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낙동강 상류 지천 '내성천 지킴이'로 활동해온 지율 스님이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을 제작, 개봉한다. 지율 스님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세계에서도 희귀한 자연 경관을 가진 내성천이 4대강 사업의 하나인 영주 댐 건설로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강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극장에서 보는 첫 4대강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를 먼저 본 김현우 진보신당 녹색위원장이 영화를 권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이 글은 <프레시안>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연재하는 '초록發光'의 이번 주 칼럼이다. <프레시안>은 독자의 <모래가 흐르는 강> 감상을 계속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 지율 스님. ⓒ신병문 |
서울에서 열린 <모래가 흐르는 강> 시사회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지율 스님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냈다.
늘 그래왔지만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다. 스님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이어져있고 나서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무엇이 고맙고 미안하냐고, 다만 더 느끼고 더 나누자고 하실 것이다. 영화를 마무리하여 세상에 내어 놓으면서 어찌 보면 편안해 보이면서도 한 곳에 뜨거운 긴장을 담아 두고 있는 스님의 표정도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다행히 영화의 제작을 위한 온라인 소셜 펀딩도 목표액을 넘겼고 시사회에도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열린 시사회를 본 이들의 평도 비슷한 것 같다. 아프고 안타깝고 화가 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스님의 의도가 솔직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 본 장면들은 작년, 재작년에 가보았던 내성천과도 벌써 놀랍게 달라져 있었다. 상류에서 영주 댐 공사가 진행되면서 수위가 내려가고 유량이 변하면서 모래톱은 자갈밭으로 흉하게 변하고 있었다. 강에서 살아가던 동물들은 물론, 강을 끼고 살아온 사람들도 쓰러진 감자 포기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어떤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한 게 아니라는 것은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카메라가 담아 낸 내성천의 굽이굽이와 고운 모래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고, 그것들의 '공명'을 원하는 스님의 뜻이 그렇기 때문이다. 변해가는 강을 따라 조용히 물어보고 가만히 응시하며 걸어가는 카메라와 이를 좇는 두 발은 관객들과 진동수를 함께 한다.
영화의 처음과 말미에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물을 따라 흐르는 모래알의 모습. 이 영화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님이 강과 강의 사람들 사이에 직접 들어가서 몸으로 느꼈기에 담아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제작 기한과 비용에 구애받는 4대강 기획물이었다면 훨씬 압축적이고 스펙터클한 구성이 되었겠지만, 내성천의 소소한 모습을 이렇게 두루두루 살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율 스님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들을 직접 비난하지 않으려 한다. 4대강 사업이 사회 전체의 동의 혹은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업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돌아봄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천성산은 물론이고, 새만금, 청계천, 용산, 핵발전소 모두가 '우리 머릿속의 4대강'이 아니었던가? 신기루 같은 개발 이익을 기대하였든 세태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였든, 우리 모두 일정하게 공범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 말이다.
ⓒ신병문 |
그러나 이를 원론적으로 질타하고 반성한다고 극복될 일은 아닐 것이다. 지율 스님의 방식이 있다면, 공명하는 이들 모두가 같은 방식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영주 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볼 궁리도 필요하고, 또 누군가는 지난해에 국토관리청과 농민들과 미완의 합의로 일단락된 팔당 두물머리의 생태경작학습장 조성 작업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4대강 사업의 책임을 법적으로 따지고, 이후 복원 또는 재자연화를 공론화 하는 것도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한강 자연성 회복' 기본 구상도 좋은 매개가 될 것이다. 이 제안에 이미 찬반양론이 빚어지고 있는 바, 박원순 시장이 단기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를 잘 분별하여 지혜롭게 시민의 뜻을 모아 실현하길 바란다. 이 사업도 성공하려면 몸과 가슴으로 느끼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게 관건이라고 본다.
<모래가 흐르는 강>에서도 안타까이 언급되거니와, 강에 제대로 내려와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강에 이리저리 줄을 긋고 공사 계획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그렇다면 강에 손과 발을 담그고 원래의 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비극을 막고 강을 복원하는 가장 구체적인 힘이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강이고 우리가 당사자라고 외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설득력 강한 이야기는 없다.
이를 위한 방법을 <모래가 흐르는 강>은 가장 잘 일러주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내성천에 직접 발을 담가보고 스님의 흉내를 내어보는 것이다. 그 모래와 물빛을 한번이라도 느껴보면 우리는 강의 친구가 되고, 강의 공범이 된다. 삼삼오오 기회를 만들어 내성천을 찾아보자.
그 전에 일단 영화를 보고 입소문을 내자. 올 봄과 여름, 가을에 내성천을 가보자고 지인들과 구두 약속이라도 해놓자. 서울 시민이라면 버스와 전철 속에서, 응봉역 앞 저자도 자리에서 생기는 모래톱을, 마포대교와 서강대교에서 내려다보이는 밤섬과 선유도를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리고는 이 강이 원래 어떠했다고 사람들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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