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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꿈꾼 냉동인간, '고깃덩어리'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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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꿈꾼 냉동인간, '고깃덩어리'로 전락!

[프레시안 books]래리 니븐의 <플랫랜더>

통념과 달리 저작권법은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아이디어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보호할 수가 없다. 아이디어에까지 저작권을 부여하면 문화의 다양성의 폭이 너무나 좁아져 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법은 특허법이다.

과학소설의 독자를 만나다보면, 간혹 과학소설은 저작권법이 아니라 특허법의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1) 아이디어가 같은 것만으로도 (독자들 사이에서는) 표절 취급을 받는다. 2) 기존에 알려진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구현이 불가능해서는 안 된다) 3)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4) 그 새로운 생각이 지금까지 존재한 것을 한층 뛰어넘는 진보적인 것이어야 한다. 5) 그 새롭고 진보적인 생각이 일반인이 널리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탁월한 과학소설을 잔뜩 향유해 온 어떤 독자들의 눈에는 이 기준을 통과해야 비로소 '과학소설증' 같은 것을 얻게 되고, 그 밖의 것은 판타지 혹은 일반문학이 되는 것 같다.

▲ <플랫랜더>(래리 니븐 지음, 정소연 옮김, 새파란상상 펴냄). ⓒ새파란상상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은근히 이 원칙은 추리소설에도 먹히는 것 같다. 아이디어가 같은 것만으로도 표절 취급을 받고, 현실적으로 구현이 가능해야 하며,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트릭인데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을 한층 뛰어넘는 것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누구나 다시 활용할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세기의 걸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간신히 '추리소설증' 같은 것을 얻는다. "오, 이건 추리소설이네."

이거 재미있는 생각이다. 어딘가에 써먹어야지. 생각하며 래리 니븐의 <플랫랜더>(정소연 옮김, 새파란상상 펴냄)를 다 읽고 후기를 보는데 올해 76세 되신 이 노 과학소설가께서 말씀하신다. "과학소설과 추리소설은 비슷한 점이 많다." 역시 무슨 생각이든 누군가는 이미 했다니까.

"둘 다 일종의 수수께끼이며, 독자가 작가를 앞서나갈 기회를 준다."

<플랫랜더>는 '과학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양쪽 장르의 특성을 가볍게 건드린 것이 아니라 과학소설로서도 하드 SF이며 추리소설로서도 공정한 게임을 하는 정통 추리소설이다. 한 번에 특허 두 개를 동시에 얻는다니, 어떻게? 저자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아주 힘들게.' 인기가 있는 시리즈였으면서도 26년간 겨우 다섯 편의 중단편만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서도 같은 답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저자가 후기에 썼다시피,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종의 게임을 하는 장르다. 그런데 모든 규칙이 낯설다면, 어떻게 추리를 하란 말인가? 하지만 이 작가는 성공했을 것이고(그러니까 책이 나왔겠지) 그 자체로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작가가 힘들면 독자는 즐겁다. 이 책은 이중의 게임이고 두 배로 즐겁다.

예전에 과학소설가 테드 창이 한국에서 강연을 했을 때 SF와 판타지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자동차'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17세기의 작가를 가정한 적이 있다.

"만약 이 작가가 세상에 단 한 대 있는 자동차로 예쁜 여자를 구하고 악당을 혼내주는 이야기를 쓴다면 그것은 판타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한 대씩 갖게 되고, 운전면허증이 생기고 자동차 기업이 생기고,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교통사고가 일상이 되는 세계를 그려낸다면 그것은 SF다."

그 기준에서 보면, 과학소설 독자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날개가 있는 자동차라든가 변신하는 자동차의 방향이 아니다. '자동차'라는 개념은 이미 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고, 장거리 연애와 교통체증과 교통사고의 개념도 이미 클리셰의 범주에 들어가 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전 세계에 도로망이 생겨나고 도로 주변에 사는 지역주민과 국가 간에 땅을 사고팔거나 이주하는 갈등이 생겨나고, 생물들의 생태계가 도로를 경계로 끊기는 식의, '경험하지 않고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충분히 있을 법하고, 한번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소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의 확장이다.

교합점이 보이시는지? 추리소설로서 이 책의 독자가 작가를 '앞서나갈 수 있는' 방법은 많은 부분, 이 소위 '자동차'에 대해 어느 쪽이 생각을 더 깊고 넓게 확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조금 흥분되니 실제 범인을 밝혀내는 것과는 상관없는 부분에서 약간 힌트를 주고자 한다.

1. 절정의 죽음

<플랫랜더>에 실린 다섯 편의 중단편은 모두 장기이식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면역이나 신체의 거부반응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인간의 몸은 컴퓨터나 자전거 부품처럼 마음대로 갈아 끼울 수 있는 시대다. 이것이 이 소설의 '자동차'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세계의 사회상을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가?

저자의 묘사에 의하면 전 세계에 사형제가 부활하고, 사소한 경범죄까지 사형에 처하는 시대가 된다(죄인의 몸으로 선량한 시민을 구할 수 있다면 값싼 대가가 아닌가?). 전 세계에 장기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이를 전담하는 특수전담반도 생겨난다.

주인공은 그 특수전담반에 근무하는 '외팔잡이'라는 별명의 형사다. 이 사람이 외팔잡이로 불리는 까닭은 1년이나 잘린 팔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형사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사람도 '여전히 잘려진 자리의 감각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주인공은 그 감각이 생생하다 못해 상상의 손으로 흙속이나 벽 너머를 만져 검사하고, 담배처럼 작은 물건도 들 수가 있다.

이 소설의 결말을 앞서가는 방법은 독자가 이 '상상의 손'의 능력을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가에 살짝 달려 있다. 늘어나거나 변형되지는 않는다.

2. 무력한 망자

'장기이식'의 상상은 이 단편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한다. 우리 세상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미래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며 잠들어 있는 '냉동인간'으로 눈을 돌린다. 그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된 미래에 이 부자들은 장기이식에 쓸 좋은 고깃덩어리로 전락한다. 그들이 산 사람으로 존중받는가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는가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새 법안 하나가 통과되는가 마는가의 문제다. 신선한 장기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위기'에 장기밀매업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산 사람'들이 대거 '죽은 사람'으로 바뀌게 될 때의 상속관계도 복잡하게 흘러간다.

3. ARM

시체는 하루 사이에 미라가 되었고, 깔개는 4미터 원형으로 낡아 있고, 시체를 향해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팔이 마비되고 몇 초 머무른 것만으로 팔이 괴사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답은 시체 주변만 지금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주변보다 빨리 흐르는 공간에 팔을 집어넣으면, 팔에서 팔꿈치까지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몸은 느리게 흐르니, 심장에서 피를 내보내는 속도가 미치지 않아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팔이 괴사하는 것이다. 이 단편의 트릭을 밝혀내는 방법은 이 공간의 활용법을 어디까지 상상하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시간이 빨리 흐르는 공간 안에서 손전등을 켜면 밖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범인을 찾는 것과는 상관없는 트릭이니 알아도 괜찮을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진동수는 단위시간당 움직임을 뜻하고, 빛의 에너지는 진동수에 비례해서 커진다.

4. 조각보 소녀

이 중편에서 무대는 달로 옮겨간다. 기본적으로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은 목욕을 하던 사람의 몸에 묻은 물이 몸에서 흘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건물 밖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사람이 몇 미터쯤 뛸 수 있는 것도, 밤과 낮의 기온이 현저히 다른 것도 사건의 양상을 지구와 다르게 변화시킨다.

5. 델 레이 크레이터의 여인

앞선 단편 '조각보 소녀'에서 등장한 달세계를 배경으로, 'ARM'에서 등장한 시간 압축 필드 기술을 응용한 듯한 '방사선 차단' 실드가 등장한다. 사람 하나 정도를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작은 필드 생성기가 막 개발된 시대에, 달의 크레이터 한 가운데에서 4,50년 된 시체가 발견된다. 발자국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밖에 없다. 이 시체는 방사능 폭격이 쏟아지는 크레이터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짧은 단편이라 트릭이 깊지는 않지만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추리소설을 읽고 독후감 숙제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고 완전히 흥분한 상태였는데, 감상을 쓰려면 스포일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화가 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왜 대단한지는 밝힐 수가 없다'라고 썼었다. 그때보다는 조금 낫게 썼기를 바란다. <플랫랜더>는 저자가 50편이 넘게 쓴 '링 월드' 세계관의 한 외전이며, '링 월드' 시리즈는 이 책을 시작으로 파란미디어의 중간문학 브랜드 '새파란상상'에서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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