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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차라리 종부세의 종언을 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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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차라리 종부세의 종언을 고하자"

[종부세, 대안을 논하자]④ 국토보유세를 새 보유세로

본디오 빌라도와 헌재

기독교인들이 2000년 가까이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사용해 온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보면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본디오 빌라도는 당시 유대 지방에 파견된 총독이었다. 신약 성경의 복음서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구절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여러 차례 예수가 무죄라고 천명했으며 그를 풀어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를 썼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끝까지 압박한 것은 바로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유대인 무리들이었다.

빌라도의 잘못은 딱 한 가지였다. 예수를 죽일 만한 죄목을 찾지 못했음에도 유대인들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막에 십자가형을 언도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예수를 죽일 마음을 품었던 것은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유대인 무리였지만, 예수 죽인 책임은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다가 막판에 잘못된 형을 언도했던 빌라도가 뒤집어썼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헌재 판결을 지켜보노라니 2000년 전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했던 빌라도가 떠올랐다. 헌재는 종부세 자체에 대해서는 무죄 판정을 내렸다. 종부세의 근본 취지나 도입 목적에 대해 합헌임을 확실하게 인정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보수 언론이나 정부 여당이 위헌의 논거로 제시해 온 여러 쟁점들(국세 과세, 이중 과세, 미실현이득 과세, 과다 과세, 소급 과세, 지방 재정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모두 근거가 없음을 밝혔다. 빌라도도 그랬다. 끝까지 그는 예수에게서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종부세 자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그 동안의 논란을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다. '종부세 자체는 합헌이다. 종부세 자체는 무죄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헌재가 내린 최종 판결은 종부세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주는 내용이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유대인들에게 내 주었듯이 말이다.

헌재 판정은 종부세에 대한 '십자가형'

여기서 나까지 세대별 합산에 대한 위헌 판정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판정 하나가 그간 정부 여당이 종부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내 놓았던 모든 방안들(과세 기준 인상이나 세율 인하 등)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내용이라는 점은 지적해 두고 싶다. 종부세 대상자 중 최대 80%가 과세 대상에서 빠져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판정을 종부세에 대한 '십자가형'이라고 표현하더라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

헌재 판결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는 과세 기준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릴지 말지, 세율을 이미 발표한 대로 낮출지 좀 덜 낮출지, 1세대 장기 보유의 기준을 3년으로 할지 8년으로 할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적 입장을 가진 의원들은 토지에 부과되는 종부세 세율을 인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가관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오랜 숙원이었던 보유세 강화 정책이 끝장나는 마당에, 과세 기준, 세율, 장기 보유 기준 등을 가지고 논란을 하면서 서민을 위하는 척 가장하는 모습이라니. 그러지 말고 정부 여당은 그냥 기왕에 발표했던 내용대로 밀고 가라. 그래서 종부세 무력화의 책임을 헌재가 모조리 뒤집어쓰는 일은 없게 하라. 그것이 지난 몇 년 간 '종부세 죽이기'에 골몰했던 한나라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죄 없이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가 부활했듯이 죄 없이 무력화되어 버린 종부세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다. 투기, 불로소득, 부동산값 폭등, 부동산 양극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보유세 강화 정책의 필요성도 사라질 수가 없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종부세 지키기 전투에서 작은 몫을 담당해 왔지만, 이제 종부세에 대한 미련은 버리려고 한다. 한나라당이 종부세를 존치하는 것처럼 위장을 하더라도 종부세 시대는 끝났다. 보유세 강화 정책이 없는 종부세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종부세 취지는 정당하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종부세보다 더 좋은 보유세, 국토보유세

종부세 시대가 끝났다면 이제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이야기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부터 종부세보다 더 좋은 보유세 강화 정책을 구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헌재가 종부세에 '십자가형'을 언도하면서 '겉치레용'으로 활용한 합헌 판정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자유롭게 더 좋은 보유세를 구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진보신당은 발빠르게 토지와 주택은 물론 상가와 오피스텔, 아파트 분양권 등 개인이 가진 모든 부동산에 대해 빠짐없이 합산 과세하는 '부동산 부유세'를 제안했다. 좌파 정당다운 발상이다. 더 좋은 보유세를 구상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칭찬할만하지만 내용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담보할 새로운 보유세의 이름을 국토보유세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세금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세율이나 과표 구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지만, 그것은 시뮬레이션 작업을 거친 후에 결정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원칙을 밝히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첫째, 국토보유세는 국세로 한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또 지역간 재정 격차를 막고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국세 보유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동안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들과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재산세는 모든 나라에서 지방세다'라고 주장해 왔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예컨대 스웨덴과 벨기에가 보유세를 국세로만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과 멕시코가 국세 보유세를 두고 있다.

둘째, 국토보유세는 토지에만 부과한다. 과세 대상자는 나대지와 주택분 토지를 일정액 이상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현재 별도합산해서 낮은 세율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는 사업용 토지도 함께 합산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면밀한 검토를 거친 후에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토지와 건물을 통합 과세하는 현행 종부세는 건물에 과세한다는 점에서 결함을 가진 세금이다.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건물 보유세는 세부담이 전가될 뿐 아니라 건물의 신축과 개축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나쁜 세금으로 분류된다. 반면 토지 보유세는 세부담이 전가되지도 않고 토지 이용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세금으로 분류된다. 경제정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 노력의 소산인 건물에 대해서는 과세를 피하고 자연의 선물이자 사회 공동체의 공동 노력의 소산인 토지 및 토지가치에 대해서는 무겁게 과세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앞으로 도입해야 할 새로운 국세 보유세는 토지에만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물을 국토보유세의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주택 따로, 토지 따로 합산과세하고 있는 현재의 방식을 벗어나서 나대지와 주택분 토지를 합쳐서 합산 과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종부세 도입 이전에 있었던 종합토지세는 나대지와 주택분 토지를 별개로 취급하지 않고 함께 합산했는데, 그 방식이 이론에 좀더 부합한다. 주택 따로, 토지 따로 합산 과세하는 현행 방식은 토지 과다 보유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따라서 종합토지세처럼 국토보유세도 나대지와 주택분 토지를 묶어서 합산 과세한다.

주택분 토지의 평가는 예전 종합토지세 부과 시의 평가 방법을 개선해서 활용하면 된다. 다만 아파트 대지의 가치가 크게 저평가되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전체 가치에서 건물의 잔존가치를 공제하는 잔여가치법을 활용하면 금방 해결된다. 그리고 주택의 공시가격과 토지의 공시가격(즉 공시지가)의 시가 반영 비율이 다르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 또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여하튼 국토보유세를 새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토지 평가 제도의 개편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재산세는 기본적으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국토보유세와 합쳐서 세부담이 선진국 수준이 되도록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한다. 보유세의 세율은 단일 세율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론이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으로 실현불가능한 방법이므로 누진세 방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국토보유세의 누진도를 현행 종부세보다 조금 완화하는 문제는 고려해 볼 수 있다.

넷째, 국토보유세 수입은 교부세로 전액 지방에 교부하거나 경제에 부담을 주는 나쁜 세금을 감면하는 데 사용한다.

종부세의 부활을 기대하며

보유세를 강화하고 경제에 부담을 주는 나쁜 세금들을 감면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다.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비록 노무현 정부만 성공을 거두었지만 역대 정부 모두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종부세 죽이기'는 바로 이 중요한 정책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수레바퀴를 다시 앞으로 돌릴 수 있는 대안은 분명 있다. 앞으로 이 대안에 공감하는 정치세력이 나와서 정책으로 실행하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빌라도와 유대인 무리가 공모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부활했듯이 종부세도 더 좋은 모습으로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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