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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에 다가서는 법, 돈과 시간!

[내가 옮긴 책]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서유요원전>

'프레시안 books'는 창간 3주년을 맞아 '번역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열두 명의 번역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남는 자신의 번역서 한 권을 골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편집자>

필자도 지금껏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작품들을 번역해 보았지만. 그 중 가장 까다로웠던 분야는 역시 시대극 번역이 아니었나 싶다.

시대극 같은 경우 대개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어휘 및 표현이 사용될 뿐만 아니라, 따로 알아 두지 않으면 해석에 지장이 생기는 온갖 배경 지식을 요구하기 십상이며, 그냥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이 지닌 고색창연함을 우리말로 재현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일반적인 작업에 비해 3중고가 더해지는 셈이다.

물론 이 모든 난관을 무사히 돌파할 경우 맛볼 수 있는 성취감 또한 굉장하기 때문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번역을 업으로 삼는 처지에서, 그런 식으로 작업 기간은 몇 배씩 잡아먹는 반면 손에 쥐는 금액은 큰 차이가 없는 일을 붙들고 있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번역료가 극도로 낮은 일본 만화 번역은 더더욱 그렇다.

▲ <서유요원전(10권)>(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김동욱 옮김, 애니북스 펴냄). ⓒ애니북스
그렇기에 애니북스 편집부로부터 모로호시 다이지로 선생의 <서유요원전>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에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세한 수치는 생략하겠지만, 보통 일본 만화 번역 시 여느 출판사에서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2~3배에 달하는 번역료와 작업 기간을 주는 것이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번역의 품질은 예산과 시간, 다시 말해 번역료와 작업 기간과 철저히 비례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애니북스는 국내에 존재하는 그 어느 만화 출판사(애니북스 같은 경우, 정확히 말하면 문학동네 산하 임프린트다.)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하간 클라이언트 쪽에서 이 정도로 열의를 보여주는데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원래부터 열렬한 애독자이기도 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모로호시 다이지로 선생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바로 그 작품의 번역을 맡게 되었다는 감격과 책임감도 막중했던 만큼, 모자란 실력이나마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해 <서유요원전>의 번역에 임했다.

시대극 특유의 어휘 및 표현을 나름대로 연구하고, <서유요원전>의 원전에 해당하는 <서유기>를 비롯해 각종 고전 소설들을 뒤적이는 한편, 기억을 더듬어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명맥이 이어지던 소위 '선 굵은' TV 사극들을 거듭 떠올리고 자료가 남아 있을 경우 다시 돌려 보면서 시대극다운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

그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시대극 같은 경우 같은 '원전'을 두고도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서로 다른 '문체'로 이를 다루기 때문에, 일본어 원문을 곧이곧대로 옮기려 들면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져 제대로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느 때 이상으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옮기면 '용서를 부탁드리옵니다'가 되지만 실제 한국식으로 하자면 이럴 때는 보통 '통촉하시옵소서'라고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때문에 <서유요원전>의 번역은 직역보다는 의역 스타일을 택하게 되었다. 의역과 직역,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스타일인가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 끝없는 논의가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보지만, 그래도 역시 이런 작품에 한해서는 이런 스타일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는 것이 본 역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여러 차례에 걸친 퇴고 중 한 번은 직역 스타일로 다시 살펴보아 두 스타일을 절충한다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의역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살리겠다는 목표에 총력을 기울였기에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후회는 않는다. 왜, 7~8권에 실린 저자 대담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지 않던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라고.

▲ <왕도의 개(1권)>(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김동욱 옮김, 미우 펴냄). ⓒ미우
좌우지간 <서유요원전>은 필자에게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수십 년 세월에 걸쳐 확고한 작품 세계를 쌓아 올린 노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빚어 낸 필생의 역작을, 비록 애독자였다고는 하나 아직도 불혹에도 못 미치는 애송이 번역가가 겁도 없이 붙들고 씨름한 것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분명 무모한 도전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역시 미흡한 부분 또한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유요원전> 번역을 통해 필자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며, 작업 중 겪은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 모두 그 이후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해 더욱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필자가 번역한 또 다른 시대극 중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의 <왕도의 개>(미우 펴냄) 같은 작품 또한 <서유요원전>이 없었으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 같은 형태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시 말해 이런 식으로 온갖 궁리를 해 가며 번역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처럼 모자란 역자를 믿고 맡겨 준 데다 넉넉한 번역비와 작업 기간을 베푼 애니북스 편집부 덕분이라고 하겠다. 속물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번역의 품질은 예산과 시간과 철저히 비례하게 되어 있다. 번역에 정답이란 없을지 몰라도 이처럼 여건이 따라 준다면 한 번이라도 더 정답을 찾아보고자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쪼록 이런 사례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항시적인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동욱의 주요 역서

<서유요원전>(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애니북스 펴냄)
<백성귀족>(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세미콜론 펴냄)
<술 한잔 인생 한입>(라즈웰 호소키 지음, AK 펴냄)
<조커>(브라이언 아자렐로·리 베르메호 지음, 세미콜론 펴냄)
<왕도의 개>(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미우 펴냄)
<이사>(사무라 히로아키 지음, 대원씨아이 펴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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