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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8% 성장'은 이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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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 '8% 성장'은 이루겠지만…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2> 세계경제(하)

경제적 이윤 추구에 있어 무절제한 자유와 금융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음을 미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을 통해서도 똑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이라는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운용되던 영국 경제는 79년 대처가 집권하면서 한쪽 축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영국 경제는 런던의 시티(City)를 중심으로 한 금융업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타 유럽 국가에 비해 영국은 이번 금융위기에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이번 금융위기의 여파로 침체에 들어간 데 이어 미국경제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중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식고 있는 것은 한국경제 전망을 가장 어둡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김종인 전 의원은 올해 혁명 60주년, 개혁개방 30주년 등을 맞이하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사회적 긴장의 고조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8% 경제 성장을 달성하려 애쓸 것이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값싼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야만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8% 성장이 아주 어렵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중국이 올해 8%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수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중국에 수출용 중간재 등을 주로 수출하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에는 먹을거리를 의존하고, 일본에는 부품을 의존하고, 미국에는 금융시장을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결코 간단히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1월 21일 김종인 전 의원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유럽경제: 영국의 고통이 유난히 큰 이유는?

전성인 :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키우는 데 탐욕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관심을 유럽 쪽으로 한 번 돌려 보고 싶은데요, 유럽에서는 영국과 대륙국가들이 이번 위기에서 대비되는데, 영국 쪽 상황이 특히 더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이 특별히 더 탐욕이 과했나요. 물론 독일 경제가 많은 통제를 받고 국민성이 절제를 중시하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영국도 방종의 국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영국이 단순히 미국과의 긴밀성 때문에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인지, 금융이라는 특정산업을 특화한 결과로 위험에 노출된 것인지, 영국의 어려움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김종인 : 영국은 자본주의 최초 발상지이자,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고, 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가 탄생한 나라입니다. 시장에 의한 경제운용을 제대로 한 나라죠. 따라서 시장경제 운용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이 경제 위기를 심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 경제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국은 2차 대전 전까지 식민지를 통해 부를 창출했습니다. 남의 나라 것 가져다가 공짜로 먹고 산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다가 영국은 20세기 들어와 식민지를 많이 상실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부의 원천이 없어지니까 고통을 받았죠. 그래서 한때 영국이 유럽의 병자처럼 여겨졌죠.

그때까지 소위 보수당은 주로 고전적 자본주의 이론에 입각해 경제정책을 운용해왔습니다. 이어 노동당을 통해 2차 대전 후 복지정책인 '베버리지 플랜(Beveridge Plan)'이 실현되면서 두 가지가 혼합이 된 나라, 즉 사회안전망이 같이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영국입니다. 이런 영국이 70년대에 경제 상황이 이탈리아만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처가 79년 등장하게 됐고, 보수당의 기본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어 하이에크 같은 골수 자유주의로 돌아섰죠.

다른 한편 식민지로 먹고 살던 영국이 주요 산업으로 발전시킨 게 금융업이었습니다. 60년대 말에 이미 빅뱅을 통해 유로달러 마켓을 형성했어요. 그러다가 영국이 76년에 IMF 사태를 겪기도 했죠. 대처가 정권을 잡고 82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제조업은 그 규모가 매우 축소됐습니다. 런던의 시티만 계속 활황인 상황이 계속 됐는데, 영국은 GDP 부가가치 중에서 금융 창출 부가가치가 다른 유럽국가보다 훨씬 높아요. 그래서 이번 금융위기가 터지니 영국이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죠.

전성인 : 결국 골수 자유주의 노선과 금융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이런 경제위기의 이유가 된 것이군요. 우리나라도 요즘 신자유주의를 추종하고,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만든다는 말이 많이 있는데 영국의 고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독일 쪽은 어떻습니까?

독일, '미국 금융 메카니즘 추종'을 후회하다

김종인 : 이에 비해 독일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독일이 마치 사회주의 경제 운용하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내가 알기론 독일이 2차 대전 이후 시장경제를 가장 충실히 한 나라입니다. 독일은 1948년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시장경제를 채택했어요. 독일은 1880년대부터 비스마르크 총리가 정치적 이유에서 복지를 늘렸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하니까 그걸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근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회정책적 배려를 시작했어요. 이게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회이므로 2차 대전 이후 49년 독일연방공화국이 성립되고 경제체제를 소셜 마켓 이코노미(사회적 시장경제 체제, social market economy)로 정립했죠.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 잘못 전달돼서 사회주의처럼 생각하는데 여기서 얘기하는 소셜은 시장경제의 모순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막아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전성인: 공부가 모자라면 이상한 착각을 하게 되지요. 한 때 막스 베버(Max Weber)의 저작이 자본론의 저자인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작으로 오인되어 수입금지되었던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계속 독일에 대한 말씀을 부탁합니다.

▲ 김종인 전 의원. ⓒ프레시안
김종인
: 미국에서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할 때 '미국의 시장경제가 독일의 시장경제만도 못하다. 최소한 독일 수준까지는 시장에 자유를 줘야 한다'는 지적을 한 책도 있었어요.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독일은 시장경제를 충실히 하는 나라입니다. 독일은 여태까지 가격통제와 임금통제를 해본 적이 없어요. 영국과 미국은 다 했었죠. 그런데 통일하는 과정에서 통일 비용을 부담하다 보니 경제가 어려워져 독일이 2000년~2002년에는 유럽의 병자처럼 여겨졌어요. 하지만 2002년 이후에는 다시 변화를 가져와서 원래 위치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 독일 금융도 큰 피해를 봤습니다. 독일 금융 내에서도 미국 금융 메커니즘대로 가자, 그런 주장이 힘을 얻었고, 특히 주정부 소유 은행의 사고가 제일 컸어요. 주정부가 통제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감사위원회가 전부 정치인으로 금융도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서 하고, 또 저축이 많은 나라라서 돈이 남아나니까 어디 가서 돈 벌까 하다가 미국 파생상품에 투자하고...독일이 자기 전통 지켰으면 큰 손실 안 봤을 텐데 공연히 미국 금융 따라가다 다친 거죠.

내가 보기에 시스템 자체, 영미식/독일식 이런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유럽도 알프스 동쪽은 시장 친화적이고, 서쪽은 정부간섭주의 시스템을 가지고 운용한 나라들입니다. 우리가 세부적으로 인식 못하니까 독일을 무슨 사회주의 경제처럼 보는데, 독일이 사회주의식으로 하면 오늘날 저렇게 성공할 수 없어요. 다만 거기는 우리나라 같은 재벌이 없고 중소기업 섹터가 수출의 70%를 차지하는데, 이들이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 경쟁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유로화의 위력 입증돼

전성인 : 독일이 위험을 벗어난 데에는 영국과 달리 유로화 권역에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요?

김종인 : 이번 금융위기에 유럽은 영국 파운드화를 제외하고 비교적 안정추세입니다. 유로가 99년에 도입될 당시 미국 경제학자들은 '몇 년 안 가서 무너질 것이다. 한번 경제위기 오면 산산이 부서져서 자기들끼리 전쟁 할지도 모른다'고 혹평 했었죠.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 겪고 보니 유로 가입한 국가는 환율이 안정돼 있어 영향을 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 들어가려고 했던 덴마크, 체코 이런 나라도 어떻게 하면 빨리 들어갈까 준비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영국 파운드와 유로의 환율이 거의 1:1입니다. 요새 독일 사람들이 영국으로 쇼핑 많이 간다고 해요. 내가 보기에 영국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1955년 처음에 EC(유럽공동체) 만들어질 때는 영국의 처칠 수상도 참여했어요. 그런데 처칠이 프랑스와 독일을 지칭하며 "맨날 싸움하던 놈들이 공동시장을 어떻게 만드냐"고 비난했죠. 그러다 60년대 초에 오니 이게 예상과 달리 잘 돌아가서 영국도 가입을 원했지만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안 받아줬어요. 드골이 퇴임한 후 70년대 초에 영국은 겨우 EC 가입했습니다.

사실 유로는 독일 통일 때문에 탄생한 것입니다. 영국은 독일 통일을 끝까지 반대했어요. 독일이 통일 때문에 주변국 반대가 심하니 통화주권을 포기해버린 것이죠. 이때도 영국은 전통적인 자존심을 내세워 유로화 탄생에 참여를 거부했지요. 올해가 유로 도입 10년인데, 지금 유로가 없었다면 유럽의 작은 나라들이 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그 다음 중국경제를 짚어봤으면 합니다. 요새 중국경제의 추락속도가 만만치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이 정도로 빨리 식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새 중국의 힘든 모습을 보면 거의 아연실색할 정도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격감했습니다. 한때 우리는 중국을 끼고 있으니 끄떡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올해는 1년 내내 우리나라에 중국이 커다란 부담될 것이란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종인 : 그동안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미국경제가 식게 되면 그때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이 미국경제를 보완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미국경제 위기를 맞으니까 중국과 인도 경제도 같이 내려앉았어요. 중국이 미국, 유럽의 수출로 매년 10% 이상 경제 성장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수출위주 경제운용은 금년에 어려울 것입니다.

중국, 내수 위주 경제운용으로 돌아설 것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하면 어떻게 될 거냐. 내가 보기엔 중국 정부의 기본 생각이 금년도 8% 경제 성장을 꼭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공산 혁명 60주년이고, 또 천안문 사태 20주년, 개혁개방 30주년입니다. 여러 가지가 겹친 해죠. 때문에 중국 정부는 8% 성장해서 사회적 긴장 고조를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고, 그래서 내수 쪽으로 방향을 틀 것 같습니다.

중국의 수출이 지금처럼 크게 늘어나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이나 유럽도 중국 상품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최근 BBC 방송에서 영국 가정주부가 사용하는 물건을 조사해보니까 80%가 중국 제품이더라구요. 미국도 월마트 상품이 거의 다 중국제입니다. 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물가가 안 오른 건 다 중국 덕분입니다. 그래서 중국 수출은 어느 정도 유지되지 않겠냐 싶어요.

그렇다면 중국에서 수입은 어떻게 할 거냐.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와 관련된 것은 중국이 우리 수출 수요를 유지해줄 것인가, 이건 힘들 것 같아요. 중국은 정치적으로 8% 성장 안하면 사회 긴장관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내수 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성인 : 중국이 내수 위주 성장이 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가능성은 심각하게 저해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우리의 대중국 교역은 주로 중국의 수출규모나 투자규모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내수와는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경제와 관련된 다른 이슈 중 하나가 소위 통화전쟁 시나리오입니다.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중국이 이번 기회에 아시아를 위안화 경제권으로 묶기 위해 통화 정책을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습니다. 중국이 1조 수천억 달러라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이참에 동남아 경제를 다 먹어버리려 한다는 얘기죠. 다른 시나리오는 중국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 위안화를 평가절하할 가능성입니다. 이럴 경우 동아시아 국가에 추가부담으로 작용할 텐데요,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김종인 : 중국 위안화 기능은 미국과도 연결된 문제입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을 계속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동시에 미국의 달러 가치의 키를 가진 게 중국이죠. 중국이 보유외환 중 1000억 달러만 다른 화폐로 바꾸면 달러 가치는 크게 폭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러가 폭락하면 중국이 미국에 수출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일은 안 할 거라고 봅니다.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가 한국 경제와 연관된 문제는 한국의 수출품목 중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게 과연 몇 개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제조업에서 중국한테 IT도 다 뺏겨 버렸어요. 이제 IT 분야도 내세울 게 별로 없습니다.

한편 우리는 중국경제와 관련해 수입수출이 다 걸려 있어요. 우리는 중국 식료품이 안 들어오면 소비자물가 관리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이미 중국 위안화가 중심통화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중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을 체결했는데, 그게 위안화 스왑입니다.


전성인 : 결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보다는 범 위안화 경제권의 확대라는 추세가 더 실현가능성이 크군요. 우리나라가 작년 말에 위안화 조달을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종인 : 우리나라는 일본에 핵심 부품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엔이 점점 비싸지면 부품 값이 비싸져 우리 수출 경쟁력은 더 없어집니다.

전성인 : 우리나라가 매우 어려운 위치입니다. 중국에는 먹을거리를 의존하고, 일본에는 부품 의존하고, 금융시장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김종인 : 그렇습니다. 우리는 GDP 대비 외채규모가 제일 큰 나라입니다.


▲ ⓒ프레시안

국제금융체제 개혁, 당장은 규제강화에 초점

전성인 : 통화전쟁 문제와 연관해 달러 패권주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또 국제금융체제는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시나요?

김종인 : 작년 11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렸어요. 갑작스럽게 20개국이 정해진 게 아니라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위기 극복을 위한 20개국 재무장관회의가 열렸었는데, 그 나라들이 다시 모인 것입니다. G20 회담 핵심주제는 왜 이런 국제금융위기가 발생했냐였고, 금융감독 체제 개선이 주요 의제가 됐습니다. 스위스 바젤의 중앙은행 협의회에 재무안정포럼이 있는데 거기서 이미 금융감독과 관련해 67개 항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G20 회의에서 그중 47개를 의제로 놓고 토론해 잠정 합의된 게 28개 항이고, 19개는 중장기적으로 논의하자고 얘기가 됐어요. 다음 공동의장국인 영국, 한국, 브라질이 28개 합의안으로 3월말까지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런던회의 때 내놓기로 했습니다.

IMF 체제개편 등 얘기도 있지만 중요한 게 소위 말하는 '세금피난처(tax haven)'를 인정 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금융감독 체제 개선에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도 동의했어요. 물론 그 회의에 오바마가 참석 안 했으니 이후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달러 기축통화 문제는 2차 대전 이후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될 때는 미국의 GDP가 전 세계의 반 이상 되던 때라서 미국과 영국이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도 전 세계 GDP의 25% 수준 밖에 안 되고, EU(유럽연합)도 자기들 다 합하면 그 정도 된다고 하니까, 기축통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IMF를 개편하려면 앞으로도 5년은 더 협상해야 될 것으로 보여요. 우선은 금융감독 체제에 국한해 논의되고 기축통화 문제는 자연적으로 시간흐름에 따라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성인 : 기축통화 문제는 아니더라도 달러 가치와 관련해서는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국제적 결제에 한해 달러화를 금과 태환해주다가 1971년 금태환이 정지됐습니다. 미국이 월남전을 치르면서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했고, 미국이 국제사회에 뿌리는 막대한 달러화를 일본과 독일이 국제수지 흑자국으로 계속 받았었죠. 그때만 해도 고정환율제를 유지했는데 결국 71년에 포기하면서 변동환율제가 나오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돈을 찍어내고 있죠. 달러화의 가치하락은 기정사실 아닐까요?

인플레시대의 도래?

김종인 : 2월 중순 쯤 <구제금융 국가(Bailout Nation)>이란 책을 낼 예정인 미국 경제학자 배리 리톨츠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이 투입해야할 돈이 8조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 세계은행 총재 울펜손은 9조 달러가 더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어요. 리톨츠 계산에 따르면, 지금 구매력으로 계산해서 2차대전에 3조6000억 달러를 썼는데, 그 2배 이상인 8조를 써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종전에는 미국이 달러를 남발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달러를 받을 수용 태세가 돼 있어서 국제 유동성에 도움이 많이 됐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19세기말에도 미국이 세계적으로 악성 채무국이었어요. 그 빚을 어떻게 해결했냐면 금값을 배로 올려서 빚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남발하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때 가서 세계중심화폐로서 달러 의 위상에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전성인 : 오일쇼크 이후 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의 시대(the age of inflation)'란 용어를 쓸 정도로 문제의 기본은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지금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나서 전 세계가 겪어야 하는 문제가 인플레이션입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인플레이션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을 보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를 마감하면서 <타임>지가 '탐욕의 시대(the age of greed)'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당시 적대적 인수합병, 기업 사냥꾼 등이 문제가 됐었죠.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가 지금 전 세계적인 탐욕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종인은...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서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이 조항은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린다. 또 '김종인 조항'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7년 헌법 개정을 논의할 당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주도해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 도입에 대해 정치권 및 재계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김종인 의원이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김종인 조항'은 개헌 논의가 있을 때마다 재벌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는 조항이다. 이 짧지만 결정적인 문구를 헌법에 넣으려고 하는 사투를 통해 김 전 수석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이자 1960년대 초 야당 통합을 주도한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가인의 비서실장으로 대학시절부터 정치를 접했던 그는 귀국 이후 서강대 교수를 거쳐 국회의원, 청와대 경제수석, 보사부 장관 등 경제관료이자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권력 내부와 깊게 조응했지만, 그는 여느 관료나 정치인과는 달리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행보가 '김종인 조항'에 담긴 내용을 실현하려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그는 재벌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의 매각을 유도한 '5.8 부동산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성인은...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스승인 조순, 정운찬 교수 등과 <경제학원론>을 함께 냈다. 전 교수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과 함께 정운찬 전 총장이 특별히 아끼는 제자다. 금융이 전공인 그는 대표적인 '금산분리론자'이다. 4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학자로서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부쩍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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