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서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 이른바 '먹을거리 전쟁(food war)'이 진행 중이다. 산업화된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이 국가와 국가 간, 국가와 기업 간, 기업과 시민 간에 그치지 않고 있다. 유전자 조작 작물(GMO)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갈등, 상반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을 둘러싼 갈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먹을거리 안전성을 둘러싼 갈등에 더해서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위기가 나타났다. 2008년 초 주요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식량 공급을 놓고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빈곤 국가의 문제라고 여겼던 먹을거리 공급을 둘러싼 갈등이 전 세계 국가의 문제로 부각된 것. 이런 상황에 대응하고자 세계 각국은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식량 주권은 "한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농업과 식량 정책을 관장할 권리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국내 농업 생산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식량 자급률 제고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식량 주권 개념은 부국과 빈국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에서 중요한 정책 의제로 조명돼 정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식량 자급률 25%에 불과한 한국에서 식량 주권은 정부, 국회 어디서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2007년 국내 언론 최초로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local food)'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식량 주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소개한다. 이 기획을 통해 '식량 안보(food security)' 수준의 논의에만 머물러 있는 정부 정책은 물론이고, 불안한 먹을거리를 놓고 대안을 찾지 못하는 시민에게 출구를 보여줄 것이다. 이번 기획은 한국언론재단의 '2008 기획 취재 지원'을 통해 진행됐다. <편집자> ①"한국 정부는 국민을 굶겨 죽일 작정인가?" |
▲ 프랑소와 뒤푸르((François Dufour) 프랑스농민연합 전 대변인. 뒤푸르 전 대변인의 뒤로 보이는 평화로운 전경과 달리 프랑스 농촌에도 자살하는 농민이 많다. ⓒ프레시안 |
지난 11월 초 방문한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 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는 푸른 초원이 능선을 드러내며 펼쳐져 있고, 곳곳에서 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프랑스 도시 외곽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이곳에서 프랑소와 뒤푸르 프랑스농민연합(Confédération Paysanne) 전 대변인을 만났다.
뒤푸르 전 대변인은 1980년대 프랑스농민연합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프랑스 농민운동의 원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 비아 캄페치나(Via Campesina) 대변인과 같이 농민운동 일선에서 활동하던 그는, 현재 노르망디의 한 시골에서 유기 농업으로 닭, 소를 기르고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프랑스 농민운동의 산 증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뒤푸르 전 대변인을 둘러싼 농촌 마을의 평화로운 전경과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농장은 '피의 농장'이다. 내가 이 농장을 사기 전 농장의 전 주인이 자살했다. 점점 쌓여가는 빚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뒤푸르 전 대변인을 따라 농장에 딸린 작은 사과주스 작업장에 들어가자 사과향이 물씬 풍겼다. 이날 만든 7000병의 사과주스는 자동차에 실려 약 2시간을 이동해 파리 지역 소비자에게 배달된다. 그가 참여하는 농민 장터에서는 다른 농부 20명이 생산한 각종 농산품도 함께 판매된다. 직판 경로를 뚫은 그는 소농 중에서도 비교적 성공한 편이다.
▲ 자신이 만든 사과주스를 들어 보이는 뒤푸르 전 대변인. ⓒ프레시안 |
"혼자 일을 해야 하는 대부분의 소농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정책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노르망디는 프랑스에서 주요 농업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빚이 많은 농민들이 자살을 하면서 이 지역은 프랑스 내에서 높은 자살률로도 유명하다."
농업 대국 프랑스. 흔히 바다, 들판, 산간 지방을 모두 갖춘 이 나라를 '천혜의 농업 국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농촌 풍경이 매우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외지인의 말에 프랑스 농민은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프랑스의 농촌도 한국의 농촌 못지 않게 '위기'라고 했다. 이 상태로 가다간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 소농의 몰락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프랑스 농민들도 죽어가고 있다"
유럽농민연대(CPE)의 르네 루에르(René Louail) 공동대표 역시 최근까지 프랑스농민연합 대변인을 역임한 '바쁜'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조제 보베 현 비아 캄페치나 대변인은 2002~2003년까지 프랑스농민연합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프랑스 농민'의 현실을 묻자 그는 자신이 농사를 짓고 있는 브리타뉴 지역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브리타뉴 주는 프랑스 전체 면적 중 6%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농업 지대다. 60%의 돼지고기, 20%의 우유, 30%의 계란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이렇게 농업 생산의 비중이 크지만 정작 21개의 프랑스 주 가운데 소득 순위로 따지면 20위에 불과하다. 그만큼 농민의 수입이 적다는 뜻이다."
▲ 유럽농민연대(CPE)의 르네 루에르(René Louail) 공동대표. 이날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진행됐다. ⓒ프레시안 |
프랑스농민연합은 1987년에 조직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는 대규모 농업에 찬성하는 기업농이 중심이 된 농업경영자전국총연맹(FNSEA) 정도가 농민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소농이 중심이 된 프랑스농민연합은 설립 후 맥도날드 타격 투쟁, 세계화 반대 투쟁 등을 전개하며 1990년대 이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농민단체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배경에 대규모 농업의 폐해가 자리 잡고 있다. 루에르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북해와 가까운 브리타뉴는 전형적으로 소농에 의지해 농업을 이어온 지역이다. 이곳에서 더 많이, 더 싸게 팔아서 이윤만 좇는 대규모 농업이 시작되면서 소농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소농이 연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이유다."
옆에 있던 농민연합 회원 쥬누비에브 사비니(Geneviève Savigny) 씨가 말을 거들었다. 그는 프랑스 남동부 토아르(Thoard) 지역에서 닭을 키우며 라벤더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소농은 프랑스에서 죽어가고 있다"며 "나와 가족이 어떻게 생존할지, 즉 어떻게 하면 땅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삶을 보존할지, 어떻게 수입을 늘릴 수 있을지 등은 전 세계 소농의 공통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1000개씩 사라지는 유럽의 농장들
현재 유럽 전역을 통틀어 매일 1000개가 넘는 농장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농을 퇴출하려는 유럽 국가의 농업 정책 탓이다.
지난 7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덴마크,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스, 터키 농민 등이 참여하는 '비아 캄페치나 유럽 연맹(European Coordination Via Campesina)'이 새롭게 발족한 것도 이런 농업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이 단체의 목표는 2013년까지 개편 작업에 들어가는 유럽 공동농업정책(CAP)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식량 부족 사태를 겪었던 유럽은 전후 공동농업정책을 실시했다. 이 정책의 중요한 목표는 △식량을 늘 적정한 가격에 보급하고 △농민의 수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는 것 등이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고자 1960년대 이후 유럽 국가는 공동 기금을 형성하고, 이를 농산물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데 활용했다.
공동농업정책은 1960~70년대 서유럽을 중심으로 유럽 지역의 식량 자급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공급 조절에 실패하면서 1980년대부터 농산물이 과잉 생산되자, 유럽은 아프리카 등 외국 시장에 생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농산물을 내다파는 수출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 변화는 유럽 소농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유럽연합(EU)은 한해 약 450억~550억 유로(약 90~110조 원), EU 예산 중 40%에 달하는 농업 보조금을 CAP를 통해 1992년부터 직접 지불 형태로 지급한다(직불제). 그러나 무분별한 직접 지불은 대규모 농업을 하는 기업농과 땅주인만 배를 불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농민연합 회원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땅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삶을 보존할지가 전세계 소농들의 공통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
루에르 대표는 "이 제도는 유럽 시민의 요구가 아닌 수출입을 장려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요구에 따라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농을 비롯한 농민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더구나 EU 재정은 이런 식의 직불제를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며 "어차피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대안도 있다. "농산물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도록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급 조절이 원활하게 진행돼야 하고, 수출 보조금을 통해 외국으로 덤핑 수출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농산물을 수입할 경우에도 관세를 통해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 직불금은 농업 효율이 낮은 일부 지역으로 제한해야 한다."
"농민이 죽으면 인간이 죽는다"
올해 초 닥친 식량 위기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농에 의한 '과잉 생산'이 큰 원인이었다. 먹을거리를 상품으로 여기고 투기의 대상으로 만든 국제기구, 정부의 행태가 결국 곡물 값을 통제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을 자초했다는 것.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던 이들은 마지막에 꼭 익숙한 이름을 언급했다. 루에르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무슈 리(Monsieur Lee), 모르세요?"
"지난 2003년 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오늘날 소농의 현실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상징적이다. 이경해 열사는 WTO가 추구하는 세계 경제의 틀은 단순한 수출·수입의 문제가 아니라 농민의 생명, 더 나아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줬다."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고 외치며 자결한 이경해 열사. 한국에서 그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지만, 세계 곳곳에서 그는 21세기 농민운동의 상징이었다. 프랑스농민연합, 한국 전국농민회총연합 등 세계 56개국의 회원 단체를 보유하는 국제농민단체 '비아 캄페치나'는 이경해 열사의 자결을 이 단체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고 있다.
루에르 대표는 말을 이었다.
"세상을 시장판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맡겨둬선 안 된다. 명심해야 한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을 이긴다는 진리를. 자신의 죽음으로 전 세계 농민의 연대를 촉구한 이경해 열사가 그걸 직접 보여주지 않았나? 기억하라. 이경해 열사가 마지막까지 외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농민이 죽으면 결국 인간이 죽는다."
"소농이 살아야 세상이 바뀐다" 세계는 정말 식량이 없어서 기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기업에 의한 대규모 생산 방식을 옹호하는 이들은 언제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시아의 비참한 사진을 제시한다. 그러나 통계는 전혀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여 년 전인 1984년 "지구가 120억 명, 즉 지금 인구의 두 배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업 생산성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먹을거리 공급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먹을거리 분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른 통계도 있다. 세계은행이 발간한 2008년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서 기아가 가장 극심한 곳으로 꼽히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의 60% 이상의 인구가 농사를 짓는다. 또 기아 상태에 처한 8억2000만 명 중 4분의 3이 농촌에 산다. 실제로 제3세계 국가의 상당수 농민은 자신이 생산한 식량을 모두 팔아도 생산비와 소작료 등을 제하면 정작 스스로 세 끼를 연명할 돈 몇 푼조차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상품 작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케냐의 경우, 1980년대 중반까지 커피, 차, 기름, 이 세 가지 작물이 수출 품목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그러나 빈곤은 계속됐다. 미국과 유럽에서 덤핑으로 싸게 들어오는 먹을거리는 악순환을 심화시켰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렛(GRET)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프랑스어권 국가를 30년째 연구하는 민간 연구소다. 이곳에서 만난 알렌 알파(Arlene Alpha) 연구원은 지난해 프랑스 개발인권단체 연대 기구 코디네이션 쉬드(Coordination Sud)가 수행한 '가족에 기반을 둔 소농에 관한 보고서' 작업에 참여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소농이 살아야 세상이 바뀐다." 이 보고서는 소농이 실업을 줄이고, 빈곤을 끝내는 데 효과적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알파 연구원은 "소농을 육성하는 데 노력하는 국가는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정부의 노력 덕분에 소농이 구조적으로 자리를 잡은 캄보디아는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크메르루즈 정권의 집권 당시 기아 등으로 200만 명이 굶어죽었던 캄보디아는 정부의 주도로 1987년부터 '녹색 혁명'을 시작해 이후 10년 만에 다시 쌀의 자급을 달성했다. 1998년 시작한 물 관리 프로젝트를 통해 농지의 생산성도 두 배 가량 증가했다. 현재 캄보디아 인구 중 74%의 가구가 스스로 먹을거리를 자급하고 있다. '그렛'은 농업의 발달로 인해 가구간 소득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지만 소농에게 이익이 집중되면서 불평등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은 정반대 예다. 브라질은 농업 인구 450만 명 중 410만 명이 소농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의 대부분은 기업농에게 돌아가고 있다. 기업농을 관할하는 브라질 농림부의 2006년 예산은 580억 헤알(약 37조 원)이었던 반면 소농을 관리하는 농업개발부는 120억 헤알(약 7조7310억 원)의 예산만 책정됐다. 그 결과는 매년 수만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을 정도로 비참하다. 알파 연구원은 "이런 심각한 편중에 맞선 저항이 바로 브라질 소농의 땅을 되찾으려는 격렬한 투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번역하면 '땅 없는 농민 운동'으로 해석되는 운동단체 MST는 1980년대 이후 25만 명이 넘는 땅 없는 농민을 유휴지에 정착시켰다. MST는 이제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과 땅주인들의 공격으로 그간 수천 명의 MST 회원이 부상을 입었고, 1000명 이상이 살해당했다.
실제로 세계은행 보고서를 보면, 후진국에서 농업이 성장할 경우 다른 경제 부문의 성장보다 2~3배 더 효과적으로 빈곤을 줄인다. 또 소농에 의한 소규모 경작은 기업농이 주도하는 대규모 경작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GDP를 유발한다. 소농 중심의 농업은 환경을 염두에 둘 때도 지속 가능성이 뛰어났다. 루에르 대표는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소농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대규모 농업에서는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없지만, 소농은 언제나 환경의 변화에 맞춰 대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구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은 소농 중심의 농업"이라고 덧붙였다. 알파 연구원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의 후진국이 만성적으로 겪는 실업난은 결국 소농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기업농 육성으로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농은 땅과 자원에 대한 경쟁, 이농 현상, 그리고 그 결과로 발생하는 빈곤을 부추길 뿐"이라고 덧붙였다. 알파 연구원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소농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놓고도 "불행히도 다른 많은 나라들이 범하고 있는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소농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전 세계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세계 흐름에 둔감한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알파 연구원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조차도 농업 보호를 얘기하는 게 현재의 분위기"라며 "이런 분위기를 읽지 못하면 한국 정부는 큰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래된 농업'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내 주장은 간단하다. 오랜 세월 인류를 지켜온 농업이야말로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블루오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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