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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연쇄살인마, 사실은 '이란성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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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연쇄살인마, 사실은 '이란성 쌍둥이'?!

[김용언의 '잠 도둑'] 에릭 라슨의 <화이트 시티>

대도시와 범죄의 관계에 있어 가장 명징한 시발점은 런던이다. 추리소설의 시발점은 코난 도일이 창조해낸 런던의 탐정 셜록 홈즈부터이며, 런던 한복판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떠올려보라. 넓은 의미에서의 범죄 소설 역사에서 언제나 영국이 가장 높은 자리를 먼저 선취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영국이 범죄와의 매혹적인 악몽에 푹 잠겨 있을 때, 미국은 뒤늦게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룩하느라 정신없었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하드보일드 소설가들을 통해 후발 주자로서 새로운 명성을 얻었고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편견은 에릭 라슨의 논픽션 <화이트 시티>(양은모 옮김, 은행나무 펴냄)에서 산산조각난다.

<화이트 시티>는 19세기 말 미국 시카고에 실존했던 두 사람을 따라간다. 당시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혔던 대니얼 H. 번햄과 돌팔이 의사이자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H. H. 홈즈(본명은 허먼 웹스터 머제트).

그리고 이 둘을 삼켜버린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대도시 시카고. 19세기 말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로 손꼽혔지만, 언제나 '2류 도시'라는 열등감에 시달렸던 도시. 1871년 대화재 이후 무서운 속도로 다시금 도시를 재건했고, 그 속도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그것을 '시카고의 정신'"이라 자화자찬했고, "그 기회를 이용해 상업과 제조업과 건축 분야에서 전국적인 리더의 위치에 올랐"다고 여겨졌던 도시.

▲ <화이트 시티>(에릭 라슨 지음, 양은모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그러나 시카고의 상징과도 같은 유명한 도살장 '유니언 스톡야드'를 두고 작가 업튼 싱크레어가 말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설익은, 날것에서 나는 냄새"이자 "음란하고 강렬한 게 거의 악취에 가까"운 냄새로 가득한 도시이기도 했다. "싱클레어는 그것을 기분 좋게 느끼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죽음의 강'을 걸어서 건넌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성장 중인 도시는 그 자체로 전염성을 가진다. 도시에 속해 있는 모두가 도시의 어마어마한 속도에 취해버리며 자기 자신도 그 도시의 물리적 일부인 것처럼 성장할 것이라 믿고 갈망한다. 그 도취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 결말이 기다릴 뿐이다. 위대한 창조주가 되거나, 끔찍한 파괴자가 되거나, 예측 불가능한 정신이상자가 된다. <화이트 시티>는 이 세 가지 가능성의 시작과 파국을 모두 더없이 냉정하고 꼼꼼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병렬 추적한다.

1880년대, 대니얼 번햄과 존 루트는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하고 바쁘고 재능 있는 건축가였다. 그들은 시카고에서 '마천루'라 불리기에 마땅한 첫 건물을 만들었고 새로운 부유층 비즈니스맨들이 열광하는 '하늘의 아파트' 전문가였다. 당시 미국은 1889년 프랑스가 만국 박람회를 개최하여 304.8미터에 달하는 철제 탑, 즉 에펠탑을 세워 전 세계인들의 경탄을 자아낸 것에 자극받았다. 유럽에 질 수 없다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갑자기 불붙었고,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400주년'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세계 박람회가 시카고에서 열리게 됐다. 그 박람회장 건설을 번햄과 루트가 맡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번햄과 루트는 1893년까지, 단 3년의 기간 동안 "완전한 도시 하나를, 파리 박람회의 영광을 뛰어넘을 정도의 수준으로 건설하라는 요구"에 응해야만 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에서는 1886년 의사 출신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이 셜록 홈즈를 처음 세상에 소개했고, 1888년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가 창녀들의 대학살을 시작했다. 시카고에 자리잡은 냉담하고 탐욕스러운 의사 허먼 웹스터 머제트는 양쪽 모두에 열광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H. H. 홈즈라고 기재하기 시작했고, 잭 더 리퍼의 살인 행각에서 어릴 때부터 꿈꿨던 자신의 어두운 상상력의 배출구를 발견했다. 홈즈는 1888년 모종의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통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뚫려있는 어둡고 이상한 건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하실에는 나무로 된 이동장치와 거대한 가마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홈즈 주변의 많은 여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사라지는 건 너무 쉬웠다.

"자유를 향해 막 떠나기 시작할 때, 작은 장소에서 갓 벗어났을 때 그들을 잡는 것이 최상이었다. 신원불명으로 사라지면 그들의 존재는 아무 곳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홈즈는 매일 기차와 전차 혹은 마차에서 내린 여자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들이 찾아가는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았다. (…) 홈즈는 시카고를 무척 좋아했다. 연기와 소음으로 여자를 감쌀 수 있고, 거름과 무연탄과 오물이 썩어 가는 악취 속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향수의 흔적을 제외하면, 그녀들이 존재했었다는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던햄은 박람회장 준비에 제대로 착수하기도 전, 소중한 동업자 루트를 병으로 잃었다. 그는 이제부터 혼자 힘으로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 <화이트 시티>의 대부분은 기실 던햄이 온갖 방해세력(정치인, 귀부인, 은행, 건설 인부, 언론, 심지어 날씨)을 물리치고 독재자 같은 괴력을 휘두르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시카고 안의 또 다른 도시, 거대한 인공 도시 '화이트 시티'(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해진 박람회장)를 건설하는 무시무시한 디테일은 거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희비극의 연속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건설 과정이 다다르는 종착역은 기이한 낯섦,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공포, 인간의 초라함을 절절하게 일깨우는 거대한 것 앞에서의 불안이다. 존 루트의 죽음으로 시작한 박람회 여정은 시카고 시장의 암살로 끝맺고, 이후에 드러난 홈즈의 연쇄살인으로 사후 능욕을 당한다.

"점점 파손되고 허물어지는 것보다는 장관을 이루며 화염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낫다. 잔치 다음날 아침, 손님들이 떠나고 불이 꺼진 연회장보다 더 우울한 광경은 없다."

19세기말 도시인들의 야망이 어이없는 추진력으로 힘겹게 쌓아올려지는 과정에는 온갖 디테일이 풍성하다. 박람회장에는 온갖 마법 같은 신기술들, "장거리 전화, (…)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초기의 요지경식 활동사진 영사기)로 움직이는 사진, (…) 정전기를 발생하는 금속 극판 위에 선 니콜라 테슬라의 몸에서 번개가 지직하는 소리를 내는 것, (…) 듀이 10진법의 발명자인 멜빌 듀이가 만든 세로형 서류 정리함", 높이가 80미터에 달하는 대형 관람차 '페리스 휠'이 들어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정한 목적과 이유가 아닌 오로지 개인적인 '취향'으로 살인에 대한 감각에 사로잡힌 범죄자가 존재했다.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수많은 순진한 독자들에게 자신의 무죄 혹은 천재성을 뽐내려 했던 '사이코패스' 말이다. 당시에는 이 같은 존재가 전혀 미증유의 것이었다.

"몇 십 년이 지난 뒤에도 정신과 의사들은 남에게 친절하고 비위를 잘 맞추지만 뭔가 인간적인 중요한 요소가 빠져버린 것 같은, 홈즈와 같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막연한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처음에 의사들은 이 증상을 '도덕적 정신이상', 그리고 그런 장애를 보이는 사람을 '도덕적 정신박약자'라고 했다."

어쩌면 저자 에릭 라슨은 H. H. 홈즈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다. 홈즈를 다룬 기존의 책이 몇 권 존재했지만(해롤드 쉐흐터의 <사악한 인간>, 데이비드 프랑케의 <고문하는 의사>, 프랭크 가이어 형사의 회고록 <홈즈-핏첼 사건> 등), 라슨은 이 이야기를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같은 걸작으로 다시금 재구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라슨은 비교적 '손쉬운' 범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는 1890년대 시카고라는 기이한 도시, "선과 악, 빛과 어둠, 창조자와 파괴자, 백색도시와 흑색도시,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해내는 '시카고 정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악"이 병존하는 도시 자체에서, 위대한 창조주로 칭송받은 이와 끔찍한 파괴자로 경악을 불러일으킨 이가 스쳐지나갔고 똑같이 '신과 같이 되는 꿈'을 꿨다는 그 동시대성 자체를 사랑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 시티>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 물리적인 건축뿐 아니라 그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병적인 열기와 흥분과 욕망이 어떻게 구축되어 가는가의 그 직조 과정 자체가 되었다. "작은 계획을 세우지 마라. 작은 것에는 사람의 피를 끓게 하는 마법이 없다." 대니얼 H. 번햄의 유명한 경구를 에릭 라슨은 그대로 실천했다. 그 모든 영욕의 시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던햄은 1909년, 인생 말기에 초자연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간만 있다면, 죽음을 넘어 생명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연에 비하자면, 그리고 건축물에 비하자면 한없이 유한한 인간의 생명 자체를 견딜 수 없어하며 문자 그대로의 신을 꿈꿨던 이의 욕망은 불가사의하다.

<화이트 시티>를 다 읽고 나면 에릭 라슨의 또 다른 대표작 <야수의 정원>(원은주 옮김, 은행나무 펴냄)을 하루라도 빨리 손에 잡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이 책은 "히틀러가 막 정권을 잡은 1933년 베를린에 입성한 미국 대사 도드와 그의 딸 마사가 겪은 지옥 같은 1년의 기록"을 담았다고 한다.

덧붙임.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의 판권을 일찌감치 죄다 사들이는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특성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화이트 시티>의 판권 구매가 언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디카프리오는 이 판권을 2010년에 구입했지만, 아직까지 IMDB에선 '발전시키는 중'이라는 정보만 나와 있을 뿐 구체적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화된다면, 그리고 디카프리오가 주연까지 맡는다면 그가 과연 던햄을 맡을지 홈즈를 맡을지 흥미진진하게 기다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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