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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의 악몽'에 이은 '뉴질랜드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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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의 악몽'에 이은 '뉴질랜드의 악몽'

[기고] 뉴질랜드式 '농업 개혁'은 가지 말아야 할 길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에 오고 싶었다"는 미국을 작년 4월에 방문했다.

그 방문길에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하는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박수를 받으면서 전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훌륭한 운전사라는 칭찬을 부시로부터 받은 미국 방문 후에는 "질 좋은 쇠고기를 싼 값에 공급하게 되었다"며 한우 값 폭락으로 시름에 잠긴 농민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불안해하는 국민을 경악실색케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안 된 지난 3월초 뉴질랜드를 방문한 대통령은 "뉴질랜드는 농업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통해 개혁을 이루었고, 보조금 지급 없이도 경쟁력 있는 농업혁명을 이룩했다"며 "정부 보조금을 없애고 자율적인 경쟁력을 살려내도록"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을 넥타이 푼 농촌 개혁 운동가로 변신하도록 채근했다.

▲ 최근 뉴질랜드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뉴질랜드식 농업 개혁을 강하게 주문하면서 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FTA) 개시를 선언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의 길은 대한민국이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이다. ⓒAP=뉴시스

뉴질랜드식 농업 개혁의 실체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로저노믹스(Rogernomics)로 불려졌는데, 그 기본 이념은 '자유주의와 시장원리를 중시한 산업 구조 개혁'과 '정부 부문의 축소에 의한 재정 구조 개혁'이다. 구체적인 달성 수단으로는 규제 개혁, 세제 개혁, 민영화 등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수행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은 '뉴질랜드의 실험'이라고까지 불렸다.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모순은 이미 의료, 사회, 교육, 과학 연구 부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지 오래다. 복지국가 뉴질랜드라는 말은 이미 사라졌다. 의료 부분의 경우, 이윤 제일주의로 전환되어 입원비가 급등했다. 집없는 사람이 급증하고, 세제 개혁으로 빈부차가 확대되었다.

심지어 소액 저축을 하는 저소득층은 은행 계좌 관리비를 내야할 정도로 삶이 팍팍해졌다. 그리고 개혁에 의해 철도, 우체국, 은행, 전화, 국유항공 등이 외국자본에게 값싸게 불하되었다. 여러 국공유 자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식을 소유하는 기업으로 재편되어 이윤창출이 최대의 목적으로 되었다.

그러면서 기업 임원의 급여는 크게 올랐다. 과학 연구 분야에서도 자유화, 경쟁, 수익자 부담이 강조되면서 국립연구소는 축소 재편되거나 폐지돼, 기초연구는 궤멸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 뉴질랜드의 현실이고, 이런 현실은 규제 완화와 자본 영역의 확대를 잣대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당연히 성공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뉴질랜드는 여러 가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농업과 관련해서 주목을 하게 된 계기는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가트 제8차 다자 간 협상)이 시작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는 당시 협상에서 수출 보조금을 사용하지 않는 13개의 농산물 수출국을 일컫는 케언즈그룹의 일원으로 보조금이 붙는 농산물의 수출 금지와 국내 지지의 폐지를 요구했다.

뉴질랜드는 호주와 함께 영연방 국가로 이른바 '영국의 해외 농장', '영국의 목장'으로 일컬어져 왔다. 1882년 세계 최초로 냉장 선박을 이용하여 육류와 버터를 수출할 정도로 뉴질랜드의 농업은 태생적으로 해외 시장 지향형이었다. 뉴질랜드는 영국으로 수출할 목적으로 밀, 양모, 쇠고기, 양고기 등을 주로 생산해왔는데, 1973년 영국의 유럽공동체(EC) 가맹과 공통농업정책(CAP)의 역내 우선 원칙으로 주요한 농산물 수출 시장을 상실했다.

이런 가운데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농업을 비껴가지 않았다. '농산물 가격 지지 제도의 폐지(84년)' '농업에 대한 세금 우대 조치의 폐지(85년)'등이 이루어졌고, 호주와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을 더욱 심화시킨 CER협정을 1993년에 체결하였다. 이러한 2개국 간 지역 통합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 농업 개혁의 결과는 농업 부문에 대한 해외자본의 직접투자 증대와 카길, 존 디어, 몬샌토와 같은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 강화로 나타났다. 이는 뉴질랜드의 시장 지향형 개혁이 세율 인하나 규제 완화를 통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이윤축적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인수합병 기회가 증대했고, 그 결과 농식품관련 상위 4대 기업의 시장 집중률은 미국의 집중률보다도 훨씬 높다. 예를 들어 비스켓 제조는 95%, 맥주 제조는 80%, 전분 가공은 80%, 마아가린 제조와 코코아 제조는 65% 등으로 매우 높다. 식품가공부문에서는 카길, 유니레버, 네슬레 등이, 농업용 트랙터 제조 부문은 미국의 존 디어, 인터내셔널사가, 농약 제조 부문에서는 몬샌토와 듀퐁이 뉴질랜드의 농업을 지배하고 있는 대표적인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이다.

이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농산물 수출을 확대하고자 뉴질랜드는 마켓팅 보드(marketing board : 국가적으로 수출을 독점하는 판매하는 조직) 및 공사에 의한 시장 관리를 농업 정책의 큰 축으로 삼고 있다. '보조금 없는 수출'이라는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자유로운 시장'은 결코 아니다.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 농업 개혁은 농업 부문에 대한 자본 지배의 확대와 이를 위한 규제 완화였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어떤 나라보다도 과감하고 신속하게 그것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뉴질랜드는 방패막이에 불과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도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농업 개혁을 추진한 뉴질랜드가 한국 농업 개혁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우리의 농업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나라가 갑자기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뉴질랜드는 농업 자유화와 농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개혁을 이루었고, 보조금 지급 없이도 경쟁력 있는 농업혁명을 이룩했다"는 대통령의 말과 1월 29일에 정부가 발표한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할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농정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기획재정부장관 재임 시절 "농업이란 말은 쓰지 말라. 농민문제는 복지로 풀고, 농기업· 농산업으로 가야한다"고 한 말도 그렇고, 정운천 전 농식품부장관이 "대규모 농식품복합체를 육성해서 농업을 고도화하겠다"는 말도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무엇보다 최근에는 이렇게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던 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뉴질랜드 방문을 계기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농업개혁에 매진해 온 뉴질랜드조차도 '지속가능한 영농기금(Sustainable Farming Fund)'을 통하여 농림업의 수익성 향상, 지역사회의 안전성 강화, 환경보전의 강화 등을 꾀함으로써 농촌· 산촌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은 빠뜨리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농림수산식품부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2012년까지 '기업형 주업농 20만호'와 '법인형 경영체 1만 개'를 만들어서 한국 농업 체질을 선진국형으로 만들고, 농식품 수출을 현재의 44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문민정부의 '15만호 전업농 육성'과 참여정부의 '20만호 정예 농업 인력 육성'이라는 이름을 '기업형 주업농 20만호 육성'으로 바꾼 것이다.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역사가 보여주고 있음에 강도가 더욱 강화된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경쟁력은 규모화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규모화된 기업농의 경우 경기 상황의 변동에 취약해서 위기 상황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더 높은데도, 기업형 주업농과 농업법인을 통하여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만 강할 뿐 무너지고 있는 식량 자급 기반에 대한 고민은 없다. 한해 농산물 수입액은 수출액의 약 5배에 달하는 2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량자급률이 25%를 겨우 넘어서는 국가에서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에 대한 고민없이 허울뿐인 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의 더 큰 문제는 농업회사법인의 민간자본제한 폐지와 비농업인의 축산업 진출 허용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축산농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대기업의 농업 분야 진출이 용이하도록 75% 이하로 묶었던 '농업회사법인'의 비농업인 지분 한도를 없앴다. 또한 그동안 대기업의 진출을 막았던 양돈업, 양계업 관련 규제도 풀고, 농업용 시설 투자금의 세액공제, 법인세 감면, 부동산 취·등록세 면제 등 세제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당연히 농지취득을 통해 투기적 이익을 얻으려는 도시민들이 농업회사법인의 이름으로 난개발에 앞장설 것이고, 아울러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허용하여 농지가 대자본에 집중되어 농민은 노동자화거나 농업에서 쫓겨나게 될 소지가 크다.

농식품부는 세계와 경쟁하는 강한 농식품 기업의 육성과 농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내놓은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오직 기업과 자본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고, 농민은 찾아볼 수 없다. 농민이 철저하게 소외된 강고한 신자유주의 농정을 펼쳐내면서 농업 안팎에서 받게 될 거센 저항의 방패막이로 등장한 것이 바로 뉴질랜드의 농정 개혁이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의 뉴질랜드의 농정은 우리의 농정이 답습할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려는 뉴질랜드의 고민과 가능하면 더 많은 농산물을 자급해야 할 우리나라의 고민은 전혀 성질이 다르기에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뉴질랜드 방문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농업 개혁 추진 테스크포스(TF)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테스크포스가 제시하는 이명박 정부 농정 방향이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과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 농업 개혁을 바탕으로 굳어진다면 우리 국민에게 그 농업 개혁안은 역사상 가장 질 나쁜 '농업 개악안'으로, 그래서 '캠프 데이비드의 악몽'과 함께 '뉴질랜드의 악몽'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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