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중소기업 기어는 이미 헛돌고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중소기업 기어는 이미 헛돌고 있다"

[르포]"은행은 적, 대기업은 상전…정부가 현장 너무 몰라"

기업 경영자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농담이 "한국에서 중소기업 하는 사람은 상 줘야한다"는 말이다. 중소기업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경기위축'이 일상화된 시기가 되면 중소기업의 부담은 대기업의 두 배로 늘어난다. 환율인상·원자재값 상승 등 거시경제 환경 변화에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현금결제 미루기 등 권력관계에 따라 파생되는 어려움도 동시에 겪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일반 서민 가계의 부담 가중으로 돌아온다. 중소기업 종사자가 노동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취임 이후 줄곧 대기업 챙기기에만 관심을 보이던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들어 부쩍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은행들에게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독촉하는 등 '은행 옥죄기'를 통해 중소기업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일선의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현 위기상황과 정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생산비 두 배에 관급공사에도 하도급 신세…"올해 못 버틸까 걱정"

지난 12~13일 <프레시안>이 만난 지역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남은 올해를 어떻게 버틸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아산 일대에 콘크리트 수로관(벤치플륨)을 공급하는 ㄱ업체 김영식 대표(64, 가명)는 원자재 가격이 너무 올라 걱정이다. 제품 특성상 매출에서 관급공사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 정책이 나쁘지 않지만 생산단가를 맞추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철선은 올해에만 두 배가 올랐어요. 작년에는 ㎏당 560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1400원이거든요. 게다가 기름 값도 올라 걱정입니다. 12시간 이상 고온에서 양생해야 하는데 기름 값이 리터당 700원에서 1200원으로 뛰었어요. 부담이 커져서 LPG보일러로 얼마 전에 바꿨는데 이제 정부가 LPG값도 올려버렸잖아요. 이거 큰일입니다."

도저히 견디다 못해 이 회사는 얼마전 납품단가를 9% 정도 인상했다. 제품 특성은 다들 비슷한데다 지역마다 경쟁업체가 많은 상황이라(천안 3개 업체, 아산 4개 업체) 가격인상은 수주경쟁력 저하로 떨어지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매출에서 관급공사 비중이 절반이면 그나마 경기는 덜 타는 편 아니냐"고 물었더니 모르는 소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이 제 할 일을 안 하고 수주를 사실상 대기업에 떠넘겨버렸기 때문이다. 관급 공사 업체도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는 소리다.

"관급공사도 다 대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어요. 분리발주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까요. 지난 정권 때 수의계약제도 폐해를 없애겠다고 분리발주제를 시행했는데 처벌조항은 안 만들어놨어요. 대기업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거지. 결국 대기업이 관급공사를 싹쓸이한 다음 조그만 회사들을 경쟁입찰시켜요. 하도급 체제가 여기서도 구축되는 셈이지요."
▲천안 지방 ㄱ업체는 관급공사에 매출 상당량을 의존하는 소규모 기업이다. 이 회사 김 대표는 오직 수십년 간 일만 보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내년에도 회사가 살아남을지를 걱정한다. ⓒ프레시안

분리발주제란 하도급 체제의 폐해를 막고자 만든 입찰제도로 각 업종별로 발주처를 달리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에서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만들면 콘크리트, 철선, 섀시, 유리창 등 각 품목별로 따로 발주시키는 방식을 말한다.

"정부가 SOC투자 늘려도 과실은 대기업만 따 먹어"

김 대표는 "이대로 가다가는 소기업은 도저히 못 살아 남는다"며 "관이 귀찮더라도 각 자재를 일일이 분류해서 발주해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SOC 투자 늘린다고 번드르한 소리를 해도 이런 세밀한 부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과실은 대기업만 따먹는다"고 하소연했다.

이 지역의 다른 건설자재 납품업체 최형석 대표(가명)는 "정부가 결국 우리 같은 조그마한 기업을 죽여서 대형 건설사를 살리려는 꼴"이라며 "지역 업체 사장끼리 모이면 모두 한숨만 늘어놓는다. 내년까지 못 버틸 것이라는 공포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납품단가 수년째 제자리…유동성 공급? 대기업 횡포는 여전한데

'현장을 모른다'는 불만은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틈만 나면 털어놓는 말이다. 정부가 당장 눈에 보이는 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고 있지만 모두 대기업을 위한 것일 뿐, 실제 지역 경제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에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지역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유동성 공급 등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 말고 작지만 기업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부문에 보완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특히나 고질적인 폐해인 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문제 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자재를 납품하는 한 지방 납품업체 이동석 영업계장(가명)은 "정부가 아무리 번드르한 대책을 내놓으면 뭘 하나? 납품단가를 현실화시키는 게 가장 시급하다. 납품단가 현실화가 안 돼 우리는 18년 간 제대로 물건 값을 올리지 못했다"는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원재료 가격 인상 때마다 특히나 되풀이되는 대기업의 전형적인 '가격 부담 떠넘기기'다. 대기업이 최소한의 물가상승률도 거의 반영해주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들이 함부로 납품단가를 올리겠다고 통보할 수도 없다. 대기업이 계약관계를 끊는다면 회사 미래도 끝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아무리 중소기업을 위한 특별금융혜택 등의 대책을 내놔도 임시조치에 그칠 뿐이다. 최근 거시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몇몇 대기업이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내는 배경에는 이런 납품단가 쥐어짜기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역시 안산에서 대기업에 생산품을 납품하는 한 전자업체 부사장도 "죽지 않을 만큼만 이윤을 남겨준다. (납품 가격 현실화는) 말도 안 되는 요구"라며 혀를 찼다.

중소기업이 제품 판매에 따른 순이익을 늘리지 못한다면 자연히 인건비 인상도 어렵다. 이는 사원 복지·연구개발비 투자 등 사내 재투자로 이어질 고리를 끊는다. 당연히 좋은 인력이 흘러들어가지 못한다.

한 지역 철강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이제 회사를 돌리지 못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중소 제조업체가 다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현장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에 의지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니 자연히 직원 월급을 올려주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경기침체에 따른 문제기도 하지만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은행은 적, 납품업체는 상전…돈줄이 말랐다"

특히나 신용경색이 심화되자 자금압박은 중소기업 현장도 예외 없이 덮쳤다. 중소기업은 은행의 자금상환 압박에 납품업체의 수금 거부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연매출 규모가 수백억 원대인 포항의 한 건설자재 납품업체 고위경영자 박경석 씨(가명)는 "돈이 아예 없다. 아무리 회사가 건실하다고 말해도 은행에서는 이제 건설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얼마 전 한 지역 건설사의 아파트 건설에 물품을 납품했다. 약 50세대 규모의 건설사업이었다. 그런데 분양성적은 달랑 3가구가 고작이었다. 건설사에 들어온 돈이 없으니 이 회사도 수금이 안 됐다.

박 씨는 "처음 계약할 때는 '회사 담보가치도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미분양 나면 담보를 물고서라도 수금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너무 돈이 안 들어와서 직접 찾아가니 '은행에서 분양이 안 됐으니 돈을 대출해줄 수 없다'고 했다더라. 그 회사 사장은 담보로 잡은 집이 날아갈 판이더라. 그냥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현금 대신 아파트분양권으로 결제"
▲'대통령 효과'가 기대됐던 포항 역시 건설경기가 바닥이다.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현금이 돌지 않자 대물로 결제를 대신하는 행태가 만연했다. 공사가 중단된 포항 양덕지구 우방유쉘 사업장 건너편에 미분양이 속출한 풍림 아이원 아파트가 보인다. ⓒ프레시안

현금 결제가 안 되니 대물로 결제하는 일이 지역에서는 이미 관례가 됐다. 건설사가 현금 대신 아파트 분양권을 대신 주면, 납품업체에서 이를 시장에 되팔아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박 씨는 "모 건설사의 아파트에 자재 1억5000만 원어치를 납품했다. 분양가 1억6000만 원짜리라면서 대물을 주더라. 방금도 이걸 팔려고 대구까지 갔다온 길이다. 1억4000만 원에 판다는 데도 사려는 사람이 없더라"고 했다.

박 씨의 말에 따르면 건설업체 분양률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분양성적이 높아야 건설업체가 은행에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원, 납품업체 관계자 명의로 '일단 분양률을 높이고 보자'는 식의 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역시 돈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박 씨는 "아파트 분양률은 절대로 믿지 마라. 1세대 분양되면 1세대분 밖에 대출이 안 되니 직원 명의로 분양금 소액만 걸어놓고 언론에 발표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나마 지난 정권과 현 정부의 아파트 공급 강화 대책의 덕을 보지 않을까? 내년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 정책이 기대가 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여기 포항에도 집이 텅텅 비는 판국인데 전국에 그렇게 건설바람을 불러서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그럽니까? 정부가 시장에 너무 개입했습니다. 어차피 돈도 안 들어오는 판인데 전국을 다 '개발호재'로 만들어놓으면 뭐합니까? 정부가 눈에 보이는 기어만 잘 돌아가게 만들어서 칭찬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작 제일 밑에 있는 중소기업 기어는 이가 다 빠져서 헛돌고 있는데."
정부 "일단 유동성 공급한다. 나머지는 알아서…"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위기감은 정부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는 유동성 공급 방안을 '추가로' 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좀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정부가 기업 현장 곳곳에 돈이 스며들도록 관리하는 데는 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정부가 발표한 신용시장 경색 해소 방안은 △은행 유동성 해결 △은행연합회의 건설사 대주단 운영협약 확대 실시 △10조 원 규모 채권 안정 펀드 조성 등이다.

풀어서 보면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등 국가의 곳간이 은행채를 사들여 이 돈이 기업현장에 스며들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건설사는 대주단 협약에 가입해 유동성 문제를 푸는 대신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에도 동참하라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시장은 자세한 얼개가 없는, 땜질처방식 대책이라고 정부 정책을 풀이한다. 기업 관계자들의 경우 하나 같이 정부 정책에 '어떻게 기업 현장에 골고루 돈이 돌도록 할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당장 자금시장도 정부 안을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대책이 발표된 당일 오히려 금리는 5년 만에 최대치로 폭등했다. 불안감은 여전히 커지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