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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해하는 보기 드문 서양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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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해하는 보기 드문 서양인'이 되어보자~

[프레시안 books]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뉴욕에서 사귄 친구가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주소를 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살던 곳 바로 옆 동네다. 언제 깔았는지, 카카오톡으로 질문을 보내왔다. "한국에 대한 책 하나만 소개해 줘." 머리가 하얘졌다. 대답 대신 토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모티콘을 보내놓았다.

다행히 며칠 뒤, 그럴싸한 답을 찾았다.
▲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문학동네 펴냄)는 '남'의 시각에서, '남'을 위해서 한국을 설명한 책이다. 원제는 (2012)로, 흰 바탕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정갈하게 올라간 표지인데, 평균적인 서구권 독자라면 북한에 대한 책으로 백번 오해할 제목이다. 바로 그런 오해를 할 만한 외부인들 대부분이 이 책의 예상 독자들이다. 즉 한국 하면 북한, 한국전쟁, '한강의 기적' 이 세 가지만 떠올리는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를 제공할 목적으로 쓴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이 책을 우리가 굳이 읽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국어 참고서를 읽는 것처럼 뻔한 것이 아닐까?

사실은 그렇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애초에 한국인들을 위해서 쓰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기 뒤통수를 볼 수 없는 신체구조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이것이다', '한국인은 누구다'라고 스스로 간추려 설명해내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에, '남'이 바라본 바는 어떠한지 엿듣고 싶은 갈증을 해소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궁금한 건 내 눈에 보이는 내 얼굴이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본 우리의 얼굴은 분명 우리가 아는 얼굴임에도 낯선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다니엘 튜더는 <이코노미스트> 지 특파원 출신으로 짧은 글을 통해 큰 것들을 설명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저자이지만, 책 한 권에 한 나라와 그 국민을 담는, 그야말로 '불가능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배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이 불가능한 작업을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히는 대신, 발로 뛰며 한국인을 만나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경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로 이러한 접근 덕분에, 이 책은 '남'의 시선에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우리'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영국 출신의 기자로서, 교류가 아닌 관찰을 통한 타문화 서술이라는 오만의 함정에 빠졌던 많은 선례들에 대한 반성이 바탕으로 작용한 결정이었다.

나는 '우아한' 영미권 저널리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중략)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은 그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고, 듣는 것이다.(17쪽)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는 인터뷰집 형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가 설명하는 한국의 모습마다 그가 만나본 이들의 이야기가 깊게 배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계적으로 좌에서 한 명, 우에서 한 명, 각 종교마다 한 명, 연령대별 한 명 식으로 표본 추출하는 사회학 실험을 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한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이 거친 편이다. 어떤 부분은 굉장히 세밀하고,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선이 굵다.

예를 들어 그가 설명하는 한국의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보좌관 등이 직접 회고하는 대통령 및 정·재계 인사들의 일화들이 무척 생생한 반면, 역사의 반대편에 선 민주·노동계의 이야기는 다소 뭉뚱그려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저자는 기계적인 균형을 좇는 대신 자신이 경험한 한국과 공부한 한국사, 각종 통계자료와 인터뷰 내용에서 자유롭게 근거를 끌어오며 한국의 면면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통찰을 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예를 들면 국가대표 정서로 '정', '한', '흥' 세 가지를 꼽고, 각각 정치권의 부패, 한류드라마의 감수성, 음주가무 문화 등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적극 활용하는 식이다. '나는 외부인'이라며 의견을 보류하지 않고 점들을 연결했을 뿐 아니라,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려 애쓴 흔적을 장마다 발견할 수 있다. '편견을 깨는' 책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새로운 편견으로 대체'하는 데에 그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홍보 이미지 중 하나.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특유의 재미는 곧 '아는 얘기지만 이렇게 써 놓으니까 재밌네'라는 새삼스러움으로, 한국의 문화를 기초부터 소개하는 2장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못미', 'S라인' 같은 신조어의 빠른 순환을 예로 한국인의 '새것 애호증'을 설명하고, 결혼정보회사 '듀오' 대표와의 인터뷰라는 '신의 한 수'를 통해 중매와 결혼문화를 깊숙하게 파헤친다. 한국의 사업 예절과 회식 문화를 상세히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김부장님이 '원샷?'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이 잔을 단번에 비우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뜻"이라고 친절히 일러주고, 외국인으로서 명절에 선물을 보냄으로써 "한국을 이해하는 보기 드문 서양사람"(282쪽)이 되어보자는 고급 팁까지 제공한다. 한국에 첫발을 내딛은 외국인이 이 정도로 완벽하게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설명과 시행착오가 필요했을지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책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사심'이 뚝뚝 묻어나는 부분은 한류 열풍과 영화·음악 산업을 다룬 3장이다. 영화배우 최민식은 그가 만난 인물들 중 유일하게 5쪽에 걸친 '특별부록' 인터뷰를 통해 등장하고, 저자가 본 최고의 홍대 밴드들과 힙합 그룹들을 하나하나 꼽는 부분D에서는 흥분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특히 신중현이 케이팝 그룹들보다 "백만 배는 더 훌륭하다"(18쪽)는 단호한 외침은, 냉철한 보고서라기보다는 애정이 깃든 소개서에 가까운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그에게 있어 음악인 신중현은 박정희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산업화라는 '기적'을 상징하는 박정희 정권이 예술이란 '기쁨'을 상징하는 신중현을 탄압한 줄거리에, 이 책의 가장 큰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가 한국이 과거와 현재에 마주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한국인이 "현실 앞에 기존의 관념을 양보하는 능력"을 타고났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변화를 받아들인다"(446쪽)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러한 실용성과 유연성의 배경으로 무속 신앙을 꼽는데, 신념에 의심을 허용하고 다른 믿음도 용납하는 무속이 한국인을 변화에 능한 민족으로 키워냈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종교간 갈등, 음지에 머물고 있는 성 소수자 문제, 사회 진출과 거리가 먼 여성들의 현실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자세하게 조명하면서도, '변화가 멀지 않았다'는 낙관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그가 한국을 알고 지낸 지난 10년간 직접 목도한 변화의 속도에 기초한 결론일 것이다.

저자는 19세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강렬한 첫 인상을 통해 한국과 사랑에 빠진 바, 그 당시 낯선 나라에 매료된 이유였던 순수하고 열정적인 '흥'의 문화가 돈, 성적, 외모로 대표되는 과도한 경쟁의 중압감 때문에 좀처럼 발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그가 '남'의 자격으로, '남들'을 위한 책을 처음 기획했을 때에는 한국인의 '잃어버린 기쁨'에 대해 직접 조언을 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이란 나라의 면면을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이 이룩한 '기적'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유실되었다는 주제가 점점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마침내 이 책을 한국인이 읽었을 때 가장 분명하게 와 닿는 메시지 역시 바로 이러한 진단이다.

그 진단이란 것은 결국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인데, 사실 책 밖으로 꺼내어 생각해 보면 참으로 뻔하고 쉬운 말이다. 끝없는 경쟁에서 해방되는 것이 열쇠라는 것. 한국이란 나라의 필독 자기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이 조언은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한 공허한 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개개인의 한국인에게 경쟁을 멈추고 쉬라는 말은 돌아가는 러닝머신에서 뛰기를 멈추라는 말로 들릴 뿐이다. 진정 그런 여유를 허락할 수 있는 사회로 옮겨가는 데에는 정치와 제도의 힘이 필요하며 구체적으로는 복지와 경제정의의 영역에서 답을 내야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이 이룩한 기적의 원인은 역사의 '큰 인물들'과 사회의 '큰 흐름'에서 찾아 놓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기쁨을 되찾는 사업의 주체로 개인을 주목하는 듯한 에필로그가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기초 참고서에 수능 답안지까지 부록으로 나오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어떻게'에 답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몫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책을 덮는다.

한국은 어떤 곳인가, 한국인은 누구인가.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종종 떠나온 나라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목에 핏대를 올리며 최빈국에서 경제대국·문화강국이 된 기적을 간증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모두가 경쟁의 피로에 시달리는 나라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한숨을 쉬는 친구도 있다. 코리아타운 식당에서 외국인 친구를 구석에 앉혀 놓은 채, 각자 가져온 '한국론'이 밥상 위에서 충돌하고 열을 낸다.

여기, 반대로 한국이란 나라에서 젊음을 보내며 지난 10년간 한국은 이런 곳이라는 수많은 설명을 들어온 영국인이 이제 거꾸로 한국인들에게 여러분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한국'에 귀를 기울여 보며 각자의 '한국론'을 찬찬히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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