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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에 유령이 나타났다"

포이동 판자촌 주민들 "주민등록을 해 달라"

"동사무소에 갔더니 저희 동네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라더군요. 그럼 저희는 사람이 아닌 '유령'인가요?"

14일 서울시청 주위에 흰 천을 둘러쓴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이 사는 곳은 서울시 도곡동 타워팰리스 근처. 그런데 온 몸을 휘감은 흰 천 사이로 드러난 손마디가 거칠다. 대표적인 부자마을의 이웃 주민답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누구일까?
(☞관련기사 : "계속 지금처럼 살도록 내버려 두면 좋겠어요" ,
"강남구엔 꼭 부자만 살아야 합니까")

타워팰리스 이웃 주민들이 유령 복장하고 나타난 이유?

그들은 포이동 266번지 비닐 판자촌 주민이다. 1981년 군사정권이 넝마주이, 부랑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바로 앞을 흐르는 양재천 건너 편 타워팰리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곳인 셈이다. 행정당국은 이런 대조적 풍경을 불편해 했다. 그래서 그들을 내보내려 했다. '불법 무단 점유자'라는 것이다.
▲ 포이동 판자촌ⓒ인권오름

정부가 터를 잡고 이주시킨 주민들이 왜 갑자기 '불법 무단 점유자'가 됐을까? 그곳 주민들은 원래 주민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가난을 상징하는 '포이동 주민'이라는 꼬리표가 싫었던 것. 그들이 주민등록번호를 갖게 된 것은 1984년부터였다. 당시 포이동 주민들을 관리하던 감독관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그렇게 등재된 주소는 포이동 200-1번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주민들을 관리하던 감독관들이 포이동을 떠났다. 그와 함께 주소도 포이동 200-1에서 266번지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200-1번지로 등재된 기록도 말소됐는데, 강남구청은 주민등록 전입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행정구역 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공터'로 분류됐다.

그때부터 포이동 주민들은 주민등록도 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전기, 수도요금은 꼬박꼬박 포이동 266번지로 날라 오고, 주민세는 포이동 200-1번지로 나온다. 세금만 내는 '유령' 주민이 된 셈이다.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그들이 유령처럼 흰 천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서울시는 우리를 '유령'이 아닌 '포이동 266번지 주민'으로 인정하라" 이날 그들이 외친 구호다.

정부가 이주시킨 주민들이 '불법 무단 점유자'된 역설
▲ 유령 복장을 하고 인권위를 찾아가는 이들. ⓒ프레시안

이날 행사에 참가한 포이동266번지 주민대책위원회 조철순 위원장은 '주민등록이 안 된 주민'이 겪는 설움에 대해 절절히 호소했다. 단지 행정적 불편함만이 아니다. 주민등록이 안 된 탓에 그들은 졸지에 '공터'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사는 이들이 됐다. '불법 무단 점유자'라는 것. 행정당국은 지난 1990년 그들에게 토지변상금을 부과했다. 공터를 무단으로 사용한 대가를 내라는 것이다. 변상금을 낼 수 없는 주민들을 물리적으로 몰아내려는 시도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지난 2004년 압박을 견디지 못 한 한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내용을 전하던 한 참가자는 "주민을 유령 취급한 행정당국이 결국 진짜 유령을 만들었다"며 거센 분노를 드러냈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시작한 이날 행사는 이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까지 행진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날 행사는 포이동266번지 주민대책위원회, 빈철연, 전국노동자회, 사람연대 인연맺기운동본부, 대학생사람연대, 한국사회당 서울시당 등으로 구성된 '포이동 266번지 강제이주 인정과 거주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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