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국정 과제 이행 초기 3개월 플랜>에 미국산 쇠고기 검역 완화가 들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래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9일, 청와대에 해당 문서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다. 법에는 문서 공개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안에 공개 여부를 답변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청와대부터 법을 지키지 않는다. 이러니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하겠는가?
미국 정부는 지난 2월 17일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수량인 약 6478만㎏(1억4300만 파운드)의 쇠고기 회수('리콜') 명령을 내렸다. 주저앉는 소를 도축한 쇠고기가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는 한사코 이번에 주저앉는 소들은 광우병과 관계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미국 농무부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던 때에 실시한 조사 결과는 이와 다르다. 당시 조사에서, 주저앉는 소 29마리 가운데 20마리에서는 골절이나 외상과 같은 물리 치료적 결함을 찾을 수 없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대로, 이런 사실은 주저앉는 소는 골절 문제보다는 광우병 증세로 판정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세계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많은 나라 가운데,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나라는 오로지 미국밖에 없다. 캐나다도, 일본도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의 주저앉은 소 도축과 쇠고기 회수 조치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미국 도축장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래서 민변은 주저앉은 소 도축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에, 농림부에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이 사태에 대한 농림부의 조사와 대응책을 물었다. 그러나 농림부의 답변은 실로 놀라웠다. 아무런 직·간접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미국 농무부가 자체 조사를 마치고 회수 조치를 내린 뒤, 민변은 다시 한국의 농림부에 물었다. 이번에는 무언가 농림부가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농림부의 직무유기에는 미세한 변화조차 없었다.
이 글을 농림부 담당 공무원이 읽을 때면, 민변의 세 번째 자료 공개 청구서가 농림부에 접수되어 있을 것이다. 민변은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농림부는 미국의 주저앉은 소 도축과 쇠고기 리콜에 대해 어떠한 자료와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때까지 물을 것이다.
주저앉은 소 도축 사건은 미국 정부의 광우병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믿을 수 없으며, 이른바 '쇠고기 카르텔'에 좌지우지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도축장이 미국 정부의 광우병 위험 통제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실은 한국은 이미 당해서 잘 안다. 미국의 카길은 작년 5월에 광우병 위험 부위를 한국으로 수출했다. 미국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했다. 하지만 스위트프는 작년 10월에 광우병 위험 부위를 다시 한국으로 선적했다.
미국의 쇠고기 카르텔은 미국에서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레이몬드 미국 농무부 차관은 이달 초에 미국 하원에서 진술하기를, 약 1만 개의 업소가 리콜 대상 쇠고기를 취급했고, 지금도 매장 진열장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해당 업소의 명단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 발언을 듣고, 미국의 비영리 시민단체 '커먼드림스'는, '미 농무부, 회수 조치가 내린 쇠고기를 누가 먹든 농무부는 상관없다고 말하다'라는 글을 실어야 했다. 미국은 이미 2004년에도, 광우병이 발생한 텍사스 목장과 이 목장에서 쇠고기를 공급받은 업소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8일자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산체스라고 하는 미국 도축장 인부의 절규가 실렸다. 멕시코 계 이민 노동자인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는 병에 걸려 주저앉는 소를 전기충격기로 일으켜 세워 도축장으로 끌고 간 장본인이다. 이 장면이 미국 시민단체의 고발 동영상에 잡혔다. 도대체 왜 그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그는 감옥에서 이렇게 외쳤다. "감옥에 내가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는 회사에서 배운 대로, 회사가 지시한 대로 작업했을 뿐이라고 했다.
산체스의 용어를 빌자면, 책임질 자는 미국의 쇠고기 카르텔이며, 미국 정부다. 미국이 2006년에 주저앉는 소에 대한 도축 규제를 풀어 주지 않았다면, 산체스는 지금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광우병이 발생하자 2004년 1월에, 주저앉는 증상을 보이는 모든 소를 도축시키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2006년에 규제를 풀었다. 주저앉는 소라도 최초의 검사를 통과한 후에 주저앉으면 도축할 길을 열어 놓았다. 산체스가 전기충격기로 소를 일으켜 세워야 했던 까닭은 바로 이 최초 검사 기준에 합격시키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의 <미네소타데일리>는 지난 7일자 논설에서 미국의 쇠고기 산업에 도덕과 윤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를 갖추어야 할 곳은 그곳만이 아니다. 버시바우 대사와 부시 대통령의 도덕과 윤리는 미국인에게 맡기자.
우리는 어떠한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와대, 재정경제부, 농림부, 외교통상부의 공통점은 쇠고기 검역 완화에 대한 문서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국익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한미 FTA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달에 미국에 간다. 미국의 쇠고기 카르텔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이 순간도, 그 어디에서인가, 한국은 미국과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 광우병은 엄연히 한국 정부가 지정한 법정 전염병이다.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새 지침에도 광우병 발생 국가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검역을 강화하라고 거듭 반복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국내 소에 대해서도 광우병 검사 대상을 더 늘려야 한다. 동물의 피나 내장으로 만드는 사료를 모든 동물에게 일체 먹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쇠고기 카르텔보다도, 한미 FTA보다도 더 중요한 아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