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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유전자 정보채취로 '성범죄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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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유전자 정보채취로 '성범죄 예방'?

인권단체 "실효성 없다…국가감시체제만 강화"

정부가 지난 4월 대구 아동 성폭력 사건 등 잇따르고 있는 아동 성범죄 대책의 일환으로 성폭력범죄에 대해 가중처벌하고 전자발찌 부착,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채취 등을 앞당기거나 적극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계에서는 정부가 아동 성폭력 발생의 주요한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으며 강력한 형벌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다산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9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아동 성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사회단체'는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정부의 조치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 감시권력만 강화하고 아동성폭력범죄 예방과 재발 방지에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가혹한 형벌이 오히려 더 흉폭한 범죄 낳을 수 있어"

정부가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13세 미만의 아동을 상대로 강간, 유사성교행위, 강제추행 등의 성폭력범죄를 범한 자에게 그 처벌 수위를 상향 조정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2006년 국회에 제출되어 계류 중인 유전자감식 정보 수집에 관한 법률도 빠른 시일 내에 통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당초 올 10월 시행될 예정이던 전자발찌 부착제도는 지난 4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행 시기가 한 달 앞당겨지게 됐다. 전자발찌 부착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소위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성폭력범죄자에게 석방 후 10년 내로 전자발찌를 채우고 위치 추적을 통해 감시하는 방안이다.

이처럼 아동 성폭력 범죄자를 가중처벌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두고 인권단체는 "정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가중처벌의 입법을 그 대응책으로 내놓았다"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 동안 학계에서 누누이 지적되어 왔듯 '형벌을 통한 위협주기'라는 발상은 모든 국민을 협박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정책"이라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이라는 헌법적 요청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가중처벌정책이 범죄예방에 기여한다는 명제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정책은 범죄자가 체포 등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하는 등 더 흉폭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3년 수형자 9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분석에 따르면, 범죄자라는 낙인효과를 크게 느낄수록, 그리고 교도소수감으로 인해 사회적 긴장과 박탈감을 크게 느낄수록 향후 범죄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중처벌이 오히려 재범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자발찌와 유전자 채취… 확대 적용 가능성 무시 못해"

인권단체는 "정부가 전자발찌제도나 유전자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 같은 조치가 성폭력범죄자와 같은 강력범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하지만, 향후 다른 범죄자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보다 먼저 전자발찌를 사용한 미국과 영국에서 이 제도가 재범방지에 효과적인가는 아직 제대로 검증된 바가 없다"며 "정부는 성급하게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단순한 위치추적만으로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지 알 수 없으며, 어떤 장소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더라도 피해자가 신고나 고소를 하지 않는 이상 범죄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언제 할지 모르는 재범 때문에, 또 할 지 안 할지도 모르는 재범의 위험성 때문에 그의 모든 사생활이 감시된다면 이것은 엄청난 인권침해의 결과가 될 것이 자명하다"며 "24시간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하고 그 사람에게 노이로제, 신경쇠약 등 정신질환을 유발시킬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유전자정보 채취에 대해 "유전정보는 개인의 민감한 신체정보이고, 체액이나 머리카락 등 신체의 극히 일부분을 통해서도 개인을 식별, 추적할 수 있다"며 "유전자 DB에 자신의 유전정보를 입력당한 개인은 평생 국가의 감시를 의식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며 국가 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도구"라며 "뿐만 아니라 해외 사례에서 보듯 유전자 DB의 구축은 처음에는 강력범을 대상으로 구축되지만, 향후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관된 DNA의 남용 가능성이나 감식 결과의 오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처벌의 가능성' 높이는 게 근본적 해결 방법"

한편, 성폭력범죄자를 상대로 치료감호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들은 "이중처벌의 성격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또 이미 폐지된 보호감호제를 부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징역형을 다 살고 나서 치료감호소로 이동해 또 다시 사실상의 구금생활을 하게 하는 것은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며 범죄자에 대한 낙인효과를 증폭시키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아동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성폭력을 근절시키는 대책이 될 수 있다"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공소시효를 중지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아동 성폭력 사건의 7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라며 "아동의 대처능력을 기르고 지역사회가 '방과 후 돌봄'이나 '등하교지원' 등의 활동을 통해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 내부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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