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적이다. 우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직 강화특위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이석행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조합원에 대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후 민주노총이 보여준 태도이다. 피해자의 대리인인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성폭력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싸워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조·중·동에 의해 대서특필되면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며 사건을 입막음하려 피해자를 압박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의 발생과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최소한의 양식도 없고, 민주노조운동을 진행할 도덕적 근거마저 완전히 상실해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렸겠는가? 또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에게 성폭력 사건의 축소를 압박하고 경찰에 허위진술을 강요한 민주노총 임원과 피해자가 소속된 연맹 위원장 등 핵심간부의 총사퇴를 요구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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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충격적이고 한심한 것은 아직도 남아있다. 사태가 이같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중앙지도부는 5일과 6일 잇단 중앙집행위에서 성폭력 사건 후속대책과 조직 쇄신에 결론을 내리지 못 한 것이다. 즉, 일부 핵심간부들이 가해자의 행동이 개인 차원의 범죄로 임원진이 총사퇴할 필요는 없고, 대책 없는 사퇴가 오히려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 있다며 임원진의 총사퇴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에 허영구 등 민주노총 부위원장 5명이 "엄청난 부도덕한 문제를 안고서 조직을 지키는 것보다는 조직의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새로 출발하는 자세로 임하겠다"며 전격 사퇴했다. 이같이 사태가 일파만파 커가자 민주노총은 9일 있을 중집에서 마지못해 임원진 총사퇴를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도덕적으로 흠집은 날대로 난 뒤이다.
아니 이처럼 노동운동의 중앙지도부가 총사퇴를 통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김석기 서울 경찰청장에 대해 용산사태의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사태 수습을 위한 임원진 총사퇴 주장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을 몰아내기 위한 정파적 논리라고 치부하고 있는 민주노총 실세그룹의 의식구조이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5년에도 민주노총은 수석부위원장이 업자로부터 거액을 받은 비리사건이 터져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중앙지도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위원장은 이를 무시했다. 이에 사무국의 젊은 활동가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고 위원장 사퇴를 압박했다. 이에 위원장은 할 수 없이 사퇴를 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퇴를 하면서 조직을 살리기 위해 집단사표를 낸 사무국 활동가 중 이를 주도한 소위 '강경파'들을 선별해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민주노총 사무국에서 쫓아낸 것이다. 악덕 기업들이 노조탄압 때 쓰는 수법을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사무국 활동가들에게 그대로 써먹었으니 그 도덕적 타락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것인가?
물론 용산참사, MB악법 등 민주노총이 싸워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거나 자기혁신을 미루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노동운동을 비롯해 진보운동의 최대의 무기는 도덕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은 발본적인 자기혁신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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