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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은 실업자는 다 모여라"

[권은정의 'Social Job'] 실업극복인천본부 양재덕 본부장

<프레시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큰 관심을 모으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나은 모습을 찾는 새로운 인터뷰 연재를 마련한다.

전문 인터뷰어 권은정 씨가 직접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이 연재는 총 2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소장 이영환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 인적 자원 개발 교육과 사회적 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성공회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이다. (☞사회적기업연구센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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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극복인천본부 양재덕 본부장. ⓒ프레시안

인천시 주안동에 있는 실업극복인천본부가 몇 달 전 이사를 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새로 공간을 마련해 나갔다.

손 봐야할 데가 많은지 망치소리가 들리고 사무실 구석에는 풀지 않은 상자와 짐짝들이 쟁여져 있었다. 그러나 어수선한 환경에 전혀 아랑곳 않는 듯 너덧 명의 직원은 그저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보였다. 실업, 자활, 근로…, 지난 10여년 세월동안 이들이 다뤄온 주제다. 깔끔하고 반듯하게 무엇을 정리하면서 해낼 여유가 없는 일들이다.

그런 일이 천직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양재덕 본부장을 만났다. 그는 실업극복인천본부를 시작부터 맡아왔다. 실업운동을 발판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세 가지 사회적 기업-다사랑 복지 간병 센터, 다사랑 방문 보육사, 사랑의 도시락-을 총괄하고 있기도 하다.

인천 실업운동의 대부

현재 진행되는 사업 중에 가장 강세를 보이는 사업은 가장 먼저 시작한 '다사랑 복지 간병 센터'다. 100명의 간병사가 활동하고 있는 다사랑 간병 사업은 이쪽 업계에서도 알아준다. 양 본부장이 해 온 실업운동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열매를 맺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다사랑 표' 하면 다들 알아주시지요. 저희 간병 서비스를 경험해보신 분들이 잘한다고, 좋다고, 하시지요. 정성을 다해서 하니까요. 하하하…."

양 본부장이 이렇게 자랑스럽고 유쾌하게 웃기까지 그가 들인 공력과 시간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를 인천 실업운동의 대부라고 부른다. 그가 인천 지역에 뿌리내린 지는 25년. 이곳에서 실업 사업에만 매달린 게 10년이다. IMF 터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실업대란이었지요. 하룻밤 자고나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전국적으로 각 지역마다 대책을 세웠다. 인천에 60개의 민간 시민단체가 모여서 만든 게 실업극복국민재단이다. 공동대표 14명 가운데 그가 실무총책임인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미 그전부터 40개의 연대 모임 대표를 맡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모금 운동을 벌여 8억여 원어치 쌀을 어려운 가정에 전달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내몰린 이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일자리를 다시 구해주는 게 양 본부장의 일이었다. 당장 굶어죽게 생긴 사람들이 그의 사무실문을 두드렸다. 그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일터를 잡아주기 위해 그는 밤낮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큰 공장 노동조합만 해도 이제는 노동3권이 보장되었지요. 그런데 IMF 때 제가 만난 사람들이 거의 취약계층 사람들이라 노동3권의 바깥에 있는 이들이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삶을 유지하면서 4대 보험, 근로기준법, 퇴직금 그런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사람들, 이들에 대한 대책이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었다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씨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운동→시민운동→실업운동

▲ 양재덕 본부장은 학창시절부터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민권운동에 자신을 바치겠다고 일찍부터 다짐했다. 그의 다짐은 노동운동, 시민운동, 실업운동으로 이어졌다. ⓒ프레시안
실업운동에 쏟은 시간이 10년이라지만 그는 그전부터 '운동'에 전력해왔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사람의 권리를 지켜내는 민권운동에 자신을 바치겠다고 일찍부터 다짐한 사람이다.

경기도 광주가 고향인 그는 남들이 다 좋다는 대학에서 역사학도로 다니다가 노동운동을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 구로공단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1984년 인천공단으로 옮겨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전까지는 노동운동도 숨어서 해야 했던 시절이 아닌가. 노동조합 결성, 노동3권, 위장 취업…, 노동운동은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자신이 운동에 투신한 동기를 그저 간략히 정리한다.

"제가 농촌 출신이고 또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항상 가난과 가난한 삶에 대해서 가슴으로부터 생각을 했지요. 이 문제를 영원한 숙제라고 생각하면서 고민해보기로 정리한 것이지요."

공장에서 들어가 한 10여 년 일하는 동안 생산라인에서부터 공무과(공장기술지원부서) 주임으로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는 한 공장에서 월급도 오르고 몸도 편해질 때가 되면 다른 공장의 일반노무직으로 옮겨갔다.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제일 힘든 생산노동자로 일할 때 그는 편했다. 조합을 만들고 근로기준법, 단체협약이 노동자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을 볼 때 할 일을 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양 본부장은 학창시절 함께 나섰던 친구들의 의지가 오늘날 노동조합을 민주화시키고 노동3권을 신장시키는데 상당히 기여했다고 확신한다. 이 사회를 한 발짝 전진 시키는데 힘을 보탰다고 판단한다. 노동운동의 외연을 넓혀 시민운동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실업운동하면서 실업자들 만나면 그 사람들이 다 노동자들이었잖아요. 제가 누구였습니까?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바닥에서 같이 일해 보았잖아요. 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도 맞아요. 체질인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상층부운동은 저한테 안 맞아요."

자생, 자활, 독립으로 가는 길

실업과 자활. 양 본부장만큼 이 바닥은 훤하게 꿰뚫어보는 이가 또 있을까 싶다. 그가 볼 때 새로이 제정된 사회적 기업 육성법은 어떤가?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 정책이 진일보한 것인가?

"지금은 실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IMF 이후 전국에 150~200개 단체가 지역마다 생겨서 취약계층을 돕는 운동을 해왔지요. 그때 정부에서 공공 근로를 시작했지요. 3개월 일하게 하고, 최소 60만 원 주면서 실업 탈출의 징검다리로 삼으라는 것이었는데,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이라는 비판이 일었지요. 그러자 나온 게 자활 근로라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건 1년 내지 3년 동안 취약계층 사람들이 자립하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였는데 이 또한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고, 투자에 비해 성과가 너무 없다는 사회적 지탄이 있었지요. 극복 대안으로 이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가 나왔는데 공공 근로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생각은 아직 안 듭니다.

다만 한 가지 장점은 처음부터 1년이라는 시간을 못 박아두고 성과가 있으면 지속한다는 것입니다. 배수진을 치고 한다는 게 근로자들에게 긴장감을 줘서 성과를 내는데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사회적 일자리는 자활 근로보다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자활은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하지만 사회적 일자리는 인건비만 지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이 지원이 끊기면 자립이 어려운 게 현실인데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이지요."

그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자생, 자활, 독립이라는 게 얼마나 취약한지 목격해온 사람이다. 그러니 설사 정부 지원 정책이 정말 제대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안심이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지금 진행 중인 간병 센터, 방문 보육사, 도시락 급식 사업에서 무엇보다 그들의 자립정신을 독려한다. 곧 자립을 앞 둔 간병사 교육 때마다 특히 양 본부장의 목청이 높아진다.

"여러분들 1년 내에 극복 못하면 다시 실업자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되지 않게 비상한 각오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요. 내용적으로는 거의 협박이지요. 다들 긴장이 되어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인건비 투자액의 70%의 성과를 올리거든요."

▲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자생, 자활, 독립은 쉽지 않다. 양재덕 본부장은 당장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자 노력한다. ⓒ프레시안

몸으로 뛰는 사업이 '최고'

현재 다사랑 간병 사업 내용에 포함된 재가 무료 간병을 실적으로 올린다면 100% 달성은 이미 넘어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사랑 간병 사업은 2007년 10월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2005년에 15명이 사회적 일자리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올해만 잘되면 자립이 가능합니다. 1단계 목표는 우선 100명 자립이고 최종 목표는 300명이 자립하는 것이지요. 간병 사업 하는 단체가 많지만 우리 성과가 제일 좋으니까 노동부에서 지원 숫자를 늘려주었어요. 올해 말에 지원이 중단되는데 그때까지 확실하게 교육에 전념해두려고요. 경쟁력 있게 하려면 품질 높은 노동력을 만들어야합니다. 지금 2층에 만들고 있는 교육관도 그것 때문입니다."

양 본부장은 간병 사업이 현재 법적인 기준에서 가지는 한계를 지적했다.

"노동부에서 하루 12시간 근로기준법 적용해서 하라고 해서 작년 초부터 그렇게 하는데 환자들이 싫어합니다. 자꾸 바뀌는 것을 안 좋아해요. 간병사들 쪽에서도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시스템을 선호해요. 24시간 체제로 일할 때는 우리가 성심껏 일하는 것을 다들 아니까 전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우릴 찾았는데, 근로기준법 적용하면서부터 주문이 줄어서 70명만 일을 나가게 되었어요."

현재 다사랑 간병은 1대1 간병이다. 처음부터 그 방식으로 해왔다. 앞으로 큰 병원과 간병 협약 사업을 맺어 공동간병제로 운영하길 기대하고 있다. 6명 환자당 1~2명의 간병사가 맡게 되면 한 병원당 50~60명의 간병인이 일할 수 있다. 그렇게 큰 병원 2개만 연결되면 완전 자립이 가능하다!

양 본부장이 갖고 있는 간병 사업의 청사진은 매우 구체적이기도 하다.

"간병사 개개인이 의학 지식에 관한한 전문가 수준을 갖추게 하고 서비스 교육도 완전히 몸에 배게 할 것입니다. 또 지압이나 기, 그런 특기를 하나씩 익히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지요. 승부를 걸려고 합니다. '역시 다사랑 표!' 하게 만들어야지요!"

양 본부장은 간병 사업의 최고 장점을 몸으로 뛰는 것으로 꼽는다. 초기 운영비, 교육비가 물론 든다. 그는 '일단 우리가 빚을 내서 한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벌어서 갚으면 된다'는 시스템이란다. 간병 사업에는 가운 제작 말고는 시설 투자비 같은 게 없다.

오리, 닭, 돼지…실패로부터 얻은 교훈

▲ 양재덕 본부장도 실패가 없었던 게 아니다.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은 '돈 들어가는 사업을 하지 말자', 바로 이것이다. ⓒ프레시안
'기본 투자가 없는 사업이 최고의 아이템!' 이라는 사실은 양 본부장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8년의 시간과 살던 집을 날린 후에 얻은 뼈아픈 교훈이다.

"IMF 지나고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사업을 했지요. 오리를 키워보자고 나선 건데요. 공공 근로로 50명이 참여했지요."

당시 음식물 분리 수거 사업은 그가 처음 나섰던 것이다. 다들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땅에 파묻었는데 환경오염이 심했다. 오리 먹이로 재활용 하면 환경 사업도 되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가 되겠다고 판단한 것. 산 밑에 땅을 빌려 오리농장을 만들어 오리새끼 1만5000마리를 키웠는데 완전 실패였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 수거, 운반에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야했고 냄새가 진동하니 민원이 끊이지 않아 벌금도 많이 물었다. 가장 힘든 점은 오리가 자꾸 죽는다는 것이었다. 영양도 부실한 먹이에다가 손길이 제대로 안 가니 하룻밤에 몇 백 마리가 죽어나갔다.

결국 오리는 접고 닭을 키워보자고 했는데 이도 역시 실패였다. 닭은 오리보다 먹이를 더 많이 먹어치운다고 해서 좀 나으려니 했는데, 엄청난 똥을 누는 바람에 그 처리가 문제였다. 닭은 항생제에 사료 값이 엄청났지만 매일 산란율이 80%도 못 미쳤다.

또 무엇보다 새로 생긴 법이 문제였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사료로 재활용 처리 사업을 하려면 마땅한 기계를 갖춰야했다. 그 기계가 무지 비쌌다. 몇억 원씩 하니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성능이 엉망이었다.

빚은 늘고 오리와 닭은 죽어나갔다. 사업을 중단하면 다들 다시 실업자가 될게 뻔 한 노릇이니 어떻게든 버텨 보려 애썼다. 그런데 은행 대출 이자도 무섭게 나갔다. 양 본부장은 살던 아파트를 팔아 일단 빚을 갚았다. 그의 실패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돼지가 괜찮을 것 같아서 양돈 사업을 했어요. 빚 갚으려고 다시 빚내서했지요. 900마리 키웠는데 계산상으로는 1마리당 10만 원 이익이 나거든요. 근데 600 마리가 죽더라고요. 하, 참…, 내가 하면 안 되는 것을 했구나 싶더군요."

돼지에서 실패를 한 뒤 완전히 정리하고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하는데 8년의 세월이 들었다. 그동안 양 본부장은 제대로 잠을 자본적이 없다고 한다. 오리, 닭, 돼지…, 자신이 발 뻗고 잠을 자는 사이 죽어나갈 그 생물들을 생각하면 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농장에서 새벽까지 동물들을 돌봤다. 그래도 죽어나갔지만.

그래서 그가 얻은 교훈이다.

'돈 들어가는 사업은 시민운동이 하면 안 된다. 시설비 많이 들어가는 업종을 택하면 자립도 어렵고 버티기도 힘들다. 시민운동으로는 간병 사업처럼 투자가 안 들어가는 쪽으로 하는 게 현명하다.

▲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벌어서 나눠 쓸 줄 아는 마음이 이 시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프레시안

"벌어서 나눠 쓸 줄 알아야지"

양 본부장은 오랜 세월 동안 실업운동에 전념해왔다. 일자리 잃은 사람들에게는 취업을 알선해주고 맥 놓고 있는 이들에게 자활 의지를 돋워주었다. 실업운동의 대부는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극복 운동을 주창한다.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벌어서 나눠 쓸 줄 아는 마음이 이 시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같이 사는 인성 계발, 우리 사회 인식이 그렇게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일하면서 공동체 정신을 알고 그 안에서 봉사하고 나눌 때 진정한 극복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한 사람이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곧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의미라는 게 양 본부장의 믿음이다.

'지루하지 않게 바쁘게 살아왔다'는 그가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지리산 종주할 때다. 한번 씩 길게 산을 걷고 오면 막혔던 머리도 뚫리고 마음에 두었던 온갖 골칫거리도 사라진다. 올해 예순이 넘었지만 자기 살 궁리는 전혀 해본 적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집을 팔고 난 뒤 사정을 물어보았다.

"하하하! 집사람이 일을 하는 덕분에 지금 다시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사인 부인은 평생 남편이 십 원 한 장 보태지 않아도 묵묵히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좋은 일 하겠다는 남편을 이해해주는 착한 아내가 그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껏 살아온 모습과 방식에 대해서 한 번도 뒤돌아본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성과? 그런 질문은 필요 없다. 문제가 닥치면 풀어 나갈 뿐이다.

▲ 양재덕 본부장은 실업자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의 꿈은 이뤄질까? ⓒ프레시안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계란 한 상자를 내민다. 충북음성 양계장에서 나온 '다사랑 유정란'이다. 저런, 또 닭? 그가 웃으며 안심하란다. 닭 1000마리 중에 매일 900개 알이 나오니 성공한 사업이라고 한다. 달걀을 만져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의 닭들이 죽지 않고 제대로 알을 낳아주어 안심되었고, 앞으로도 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먹고 살길을 만들어 줄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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