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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해명치곤 너무 궁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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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해명치곤 너무 궁색하다

[김종배의 it] 신영철, '사법행정' 포장지로 '양심'을 가리겠다고?

궁색하다. 현직 대법관의 해명치고는 논리가 너무 박약하다.

신영철 대법관이 그랬다. 자신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때 단독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에 대해 "법원장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행정업무를 한 것"이라고 했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것은 100% 판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고 "법관이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의미는 주관적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말만 놓고 보면 옳다. 문제가 터진 후에 진화 차원에서 내놓은 해명만 놓고 보면 그렇다.

법관이 주관에 치우쳐 100% 마음대로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관의 양심'과는 거리가 멀다. 신영철 대법관의 주장대로 가급적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증거 조사를 하는 건 법관의 자유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연합뉴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런 해명이 듣는 이를 더 큰 의혹 구덩이로 밀어넣는다.

신영철 대법관의 주장대로라면 그가 단독판사들에게 요구한 건 '원칙'이다. 누구나 다 아는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다. 이메일에 '대내외비' '친전'이라고 달아 '대외비'는 물론 '대내비'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함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신영철 대법관은 이에 대해 "그럼 법원 내부 업무 관련 사항을 공개로 하나"라고 반문했지만 신통치가 않다. 이런 반문은 '대외비'에만 해당하는 반쪽짜리 주장에 불과하다. '대내비'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은 이메일에서 "대법원장의 뜻"이라고 했다. "내외부(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라고도 했다.

이해할 수 없다. 신영철 대법관의 주장대로라면 그가 단독판사들에게 주문한 건 통상적인 사법행정에 불과한데 굳이 "대법원장의 뜻"과 "내외부의 여러 사람들"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일상 업무조차 제대로 집행하지 못해 더 높은 분의 권위를 빌려와야 했음을 실토하는 것 아닌가? 제얼굴에 침뱉기를 한 것 아닌가?

사정이 이렇다. 신영철 대법관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져보니 더 처참하다. 서울중앙지법원장 그리고 대법관의 막강한 권위와 위상에 견주면 옹색한 해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돌아가련다. 대법관의 위상을 스스로 갉아먹는 해명은 치우고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의 상황판단으로 돌아가련다.

전제가 잘못 됐다. 신영철 대법관이 주장한 '법관 양심의 객관적 기준'이 잘못 설정돼 있다.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 적용해야 하는 객관적 기준은 양형이나 증거 판단에 관한 것이다. 적용하려는 법 조항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위법 여부를 가리고 사법적 책임을 물을 때나 성립되는 기준이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된 건 그게 아니다. 집시법 야간옥외집회 금지조항이 위헌이냐 아니냐가 문제의 발단이었고 핵심이었다. 일부 단독판사들이 재판을 미룬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적용하려는 법 조항의 합헌성에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판사들의 문제의식이 옳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본질적인 문제는 당시에 판사들의 양심이 그렇게 울렸고 그 울림에 따라 재판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결코 사법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법원장이 행사하는 사법행정 지휘권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판사가 독립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재판권에 해당하는 문제다. 신영철 대법관은 바로 이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법 조항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판사들에게 법 조항을 일단 '합헌'으로 간주하고 판결을 내리라고 주문한 것이다. 법관의 양심에 채찍질을 가한 것이다.

다른 데서 드러난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은)1994년에도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진 사안"이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신영철 대법관은 이미 전제해 놓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집시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쓸데없는 짓' 또는 '소모적인 짓'으로 사실상 간주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신영철 대법관은 자신의 '판단'에 사법행정이란 포장지를 씌워 단독판사들의 '양심'을 가리려 했다. 이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바로 이런 본질이 생뚱맞은 해명을 난산한 것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를 위반한 소지가 다분한 행위를 덮으려고 앞뒤 안 재고 앞뒤 안 맞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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