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시 청사가 문화재 지정을 불과 반나절 앞두고 허물어졌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정하고 한 일이다. 법률적 절차와 문화재청의 행정절차에 관한 문제는 다음에 따지자. 일단, 서울시청의 청사 한 구석이 허물어진 것은, 오세훈 시장이 한 일이다.
따져보면, 한때 오 시장은 환경운동연합의 가장 상위결정 단위의 중앙집행위원이고, 겨우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이나 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한참 높으신 분이었다. 여담이지만, 1기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물러난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이 나와 같이 정책위원을 했었다. 물론 변호사나 전문가들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에 이름을 올리기는 하지만, 내가 전해들은 얘기로 오세훈 시장은 상당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녹색정치'를 내걸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공약들 중 황당한 것들이 많이 끼어 있어 후배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당시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가 "좀 봐줘라" 하면서 무마한 일도 있다. 그 정도의 인연으로, 나도 어지간하면 다른 환경활동가들과 충돌하기 싫어서 오세훈 시장의 행정에 대해서는 좀 지적을 덜 하는 편이다.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 역사적 유물이며, 고등학교 야구의 심장부인 동대문 운동장 부순 게 얼마 전인데, 또 사적을 부수는 것인지, 도대체 제 정신인지, 문화적 양심과 미적 감각은 어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것이 아닌지, 그 뇌 구조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창의' 시정이라고, 시청 앞 스케이트장에 알록달록하게 미적 감각은 무시한 그림이나 그리고, 촛불집회 싫다고 장마철에 잔디를 새로 심는 엽기적인 일을 벌인 것으로도 부족해, 이제는 '디자인 서울'을 몇 달 외치더니 시청을 리노베이션 한다고 한 번에 부수는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다.
오세훈 식으로 문화와 디자인을 생각하면, 로마 유적 중 남아있을 것들은 하나도 없고,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던 중세의 성들은 이미 모두 부수어졌어야 할 것이고, 몇 번씩 침략을 받고 심지어 아랍인들까지 쳐들어왔던 부다페스트의 다양한 고적들은 벌써 철거되었을 것이다. 디자인? 오세훈식 디자인은, 고적부터 부수고, 유물부터 철거하는 것인가? 파괴의 화신이냐, 불도저의 현신이냐, 이도저도 아니면 '대선병' 때문인가?
숭례문이 불타는 날, CNN에서는 이 건물이 일제 시대에도 보존되었고, 한국전에도 보존되었다고 보도했다. 정말 낮 뜨거워서 죽는 줄 알았다.
서울시청 건물도 마찬가지다. 한국 전에도 보존되었고, 군사 정권을 몇 번이나 거치고, 다시 민간 정권이 또 몇 번 바뀌고, 심지어 '불도저 이명박'이 시장할 때에도 버틴 건물이다.
오 시장은 잠깐 시장 하다가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그 건물은 또 다른 천년을 보존하며 우리가 되새기고 생각해야 할 일제부터의 기억과 건국, 그리고 근대화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이다. 우리 모두의 재산이다.
숭례문이 무너지고 방화범이 말했다. "다친 사람 없으면 복원하면 되는 것 아니냐?"
경제학적으로 얘기하면, 최소한 10조 원 이상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건물을 오 시장이 부순 것이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새 청사 지으면서 리노베이션 하면 됩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손대고 복원한 문화재는 가치가 1/100 이하로 줄어든다.
청사를 부수는 것을 보면서 공식 하나를 제시하고 싶다. '창의 + 디자인 + 오세훈 = 불도저식 문화재 파괴범'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이 정도의 해괴한 일이 벌어지면 시장 자진 사임감이다. 어차피 물러나라고 해도 물러날 것 같지 않으니까 물러나라고는 안하겠다.
그러나 제발 좀 그만 부숴라. 창의 시정 한다고, 새로운 디자인 감각으로 서울을 리노베이션 한다고 오세훈식 감각으로 서울을 온통 부술 것이 같은데, 제발 좀 그만 부숴라.
당신이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고 로마를 불태우라고 명했던 네로 황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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