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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거인이 준 진리의 문서… 지구인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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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거인이 준 진리의 문서… 지구인 '경악'!

[금정연의 '요설'] 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①

☞금정연의 '요설' 지난 호 바로 가기 : 걸리버 여행기④ 아내보다 馬이 더 좋은 남자, 인간이길 포기하다!

<제12장>
우주에서 온 거인들이 지구의 철학자들에게 삶, 우주, 그리고 그밖의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담긴 한 권의 책을 선물한다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라 만차의 어느 마을에 재지 넘치는 한 시골 향사가 살고 있었던 것처럼, 시리우스 별 주위를 도는 행성 가운데 어느 별에는 재치 많은 한 젊은이(대략 500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크로메가스. 약 36킬로미터 정도의 키의 흔한 거인이었다. 거인왕 가르강튀아나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 돈 키호테의 풍차 거인이나 브롭딩낵 주민들과 비교해도 유별나게 크긴 하지만, 아무려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 사이즈는 문제가 되지 않는 법이다. 마크 주커버그의 재산이 13억 달러건 133억 달러건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그가 온 우주를 둘러보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고작 30미터에 불과해 특수 현미경이 아니고서는 볼 수도 없는 '벌레'들을 연구한 그의 책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 트집 잡기 좋아하고 대단히 무식한 어떤 교리해석가'가 그의 책에서 이단의 흔적을 감지한 것이다. 교리해석가를 자처하는 우리 시대의 어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끈질겼고, 도무지 넘어갈 줄을 몰랐으며, 급기야는 소송을 걸었다. 미크로메가스는 재치 있게 자신을 방어하며 여인들을 자기편으로 삼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이백 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책의 저자에게 팔백 년간 궁정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 책을 읽은 적도 없는 법률가들이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궁정을 프랑스로 바꾼다면 볼테르 자신에게 내려진 것과 비슷한 판결이었다.

이런저런 별들을 일주하던 미크로메가스는 토성에 도착한다. 지구보다 겨우 구백 배 큰 행성이다. 키가 2킬로미터에 불과한 토성의 시민들을 만난 그는 무척 놀란다. 그렇다고 걸리버가 릴리푸트 사람들을 만났을 때처럼 놀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웃음을 참지 못했을 뿐이다.

미크로메가스는 새로운 사물을 보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천체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니 우월한 자의 미소가 떠오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잘난체하는 그런 미소는 현명하다는 사람들도 가끔 억제하기 힘든 법이다. (볼테르 지음,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이병애 옮김, 문학동네 펴냄) 12쪽)

아, 우리의 가련한 걸리버에게도 미크로메가스와 같은 호연지기가 있었다면 그런 고초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 헤어날 길 없는 인간 혐오에 빠지지도, 자신이 키우는 말과 부적절한 관계(추정)를 갖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미크로메가스는 이내 웃음을 멈춘다. 그런 사실 정도는 알만큼 현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성 아카데미의 사무국장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 코너를 통해 지겹게 보았듯, 때론 철학적이고 때론 정치적인 긴 대화를 통해서.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다들 그랬던 모양이다. 이런 식이다.

"우리에겐 일흔두 개의 감각이 있습니다." 아카데미 회원이 말했다. "그런데도 감각이 적다고 매일 한탄하지요. 우리의 상상은 필요 이상으로 멀리 뻗어갑니다. 우리는 칠십이감(感)과 토성 고리와 다섯 개의 위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흔두 개나 되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정념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권태를 느끼지요."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크로메가스가 말했다. "우리 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천 개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알지 못할 어떤 막연한 욕망, 알지 못할 어떤 불안이 남아 있어서 끊임없이 우리가 하찮은 존재이며 우리보다 훨씬 더 완전한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행을 좀 하면서 나는 우리보다 훨씬 열등한 필멸의 존재들도, 우리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욕망하지 않거나 만족할만한 양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나라에 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도 내게 그런 나라에 대해 확실한 어떤 소식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16쪽)


그렇다면 미크로메가스는 <걸리버 여행기>(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펴냄)를 아직 읽지 못한 게 분명하다(물론 볼테르는 그것을 읽었고, 조나단 스위프트와 친분을 나누기도 했다). 휴이넘들에 대한 걸리버의 보고가 확실한 소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독서의 중요성. 그리고 이제 <미크로메가스>(의 인용 부분)를 읽은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욕망과 그 짝패인 권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천 개의 감각을 가진 이들도 그렇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이래서 독서가 중요하다는 거다(볼테르는 여기에 "물론 농담이다"라는 부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살았다.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누군가 이 부분을 읽고 "책만 읽는 멍청아, 나가서 일을 해라" 같은 댓글을 달까봐 두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 때문만은 아니다'는 말은 언제나 '~ 때문이다'와 같은 말이다. 자꾸만 혀가 길어지는 이유 역시 누군가 오해할 게 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신이 어떻게 읽건 그게 아마 맞을 것이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책 따위나 읽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짧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만오천 년쯤 사는 토성인이 하는 말이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에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뭘 좀 배우려고 하면 경험을 채 쌓기도 전에 죽음이 찾아온다고 불평한다(그러니 백 년도 못사는 우리가 무식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또한 오늘의 독서가 주는 교훈이다). 미크로메가스도 동의한다. 그 또한 토성인보다 칠백 배쯤 더 살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짧은 삶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함께 '가벼운 철학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가벼운 철학 여행이라고? 아마 소셜커머스와 저가 항공이 없던 시절에는 그런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토성인의 애인이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자그맣고 귀여운 갈색머리 여인으로 키가 고작 660투아즈(약 1320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작은 키를 보완해줄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 잔인한 사람!" 그녀가 소리쳤다. "천오백 년 동안 뻗대다가 마침내 비로소 당신을 따르게 되었는데, 당신 품에서 겨우 이백 년을 보냈을 뿐인데 당신이 나를 떠나 다른 세상에서 온 거인과 함께 여행을 가다니요. 가세요, 당신은 한낱 호기심 많은 사람에 불과할 뿐 사랑은 한 번도 못했던 거라고요. 당신이 진정한 토성인이라면 마음이 변하지 않으련만. 어디로 가는 거지요? 뭘 원하는 건가요? 우리 다섯 개 위성도 당신보다는 덜 떠돌아다녀요. 우리 토성 고리도 당신보다는 덜 변덕스러워요.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철학자는 그녀를 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천생 철학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마음을 달랜답시고 그 별의 어느 젊은 멋쟁이 녀석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20쪽)

자, 이제 우리는 점잖은 영국 신사 걸리버가 구태여 묘사하지 않았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떠나야겠다고 말하는 남편 걸리버를 바라보던 아내의 눈물, 같은 것을. 마찬가지로 마지막 항해를 떠나기 전에 임신한 늦둥이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밖으로만 도는 남편을 둔 아내에게는 젊은 멋쟁이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걸리버도 그 사실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세 번째 항해에서 오쟁이 진 남편과 정숙하지 못한 아내를 그답지 않게 강경한 어조로 비난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이다.

혜성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이인조가 처음으로 들른 곳은 목성이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문 그들은 다시금 길을 떠나 화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화성은 너무 작았다. 누울 자리도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한 그들은 "흡사 어느 형편없는 마을 주막을 무시하고 이웃 마을까지 내처 가듯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한참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가던 그들은 마침내 '희미하고 여린 한 줄기 빛'을 본다. 그들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별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만, 이대로 가다간 노숙을 할 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 들르기로 결심한다. 1737년 7월 5일, 시리우스인과 그 일행이 지구에 도착한 날이다.

그들은 하인들이 알맞게 조리해준 산(山) 두 개를 점심으로 먹은 뒤, 자신들이 도착한 나라를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중해라고 부르는 작은 늪과, 우리가 대양이라고 부르는 작은 연못을 넘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은 총 서른여섯 시간. 비율이 맞지 않았던 탓에 그들은 어떤 생명체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곧 이를 두고 시리우스인과 토성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토성인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공언했고("사실 내가 이곳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양식 있는 자라면 여기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크로메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논쟁이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열을 낸 탓에 미크로메가스의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끊어졌고, 땅에 떨어진 다이아몬드를 줍기 위해 몸을 숙인 그들은 그것이 현미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들은 현미경을 이용해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흐릿하게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를 발견한다. 다름 아닌 고래였다. 토성인은 그것을 엄지손가락 손톱 위에 올려놓고는 시리우스인과 함께 웃기 시작했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작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그들은 고래보다 더 큰 무언가가 발트 해에서 떠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고래보다 더 큰 무언가라고? 볼테르는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 무리의 철학자들이 북극권에서 그때까지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사실들을 관측하고 돌아왔던 것(* 옮긴이 주에 따르면 "1736년 프랑스의 수학자 모페르튀이가 라플란드 탐사단을 조직하여 위도 1도의 길이를 측정해 지구가 타원체임을 입증한 일을 말한다.")이 바로 그 무렵이다. 여러 신문은 철학자들의 배가 보트니아만에서 좌초했는데 그들이 거기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노라고 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결코 카드의 이면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제 내 의견을 조금도 덧붙이지 않고 일이 일어난 대로 진솔하게 이야기하려는 바, 역사가에게는 이것이 여간한 노력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26쪽)

한 마디로, 탐사단의 좌초라는 역사적 사건이 실은 시리우스인의 착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승객과 승무원들도 착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인의 손바닥을 바위로 착각한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였던 것이다. 마침내 우주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감격한 미크로메가스가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벌레들아, 조물주의 손길이 무한히 작은 연못 속에서 기꺼이 너희를 태어나게 하셨으니 내가 범접 못할 비밀을 발견하도록 해주신 것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나의 궁정에서는 너희를 거들떠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누구도 경멸하지 않고 너희들을 보호하겠다." (32쪽)

어디선가 들려오는 천둥 같은 목소리에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배의 사제는 구마경(驅魔經)을 외웠고 선원들은 욕을 했으며 배에 타고 있던 철학자들은 이 현상을 설명할 체계를 세웠다." 그때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토성인이 나서서 미물들을 달래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토성에서 시작된 여행 이야기를 해주었고 미크로메가스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토록 미미한 존재일 수 있냐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나서 언제나 이렇게 무(無)와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상태에 있었느냐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고래들의 소유로 보이는 이 별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복한지, 번식은 하는지, 영혼이 있는지 물었고 그리고 이러한 본성에 대한 질문을 백 가지쯤 더 던졌다. (33쪽)

참으로 극적인 순간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에게 영혼이 있는지 누군가가 의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는 사분의를 조절해 상대를 관찰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 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 투아즈(* 2킬로미터)라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요즘 말로 하자면 "너 나 무시하냐?"정도 되겠다.

하지만 그럴 리가. 많은 곳을 여행한 미크로메가스다. 그렇다고 걸리버처럼 소심하지도 않다. 그는 이토록 작은 존재에게 지성을 선물한 신에게 경의를 표한 뒤, 그들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물질은 얼마 안 되고 온통 정신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모습에서 진정한 정신의 삶을,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만들어진 신의 은총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모든 철학자들이 고개를 젓는 가운데, "그들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솔직한 한 사람이 공언하기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소수(* 철학자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미치광이, 악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이어 익숙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걸리버를 그토록 자주 논쟁에 뛰어들도록 만든 전쟁과 학살, 권력자의 끝없는 욕망 등에 대해서.

"당신 발꿈치만 한 커다란 진흙 더미 몇 개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서로 목을 치는 수백만 명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이 진흙 더미에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차지하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가 술탄이라는 사람 편인지 아니면 이유는 몰라도 황제라는 다른 사람 편인지 그것이 문제일 따름입니다. 어느 쪽도 문제가 된 작은 땅 구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결코 보지도 못할 것입니다. 서로 목을 베어 죽이는 이 짐승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들이 어느 짐승을 위해 목을 바치는지 그 짐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36쪽)

한 마디로 그때는 TV가 없었다는 말이다.

가슴이 뭉클해진 외계의 거인들이 묻는다. "당신들은 몇 안 되는 현자들이니 부디 말해주시오. 겉으로 보기에 당신들은 금전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그들이 대답한다. "우리는 파리를 해부합니다. 선(線)을 측정하고, 수를 조합하고, 우리가 이해하는 두세 가지 사안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삼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토론을 합니다." 그들이 어떤 사안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지 알기 위해 미크로메가스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별에서 쌍둥이자리의 큰별에 이르는 각도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공기의 무게는? 그러자 놀랍게도 작은 존재들이 척척 대답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미크로메가스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외부 세계에 대해 그토록 잘 아니 내부에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군요. 그대들의 영혼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각을 형성하는지 얘기해주십시오." 철학자들은 조금 전처럼 일제히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했고 다른 이는 데카르트의 이름을 들먹였으며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로크의 이름이 나왔다. (38쪽)

이런저런 이론과 인용이 이어지고, 미크로메가스는 그들을 은근히 비꼰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학파의 학자들에게 모두 고개를 저었던 미크로메가스가 로크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사각모를 쓴 미세동물(라블레가 일찍이 철저하게 조롱한 바 있는 소르본 대학의 신학자)이 다른 철학자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속에 모든 비밀이 있다고 말한 뒤, 두 외계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들의 인격, 세계, 태양, 별, 모든 것이 오직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까지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중이다.)

너무나 당돌한 미세동물의 주장에 두 거인은 그저 웃을 수밖에. 어찌나 웃었는지 손톱 위에 올려두었던 배가 토성인의 반바지 주머니 속으로 굴러 떨어져 그들은 한참이나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찾은 배를 정성껏 원상태로 바로잡아주었다. 시리우스인은 이토록 미미한 것들이 그렇게 커다란 자존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더없이 친절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아주 작은 글씨로 근사한 철학책 하나를 써주겠다고. 그 책에서 그들은 사물의 궁극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사람들은 그 책을 파리의 과학 아카데미로 가져갔다. 그러나 아카데미 사무국장이 그 책을 펼쳤을 때 눈에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백지뿐이었다.
"아! 내 이럴 줄 알았어." 그가 말했다. (42쪽)


잠깐, '42'쪽이라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삶과 우주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답을 계산해달라던 사람들에게 '깊은 생각'이 650만 년 만에 던져준 답 또한 그것이 아니었던가.

혹시라도 아직 그 답을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구글에 "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이라고 검색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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