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면, 문재인 후보는 2030년까지 전력 수요의 20퍼센트를 감축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전력 공급의 20퍼센트로 확대하며, 고리 1호기 등 수명 만료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안철수 후보는 2017년까지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6퍼센트까지 끌어 올리고, 수명 만료 핵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공약은 역대 대선 후보들과 비교해보면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와 고리1호기 등 국내 핵발전소의 잦은 고장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비등한 상황에서, 정권 교체를 통해 탈핵의 분명한 전환점을 만들겠다는 후보의 의지를 확인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선거 공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2017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 5만 개를 창출"(안철수)하겠다거나, "2030년까지 에너지 산업 분야에 정부와 민간에서 200조를 투자해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문재인)는 등 장밋빛 공약은 난무하지만, 핵산업계를 포함한 원자력 이해 관계자들을 해체할 전략적 고려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아직까지는 탈핵을 주요 정책으로 삼아 선거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핵 카르텔에 결박된 에너지 정책
핵 카르텔의 형성 과정을 보면, 탈핵을 위해 넘어야 할 저항 세력, 즉 핵 카르텔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핵정책은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3년 유엔 총회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핵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 선언 이후,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 체결, 1956년 문교부 내 원자력과 신설, 1958년 원자력법 제정과 원자력원 설치 등 미국의 개입과 지원에 따른 기술 개발 중심의 원자력 정책에서부터 시작한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석유 파동을 계기로 동력자원부를 신설하고, 고리1호기 완공과 탈석유전원개발 정책 도입 등 에너지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원자력의 역할이 정책적으로 중요해 졌다.
전두환 정부는 핵발전소 기술 자립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세계 핵발전소 시장 침체기에 한국형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공세적인 핵에너지 정책을 펼쳤으며, 10퍼센트 대 전후의 높은 경제 성장률과 핵발전소 비중이 급증했다.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90년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발전소 주변 지역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제도화되었으며, 핵에너지의 생산 및 이용에 따른 방사선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를 목적으로 원자력안전기술원을 신설했다.
핵을 중심으로 한 전력 정책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가 수립한 1차 전력 수급 계획은 2010년 발전량에서 핵발전소 비중을 42.1퍼센트로 계획하여 핵발전소 중심 전력 정책을 공고화했다. 또 노무현 정부는 3차 원자력진흥계획을 통해 2011년까지 핵에너지 발전 이용 확대와 핵에너지 산업 경쟁력 강화, 고유의 핵 비확산성 원자력 시스템 핵심 기술 확보를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비록 강령을 개정하고 탈핵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이 안고 갈 역사적인 짐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제 1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2008~2030)에서 핵 발전을 설비 기준으로 2008년 24퍼센트에서 2030년 41퍼센트로, 발전량 기준으로는 36퍼센트에서 59퍼센트로 확대한다는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2010년 제5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통해 이미 확정된 34기 이외에 4~6기의 핵발전소를 추가적으로 더 건설하기로 확정했다.
또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 핵발전소 수출 계약을 계기로 2010년 1월 '원자력 발전 수출 산업화 전략'을 마련했다. 2012년까지 10기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수주하고, 2030년까지 80기의 핵발전소를 수출해 누적 4000억 달러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세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20퍼센트를 점유하고, 2030년까지 3대 핵발전소 수출 강국으로 도약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렇듯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핵 정책을 둘러싼 정책 결정 세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지, 강화돼 왔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녹색을 상품화하고, 나아가 자본이 녹색을 포섭하는 전략으로 헛된 핵발전소 르네상스를 부르짖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들어 급성장한 핵 산업
이러한 핵 위주의 전력 정책은 시장에도 바로 반영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직전까지 핵에너지 공급 산업체의 매출 규모는 연간 2조5000억 원 미만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단 3년 만에 두 배가량 급성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총 매출은 147개 기업에서 4조7817억 원이었고, 고용 인원은 2만3835명이었다.
이 중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원자력 공급업체는 설계업의 한국전력기술, 건설업의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제조업의 두산중공업과 한전원자력연료, 서비스업의 한전KPS 등 10개였고, 100억 원 이상 1000억 원 이하 매출 업체는 35개였다. 이러한 매출변화는 이명박 정부의 핵 발전 정책 확대를 수치로 확인해 주고 있고, 그 만큼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관계가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을 분석해 보면, 거의 대부분(79.2퍼센트)이 건설 및 운영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원자력 관련 매출이 있는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원자력 매출 비중은 4.9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는 탈핵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원자력 산업 부문이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음을 방증한다. 특히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전체 매출에서 원자력 건설과 운영이 차지하는 부분이 절대적인데, 실제 민간 영역의 건설업과 제조업은 핵발전소 매출 비중이 낮고, 연구기관이나 설계업은 공공 영역에 있어 상대적으로 충격을 흡수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 원자력 산업 분야의 인력은 총 2만3835명이었고, 탈핵으로 직접적으로 고용에 미칠 영향은 핵발전소 건설, 시공, 설계, 엔지니어링, 기자재 제조 등 8355명으로 추정되는데, 건설업은 해당 기업의 핵발전소 매출 비중이 매우 낮고, 설계, 엔지니어링은 공적 영역이어서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데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자재 제조 분야의 2494명에 대한 일자리 전환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탈핵의 인프라 구축이 차기 정부의 시대적 과제
대선 공약을 통해 아주 세부적인 정책까지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탈핵을 위해서 필요한 장치는 필요하다. 누구의 반대나 저항도 없는 공약만 제시한다면, 그 진정성과 정책 실효성은 감퇴될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가 추진해 왔던 핵 위주의 전력 정책의 프레임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뿐만 아니라, 적어도 연간 약 5조 원으로 확대된 원자력 시장을 어떻게 전환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원자력 분야의 일자리를 어떻게 정의롭게 전환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더구나 야권으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여소야대 정국과 핵 카르텔의 반발을 고려한다면, 구체적이면서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탈핵을 위한 차기 정부의 역할 중의 하나는 핵 카르텔을 해체함으로써, 탈핵의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다. 핵 카르텔의 반발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적 지지와 동의,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에 있다. 이는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통해 핵 없는 삶은 가능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과 함께 핵 카르텔의 저항을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로부터 시작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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