서 놀란 이유

- "야근을 줄이자"

"'순진하면 사회생활 못 한다'는 사회가 정상인가"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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