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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자본 쫓는 '늙은' 노동,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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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첨단' 자본 쫓는 '늙은' 노동, 변해야 산다"

[비정규철폐 일만행동 일만선언] 한국 사회와 비정규직 문제

기륭전자, KTX승무원, 이랜드, 코스콤의 공통점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 중인 사업장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들의 공통점은 '간접 고용'에 있다. 간접 고용이 너무 고통스러워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파업이거나 혹은 간접 고용으로 바꾸려는 사용자에 맞서 싸우는 곳이다.

내가 일하는 사업장과 내가 돈을 받는 회사가 서로 다른 것이 바로 간접 고용이다. 외환 위기 이후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도한 구조조정이 거대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면서 기업들은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노동자를 사용하되,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는 용역·도급·파견 등 간접 고용 형태가 바로 그 좋은 '수'였다.

그리고 이제는 직접 고용 비정규직보다 간접 고용 비정규직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쎄게, 오래' 싸우는 곳이 모두 간접 고용과 관련된 곳이라는 사실은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23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일만선언, 일만행동'에 맞춰 진행한 집담회에서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이 "간접 고용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에 있다.
▲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일만선언, 일만행동'에 맞춰 진행된 집담회는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김동우 민주노총 비정규부장, 김종호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이 참여했다. ⓒ프레시안

이날 집담회는 '일만선언, 일만행동'에 맞춰 현재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노동계의 대응 방식과 대안 등을 모색해 보기 위해 마련됐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집담회에는 윤애림 위원 외에 김동우 민주노총 비정규부장, 김종호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본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첨단이 아니"라고 했다. 기업과 정부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규제조차 피해가면서 가장 편하게 노동자를 사용하는데, 여전히 노동계는 평균 나이 45~50세인 조합원들에게 발이 묶여 있다.

비정규직 800만 명의 시대에 4인 가족의 1명 이상은 비정규직이라는데도, 여전히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의 일'로 받아들이게 할까를 모색해야 하는 수준이다.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하나 같이 파업은 해결책 없이 길어만 진다.

이런 상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들이 생각하는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우리는 '첨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 비정규직 문제를 지금 한국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날 집담회는 그런 고민을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다.

다음은 지난 22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집담회의 전문이다.

"기륭전자, KTX승무원, 이랜드, 코스콤의 공통점? 간접 고용!"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프레시안

하종강 :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얘기해보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와 다른 나라와의 비교, 노동계 내부의 대응 방식 등 다양한 얘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싸움의 대표적인 사업장은 4곳 정도다. 기륭전자, KTX·새마을호 승무원, 이랜드, 코스콤이 그것이다. 우선 노동법을 다루는 전문가 입장에서 윤애림 정책위원은 어느 곳에 제일 주목했나?

윤애림 : 4곳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모두 '간접 고용'과 연관이 있다. 간접 고용화(化)되는 것이 문제가 되거나, 아니면 간접 고용된 이후가 문제가 되거나 그렇다.

이랜드로 설명을 해보면, 이랜드는 캐셔들이 처음엔 이랜드와 직접 근로 계약 관계에 있는 '직접 고용 비정규직'이었다. 1년 단위로 근로 계약은 했지만 사실은 일상적으로 기업에서 활용해 왔다. 이것만 봐도 우리 기업이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는 이유가 임시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계약이라는 방식으로 노동 인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파업 직전에는 계약 기간이 점점 줄어갔다. 1년에서 6개월 단위, 3개월, 심지어 말이 안 되는 0개월 근로 계약이 등장한다. 결국 외주화를 위해서였다. 이제는 기업이 직접 고용 비정규직마저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노동법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기 위해 도급업체로 떠넘기려고 한 것이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화물연대 등이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장기 투쟁 사업장 중 다수가 간접 고용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많은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 중에 기업이 갈수록 간접 고용 아니면 특수 고용을 선호하는가? 한 마디로, 간접 고용은 사용자가 모든 책임을 쉽게 회피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현재 법이 그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또 우리 노동운동도 원청이라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노동력의 임시적 사용만을 위해서라면 기업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대체 왜 기업은 간접 고용을 선호하는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김동우 민주노총 비정규부장. ⓒ프레시안

하종강 : 현재 특수고용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예전에는 직접고용 노동자였음을 봐도 알 수 있다. 1989년에 16명의 학습지 교사가 우리 연구소로 상담하러 온 적이 있었다. 퇴직금을 못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따져보니 못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학습지 교사 가운데 처음으로 그 16명이 퇴직금을 받아 냈다. 그런데 그 이후 학습지 회사들이 개발해 낸 방법이 바로 특수고용직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김동우 :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은 윤애림 정책위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이 모두 장기투쟁으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간접 고용의 경우 원청이 외면하면 교섭장에도 데리고 오지 못하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물론 우리 역량의 한계도 있다. 현장에는 그런 답답함이 많다. 그러니까 이런 1만인 선언, 1만인 행동과 같은 고민도 하는 것이겠지만.

하종강 : 해방 이후 노동자들이 간신히 얻어낸 규제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98년 파견법도 그런 연장선이다. 당시 정부의 논리는 '다른 선진국도 다 그렇게 파견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은 입법 취지가 파견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일본만 거의 유일하게 파견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법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갔다.

윤애림 : 노동부에서 파견법 입법을 추진한 것은 1993년부터였다. 원래는 청소와 경비, 2개 업종에서만 사용되던 용역업에서 직업안전법 위반이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많이 나왔고, 90년대부터는 제조업 사내 하청이 시작됐다. 때문에 정부는 처음에 간접 고용 사용에 있어 위법이 너무 많으니 실태조사를 통해 규제를 하겠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양성화시켜 규제하겠다는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파견법이 실제 파견 노동자들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과도한 사용을 규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노골적으로 규제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파견이라도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 김종호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집행위원장. ⓒ프레시안

하종강 : 비정규직 문제도 노동부의 태도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니 어쩔 수 없고 다만 차별을 줄여보겠다'는 듯하다. 간접 고용 얘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조직 노동 내에도 간접 고용이 많지 않나?

김종호 : 예전에는 직접 고용 비정규직이 많았지만 지금은 간접 고용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파견법 통과 이후는 더 확대일로에 있고, 위험 수위에 있다. 일본 얘기가 나왔는데, 6월에 일본에 갔더니 한국에도 언론에 보도가 됐던 얘기다. 파견 노동자가 차로 사람을 치고 내려서 칼로 불특정 다수를 찔러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며칠 전에도 비정규 노동자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다 파견 노동자다.

일본에서 벌어진 파견 노동자의 정신적 피폐성의 위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간접 고용 문제는 결국 노동의 의제를 넘어 사회의 의제가 돼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들의 의식 자체가 바뀌어야 우리가 고민하는 법안의 문제도 해결이 된다.

"'간접 고용은 안 된다'는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하종강 :자연스럽게 해법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간접 고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윤애림 : 현재 싸우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사례를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간호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강남성모병원의 직접 고용 계약직이었다가 2006년 10월에 파견업체로 가게 됐다. 사실은 현재 파견법상 간호보조는 파견 허용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간병인으로 신고를 해서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근무조건은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단다.

▲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프레시안

그리고 2년이 되니까 파견법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또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사람을 쓰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를 놓고 봐도 동일한 노동자가 동일한 사업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는데 기업의 인사 계획에 따라 어떤 때는 계약직, 어떤 때는 파견직인 것이다.

얼마 전 대법원 판례가 나온 예스코도 마찬가지다. 최초에는 극동도시가스의 계약직으로 2년, 그 다음에는 파견직으로 사용하다가 아예 도급업체로 넘겼다가 다시 직접 고용으로 만들었고 마지막에는 계약 해지가 됐다. 그런데 이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봐야한다고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이들의 근속기간은 10년 가까이 된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왜 그런가?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간접 고용은 사회적으로 용인돼서는 안 되는 고용 형태'라는 것을 사회적 여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 활용의 실태를 봐도 그렇다. 정말 기업이 노동력의 임시적 필요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직접 고용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면 된다. 간접 고용은 허용될 이유가 없다.

김동우 : 간접고용 문제가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지금에서야 의제화되고 있다. '용납되서는 안 된다'는 수준이다. 전면적인 의제화에 대한 요구가 지금 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만나게 되는 첫 사람부터 저녁에 퇴근할 때 만나는 사람까지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문제는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이다. 또 법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만들고 손봐야 하는 것인가도 고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자기 목소리 낼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하종강 : 최근의 성신여대 사례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미조직 상태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김종호 : 성신여대 싸움은 학생들의 연대도 있었지만 다른 학교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도움도 있었다. 고려대, 덕성여대 등에서 지원이 많았다. 성신여대를 중심으로 연대 세력이 확산됐기 때문에 학교도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김동우 :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 만들고 싸움을 시작하면 이곳저곳에서 많이 연대에 나선다. 코스콤처럼 나쁜 경우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달라붙는데 문제는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전 사회적인 여론이 중요하다. 아직도 간접 고용에 대해서 우리끼리 얘기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 문제다.

"우리보다 비정규직 적은 유럽도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 논쟁거리다"

하종강 :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 말고 관심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얘기해보자. 비정규직 문제가 왜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제가 돼야 하는 것인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 경쟁력, 기업 경쟁력을 머리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 가치가 모든 것에 군림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정말 많은 것 같다.

윤애림 : 다른 나라 얘기를 해보겠다. 유럽연합(EU)이 최근 회원국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유럽 전체 노동자의 40%가 비정규직이었다. 물론 나라별로 편차는 있지만, 40%라는 수치 때문에 유럽 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최근 10여 년간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기간제는 전체의 14% 정도다. 물론 50%에 달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적은 것이지만, 독일에서는 이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독일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다. '비록 비율은 10% 남짓이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다 기간제이거나 파견직이다.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층의 첫 직장이 모두 기간제 아니면 파견직이 된다는 얘기다. 일자리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위기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도를 넘어섰다. 특히 제조업은 사내하청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다. 정규직으로는 뽑질 않는 것이다. 현대 모비스나 동희오토처럼 100% 비정규직으로 운영되는 공장도 있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비정규직, 저임금, 무권리의 일자리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대 대졸자 여성임에도 간접고용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었던 KTX 승무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일부 희생해서라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지금대로는 안 된다. 노동자는 지난 1998년 이후 10년 간 꾸준히 희생해 왔다. 수출이 늘고 기업이 성장해도 국내 고용은 줄고 일자리는 더 나빠졌다. 이제는 자본가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때다. 국민적 공감대도 있다고 본다.

▲ "최근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와 더불어 지난 10년에 대한 연구 및 결산을 진행 중인데, 노동자에게 가장 큰 무기인 의식이 우리에게 없다. 5년 전부터 비정규직 조직화도 하고, 기금도 모으는 등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자고 하고 있지만, 만족할만한 해답이 안 나온다. 다시 사회 의제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이유다." ⓒ프레시안

김동우 : 국민적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있다.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오히려 튀어 오를 줄을 모른다. 취업이 너무 어렵다 보니 사회에 반항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순응하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로 인해 노동자 계급성이 약해지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와 더불어 지난 10년에 대한 연구 및 결산을 진행 중인데, 노동자에게 가장 큰 무기인 의식이 우리에게 없다. 5년 전부터 비정규직 조직화도 하고, 기금도 모으는 등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자고 하고 있지만, 만족할만한 해답이 안 나온다. 다시 사회 의제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이유다.

김종호 : 양극화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양극화는 곧 삶의 질의 문제이고, 이는 또 곧 비정규직의 문제다. 의제화도 결국 그렇게 접근하면 쉬울 것 같다. 당신이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다. 나도 비정규직이고 내가 양극화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두 번째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얘기가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분명히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상시 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여론 조성이 필요하다.

"현재 벌어지는 투쟁 사업장의 승리에 민주노총이 총력을 쏟아야"

▲ "현재 진행 중인 사업장에서의 승리가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승리를 얻어 낼 경우 민주노총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 사기도 높아진다. " ⓒ프레시안

윤애림 : 사회 의제화가 별도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운동이 잘 되면 사회 의제화도 잘 된다. 민주노총이 합법적인 지위를 얻기도 전에, 96~97 총파업이 여론의 호응을 얻으면서 진행됐던 것도 그렇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이해만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투쟁이면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랜드의 파업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여론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장에서의 승리가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승리를 얻어 낼 경우 민주노총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 사기도 높아진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 동안 알려지지 않은 해고자나 권리를 빼앗긴 사람은 훨씬 많다. 다만 너무 힘들어서 싸움을 포기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조직 노동자가 해줘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을 뚫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된다. 민주노총의 총력을 쏟아 부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다.

김종호 :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저들'도 잘 알고 있다. 기륭전자만 해도 국정원, 경찰 등에서 '절대로 합의로 풀면 안 된다'고 했다지 않나.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것을 잘 알기에 그런 것이다.

하종강 : 민주노총이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운동이 가지는 전반적인 한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촛불 정국만 하더라도 기존의 운동 조직이 만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비정규직 의제도 기존의 운동 조직이 아닌 새로운 집단에 의해 폭발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 자리에 있는 기존의 운동 조직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동우 :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정말 놀랐다. 나뿐 아니라 현장에서 운동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을 것이다. 광화문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와!'하고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이 다음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 다음에 30만이 모였고, 또 다시 100만이 모였다. 비정규직 의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100만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준비된 주체들이 촛불처럼 뒤만 쫓으면서 헤매서는 안 된다.

김종호 : 지금도 비정규직 문제가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3일 일만선언, 일만행동이 비정규직 문제의 확산의 계기가 분명히 될 것이다. 제2의 촛불로 번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동우 : 그러기 위해서는 좀 꾸준해야 할 것 같다. 광우병 문제도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었기에 터져 나온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 전에 상반기 계획을 세우면서 광우병, 물 사유화, 교육, 의료, 대운하 등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 씩 '주간 행동'을 선포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 이후 7월 총파업으로 간다는 고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전에 시민들이 먼저 들고 나왔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발상의 전환이 우리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태지가 청소년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는 있지만 팬클럽 조직율은 높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하종강 : 외국 사례를 좀 얘기해보자. 다른 나라에서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 사례는 없을까?

윤애림 : 유럽은 우리보다 비정규직이 많지 않다. 차별도 우리보다는 덜하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문제는 유럽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노동하는 빈민'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오히려 자본의 전략이 최첨단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나라도 그런 방향이다. 그런데 차이점은 유럽에서는 규제가 된다. 노동법만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다. 사실은 노조의 힘의 차이다. 법이 규제하지 못하는 것까지 촘촘하게 규제하는 것은 노조의 힘과 단체협약의 힘이다. 특히 단체협약 적용률이 상당히 높다.

반면 한국의 장점은 비정규직 주체의 역동성이다. 유럽은 이제야 노조가 나서 '파견 노동자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수준이다. 우리처럼 조직 노동자들이 노력하는 곳도 없다. 우리 노동운동이 가지는 선진성은 분명히 있다. 한국처럼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가 잘 되는 곳도 없다. 이 강점을 살려야 한다.

하종강 : 유럽도 결국 자본가의 양보에 의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우위로 쟁취한 것이다. 조직률이 낮아도 실제 헤게모니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단체 협약 적용률 덕이다.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은 8~9% 수준이지만 단협 적용률이 80%를 넘는다. 그러니까 8~9% 조직이 파업을 하면, 비조합원은 물론이고 학교까지 문을 닫는다.

그런 발상의 전환이 우리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태지가 청소년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는 있지만 팬클럽 조직율은 높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김동우 : 문제는 조합원의 고령화다. 군사독재 시절 노조하기 위해 목숨 내 걸고 싸웠던 조합원들이 지금 모두 45~50세다. 그런데 이들에게 다시 싸우자고 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 현실에 맞게 필요한 일이 있는데 우리는 준비 태세가 안 돼 있다. 자본과 정부는 첨단인데 우리는 첨단이 아니다.

윤애림 : 활동가들이 촛불이 타오른 시청에서의 기억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사실 제일 열악한 사람들은 당시 촛불도 들지 못했다. 먹고 살기가 바빴기 때문이다. 대부분 노조조차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중소영세 사업장이다. 물론 이런 곳은 당장 조직률이 수치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속에 파고들 때 당장 조합원은 안 된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밝히는 촛불에는 함께 할 수 있다.

하종강 : 가시적인 효과는 없더라도 큰 흐름에서 볼 때는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비정규직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희망이 없다. 사회 전체가 심각한 문제에 처할 것이다. 그 해법을 찾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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