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과거에 생각했거나, 현재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통한다는 인사말이다.
꼭 무엇인가 모종의 '모임'을 한 뒤거나, 대단한 '거사'를 앞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삼성에 맞서 싸우다 34개월 간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 노동자들끼리는 헤어질 때면 꼭 그렇게 인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짧은 한 문장의 인사말은 삼성이라는 이름이 삼성 노동자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일상적인 공포를 대변하고 있다. 그만큼 삼성의 소위 '무노조 경영'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원하는 사람들의 삶 곳곳에까지 그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가 아직도 통하는 곳, 삼성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뿌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동조합은 안 된다"는 유언이 좀 더 세련되고 치밀하게 모습만 바꿔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삼성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조의 필요성으로, 삼성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이태백)'를 넘어 '삼십대도 태반이 백수(삼태백)'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고용 불안, 20대 청년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수 밖에 없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이른바 '삼성맨'들이 느끼는 자부심을 무노조 경영이 가능한 배경으로 꼽은 것이다.
이는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자신의 회사 노동자들에게 당시 평균보다 2.5배 가량이 높은 일당 5달러를 지급한 것과도 비슷하다. 헨리 포드는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이유가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수준 높은 대우와 동시에 체계적으로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물론, 이런 체제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단지 경영진만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60년 전 제일제당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 온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공장 울타리에 관계없이 구조본 통제 아래 동일한 노조 탄압
그렇다면 어떻게 삼성에서는 1910년대에나 통했던 가부장적인 노사 관계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통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공장 울타리를 넘어 중앙에서부터 체계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무노조 경영 시스템에 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삼성의 노무 관리에 대한 각종 연구 보고서에서, 삼성의 노동자 통제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구조본, 과거 비서실)에서 기본 전략을 짠다고 말한다. 구조본은 보통 한 해에 6~8회 정도 노동자 통제 지침을 계열사 등에 전달한다.
그리고 구조본이 만들어낸 이 통제 지침은 비밀 조직 '지역대책위원회(지대위)'를 통해 현실화된다. 비록 삼성은 그 실체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지만, 구조본 인사팀 산하에 있는 지대위는 삼성 노무 관리의 핵심 조직이다.
삼성 사업장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5~8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지대위의 1차 목표는 정보 수집이지만,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주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미행, 회유와 협박까지도 이들의 몫이다. 당연히 막대한 비용이 투자될 수밖에 없다.
"싹을 못 잘랐으면 미행과 납치라도 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1단계 전략은 노조 설립 씨앗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상시적인 개별 면담과 가정 방문을 통해 '불만의 양적·질적인 팽창'을 가로막는 것과 동시에 소위 '불평 사항 소지자'로 파악해둔다. 1대 1로 진행되는 이 면담에 대해 삼성 노동자들은 상당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삼성 노동자는 "면담이 아니라 취조 당하는 기분"이라고 증언했다.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 것 등이 발견되면 행동은 더 과격해진다. 다른 현장 노동자들과의 격리는 당연한 일이고, 감시와 미행, 회유와 협박이 뒤섞여 벌어진다. 이는 삼성 내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에게서 정확히 똑같이 나오는 증언이다.
삼성SDI 부산 공장의 사내 하청업체인 하이비트 해고 노동자인 최세진 씨는 "미행은 삼성의 전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노동자들에 대한 휴대폰 위치 추적 사건도 마찬가지다. 비록 검찰은 "위치 추적은 사실이나 누가 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황당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지만 삼성 전·현직 노동자들은 삼성이 자신들을 감시하기 위해 위치 추적을 해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을 통째로 납치해 며칠씩 끌고 다니는 '기막힌' 일도 있다.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씨는 1999년 "점심이나 먹자"는 회사 관리자에게 납치돼 20일 동안 강릉, 정동진, 낙산, 춘천, 수원 등 10여 곳을 끌려다니며 노조 활동 포기 각서를 쓸 것을 요구 받았다고 증언했다.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삼성의 무기
국제 노동계에서 여러 차례 폐지 권고가 나올 만큼,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꼽히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삼성의 커다란 무기다.
미행과 납치, 회유와 협박이 모두 통하지 않을 경우에 사용하는 카드인 것. 시청에 직원을 상주시켜 한 발 앞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내거나 신고서 자체를 관계 기관에 상비시켜 설립필증 발부를 방해하는 것이다.
지난 1998년 삼성 해고자들이 삼성코닝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노조 설립 정보를 미리 입수하지 못한 경우, CC(수원시청) 근무자가 신고서 접수를 실력으로 저지하라'는 지침까지 적시돼 있다.
노동조합 설립 주동자의 마지막 운명은 결국 해고다. 비록 삼성에서 분리되기는 했으나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이마트 수지분회에 끝까지 남은 조합원의 이후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조 설립 한 달 여 만에 정직된 뒤, 결국 해고됐다. 이들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복직 6일 만에 다시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 왔다.
"이제 범죄 말고 '페어플레이'하자"
"노사 갈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그 자체가 범죄 수준이다. '페어플레이' 하자는 얘기다. 납치하고, 끌고 가고 하지 말고…."
김성환 위원장의 말이다. 이천전기가 삼성 계열사로 편입되면서부터 삼성과의 질긴 '악연'을 10년이 넘도록 지속해 오고 있는 김 위원장이다.
그 과정에서 구속되고 지난해 2월 한국 노동자로서는 최초로 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는 "저들이 법으로 보장된 노조 결성을 막는 이유는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기업에 대해 감시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
"노조에는 생명력이 있다. 한 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삼성이 원천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 얘기뿐 아니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의 결과물이 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진다."
'페어플레이하자'는 김 위원장은 "그것이 건설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헌법에조차 보장된 노동조합을 돈과 권력이라는 힘을 이용해 막고 있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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