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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평 땅으로 일본을 지키는 사람들…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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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평 땅으로 일본을 지키는 사람들…우리는?"

[21세기 식량 전쟁, 식량 주권으로 극복한다 ⑥]

21세기 들어서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 이른바 '먹을거리 전쟁(food war)'이 진행 중이다.

산업화된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이 국가와 국가 간, 국가와 기업 간, 기업과 시민 간에 그치지 않고 있다. 유전자 조작 작물(GMO)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갈등, 상반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을 둘러싼 갈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먹을거리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에 더해서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위기가 나타났다. 2008년 초 주요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식량 공급을 놓고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빈곤 국가의 문제라고 여겼던 먹을거리 공급을 둘러싼 갈등이 전 세계 국가의 문제로 부각된 것.

이런 상황에 대응하고자 세계 각국은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식량 주권은 "한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농업과 식량 정책을 관장할 권리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국내 농업 생산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식량 자급률 제고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식량 주권 개념은 부국과 빈국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에서 중요한 정책 의제로 조명돼 정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식량 자급률 25%에 불과한 한국에서 식량 주권은 정부, 국회 어디서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2007년 국내 언론 최초로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local food)'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식량 주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소개한다. 이 기획을 통해 '식량 안보(food security)' 수준의 논의에만 머물러 있는 정부 정책은 물론이고, 불안한 먹을거리를 놓고 대안을 찾지 못하는 시민에게 출구를 보여줄 것이다.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재단의 '2008 기획 취재 지원'을 통해 진행됐다. <편집자>

"한국 정부는 국민을 굶겨 죽일 작정인가?"
"무슈 리(Lee) 모르세요? 소농이 죽으면 끝입니다, 끝"

"국민은 똑똑한데…한국 정부, 정말 무모하다"
"먹을거리 위험…그렇게 속고도 아직 모르나?"

"가장 중요한 교육을 대기업 손에 맡기다니!"

▲ 자신의 콩밭 앞에 선 네기시(70) 씨 부부. 뒤쪽으로 '콩 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한 밭임을 알리는 간판이 서있다. ⓒ프레시안

"여기가 일본에서 제일 너른 평야 지대다."

지난 10월 말, 일본 사이타마현 쿠마가야시 니보리신덴 지역.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들판에 서 있는 농부 네기시(70) 씨의 표정이 밝았다. 그의 앞에는 여문 콩으로 가득한 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지금 콩을 수확해야 할 때지만 비가 많이 와서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기 농업으로 벼 농사를 짓는 네기시 씨는 이 밭 외에 3개의 논을 더 가지고 있다. 그는 논의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3년에 한 번씩 논에 콩을 심어 왔다. 그렇게 재배한 콩은 농협에서 대부분을 매수한다. 네기시 씨 부부는 남은 콩으로 일본 재래식 된장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그러나 네기시 씨처럼 콩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의 숫자는 적다. 왜 그럴까? 네기시 씨가 손사래를 치며 설명했다.

"농협에서 종자를 구입해서 콩 농사를 지은 다음 콩을 농협으로 팔아도 가격이 너무 낮다. 한 가마니(60킬로그램)당 5000엔 정도 밖에 안 한다. 이러니까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돈이 안 남는다. 이러니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거지. 차라리 공사판을 가는 게 돈이 더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 아마나시현에서 유기 농법으로 2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아다치(52) 씨가 전통 간장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게 발효가 진행 중이라는 걸 알리는 신호다. 삶은 콩에 볶은 밀, 소금, 물을 넣고 섞어서 발효를 시키면 간장이 된다. 이건 2년 정도 된 간장이고, 저건 올 봄에 담근 거고…."

커다란 간장 통 속을 저으면서 아다치(52) 부인이 나긋나긋 말했다. 야마나시현에서 유기 농업 전통 농법으로 2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아다치 나오지 씨 부부. 이들이 직접 재배한 콩으로 담가 만드는 간장은 인근 지역에서 최고의 인기다. 그러나 자신의 밭으로 안내한 아다치 씨(55)는 지역 사정을 설명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동네에 50대 밑으로는 농사짓는 사람이 없다. 저기 기계를 돌리는 분은 연세가 82세다. 나머지 대여섯 가구도 모두 60~80대의 나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 우리 부부가 죽으면 20년간 만들어온 간장도 세상에 더 이상 나오지 않을 텐데…."

아다치 씨가 그만 두면 이 지역은 간장 제조뿐만 아니라 콩 농사 자체가 끊긴다. 아다치 씨 역시 벼 농사를 짓는 논에 3년에 한 번씩 콩을 심어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콩 농사를 짓는 집은 아다치 씨 외에는 없다. 그는 "콩 농사를 지어서 얻는 수입이 거의 없으니…" 하며 혀를 찼다.

콩 수입국으로 전락한 일본…"그 콩은 GMO야!"

아다치 씨와 네기시 씨의 상황은 일본 전역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대규모로 콩이 경작되는 홋카이도 지역을 제외하면, 콩 소비량이 높은 일본 내에서 오히려 콩 농사를 짓는 농가를 찾기란 드물다. 일본 시민생명공학센터의 케이스케 아마가사 대표는 "수입 콩의 가격이 워낙 싸다 보니 농민이 콩 농사를 점점 하지 않게 됐다"며 "그 결과 이제 콩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에서 미국산 콩은 1킬로그램당 약 100엔에 거래된다. 1킬로그램에 400엔인 일본 국내산 콩이나 1킬로그램당 800엔인 무농약·유기농 콩은 가격 면에서 미국산 콩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결국 100% 가까이 유지하는 쌀 자급률과 달리 콩 자급률은 수십 년 새 형편없이 떨어졌다.

▲ 네기시 씨가 직접 기른 콩. 일본의 콩 자급률은 4% 수준이다. ⓒ프레시안

일본의 콩 자급률은 4% 수준(2003년 기준). 사료용을 제외한 콩 자급률도 22% 수준으로 식탁에 오르는 콩의 4분의 3 이상이 다 외국산이다. 콩 자급률이 7% 수준인 한국의 상황과 별단 다르지 않다. 일본인의 입으로 들어가는 콩의 대부분은 미국산이다(수입 콩의 약 80% 수준).

아마가사 대표는 "심각한 문제는 그 미국산 콩의 90% 정도 유전자조작(GM) 작물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 콩 재배 면적은 약 7600만 헥타르(ha). 그중 미국 몬샌토 사가 개발한 GM 콩, '올 라운드업 레이디'의 재배 면적은 4140만 헥타르를 차지한다. 절반이 넘는 비율이다.

일본에 GM 콩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996년이었다. 아마가사 대표는 "미국에서 GM 콩을 재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연히 일본이 수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수입 2년 전부터 반대 운동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콩 외에도 자급률이 0%에 가까운 유채, 옥수수 역시 미국, 캐나다에서 재배한 GMO"라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GMO의 표시 의무는 비의도적 혼입 비율이 5% 이상일 때로만 한정된다. 이는 표시 의무가 없는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 3%, 유럽연합(EU) 0.9%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수치다. 설사 GMO 표시가 없더라도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콩이 들어간 먹을거리에 GM 콩이 쓰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셈이다.

▲ 일본 시민생명공학센터의 케이스케 아마가사 대표는 "일본인이 먹는 미국산 콩의 대부분은 GMO"라며 "한국과 일본이 GMO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GMO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야마나시 생활협동조합의 아카이시 노리코 간사는 "1997~98년에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언론의 힘이 컸다"며 "당시 한 TV 프로그램이 GMO의 실태를 생생히 보여주면서 운동에 불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들의 높은 불신은 GMO 시험 재배 반대 운동, GMO 표시제 도입 요구, 학교 급식 내 GMO 사용 금지 요구 등으로 이어졌다. 1997년에는 107만 명이 표시제 도입 서명에 동참했다. 몬샌토와 아이치현의 GM 벼 공동 개발도 거센 반발에 중단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 각지에서 '콩 트러스트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1년 10평의 땅으로 일본 콩을 지키자"

"GMO를 막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결국 콩 자급률을 높이는 게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GM 작물도 있지만, 일단 콩을 선택했다. 3끼 식사에 콩이 들어간 먹을거리가 꼭 올라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콩은 일본인들에게 가장 크게 피부로 와 닿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일본 GMO 반대 운동을 주도해온 아마가사 대표는 '콩 트러스트 운동'의 기본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보호하려는 땅을 사들이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처럼, GMO로부터 토지와 종자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콩밭을 1년에 한 번씩 '구매'하는 것이다.

▲ 네기시 씨네 밭에 서 있는 간판. 'GMO Free Zone' 이라고 적혀 있다. ⓒ프레시안

엄밀히 말하면 시민 각자가 콩밭을 직접 사지 않는다. 대신 밭에서 나는 콩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산다. 농민은 이렇게 지불된 콩 값으로 1년 동안 농사를 지은 다음, 그 땅에서 생산된 콩을 수확한 후 콩 값을 미리 낸 시민에게 전달한다. 만약 그 해 콩 농사가 흉작이라면 어떨까?

바로 이 점이 콩 트러스트 운동이 보통의 계약 재배와 다른 점이다. 시민은 풍년인 해에는 평년보다 더 많은 콩을 받고, 흉년인 해에는 더 적은 양의 콩을 받는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의 1차적 관심사는 작황 여부에 상관없이 농민이 콩 농사를 지속적으로 지을 수 있도록 밭을 경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미리 지불하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1구좌를 신청한 시민은 약 10평(33제곱미터)의 밭에서 얻은 콩을 그해 가을에 받을 수 있다. 1구좌는 4000엔(6만3000원) 선. 1구좌를 신청한 시민이 얻게 되는 콩의 양은 평년 기준 4~5킬로그램 정도이다. 이들은 때로 콩 대신 콩 재배 농민과 간장, 된장 등 콩으로 만든 가공 식품도 공급받는다.

이 콩 트러스트 운동이 주는 혜택은 다양하다. 시민이 미리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농민은 안정적으로 한 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또 시민은 GM 콩이 아닌 일본산 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면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역 연대가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2005년부터 사이타마 생활클럽 생활협동조합이 벌이는 콩 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네기시 씨는 "돈을 냈다고 손에 넣는 콩의 양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파종, 김매기, 수확, 된장·두부 만들기 등을 직접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콩 트러스트 운동의 큰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일부 농민은 콩 종자를 시민에게 직접 보내 텃밭 재배를 권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처음 시작한 콩 트러스트 운동은 직거래의 경험이 오래된 야마가타, 후쿠시마, 이바라키, 치바, 시즈오카 등을 중심으로 10년 만에 전국 54개 지역으로 퍼졌다. 적게는 10여 가구에서 많게는 수천 가구까지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운동이 확산되는 데는 일본 전역에 촘촘히 조직된 생활협동조합이 큰 몫을 했다.

이 콩 트러스트 운동은 지난 2000년 이후 GM 벼의 공격에 토종 벼 종자를 지키고, 유기 농업을 지지하려는 '벼 트러스트 운동'으로 확장됐다. 1구좌 당 3만 엔(약 50만 원)을 내고 벼 트러스트 운동에 참가한 소비자는 1년에 약 40킬로그램의 쌀을 받고 있다. 콩 트러스트 운동, 벼 트러스트 운동은 먹을거리의 안정적, 안전한 공급을 보장하는 식량주권의 새로운 무기이다.

"토지와 종자를 지키고 싶다면 행동에 나서라"

네기시 씨의 밭 구석에는 "여기는 유전자 조작(GM) 작물 거부 지역입니다"라고 적힌 간판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나는 옛날부터 유기 농업을 하면서 GMO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알고 지내던 생활협동조합 친구들이 이 콩 트러스트 운동에 동참하기를 권유해서 참여했다"고 웃었다.

▲ 자신이 기른 콩을 살펴보고 있는 네기시 씨. ⓒ프레시안
네기시 씨는 "사실 콩 트러스트 운동은 벼랑 끝에 몰린 콩 농사를 짓는 농민의 마지막 보루"라며 "시민들이 구좌를 미리 사주면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어서 콩 농사를 포기하는 걸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이 운동으로 농민이 큰 수입을 얻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운동의 장점은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네기시 씨는 "나는 생산자와 생산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된 게 이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콩 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하는 다른 농민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지역 농민은 몇 년 전부터 농협에서 종자를 구입하지 않고 야마나시 고유의 콩 종자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네기시 씨는 이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를 하기 시작하면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좀 더 믿을 만한 먹을거리를 공급하려고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더불어 소비자는 생산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농업, 농민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마가사 대표는 "콩 트러스트 운동은 전국으로 퍼졌지만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목적의식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며 "목적의식이란 바로 자급률 제고, GMO 반대, '착한' 농법 지지로 요약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6년 당시 콩 농사 자급률은 2.8% 대였으나 현재 4% 이상 올라간 것은 이 운동의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지난 1996년 아마가사 대표를 비롯해 일본 내 생활협동조합, 소비자단체들이 조직한 '노 GMO 캠페인'은 현재 콩 트러스트 운동을 넘어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특히 지역자치단체, 기업을 대상으로 'GM-프리'를 선언하고 'GM-프리존'을 요구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이런 활동은 일본 내 GMO 반대 여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아마가사 대표는 "일부 농가에서 GM 재배를 고민하는 이들도 주위에서 말려서 못하게 하는 게 일본의 분위기"라며 "GM 작물이 재배되면 그 지역의 다른 농작물까지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서 일본 내에서 GMO가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자유 무역 논리에 밀려 사라진 보조금을 다시 살려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콩, 유채가 바로 정부가 보조금을 지불하다가 없어진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마냥 정부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나서는 트러스트 운동, 지산지소 운동 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강조했다.

▲ 직접 담근 간장을 따르고 있는 아다치씨. 질좋고 안전한 먹을거리는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신뢰를 튼튼히 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프레시안

"종자를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본의 콩 트러스트 운동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GM 종자로부터 전통 종자를 지키는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초국적기업이 전 세계에 유포한 GMO는 오히려 농민으로부터 고유 종자를 지켜내야 한다는 긴박한 위기의식과 갖가지 실천 행동을 이끌어냈다.

인도 남부 지역에서 활발히 전개되는 시민단체 '나브다냐(Navdanya)'는 그런 종자 지키기 운동을 전개하는 대표 사례이다. 초국적기업이 종자 특허권을 확보하고 그런 종자를 획일적으로 농민에게 강요하는 움직임에 대항해 전통 종자를 지키고 유기 농업을 일으키자는 나브다냐의 정신은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나브다냐는 인도 전역에 3곳의 씨앗 은행을 운영한다. 인도 데라둔에 있는 씨앗 은행에는 400가지 벼, 60가지 밀, 20가지 콩, 7가지 유채 종자가 보존돼 있다. 전국에 있는 나브다냐 씨앗 은행에 보관된 벼 종자의 수만 1200가지가 넘는다. 이 종자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일단 씨앗 은행을 이용할 농민은 필요로 하는 만큼 씨앗을 가지고 가서 한해 농사를 지은 후, 수확할 때 가져간 씨앗의 1.25배를 돌려주면 된다. 이것은 나브다냐가 내세우는 "씨앗에서 씨앗으로, 농부에서 농부에게"라는 의식을 그대로 구현하는 실천이다. 현재 데라둔 씨앗 은행에 있는 400가지 종류의 쌀은 데라둔 지역 곳곳에서 모두 재배되고 있다.

나브다냐의 농업 방식이 단순히 전통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데라둔의 농장에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전통 농업기술을 합쳐 환경 친화적이고, 생산 효율적인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흙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여러 농민으로부터 각지의 흙을 수집해 성분을 분석하는 한편 각 토질에 맞는 비료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 인도에서 나브다냐 운동을 이끌고 있는 반다나 시바. ⓒ프레시안

나브다냐 운동을 이끈 주인공은 바로 전직 핵물리학자이자 이제 세계적인 환경운동가로 알려진 인도의 반다나 시바다. 몬샌토와 같은 초국적기업과 이와 연계된 과학자로부터 '돌팔이 과학자'라는 소리를 듣지만, 인도 농민으로부터 '새천년의 간디'라는 칭호를 얻은 반다나 시바. 그는 지난 2006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 운동의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1987년의 일이었다. 농화학 기업 중 하나인 샌도스의 대표가 이렇게 예측했다. '세기가 바뀔 무렵, 대규모 농화학 기업은 다섯 개 정도만 남게 될 것이다. 종자에 관한 특허를 많이 받아두는게 좋을 것이다.' 그 말이 내 인생을 바꾸어 버렸다.

마치 영국이 인도를 수탈한 것처럼, 지금 초국적기업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농업 지식과 종자를 독점하고 통제하려는 식민화를 하려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새로운 악에 대항해 힘과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가 몬샌토와 싸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연대에 있다. 쌀, 콩, 유채를 되찾아 왔듯이 앞으로 우리가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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