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양성'과 '자율성', '선택권' 등과 같은 긍정적인 개념이 평등과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오히려 뒤처진 아이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는 평등교육 속에서 '다양성'과 '자율성'이 더 잘 보장될 수 있다.
평등이 꼭 획일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는 서열화된 교육이 더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성적이라는 척도만 획일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획일적이지 않은 평등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 교육이다. 학교와 교육과정에 대해 학생들이 자율적인 선택권을 갖고 있지만, 학교 서열화 등의 부작용이 거의 생기기 않는다. '수직적 서열화'가 아닌 '수평적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비결은 '차별'이다. 인기가 떨어지는 학교에 대해 차별적인 지원을 해서 아이들에게 매력있는 곳으로 바꿔내는 것이다. 뒤처진 곳에 지원을 집중하는 '역차별'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게 피란드 교육의 특징이다. 모든 학교에 똑같이 지원하는 기계적 평등은 결국 서열화로 이어져서, 진정한 평등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게 핀란드 교육자들의 생각이다. (☞관련 기사: "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다음은 유연한 교육과정 속에서도, 뒤처진 아이들을 잘 배려하는 핀란드의 한 고등학교를 둘러본 기록이다. <편집자>
핀란드 수도 헬싱키 근처에 있는 에스포(Espoo)에 위치한 타피올라 고등학교는 우리로 말하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이다. 핀란드의 고등학교는 스웨덴의 통합 학교와는 달리 인문 교육을 위주로 하는 학교와 직업 교육을 위주로 하는 학교로 분화되어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5개의 학교를 우선순위에 따라 지망하고, 경쟁이 발생하는 경우 성적에 의해 선발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아이들마다 달라서 심한 경쟁이 생기는 일은 드물다. 학교 선택 기준은 주로 학교의 특성과 학교 수준이라고 한다.
학교의 특성은 선택 과정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이 학교의 경우 드라마와 미디어학을 중점적으로 개설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의무적 과정과 선택적 과정이 있다.
의무적 과정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핀란드어, 스웨덴어, 영어는 필수다. 여기에 또 하나의 언어를 선택할 수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언어에 대한 강조다.
핀란드의 학교에서도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 의욕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남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여학생보다 못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핀란드의 애니메이션은 별도의 더빙을 하지 않고 영어 그대로 틀어 주고 자막을 보여 줌으로써 읽기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이 학교에도 학년제가 없다. 개인의 학습 속도에 따라 2년 반 만에 졸업하기도 하고 4년 만에 졸업하기도 한다. 이것은 스웨덴과 같다. 교과별로 이동하면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급 개념도 없다. 다만 학습 계획을 도와주는 담임 교사가 학생과 상담을 통해 지도한다.
수업 시간은 75분이다. 이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45분을 했는데 좀 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75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한 학년도는 5분기로 이루어지는데 각 분기는 7주다. 7주의 마지막 주는 평가 주간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일종의 수능 시험(matriculation)을 본다. 연간 두 번 치러지는데 어느 과목을 언제 시험 칠 것인가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고등학교는 5개 정도의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선택할 수 있는데 경쟁이 생길 경우 성적이 중요한 선발 기준이 된다.
언뜻 생각하면 고입 단계에서 경쟁이 발생함으로 인해 성적 부풀리기와 같은 현상도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절대 평가지만 세부적인 성적 부여 기준이 정밀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가 임의로 부풀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성적을 부여할 때 2명의 교사가 교차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불일치하는 경우에는 경력 교사의 판단에 따른다는 원칙도 있다고 한다.
▲ 수업에 뒤쳐진 아이들을 위한 별도 수업 장면. 많은 핀란드 교사들은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 |
이 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 의회(Youth Counsil) 의장을 하고 있는 학생(Hanna Jarvsalo)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핀란드는 2006년에 청소년법을 제정하여 지방 자치 단체가 청소년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시행할 경우 청소년의 의견을 들을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12세부터 26세까지의 청소년들이 10명~40명 정도의 대표를 선출해서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이 글은 <좋은교사> 2009년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핀란드 학교 탐방] <1> 꼴찌 없는 교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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