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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선진국? 아니, 식민성의 포로다!

[프레시안 books] 월터 미뇰로의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제8권인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 식민주의성, 서발턴 지식, 그리고 경계사유>(이성훈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는 국내에 번역된 월터 D. 미뇰로(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책이다.

3년 전 미뇰로의 한국 강연 때 출판된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 식민적 상처와 탈식민적 전환>(김은중 옮김, 그린비 펴냄)과 식민성, 근대/식민 세계체제, 식민적 차이, 경계사유, 권력의 식민성, 지식의 지정학 등등의 여러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실로 다채롭고 쉽지 않은 주제들이다. 게다가 월러스틴, 데카르트, 헤겔, 칸트, 데리다, 푸코, 레비나스, 들뢰즈, 가타리, 바바 등등 숱한 서구 석학들과의 비판적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라틴아메리카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아랍의 '다른 사유'들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화를 시도한다.

바둑으로 치면 우주류 바둑을 구사하는 스케일이 큰 책인 셈인데, 원래 언어학을 전공하면서 기호학과 식민지 시대 연구를 접목시킨 미뇰로가 이처럼 시공간을 활보하는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니, 그의 지적 호기심과 열망이 놀랍기만 하다.

▲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월터 미뇰로 지음, 이성훈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목의 의미를 올바로 포착해야 한다.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상반된 용어의 대립에 현혹되어 과거 종속이론 유의 민족주의/제국주의 혹은 주변부/중심 아니면 제3세계/서구의 대립 구도 속에서 쓴 책으로 오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디자인이란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구 관리 프로젝트"를 말한다. 세계체제의 탄생 이래 그 헤게모니는 항상 서구가 장악했다. 서구는 아메리카(미주)를 식민 통치하던 시절의 기독교 사명, 18~19세기의 문명화 사명, 1960년대의 근대화 프로젝트, 최근의 신자유주의라는 4개의 글로벌 디자인을 통해 전 세계를 관리했다.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과 프랑스, 미국, 초국적 기업들이 차례로 그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로컬 히스토리는 피식민 국가, 즉 소위 제3세계의 역사뿐만 아니라 소위 메트로폴리탄 국가의 역사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후자가 근대 세계체제 내부의 역사라면, 전자는 그 주변 지역의 로컬 역사이다. 글로벌 디자인도 결국은 특정 메트로폴리탄 국가의 로컬 역사에서 나온 것이고, 시대에 따라 이를 생산한 국가들이 바뀐 만큼 서구 국가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진다. 미뇰로는 이처럼 세계관이 동일한 제국들 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지점을 내부 경계라 칭하고, 식민 종주국과 상이한 로컬 역사를 지닌 피식민 국가들이 글로벌 디자인과 파열음을 일으키는 지점을 외부 경계라 칭한다.

이 대목에서 미뇰로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근대 세계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수정하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이다. 미뇰로는 물론이고 그가 자주 인용하는 페루 사회학자이자 1세대 종속이론가 아니발 키하노와 아르헨티나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은 소위 '장기 16세기'에 세계체제가 탄생했다고 본다는 점에서 월러스틴과 같은 시각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일군의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다다른 1492년이 세계체제의 탄생 시점이라고 못 박는다. 또한 월러스틴이 세계체제의 탄생을 장기 16세기로 잡으면서도, 미뇰로가 말하는 글로벌 디자인과 유사한 개념인 지문화(geoculture)가 18세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으로 비로소 자리 잡았다는 주장을 배격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한 글로벌 디자인의 존재를 천명한다.

나아가 '근대 세계체제'라는 개념 자체가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근대 세계체제의 탄생이 아메리카 식민통치로 가능했는데 '근대'만을 내세우고 '식민'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근대/식민 세계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근대성과 식민성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다다른 1492년을 세계체제의 탄생 시점으로 잡는다는 점에서 이런 일련의 주장이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의 자민족 중심주의의 소산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반론의 여지도 없지 않다. 필자만 해도 아부-루고드의 13세기 세계체제론이 언뜻 떠오른다. 또한 16세기에 인도나 중국이 서구의 글로벌 디자인에 좌지우지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특히 미뇰로가 그 방대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쪽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실 미뇰로는 자신의 사유가 "아메리카 내 에스파냐(스페인) 유산의 로컬 역사에서 출현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비판한다면, 미뇰로는 '경계사유'라고 주장할 것이다. 경계사유는 로컬 역사와 글로벌 디자인의 교차 지점에서 '식민적 차이'에 대한 뼈저린 성찰이나 상처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사유이다. '식민적 차이'는 "근대/식민 상상계 속에서 행해진 지구의 분류"이고, 키하노가 정립하고 미뇰로가 자신의 이론적 토대 중 하나로 삼은 '권력의 식민성'은 그 "차이를 가치로 변형시키는 에너지이자 기계"이다. 미뇰로는 라틴아메리카의 로컬 역사 덕분에 주체성, 젠더, 노동, 지식, 권위 등 모든 측면의 식민적 차이가 이미 16세기에 위계질서화 되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서구가 저지른 3대 제노사이드인 아메리카 원주민 말살, 아프리카 흑인의 강제 이주와 노예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중에서 앞의 두 가지 사건이 16세기 아메리카 정복과 함께 발생한 데에서 인종의 식민적 차이를 본다. 1531~1660년 사이에 최소한 15만 5000킬로그램의 금과 1698만 5000킬로그램의 은이 합법적으로 유럽에 유입되었고, 불법으로 유입된 양도 엄청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근대성과 식민성이 동전의 양면임을 입증한다.

서구가 자랑하는 인권 개념도 18세기에 담론화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이전에 바야돌리드 논쟁(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세풀베다의 논쟁)의 결과물인 '인간(people)의 권리'가 시초라고 주장한다. 이 권리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존중보다는 새로운 인종을 서구의 상상계 안에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다.

미뇰로는 경계사유가 결여된 이들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푸코도 데리다도 들뢰즈도 사이드도 그 비판을 벗어나지 못한다. 주체성, 젠더, 노동, 지식, 권위 등 모든 측면에 존재하는 식민적 차이는 식민 종주국 출신 학자들이 체득한 현실이 아니다. 따라서 글로벌 디자인과 로컬 역사를 동시에 조망하는 폭 넓은 시야라고 할 수 있을 경계사유를 획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권력의 식민성이 미시적인 층위까지 촘촘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이들조차 경계사유를 획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서구) 근대성 기획의 반성에만 골몰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도 18세기 근대성 기원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초적 오류를 저지른다.

이런 비판을 통해 미뇰로는 포스트옥시덴탈 이성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는 오리엔탈리즘 이전에 옥시덴탈리즘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이드는 18세기에 구축된 오리엔탈리즘이 근대 세계체제 최초의 헤게모니적인 문화 상상계라고 말하지만, 이는 미뇰로가 수용하기 어려운 관점이다. 무엇보다도, 오리엔트라는 범주가 존재하려면 이의 대립항인 옥시덴트라는 범주가 존재해야 한다. 마치 타자가 존재하려면 그 대립항인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옥시덴트라는 범주가 탄생한 것이 바로 스페인의 로컬 역사가 주조한 글로벌 디자인에 의해서이다.

149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다다른 해이기도 하고, 스페인이 무어인과의 8세기 동안의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해이기도 하다. 흔히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것은 결코 발견이 아니었다.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유럽인이 뒤늦게 도달한 것일 뿐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인들 그리고 나아가 서구인들의 상상계에서 아메리카는 신대륙이 아니라 유럽이 확장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국제법에서 말하는 무주물선점 원칙이 아메리카에 적용되어, 스페인인들은 새로운 땅을 개척했을 뿐이지 아시아나 아프리카 경우처럼 주인 있는 땅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논리지만 아무튼 미뇰로의 말처럼 "옥시덴트는 유럽의 타자가 아니라 동일성 내의 차이"였다.

서구인들의 오리엔트에 대한 태도는 스페인이 1492년 무어인에게 승리한 지 얼마 뒤부터 바뀌었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에 "아랍 세계에 대한 인식은 오리엔탈리즘이라 일컬을 만한 것도 아니고 '타자'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그리스 사상이라는 동일한 토대에 기초한 지식을 소유하는 적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스페인이 16세기 초에 개종하지 않는 무어인을 추방하면서 오리엔트는 타자가 되었다. 아메리카 정복으로 새로 구축된 지중해—대서양 교역회로는 근대/식민 세계체제의 핵심이 되었고, 옥시덴트는 이 회로의 내부에 위치해 있다. 반면, 오리엔트는 이 회로에서 배제되어 외부에 위치하게 된다.

이 회로가 근대/식민 세계체제에서 주축을 이루게 되면서 옥시덴트는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고, 따라서 옥시덴트 외부를 기술하고 개념화하고 서열화해도 되는 특권이 있다는 인식인 옥시덴탈리즘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미뇰로에게 옥시덴탈리즘이 모든 사유의 범주와 세계를 분류하는 지정학적 담론이라면, 오리엔탈리즘은 그 결과 파생된 하나의 연구 영역일 뿐이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근본적인 서구 극복에 다다를 수 없다. 이는 오직 옥시덴탈리즘 극복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래서 미뇰로는 포스트옥시덴탈 이성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두셀, 미뇰로, 키하노 등 근대성/식민성 연구그룹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들은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laism)이 아니라 탈식민주의(decolonialism)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사이드 같은 남다른 예외도 있지만 포스트식민주의가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영어권 국가들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19세기 초에 독립한 라틴아메리카 현실과 맞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연구대상 시기나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는 다른 피식민 지배 국가들보다 훨씬 먼저 독립했지만 미뇰로의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듯이 독립 후에 내부 식민주의가 작동했고, 단순히 식민 잔재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장구한 세월이 지속되었다는 점이 포스트식민주의의 기계적 적용을 망설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식민 통치 없는 식민주의의 작동과 지속 메커니즘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의 성찰은 결국 식민주의와 식민성의 구분으로 나아갔다. 물론 식민성에 대한 관심과 이론화 시도를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나 근대성/식민성 연구그룹만의 독점적인 지적 공헌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만큼 집요하게 식민성 문제를 파고든 이들은 별로 없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식민주의보다 식민성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글로벌 디자인의 지향점은 전 세계적인 근대성의 성숙이라기보다 식민성의 작동과 영속이고, 그 식민성이 미시적인 차원까지 지배하는 한 식민주의도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미뇰로의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 식민주의성, 서발턴 지식, 그리고 경계사유>의 집필 의도는 결국 식민성의 시각으로 대서사를 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글로벌 디자인의 역사나 식민성의 실체를 밝히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식민성에 대한 인식 필요성, 식민성을 극복하려는 인식의 전환, 즉 경계사유로의 전환을 역설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렇다면 미뇰로의 이 책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과거와 현재에서 그 해답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 여건은 과거에 비해서 분명 좋아졌다. 일단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 자체가 몰라보게 커졌고,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이나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속칭 돈도 좀 돌고, 군부독재와 부패가 과거 일반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지닌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열정, 문화적·예술적 풍요로움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라틴아메리카에 덧씌워진다.

하지만 종속이론이나 해방신학의 소개를 통해 국내 학계에 어느 정도 이론적 개입을 했던 것은 과거지사가 되었다. 여기에는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이 반성할 점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물적 토대가 달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령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종속이론의 중심-주변부, 신식민주의, 부등가교환 등의 키워드로 분석 가능했지만,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다고 자평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여전히 개도국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학계가 납득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도 그래서 근대성/식민성 그룹에 대한 반향이 아직 미약한 것 같다. 세계화 국면에서 이론적 교정이 있었다지만, 결국 이들의 뿌리는 종속이론과 해방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가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를 도외시해도 될 정도로 식민성을 극복한 사회일까? 과거 미뇰로를 소개하면서 '지식에도 왕후장상의 씨가 있다'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근대성/식민성 그룹이 말하는 지식의 지정학적 속성, 즉 서구 지식이 비서구적 지식보다 특권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전후 상황은 지식의 지정학성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금융 위기 이전까지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은 줄기차게 (신자유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외쳤다. 반면 세계시민사회포럼은 이들을 비판하면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식의 지정학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는 항상 세계경제포럼에 눈길을 주었다. 미뇰로식 용어를 사용하자면 신자유주의 글로벌 디자인 하에서 우리나라의 로컬 역사가 완벽하게 지배당한 형국이다.

그렇다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졌을까? 필자는 언론도 학계도 출판계도 위기의 진단과 해법을 또다시 서구 지식에서 구하는 현실을 보고 식민성의 포로가 된 국내 현실, 지식의 지정학이 미시적 차원까지 지배하는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 글로벌 디자인과 파열음을 낸 세계 시민사회의 경계사유는 여전히 지식의 장에서 소외 대상이었던 것이다. 미뇰로의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 식민주의성, 서발턴 지식, 그리고 경계사유> 출간이 반가운 이유는 바로 이런 국내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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